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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일 후

by 이숙경(2011canna@hanmail.net) 2020. 6. 13.

뭔가 희망적인 이야기를 하고 싶지만....

조금은 가슴 아팠던 오늘 모임의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다.

2011년 여름부터 십년 동안 매주 토요일 성경모임을 갔다.

그 성경모임은 일반적인 모임과 조금 달랐다.

11시부터 3시정도까지(끝나는 시간은 일정치 않았다) 거의 4시간을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 하는데 목사님은 절대 말을 중간에서 끊지 않으신다.

주로 지난 일주일 동안 일어난 일이거나, 아무튼 하고 싶은 말 마구마구 한다.

성경공부 프린트물이 물론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삶속에 적용이고 그 희로애락을 같이 나누는데 참 이상하게도, 듣기만 해도, 말하기만 해도 힐링이 되는 것이었다.

나는 그 시간이 얼마나 좋던지! 매주 금요일 밤이면 가슴을 두근거리며 토요일을 기다렸다.

그런데 지금으로부터 500일 전...대략 계산하여 2018년 12월 성경모임 쫑파티를 한 이후 모든 것이 변했다.

목사님께서 폐암 말기 판정을 받으신 것. 그 때부터 성경모임의 방황은 시작되었다.

목사님 입원하신 병원에서 만나고, 대중 없이 번개로 만나고, 지난 겨울에는 겨우 걸음을 옮기는 목사님이 연극무대에 서는 성경모임 회원을 격려하러 오셨지만 보는 이들의 가슴이 아플 정도로 상태가 좋지 않으셨다.

그렇게 해가 지났다...

우리끼리 몇 번 모임을 가졌지만 이전과 같지 않았다. 그 동안 목사님은 항암치료도 받으시고, 또 무슨 표적 치료인지 받으시고, 점점 악화되는 것이 눈에 보였다. 너무 심해져서 요양병원엔가도 계셨다가 앉지도 눕지도 일어서지도 못하는 상태가 되어 버린게 지난 3월이다. 그런데 사모님이 연락을 하셨다.

6월 13일 생일초대를 하신다고. 그때를 위하여 목사님이 재활치료 열심히 하시겠다는 것. 그게..의지만 가지고 될 일인가...연세도 있으신데...

우리는 믿지 않았지만... 그래도 오늘 갔다.

가서 뵈니

하도 걱정을 해서인지 예상보다는 많이 좋아보이셨다.

하지만 섬망도 있으셨고, 많은 기억도 잊으시고, 말은 어눌해지고, 휠체어에 앉아서 겨우겨우 움직이시는 상황...

사모님께서 준비하신 점심을 같이 먹으려고 하는데 목사님 기도가 오랜만에 듣고 싶어 기도를 부탁했다.

그런데...기도가 잘 이어지지 않는다... 생각이 잘 나지 않으시는가보다... 눈 꼭 감고 기도를 들으면서 눈물이 났다. 듣다 못한 사모님이 어느 장로님께 기도를 이어서 해달라고 부탁했다.

불과 500일이 지났을 뿐인데...이렇게 기가 막힌 일이 목사님께 일어났다. 발병을 알게 된 후, 수술하시고, 항암치료, 각종 치료, 입원, 재활, 등등의 과정을 거치면서 "빨리 낫게 해 주세요."라는 기도에 아멘을 하면서도 아멘으로 믿어지지 않았다.

목사님만 그럴까? 목사님도 500일 전에는 자신이 폐암 말기라는 것을 꿈에도 모르셨고, 여느때처럼 반갑게 인사하고 즐거운 성경모임을 가졌다.

그러니 내가 500일 후에 목사님처럼 되지 말라는 법이 어딨는가 말이다. 누구나 마찬가지다. 500일 후에 모슨 상황이 닥칠지 모르는 상황이다.

그러니, 여기, 지금, 오늘을 잘 살자.

그러니, 여기, 지금, 내 곁에 있는 사람을 사랑하자.

그러니, 여기,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감사하자.

그외의 모든 것은 쓸데없는 욕심이다.

잘 살아야지....

매 순간 소중하게 잘 살아야지....

내가 좋아하는 책 많이 보고, 글 많이 쓰면서

소확행을 누리면서 잘 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