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빛나라 60

오늘의 게으른 아침을 감사합니다

by 이숙경(2011canna@hanmail.net) 2017. 12. 21.

거의 한 달 째 늦잠을 자고 있다.

5시 알람은 언제나 울리지만 언제나 끄고 뒹굴거린다.

그 시간, 너무너무 행복하다.

우리 아들이 행사장에서 가져온 전기요는 어찌나 성능이 좋은지

1번에 맞추어도 뜨끈뜨끈하다.

그리고 극세사 이불. 값도 비싸지 않은 그 이불은 몇 년째 우리의 겨울을

행복하게 만들어주고 있다.

오늘은 아 글쎄, 7시가 다 되어 일어났다네!

요즘 이뻐질라나 잠이 많아졌다 ㅋㅋ

 

사방에 뚫린 커다란 창으로 눈이 온 바깥 풍경이 고스란이 보인다.

창가에 서서 한참 오는 차, 가는 차, 정류장에 멈춘 버스, 다시 붉은 신호등에 걸려

늘어선 차량들의 행렬들을 보았다.

모두 바쁘게 아침을 맞이하고 부지런히 삶을 시작하는데

속옷바람의 나는 맨발이어도 전혀 춥지 않은 따스하고 포근한 집에서

빈둥거리고 있구나!

 

온종일 책을 읽다가 생각하다가 궁리도 하다가 결심도 하다가 뭔가 노트에 끄적거리기도 하면서 하루를 보내는 나는 대체 무슨 복이란 말인가!!!

이렇게 생각하다가 지난 날이 떠올랐다.

16개월동안 요양보호사 일을 하던 때의 아침을, 오전을...

그때 참 많이 힘들었다. 하지만 수십만명의 요양사는 아직도 여전히 그렇게 일을 하고 있다. 오늘 아침 메일함을 열었는데 요양보호사협회에서 월급 예시표를 보내왔다.

 

 

급여 협상 하실때 참고 하시기 바랍니다...^^*

★2018년 요양보호사 최저임금

처우개선비.주휴수당,연차수당 포함한 금액 입니다.

급여 협상 하실때 참고 하시기 바랍니다. 



 3시간 22일 급여 명세서    시간당 10,229원  

적 요

적 요

금 액

기 본 급

496,980

180

3시간 ×22× 7,530

496,980

수 당

178,131

처우개선비

66시간 ×625

41,250

주휴수당

3시간 ×8,155×4,345(처우개선비포함)

106,300

연차수당

3시간 ×8,155×1.25(처우개선비포함)

30,581

휴일근무수당

3시간 ×8,155×1(처우개선비포함150%

0

급여 합계

 

675,111

 

 

공 제 액

56,779

국민연금

675,111×4.5%

30,380

건강보험

675,111×3.06%

20,658

장기요양

건강보험료 기준 6.55%

1,353

고용보험

675,111×0.65%

4,388

차 인 지 급 액

618,332

 

내가 일하던 때보다 많이 월급이 올랐다. 하나하나 되짚어보며 감회가 새로웠다.

요즘 점점 힘들어지니 다시 하루에 세시간이라도 할까, 이런 생각도 잠시 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하루가 그냥 훌쩍 지나가버린다.

아침에 일어나서 준비하고 걸어가든 버스를 타든 시간이 소요되고 서너시간 일하고 돌아오면 1시, 2시가 되고. 그러면 피곤해서 밥먹고 좀 쉬어야 하고.

오후 너댓시는 되어야 비로소 내 시간이 주어지는 것이다.

 

아직 결정한 바는 없지만 매일매일 '오늘의 게으른 아침을 감사하는' 인사만 하면 되냐, 

이런 생각이 드네.

그러면서....다시 또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아침. 올해 이래저래 대박이 나서 12월이 다가도록 나의 인생에서 가장 풍요롭고 행복한 시간들을 주셨으니 이 은혜를 어찌할꼬. 

아침에 온 요양사협회의 메일을 보면서 작년 1월에 썼던, 지난 나의 생을 보여주는 글을 떠올렸다.

이곳에는 올리지 않은 모양이다. 긁어서 올리고 나도 다시 읽어보면서 오늘은 열배로 감사해야징~~~~ 

 

..............................................................

