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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의 독방

by 이숙경(2011canna@hanmail.net) 2014. 11. 24.

(무슨 짧은 글 하나 써볼까 하고 나의 다른 블로그를 뒤적이던 중 2년 전 여름에 어느 책을 보고 필사한 구절을 발견.

문학적이거나 예술적이거나 간에 하여튼 고통이라는 주제는 신의 영역과 맞물리는 점이 있는 것 같군. 다시 한 번 찬찬히 음미하다가 불현듯 이곳으로 퍼나르고 싶어졌다. 내 기억으로는 별 볼일 없게 생각하던(작가와 작품이 내 취향이 아니었다) 어느 소설의 뒤꼭지에 붙어있던 평론가의 평이었던 듯 싶다)

 

....인생에 고통이 있다는 것은 이따금 너무나 끔찍하게 느껴진다. 나의 육체와 정신과 영혼이 느끼는 고통은 철저히 나만의 것. 타인은 나의 고통에 공감할 수는 있지만 그 고통을 있는 그대로의 강도와 밀도로 동일하게 느낄 수는 없다. 고통의 단독성 안에 머무르는 것은 빠져나올 수 없는 독방에 갇히는 것과 유사한 경험이다. 우리는 고통 안에서 너무 외롭고 춥다. 그러니 인간이라면 고통의 잔을 피하고 싶은 것이 당연한 일이다.

문학을 포함한 예술은 사실 우리가 그토록 두려워하고 피하려 하는 고통을 한 번도 외면한 적이 없었다. 고통 속에서 한없이 비참해지고 작아지고 낮아지는 이들의 옆자리에 예술가는 머무른다. 그래서 울 수 없는 자들을 위해서 울고, 말할 수 없는 자들을 위해서 말한다. 세상의 시선에서는 그저 불쌍하고 천하고 악해서 입에 올릴 가치조차 없어 보이는 사람들을, 예술은 바로 그 이유 때문에 가장 많이 사랑한다. 예술은 알기 때문이다. 불쌍하고 천하고 악한 것이 바로 인간의 현상적 상태라는 것을. 그래서 환상적인 행복을, 가장된 행복을 원하는 사람은 예술을 진정으로 사랑할 수가 없다.

예술은 인간에게 언제든 불행이 찾아올 수 있고, 인간이 언제든 악할 수 있고, 인간이 언제든 병들어 죽을 수 있다는 진실을 외면하지 않는다. 아니, 그 진실을 연인처럼 끌어안는다. 예술의 손은 더러운 고름으로 뒤덮인 인생의 환부를 어루만지기에 정결할 수가 없다. 이 지상에서 가장 불결할지도 모른다. 예술의 풍경은 그래서 개인적 경건에 몰두하려는 이에게는 흡사 지옥의 계절처럼 보일 것이다. 그러나 그 사람은 언젠가 깨닫게 될 것이다. 자신의 뜻과는 상관없이 더러워진 손에 몸서리치게 될 어느 날, 예술이 만들어 놓은 고통의 독방이 가장 안락한 은신처가 될 수 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