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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쾌락 글쓰기

고통의 시간들

by 이숙경(2011canna@hanmail.net) 2019. 9. 6.





傷心痛點들이 곳곳에 포진해 있던 시절이 있었다. 오래지 않은 기억이다. 마음은 늘 두서없었다. 끓어 넘치는 감성과 그에 못지않은 매정하고 각박한 이성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둘로 나뉘어져 팽팽하게 줄을 당기고 있었다. 카오스적인 삶을 핑계 댈 수 있는 이유는 도처에 넘쳐났다. 때때로 그 이유를 꼽아 보이면서 나의 미숙한 삶의 진행을 변명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내 인생의 모토 중 하나가 핑계대지 않는다, 였기 때문이다. 누구 때문에 무엇 때문에 내 삶이 좌지우지된다는 것이 더 견딜 수 없었는지도 모른다. 그것은 일종의 자존심 싸움이기도 했다.

열 몇 살 이후 나의 시선은 늘 하느님을 향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생각한 그 하느님은 진짜 하느님이 아닌지도 모른다는 자각은 너무 늦게 찾아왔다. <만들어진 >은 신앙을 가진 자라면 누구나 경험하는 일일 것이다. 나에게는 나를 함몰시키는 이 너무 많았고 그 은 형체를 달리하면서 나를 집어삼켰다.

 

내 생 전반이 거의 문제투성이였다. 문제들은 문제를 계속 만들면서 눈덩이처럼 커져 나의 일상으로 미친 듯이 굴러 떨어졌다. 그것들의 문제는 내가 해결할 수 없는 범위였다는 것이다. 그 와중에도 일상은 크게 변하지 않았는데 새벽에 일어나 기도를 하고 혹은 미명의 거리를 지나 교회의 찬 마룻바닥에 꿇어 엎드리기도 하고 자주 교회에 갔고 빵을 싸들고 도서관으로 달려갔다. 도서관의 넓고 커다란 창으로 해가 뉘엿뉘엿 기우는 정경을 바라보면서 시간을 가늠하고 억누를 수 없는 고통과 슬픔에 꽉 찬 가슴을 여미고 찬바람 부는 도서관 언덕길을 홀로 걸어갔다.

 

그리고 책들, 그리고 글들, 그리고 사람들.

사람들 가운데 내가 사랑하고 나를 사랑하는 그룹이 하나 있었다. 오년 여의 시간 동안 함께 했던 모임이다. 삼년 정도는 더 할 나위 없이 즐거웠고 나머지 이년은 아주 조금씩 허물어져갔다. 물론 당시의 난 깨닫지 못했다. 난 거리낌 없이 하고 싶은 말을 했고 그 무엇에도 구애받지 않고 나의 생각을 전했다. 물먹은 스폰지처럼 나의 생각을 흡수하는 그들이, 그들이 뿜어내는 개성이 나는 좋았다. 나는 역량 껏 나름 최선을 다해 그들과 마주했다. 하지만.

 

끝이 안 좋았다. 그것은 전적으로 나의 불찰이었지만 그 연유를 캐볼 여유가 없었다. 무엇보다, 그것이 나의 불찰인지조차 깨닫지 못했다. 그들은 아주 조금씩 멀어져갔다. 아주 조금씩 대화가 적어지고 아주 조금씩 만남이 시들해졌다. 몇 번 진중한 물음이 나에게 주어졌을 때 나는 그 물음이 얼마나 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지 짐작하지도 못했다. 나는, 다른 어떤 것에 미쳐 있었기 때문이었다. 지금 생각해도 그럴 수밖에 없었겠지만 나는 무모한 몰입으로 어느 하나만을 집으려고 아홉 개를 땅에 떨어뜨렸다. 그 이후의 삶은 아홉 개의 상실이 가져다 준 실패의 기록으로 빼곡하게 채워져 있다.

 

사람이 무너진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그때 알았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던 시절이었다. 나의 마지막 일 년은 충분히 불행했다.

 

마지막 모임을 기억한다.