농심 고구마깡 다다의 할리페

 

2016. 1. 28. 21:38

 

 

 

 

 

 

얼마 전 집 앞에 큼직한 슈퍼가 문을 열었다. 만국기가 펄럭이고 밤늦도록 불빛이 환한 가게였다. 고객은 보이지 않는데 가득가득 쌓여있는 상품들. 슈퍼에 가서 몇 바퀴를 돌다가 나도 모르게 농심 고구마깡을 집어 들었다.

 

TV를 보면서 아삭아삭 과자를 먹는데 작년 이맘때가 떠올랐다. 나는 왜 내가 농심 고구마깡을 보고 그냥 지나치지 못했는지 알고야 말았다. 오늘은 영하 8! 정오가 지난 시각인데. 금싸라기 같은 햇살이 온 누리에 펼쳐져 있는데.
 
아침 여덟시 어귀에 언제나 길을 나섰던 작년의 이맘때가 떠오른다. 집을 나서기 전 조금이라도 여유의 시간이 있으면 그것이 그렇게도 아까워 글 한 줄이라도 남기고 싶어 했던 시절이었다. 겨우 십 분이나 이십 분 정도의 짬이어찌나 소중하던지.
두툼한 코트를 입고 모자를 눌러쓰고 집을 나서면서 생각했다. 이렇게 좋은 시간에 글을 계속 쓴다면 얼마나 좋을까.
겨울이었으므로 당연히 추웠다. 나는 발을 동동 구르며 걸었다지저분하게 변한 눈 더미와 얼음이 반짝이는 길을 딛는 나의 발도 금세 얼어가고 있었다.  
눈물이 쏟아질 것처럼 날선 바람이 뺨을 가르면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정류장에 서 있었다. 앞을 스쳐 지나는 수많은 차들을 바라보면서, 고개를 빼고 저 멀리 내가 타야할 버스가 오는지 보면서 나의 미래를 생각했다.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 준비를 하면서 틈을 내어 몇 줄의 글을 쓰고 서둘러 길을 나서는 나의 일과는 앞으로도 변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나는 그것이 조금은 슬펐다.
 
어르신이 사는 아파트 단지에 들어서면 거의 언제나 십분 전 아홉 시였고, 숨을 고르며 벨을 누르는 시각은 어김없이 9시였다. 조금 일찍 도착하면 일층 현관의 게시물을 읽으며 시간을 맞추었다.
가끔 4층의 어르신을 돌보는 다른 요양사와 마주칠 때도 있었다. 그녀는 나보다 훨씬 어린 나이였음에도 만날 때마다 오래전부터 알던 사람처럼 편하게 말을 놓고 위아래로 훑어보는 눈초리가 무례한 여자였다. 일상의 순간마다 생각을 입히는 것은 때로 고통스러웠다. 그러므로 나는 그냥 참고 넘어갔다.

벨을 누르면 작고 아담한 체구의 딸이 문을 열어주었다어르신의 딸은 나보다 세 살 위였다언제나 머리에 루프를 말고 있었는데 일주일에 한 두 번은 잠옷차림이었다.
집안은 언제나 고요했다. 나는 TV 소리가 들려오지 않는 그 집이 참 좋았다. 정말 이상한 일은 어르신의 방에 들어가자마자 어르신을 꼭 끌어안고 인사를 한 후 제일 먼저 TV를 켠다는 것이다내가!
어르신을 모시고 사는 딸과 사위는 물론이고 어르신조차 거의 TV 보지 않았다. 길에서도 들릴 만큼 커다랗게 거실이며 안방이며 TV를 틀어놓고 한시도 눈을 떼지 않던 이전의 어르신 댁과는 대조되는 부분이다.

