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래 전부터 내가 좋아했던 단어 중 하나가 '나쁘다'였다.
생각해 보니 우스운 기억이긴 하지만 중학교 일학년(겨우 만 12살!) 방학숙제로 만든 문집에 '惡女'라는 제목의 시를 썼을 정도였다.
아, 이 어이없는 기억력은 그 시의 첫머리까지 그대로 다시 재생이 되는군.
나는 낮보다 밤이 좋았다.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어 좋았다.
난 악녀니까...
...그렇게 시작하는 시(하하)였다. 예전에는 영화 제목에 무슨 무슨 악녀 이런 게 꽤 있었던 거 같다. 아마 거기에서 힌트를 얻었는지도. 요즘은 악녀라는 단어 자체가 이미 소멸되어버린 느낌이 든다.
생각해 보니 그 때부터 지금까지 나에게 있어서 '나쁜'의 이미지는 나만 생각한다거나, 나만 사랑한다거나 남을 의식하지 않는다거나 내멋대로 한다거나 남의 간섭을 못견뎌한다거나 질서나 규범 도덕 의식에 왜 그게 안되는데? 하면서 눈 똥그랗게 뜨고 달려드는 정도였던 것 같다. 나쁜 사람이 되고 싶다고 해서 도둑질하거나 살인을 하거나 사기를 치거나 하는 사회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것은 아니었다는 말.
예전에 책 제목이 <미친년>이라는, 손을 내밀어 책을 집기에도 좀 껄끄러운 제목의 책이 있었는데 내 생각으로는 페미니스트들의 앤솔로지였다.
느낌이 좋았던 책이었고, 읽은 후 더욱 생각이 더 많아졌길래 잠시 책을 소개한다면, 내친 김에 목차도.
(사실은 목차 안에 있는 소제목중 하나를 인용하고 싶어서 이 책까지 생각이 뻗쳤던 것이다. 아, 이 중구난방식 사고력이여!)
작가 서문 댄서의 순정
프롤로그 여자로 태어나 미친년으로 진화하다
희망을 희망하라 트렁크 갤러리 사진작가 박영숙
먹고 싶은 사람이 요리를 하라 합리적 페미니스트 글로리아 스타이넘
인생의 승객이 되지 말고 운전사가 되어라 실리콘밸리의 CEO 김태연
원더브라와 똥꼬팬티의 환상을 벗어던져라 브로드웨이를 사로잡은 연출가 이브 엔슬러
인생에 쓸데없는 건 다 잘라버려라 마법의 평화 메신저 유니언신학대학 종신교수 현경
묻지 마 종교에 토를 달아라 21세기의 여성 사제 빅토리아 루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여라 뉴욕의 관음특공대 묘지 스님
내 딸아 너는 착하지 않아도 좋다 캐나다의 차세대를 이끌어갈 100인 예술가 윤진미
정말 원한다면 세상이 다 말려도 올인해라 시인의 심장을 가진 저널리스트 유숙렬
에필로그 세상에 혼(魂)불을 던진 미친년들을 만나러 가다
아, 멀리도 왔네. 어쨌든 '나쁜'의 이미지를 겨우 이정도로만 생각하고 살아왔던 나에게,
내 눈앞에, 내가 생각하기에는 어쩌면 저럴 수가, 할 정로로 나쁜 사람이 나타났다.
이십년 넘게 얼굴을 본 사람인데 내 생각으로는 그 사람 이상 나쁜 사람은 못만날 것 같다.
내 인생에서 어떻게 저런 사람을 만나지, 할 정도의.
나의 생각에 객관성을 부여하기 위하여 몇 가지 예를 든다면.
나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어느 누구에게도 진득이처럼 달라붙어 진저리를 치게 만들어 기어이 자신의 욕구를 채우고
내가 기분나쁘다 싶으면 상대방의 집까지 찾아가 드러누우며 난동을 부리고, 타인의 직장을 찾아가 그런 사람은 해고시켜야 한다고
민원을 넣고
얼굴에 철판깔고 얻어먹고 뜯어내고 갈취하고 거의 사기에 가깝게 등쳐먹고 하시는 말씀은 자신은 너무 순수하시다고 너무 세상을 몰라서 이렇게 순진하게 사람을 믿는다고(허걱)
만나는 모든 사람은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가 아닌가로 구분해 강한 자에게 납작 엎드리고 약한 자에게는 목덜미를 잡고 흔들어대고
세상의 모든 인연은 자신의 주머니를 채우기 위한 수단 이상은 아무것도 아닌 가치로 여기고
종교조차 자신의 이익에 따라 불교 개신교 천주교에서 엊그제 보니 다시 개신교로 갔네그려.
