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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다의 하루

아, 사모님, 사모님....

by 이숙경(2011canna@hanmail.net) 2013. 11. 11.

오늘, 간만에 미용실에 들러 펌을 했다. 지난 4월에 했으니 7개월만이었다. 하긴 그 이전에는 펌도 하지 않은 채 지냈다. 나처럼 미용실을 멀리하면 미용실은 다 굶어죽겠지? 거의 이십여 년을 한 미용실을 드나드는데 원장님과 대화를 나눈 적이 거의 없다.

예약제로 운영하는 그곳에 한 번 원장님께 물어본 적이 있다. 혹시 제 이름은 아세요? ^^;;

이름을 모르면 나를 어떻게 설명해야 나인 줄 알까 걱정스러웠기 때문이었다.

어제 밤 좀 꿀꿀한 일이 있어서, 눈을 뜨자마자 기분전환이라도 할 겸(그러고보니 4월의 펌도 그 전날 밤 거의 미칠 뻔한 상황이 있었던 후유증이었네?^^) 미용실로 달려가 버린 것이었다...

 

그곳은 늘 전화로 예약하고 오년, 십년, 그 이상된 단골이 거반인지라 다른 손님들과 겹칠 일이 거의 없다. 지루해서 꼬박꼬박 졸고 있는데 한 손님이 들어왔다. 왕 단골인지 반갑게 원장님이 인사를 한다.

들어서자마자 내 또래 아줌마 손님은 마구 말을 쏟아냈다.

딸이 교통사고가 나서 한 달 동안 입원했는데... 동네 병원 안가고 삼성의료원 갔더니 과연 아주 잘해주더라나.

딸내미 여기저기 성형 해주었는데 마침 얼굴을 다쳐서 보통 놀란게 아니었다네. 그래도 좋은 병원이라 실력이 좋아 감쪽같이 고쳐놨네...

잠이 달아난 나는 장황한 사건사고 이야기를 건성으로 듣다가 문득 스쳐지나는 아줌마를 보았더니...

전형적인 아줌마였는데 나름 돈 좀 들인 옷차림이었다. 말끝마다 일류병원 찾고 해서 나는 속으로 졸부쯤 되는갑다, 하고 짐작했다. 여기 저기 전화해서 어디로 점심 먹으러 가자 하고, 헤어스타일링 제품이 만원이라고 직원이 가르쳐주니까 와, 참 싸다, 하는 폼이 돈을 좀 만지는 축인 것 같아서였다. 솔직하게 말해 헤어스타일링 제품은 이삼천원, 비싸야 오천 원 정도하는데 미용실에서 권하는 제품은 무쟈게 비싼 제품이었다.

머리 커트하고 드라이 하는 동안 아줌마 손님은 너무너무도 경제적이며 현실적인 이야기만 잔뜩 늘어놓았고, 이쁘게 치장하고 갔다. 간 후.

 

나에게 별 말을 안 건네던 원장이 웬 일로 말을 건다. 미용실에서 대화하는 모습은 참 특이하다. 거울을 보면서 말하는 것이다.

거울 속의 나를 향해 말하고 나는 내 머리를 만지작거리고 있는 원장을 거울을 통해 보면서 말하는, 생각하면 할수록 넘 웃기는 대화법이다.

원장: 저 사모님 딸이 성형 엄청 했어요. 눈하고 코하고 다음에는 턱도 좀 깎았다나. 그래서인지 엄청 이뻐요. 그걸 아니까 교통사고 났다고 해서 얼굴은 괜찮냐고 물었던 거예요.

나:아, 네...

원장: 저 사모님 딸이 무슨 대사관에 근무한대요. 유학도 갔다오고, 아주 잘 키웠지요. 맨날 자랑해요. 대사관 직원이라고. 원래 딸도 우리 미용실 왔었는데 몇 년 전부터는 강남쪽으로 바꾼 거 같더라고요. 안 와요.

나:아, 네...좀 사시는 거 같더라고요. 입성이나 말하는 내용이나... 여기 졸부 쯤 되시나...요?

원장:목사님 사모님이셔요.

나:목사님 사모님이요~~~~?

원장: 그냥 막말로 하자면 그 교회는 장사가 아주 잘되는 모양이예요. 돈 펑펑 잘 써요. 저 사모님도 십 몇 년 단골이셔요. 그래서 좀 알죠. 해외여행도 일년에 서너번은 꼭 가는 거 같아요. 안가본데 없어요. 아이들은 다 유학보냈고, 좋은 직장 잘 다니고. 공부 잘 시켰으니까 그렇겠죠. 저 사모님 어디 차리고 나가려고 들르면 명품에 보석 장난 아니어요. 원래 굉장히 차려입고 싶어하고 몸 치장하는거 좋아하시는데 사모님이어서 눈치 보느라 마음대로 차려입지 못하는 거 같아요.

나: (.....유구무언)

원장: 저는 종교는 없는데요, 옆에서 보면 쫌 그래요. 아무리 봐도 너무 세상적이예요. 아니, 다른 일반 손님 보다 훨 더해요...자랑하고 싶은데 할 데가 없으니까 머리하러 오면 저한테 다 말하는 거 같아요. 저는 교회가 장사로밖에 안보여요. 목사님도 그냥 직업인거죠. 완전 상업적이예요... 그거...다 헌금으로 잘먹고 잘사는 거 아닌가요? 아니면 교인들이 촌지를 주거나 그런거죠?

나:....(뭐라고 하고 싶은 말이 목구멍까지 차오르는 걸 참느라 개고생해야했다...  어쩌면 저분은 크리스천이 아닐지도 모르죠. 이렇게 말하고 싶지만 참았다는 말씀이닷!)

 

아, 사모님, 사모님......

아니다, 이렇게 사모님을 부를 게 아니라 하나님을 불러야 하는 건데...

아, 주님, 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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