어르신은 거의 말이 없었다. 이것 역시 이전 어르신 댁과 정반대였다. 이전에 보살펴드렸던 어르신은 여든세 살 된 치매 할아버지였다. 여든두 살 된, 같이 사는 할머니는 문을 열어주면서부터 내가 다시 문을 나설 때까지 쉬지 않고 말했다. 그저 떠오르는 대로 아무 말이나. 연속극의 여주인공에서부터 스쳐지나간 모든 상황을. 나는 네 네 하면서 들어주기만 하면 되었다. 아주 가끔 묻기도 했다. 전혀 궁금하지 않았지만 할머니의 눈빛이 쓸쓸해 보이면 나도 모르게 바투 다가앉아 이야기꾸러미를 풀어내는 것을 도와주기도 했다. 나는 일을 하면서 늘 고개를 할머니 쪽으로 돌리고 할머니의 하소연, 넋두리, 슬픈 인생에 대하여 조금씩 알아갔다. 나는 그것이 제일 힘들었다.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 맞장구를 쳐주는 것. 이해되지 않는 이야기를 이해하는 표정을 짓는 것, 같은 이야기를 수십 번, 수백 번 처음 듣는 것처럼 들어주는 것.

아흔을 넘긴 이번 할머니를 끌어안으면 폭 안길만큼 자그마했다. 채널 순례는 9에서 시작했다. 중반을 향하여 가는 아침마당을 보면서 할머니에게 안마를 해드렸다. 잘 할 줄은 모르지만 마사지도 해드렸다. 머리에서부터 발끝까지 주물러드리고 얼굴에 팔, 다리와 발에 로션도 발라주었다. 어르신은 내가 무엇을 하든 그대로 앉아계셨다. 신부처럼 로션을 뺨, 이마, 콧등에 찍어놓고 문질러주면 어르신의 얼굴에 윤이 났고 나는 그것이 좋았다. 할머니 정말 미인이에요. 가끔 어르신 뺨에 입을 맞추기도 했다. 어르신도 사랑스러울 때가 많았다. 빈말이 아니라 아담하고 말이 없는 어르신은 정말 예뻤다.
얼마쯤 시간이 흐르면 채널은 11번으로 옮겨갔고, 이상한 가족들을 리얼로 보여주는 꼭지를 거의 언제나 시청했다. 무섭고 이상하고 신기하고 두렵고 고통스러운 가족들이 등장해서 정말 저 사연이 사실일까 의심하게 만드는 숱한 다큐를 쏟아냈다. 사람이 다양하다는 것과, 사람은 천성적으로 악하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이야기가 태반이었다.

나는 집에서 거의 TV를 본 적 없기 때문에 저런 이야기가 새로운 기분으로 시작해야 할 아침에 방영된다는 사실이 더욱 놀라웠다. 내가 보기에는 여지없이 사생활 침해로 보이는 영역까지 함부로 카메라를 들이대며 침범하는 경우도 있었다. 아쉽다면 등장하는 식구들의 대부분이 (사용하는 말이나 대화내용으로 보아)식자층과 거리가 있었다.
대단히 폭력적이며 직설적이며 내심을 거르지 않고 내뱉는 사람들. 늘 발톱을 세운 짐승처럼 할퀴고 싸우고 기어이 이기기 위하여 어떤 음해도 서슴치 않는 사람들. 대화법에 익숙하지 않고 욕과 화와 병이 뒤섞여있는 사람들. 늘 새롭고도 놀라운 장면을 연출하는 장면을 보면서 지성과 인격은 어느 정도 상관관계가 있는 것인가, 가끔 그런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러니까 나는 내가 잘 알지 못하는 계층의 리얼 다큐를 아침마다 슬프도록 가깝게 접하고 있는 셈이었다.

이십 분 안짝으로 스토리가 끝나면 SBS로 채널이 넘어갔다. 그 즈음에 시작하는 토크 프로그램이 있기 때문이다.
추워서 바깥출입을 할 수 없는 어르신때문에 4시간 내내 집안에서 어르신을 위한 무엇인가 해야 했다.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몇 가지 되지 않았다.
나는 방과 거실의 시간을 구분하기로 했다. 방에서는 주로 안마인지 마사지인지 모를 이상한 물리치료를 하기로 마음먹었으므로 손은 쉴 수 없지만 눈은 TV를 볼 수 있었다. 만약 방송이 없었더라면 그 시간을 보내기 참 힘들었을 것이다. TV는 내가 이해할 수 없는 내용이 많았다. 너무 놀라운 광경을 보고 그 놀라움을 글로 쓰기도 했다.