일곱 여덟 사람과 함께 분위기 좋은 음식점에 가서 점심을 먹었다. 분명 함께 갔는데, 분명 좋은 자리에 잘 자리 잡고 앉았는데, 분명 좋은 음식을 나누며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을 텐데, 단 한 사람도 나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나는 식사가 다 끝나갈 무렵에야 그 사실을 알아차렸다. 차라리 그 순간은 몰랐으면 좋았을 것을. 집으로 돌아와 곰곰 생각하다가 불현듯 깨달았으면 좋았을 것을.

나는 순간, 그 상황을 더 이상 견딜 재간이 없었다. 식탁 옆 통 유리창으로 검은 고양이가 햇살 아래서 게으르게 기지개를 켜는 모습이 보였다. 그들의 대화를 조용히 들었다. 다른 세계였다. 이야기는 끝이 없었고 나를 제외한 모든 사람은 즐거운 표정이었다. 나는 그때 내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한참 그들의 이야기를 듣다 가만히 밖으로 나왔다.

긴 꼬리를 감추고 잠이 든 고양이를 찍었다. 햇살아래 편안하고 깊은 잠에 빠져 있는 고양이가 부러웠다. 뷰 파인더 속으로 고양이와 함께 통유리창 안에 있는 (내가 사랑했던, 나를 사랑했던)사람들이 보였다. 그들은 즐거운 표정, 웃음소리가 뷰파인더 안까지 들어와 가득 찼다. 그 아름다운 친밀감속에 나는 없었다.

어떻게 집까지 왔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 누군가 분명 집까지 데려다주었겠지만 나의 기억은 식당 밖에서 고양이를 찍으며 눈에 들어왔던 그네들의 편안하고 자연스럽고 아무 거리낌 없는 웃음소리까지였다.

 

그 후 몇 달 동안 정말 힘들었다. 아무리 생각하지 않으려 해도 어느 순간 그들이 떠오르면 상심의 고통을 견딜 수 없었다. 난 이유를 알지 못했으므로 더욱 괴로웠다. 내가 무엇을 잘못 했을까. 만약 무엇인가 잘못 했다면 그들 중 한 사람이라도 왜 나에게 말해 주지 않은 것일까. 그들은 내가 땅에 던져버린 아홉 개의 삶 중 가장 아름다운 마지막 할리페였다. 지금도 낯설게 소원해진 그 이유를 알지 못한다. 하지만 삶에는 명징하지 않은 이유로 불운과 슬픔을 지니게 되는 경우도 왕왕 있지 않던가. 


그렇게 삼년이 흘렀다.

그리고 나는 스스로 그들을 다시 나의 삶 안으로 끌어안았다. 세월의 힘이랄 수도, 지난 일은 아름답게 채색되는 힘이랄 수도 있겠지만. 나는 여전히 그들을 사랑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는 잠든 고양이를 찍은 사진 속의 식당 안 풍경을 보아도 더 이상 고통스럽지 않게 되었다. 식당 밖으로 뛰쳐나갈 수밖에 없었던 것은 그들 탓이 아니라, 심보선의 싯귀처럼 '(어떤)것이 선명해질 때까지 온 육신을 흔들며 날뛰는 존재'로 살았던, 어리석음과 무모함과 숱한 잘못의 결과였다.

 

얼마 전 아침, 마법에 풀린 듯 나는 그 사슬에서 헤쳐 나왔다. 그럴 수 있게 되었다. 나는 나 자신에게 스스로 이렇게 말했다. 傷心痛點이 온 몸과 영혼에 포진해 있던 시절이 드디어 갔구나. 완전히 가버렸구나.

며칠 전, 그들 중 한 사람을 꿈속에서 만났고 어제는 그들 중 한 사람과 오후의 시간을 함께 했다. 사람은 종종 너무 뒤늦게 사실을 깨닫는다. 지나고 난 후에야 알게 되는 진실이 너무 많다. 실수와 실패와 고통의 기록을, 피를 흘리던 기억을 이곳에 남긴다.


傷心이 가득했던 痛點의 시절을 그렇게 떠나보낸다.

(원고지 17)


(너무 솔직해서 다시는 읽어보고 싶지 않을 만큼 고통을 주는 글이다. 2016년의 어느 날. 그러면서도 다시 읽어보는 이 마음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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