모임에서 그 사람이 오면 그 사람이 앉은 테이블은 아무도 앉지 않으려 하고 슬슬 피하고 행여 붙잡고 말을 걸까봐 모두 맘 고생 하고 혹시 그 사람이 오면, 난 안간다는 의사를 표현하는 사람 투성이가 되어 제발 나오지만 말았으면 하고 모임의 거의 모든 사람의 소망을 굳세게 깨부시고 어디든 빠짐없이 나와서 곤욕스럽게 만들고
정치인 사업가 기관장 공무원 등과의 악수하고 청탁넣고 아부하고 같이 사진찍으면서 과시하는 것에 목숨걸고...쓰다가 하루가 가겠다.
그 양반을 엊그제 모임에서 만났는데 아무도 그곁에 앉지 않는 바람에 행동이 굼뜬 나는 어쩔 수 없이 식당에서 몇 번 자리를 같이 하게 되었다. 그런데 결코 대화라고 할 수 없는 일방통행식, 자신의 수다만 100%인 그의 말을 정말 어쩔 수 없이 듣는데....
요즘 어느 개척교회를 나간다는 것이다.
(나는 속으로 아니, 성당에 다닌다고 했는데? 하면서도 말 붙이기 싫어서 가만 있었다)
근데 그 교회 목사님은 돈이 매우 많아서 교인들에게 많이 베푸는 모양이었다. 자비량 선교쯤으로 이해되었다.
그 양반의 말을 전한다면.
세상에 그런 목사님이 없어! 월급 하나도 안받고 교인들 매일 점심 주고 선물 주고 어려운 일 도와주고 불량 청소년 모아서 밴드 만들고, 밥사주고 전부 희생하는거야.
글쎄 나한테도 얼마나 잘해주시는지! 계속 전화해서 잘 있느냐고 챙겨주지, 내가 그래서 요즘 외롭지 않아. 그 교회는 나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어. 작은 교회니까. 그 목사님은 돈이 많은데 그 돈 전부 교인들에게 퍼 줄 거래.
얼마 전에는 인천 바닷가 구경도 시켜주고 일인당 45000원짜리 회를 턱하니 사주고 어디 놀러가자고 전화하고, 너무너무 감사해. 그래서 내가 요즘 목사님 따라다니느라 바빠. 성경공부 나가고 기도회 가고 수요 예배 가고.
그런 목사 세상에 없어. 어디 목사가 교인들에게 45000원짜리 밥을 사주겠어(이 말은 서너 번 이상 되풀이했다)
기도회가서 주여 삼창 목터지게 부르면 속이 다 시원해. 한 번 해볼까?
(어휴 하지 마세요. 길에서. 깜짝 놀라 내가 말렸다. 말리지 않으면 공해수준의 데시벨로 길바닥에서 난리 날 뻔 했다)
오늘, 새날을 허락하셨는데 그 사람도 새로운 피조물이 되지 않았을까 싶어
지금 그 사람을 나쁜 사람이라고 비난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베푸는데 달란트가 장난 아니신 그 목사님이 그 사람에게 어떻게 예수님을 전할지 그것이 조금 걱정이 되기는 한다.
하지만 그것은 하나님이 걱정하실 일이겠징?
내 마음속에 가득찬 말이 있지만 참기로 한다.
나도 나쁜 사람의 반열에 서 있는 것이 분명하니 어쩌겠나.
알람이 울리니 그만하고 일어서자.
가자가자, 올해 90세가 되신 어르신께 가서 기쁨조 노릇이나 실컷 해드려야겠다.
이상, 현장에서 붙잡힌 여인이 가로되, 였슴다.
(뒤늦게나마
위의 김성수목사님 글에서 나쁜 사람과 관계된 글이 있어 덧붙여 드리나이다.)
상황이 어떠하든 현실이 어떠하든 예수 믿는 우리들이 복된 자들이고 선한 자들이고 가치 있는 자들이고 진짜 행복한 자들입니다. 예수 없이 착하게 사는 사람들을 선이라고 하지 않고 악이라고 합니다. 예수 없이 선악을 우리가 판단해서는 안되며 다른 이들을 보고 함부로 저 사람은 삶이 왜 저모양이야 왜 이렇게 비 윤리적이야 부도덕적이야 이렇게 평가하시면 안됩니다. 예수안에서 예수가 그를 예수의 장성한 분량까지 자라게 하는 과정에서 그에게 시키는 일이 부도덕하게 보일 수 있지만 예수와 관계된 그 일이 선입니다.
그러니까 세상이 진리라고 결정해 놓은 거기에 일희일비 하시면 안됩니다. 나는 왜 이렇게 안 착할까, 나는 왜 이렇게 여전히 부도덕할까, 그러나 그런 것으로 절망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예수 믿고 죽는 날 까지 부도덕하게 살다 갈수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마지막에 가서 나는 이런 존재 밖에 안되는구나, 그래서 나에게 예수님이 필요하구나 라고 꼭 붙드는 사람이 착한 삶을 사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