나의 두 손은 어르신에게로, 시선은 TV, 마음은 갖가지 상념으로 조용하지만 분주한 시간을 보내는 즈음, 어르신의 딸은 헬스를 가기위하여 조심스레 문을 열었다. 혹여 자신의 외출 인사가 나를 감시한다는 느낌을 주지나 않을지 노심초사하는, 예의바른 사람이었다. 그녀는 헬스 후 동네 아는 가게에 들러 커피를 마신달지, 대형슈퍼에 들린달지 하는, 매우 규칙적인 삶을 살고 있었다.
부엌은 물기 하나 없이 정갈하게 정돈되어 있었고 단 한번도 설거지거리가 있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 어르신만 사용하는 욕실도 마찬가지였다. 물을 쓰는 곳인데 물기가 없었다. 나는 그것이 신기했다. 하지만 이내 알게 되었다.
어르신을 목욕 시킨 후에 젖은 몸을 닦아드린 젖은 수건으로 세면대, 변기 주변, 욕조의 가장자리, 타일 벽과 바닥까지 한 방울의 물기도 남기지 않고 말끔하게 닦아내는 것이다
그것은 내가 할 일이었다.

일주일에 한 번, 매주 금요일 어르신의 목욕 도우미는 힘들었다나는 온몸이 다 젖을 정도로 힘을 쏟아야했다. 결국 나의 몸도 땀으로 온통 범벅이 되었지만 내 몸을 이곳에서 씻어도 되는지어르신 목욕까지만 요양사의 일이므로 욕실을 사용할 권리는 혹시 없는 것은 아닌지 몰라 포기했다. 나는 끈적끈적한 몸을 견디면서 이후의 시간을 보내야했다. 요양사 일을 하면서 무엇인가 결정하기 힘든 일이 있을 때는 내가 원하는 것을 하지 않기로 마음먹었기 때문이었다.
팔 개월 동안 그 집을 드나드는 동안 나의 마음의 약속을 거스른 날이 두 번 있었다. 더 이상 견딜 수 없었던 어느 날 어르신 옷을 입혀드린 후, 내 몸에도 물을 끼얹었다.
문을 잠그고 옷을 벗고 샤워기 밑에서 몸을 씻는데 두려웠고 어쩐지 무섭기까지 했다. 드디어 샤워가 끝나고 물이 똑똑 떨어지는 샤워기를 걸대에 걸어놓는데 눈물이 핑 돌았다. 뻐근해진 가슴을 손으로 꾹 눌렀다. 속의 어떤 것이 폭발할 것처럼 뜨겁게 용솟음치고 있었다. 나는 그것들이 빠져나오지 못하도록 여전히 가슴을 두 손으로 꽉 누른 채, 벌거벗은 채 한참 그대로 서 있었다.
나는 나에게 너무 놀랐다. 나는 일할 때는 슬픔이라는 감성을 많이 제쳐두고 있다고 생각했고 나름 잘 조절하고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나는 어르신 댁의 욕실이 정말 부러웠다. 그 무엇보다 목욕을 마칠 때까지 균등한 온도로 물이 나오는 것이 정말 부러웠다. 내가 사는 집의 보일러는 너무 오래 되었고 낡아서 온수 버튼을 누르면 한참 뒤에야 겨우 따스한 물이 나왔는데 급작스레 미친 듯이 데일 것처럼 뜨거워지기도 하고 어느 순간은 얼음물처럼 차갑기도 하면서 두서없었다. 때문에 샤워기를 들고 순간 순간 소스라치면서 비명을 지르기 일쑤였던 것이다
앗 뜨거 와 앗 차거를 반복하면서도 마실 물조차 없는 끔찍하도록 가난한 나라의 여인들을 떠올리면서 이게 어디야이만 해도 어디야, 하면서 감사했다. 하지만 어르신 댁 욕실로 비교 대상이 달라지니 가끔은 불행해졌다. 나도 한 시간씩 온수를 틀어도 언제나 균등한 온도로 물이 나오는 집에서 살고 싶었다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새로운 거처로 옮겨 살게 되었는데 그 곳은 어르신 댁처럼 언제 틀어도 아무리 오래 틀어도 늘 균등한 온도의 온수가 나왔다. 최신 열병합 시설이 구비된 중앙 집중식 난방 온수 체계이어서 가능했다.
나는 샤워기 밑에 서기만 하면 나도 모르게 노래를 흥얼거렸다. 내가 조금만 더 음악에 대한 실력이 있다면 이렇게 편하게 샤워를 할 수 있는 기쁨을 가스펠로 만들어 나의 충만한 행복을 만방에 알리고 싶었다. 레버를 돌리면 딱 그만큼의 온도가 높고 낮아지는 것이 정말 감사했다.
이사한 후 만난 오랜 친구에게 머리를 다 감도록 몸을 다 씻도록 같은 온도로 온수가 나오는 경이로움에 대하여 열변을 토했는데 친구 말에 의하면 그 말을 할 때 나의 표정은 천하가 다 내 것이라는 제왕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고 한다.  

채널은 다시 7로 넘어갔다. 어르신 방의 TV는 유선방송 시설이 없어서 지상파 4개 채널밖에 나오지 않았다. 나는 여덟 달 동안 지상파 TV가 오전에 대체 무슨 짓을 하는지 다 파악을 하고야 말았다. 병 주고 약 주고 하면서 시청자 우롱하기가 바로 그것이다.
돈 있다고 행복한 것이 아니라고 열변을 토하던 방송에서 다음날에는 노년의 재테크에 대한 특강을 하고, 가족 사랑을 한 시간 내내 갖가지 포맷으로 다양하고도 아름답게 제시해 놓고 다음 날에는 자식에게 유산 넘겨주면 큰일 난다는 엄포를 놓았다.
이쪽 방송에서는 커피와 밀가루 음식을 먹지 말라고 하고 저쪽 방송에서는 버터와 치즈 베이컨 범벅인 크림 파스타 먹방을 하고 있었다. 정신 바짝 차리지 않으면 분열증 걸리기 딱 맞춤이었다. 하지만 나는 제멋대로의 방송이 좋았다. 어차피 시청자들은, 아니 넓게 말한다면 인간은 자신이 좋아하는 것만 취사선택하는데 탁월한 재능이 있을 뿐만 아니라 웬만한 듀얼 초이스는 양쪽 다 좋다는 식으로 넘어가는 기술도 보유하고 있었다.

채널 7에서는 새해 들어 인문학 냄새가 좀 나는 교양 방송으로 변신을 시도했는데 나는 그것도 좋았다. 패널로 앉아 있으면서도 패널 중 그 누구의 말에도 귀 기울이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철학자가 한 사람 있었는데(탁석산이라고 말해도 되나 모르겠다)다 웃을 때에도 자신이 우습지 않으면 따라 웃기는커녕 심각하게 있는 모습도 재미있었고 다 동의하고 동의를 구하는 내용에도 혼자 아니라고 정색을 하는 그의 꼴통기질도 진짜 재미있었다. 탁 선생이 보이지 않으면 실망을 할 정도로 그 프로그램을 애청했다. 낯선 발상, 익숙하지 않은 생각, 자신만의 느낌을 표현함으로써 다양한 사람들이 이 세상에 있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존재감이 돋보이는 사람이었다. 나는 그가 좋았다. 언젠가 일찍 돌아온 어르신의 딸이 집안의 시시콜콜한 문제를 심각하게 털어놓는데 나는 그녀의 뒤에 있는 탁 선생이 보고 싶어 고개를 쭉 빼고 싶은 것을 얼마나 참았는지 모른다. 탁 선생이 하는 말을 한 마디라도 더 듣고 싶어서 딸의 하소연의 볼륨은 최저로 낮춰 들리게 해놓고 아련하게 들려오는 백발 철학자의 고집 섞인 진심을 최대치로 확대해서 듣고야 말았다.

이윽고 열한 시가 넘어가면 나는 어르신을 일으켜 세웠다. 체중의 삼분의 일은 차지할 것 같은 만삭 같은 어르신의 배는 보면 볼수록 신기했다. 내 손바닥만한 작은 얼굴과 가냘프기 짝이 없는 팔 다리와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기형적인 몸이었다. 하지만 일반적인 어르신 체형 중의 하나라고 한다. 나는 배의 부피와 무게 때문에 볼 일 보기 힘드신 어르신의 화장실 시중을 들고 겉옷을 하나 더 입히고 보조 보행기 바퀴워커를 끌게 하면서 거실로 진출했다.
넓고 쾌적한 거실은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은 고상한 고요함을 간직하고 있었다. 두터운 페르시안 양탄자의 아라베스크 문양을 밟으면 마치 잠자는 고양이 꼬리를 밟는 것처럼 마음이 포근해지고 몸 어딘가는 아슴아슴했다. 봄날처럼 따스한 햇살이 부엌 언저리까지 비추는 거실을 어르신이 바퀴워커를 끌고 가장 넓게 돌도록 사이드로만 길을 안내했다.

그리고 농심 고구마깡.
언제인가 거의 한 달 째 식탁 귀퉁이에 놓여있던 고구마깡을 먹은 적이 있었다. 어르신의 딸은 식탁에 놓여있는 바나나, 곶감, 강냉이나 견과류 등을 마음대로 먹으라고 늘 말했지만 네네 대답만 하고 지나쳤는데 그날은 어쩐지 허기가 져서 봉지를 뜯었다. 몇 개 집어 먹다가 문득 치아가 부실한 어르신에게도 반으로 쪼개어 입에 넣어드렸더니 뜻밖에도 잘 드시는 것이 아닌가하지만 이내 나는 알아차렸다. 어르신은 내가 무엇인가 맛있게 먹는 모습이 좋았던 것이다. 자신이 먹지 않으면 과자봉지를 열지 않으리라는 것도. 어르신의 딸은 그 다음부터 언제나 식탁에 농심 고구마깡을 구비해 놓았다. 딸은 고구마깡이 떨어지지 않도록 신경 쓰는 눈치였다.
바퀴워커를 밀고 다니는 어르신 곁에 시중을 들면서 나 하나, 어르신 반쪽, 다시 나 하나, 어르신 반쪽을 먹었다. 어느새 EBS를 켜놓은 거실의 대형 TV에서는 알 수 없는 향신료를 넣은 신비한 외국 음식을 만드는 요리교실을 방영하고 있었다. 나는 이름을 기억할 수 없는 수많은 요리를 매일 보면서 고구마깡을 아삭거렸다. 그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어르신 물을 드리고 어르신 야쿠르트를 챙겨드리고 어르신 귤을 까드리고 어르신 요플레를 떠먹여 주었다. 푹신하고 아늑한 소파에 어르신을 앉혀놓고 다시 다리를 팔을 어깨를 주물러 드렸다.

EBS에서 테마기행을 시작하면 나는 부엌으로 갔다.
어르신의 부엌은 정갈했다. 럭셔리하게 리모델링한 주방은 깜짝 놀랄 만큼 많은 수납공간이 있었고 아일랜드 식탁까지 구비되어 있었다. 싱크대 곳곳에는 전골냄비와 프라이팬을 포함한 고급 제품이 몇 세트나 잘 정돈되어 있었고 포트 메리온 같은 명품 그릇도 잘 진열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것뿐이었다. 늘 사용하는 식기는 투박한 접시 두어 개와 수저통이 헐렁하게 꼽아놓은 딱 세 벌의 수저와 젓가락과 몇 개의 국그릇과 밥그릇이 전부였다. 팔 개월 동안 정말 단 한 번도 아름답고 멋진 그릇이 식탁에 오른 모습을 본 적이 없다.

우리는 지나치게 많은 것을 소유하고 있었다. 그것은 나의 느낌이다. 부엌만 자세히 살펴보아도 알 수 있다. 어르신의 딸은 평생 다이어트를 하기 때문인지(본인이 그렇게 말했다) 무엇을 먹는다거나 음식을 조리한다거나 하는 것에 관심이 없었다. 적게 먹고 운동하는 모습은 보기 좋았지만 문제는 자신이 먹지 않는다고 어르신의 음식을 만드는 것에도 별 신경을 쓰지 않는 것이다.
모든 것이 구비되어 있는, 아니 오히려 너무 넘칠 정도의 조리기구와 그릇이 구비되어 있음에도 맛있고 따뜻하고 정겨운 음식 냄새는 나지 않는 이상한 부엌이었다. 나는 먼지 하나 없는 거실에서, 부엌에서 어르신을 모시고 그림 속의 초상화처럼 소리 없이 조용히 할 일을 했다. 어르신은 그러한 나를 보고 참 말이 없다고 하셨다. 그런 말을 하는 어르신도 거의 입을 떼지 않았다. 나는 조용한 분위기가 좋았다.

국을 데우고 어르신 전용 냉장고를 열고 몇 가지 반찬을 꺼내고 밥을 펐다. 육중한 대리석 식탁 앞에서의 어르신은 더 작아 보였다. 야윈 손가락은 수저를 들 힘조차 없어보였지만 용케 수저를 떨어뜨리지 않는 것이 신기했다. 밥 위에 반찬을 얹어주고 어르신이 힘겹게 넘길 때까지 가만히 기다렸다.
잘게 썬 김치조차 제대로 씹을 수 없어 힘겨워하는 아흔 살이 넘은 어르신 옆에서 식사 시중을 들면서 나는 아흔 살 까지는 절대 살지 않을 거야를 끝없이 다짐했다. 날이 갈수록 다짐은 결심이 되고 어느 순간부터는 자신에게 맹세까지 하고 있었다. 노인이 되는 것은 슬픈 일일까.

어르신 어깨 너머로 EBS의 화면은 세계 곳곳을 누비고 있었다. 배낭을 멘 젊고 아름다운 처녀가 지도를 들고 에머랄드 빛 바다가 출렁이는 지중해의 해변을 걷고 있기도 하고 구레나룻이 멋진 중년 작가(내가 모르는)는 스타일리쉬한 차림으로 머플러를 휘날리며 완만한 구릉 위에 서서 고풍스러운 옛 시가지를 내려다보며 필시 꽃향기가 섞여 있을 산들 바람에 땀을 식히고 있었다. 아름다웠다.
아름답군. 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꿈결처럼 바람에 날아온 구라파의 꽃향기를 맡으며. 나는 나의 일생에서 저런 곳을 여행하는 일은 결코 없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고 그러므로 그곳이 더욱 아름다워 보였다. 저 아름다움 속을 함께 하지 못한다는 사실이 저 곳을 더욱 빛나게 하는 것도 알았지만. 그 무엇도 되지 못하고 그 무엇도 되지 못할 것이 분명한 예정된 운명이 나의 가슴 어딘가를 찌르르 울리며 스쳐 지났다.
나는 아무 생각 없이 식사를 하고 계신 어르신을 바라보았다. 감옥에 있는 죄수나 간수나 무엇이 다른가. 아무도 모르게 나는 나를 비웃고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일종의 고통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팔 개월을 보냈다.

며칠 이런 글을 쓰며 보내다가 오늘은 온종일 아무 일도 하지 않고(책만 들입다 읽으며하루를 보냈다. 어쩐지 편안하지 않은 하루였다. 이거 혹시 너무 안일한 삶이 아닌가, 하는 기분은 무엇이란 말인가, 하면서 농심 고구마깡을 아삭거린다.

 

갑자기 나의 자유가 부자유스럽게 느껴진다.​ 부자유스러운 기분으로 농심 고구마깡을 아삭거린다.

 

아삭아삭
요양원으로 가신 어르신은 지금 잘 계실까
아삭아삭
잘 계시겠지,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이건 그냥 내가 편하기 위해 하는 의미 없는 말
아삭아삭
잘 계시지 못할 것을 알고 있으면서 계속 아삭아삭
농심 고구마깡을 먹고 있다.

 

  
    
(원고지 50)

 

 

'빛나라 60'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의 나  (0) 2017.12.22
'눈물젖은 빵의 시간' 이후  (0) 2017.12.22
눈길을 밟으며 수요예배  (0) 2017.12.21
과학, 철학을 만나다  (0) 2017.12.20
사는게 좋은 걸 잊은 당신에게 '목숨'  (0) 2017.1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