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현충일에 이런 기억이....!)
가난은 생각보다 견디기 쉽지 않다.
자본주의 사회에 살고 있는 한 어쩔 수 없다. 남보다 안 쓴다고 허리띠를 졸라매고 절약한다고 되는 일이 아니다.
지리산 자락에 토굴을 파고 살지 않는 한 친구는 만나야 하고 친척이나 지인의 경조사에도 얼굴을 들이밀어야 하며 경기도 북부에서 종로까지 걸어갈 수는 없는 노릇이므로 교통카드에 일정 금액은 충전해 놓아야 한다. IT 강국에 살고 있는 죄로 기본 인터넷은 깔아야 하고 TV 역시 올레 쿡을 깔 것이냐 SK 브로드웨이를 깔 것이냐를 고민할지언정 없앨 수는 없는 노릇이다.
최소한의 교회생활이나 사회생활에 필요한 각종 회비를 연말까지 완납하지 못함으로 발생하는 찜찜함과 뒤통수 땡김의 고통은 결코 가볍지 않다.
언제인가 글 좀 쓴다는 동네 문우(남자라고 굳이 밝히지는 않겠다)와 오봇하게 치맥을 하게 되었다. 비 오는 겨울 저녁이었다.
유명 프랜차이즈 치킨 집 한 귀퉁이에 앉아 탐스럽기 짝이 없고 아삭하기 한량없는 프라이드치킨 조각을 머스타드 소스에 듬뿍 찍어 먹으며 황금비율로 따른 거품이 멋들어진 생맥주잔을 호기롭게 부딪칠 때까지는 그래도 좋았다. 곁들여진 대화의 질도 과히 나쁘지는 않았다. 무슨 이야기든 문학으로 포장을 하면 포스트모더니즘과 다다이즘과 슈어 리얼리즘 중의 하나를 깊숙이 건드리는 지식인이 될 수 있었다.
하지만 중반 이후 상황이 살짝 이상스레 변하기 시작했다. 급작스레 걸려온 전화에 정신이 없던 (필히 음식 값을 지불해야 할) 맞은편의 인간이 급기야 코트를 움켜쥐고 ‘급한 일이 있어서 이만,’ 하면서 빛의 속도로 눈앞에서 사라졌다.
나는 잠시 정신을 잃을 뻔 했다. 망연한 표정으로 메뉴판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이만 원 조금 넘는 계산이 나왔다. 카운터를 힐끗거리며 주머니를 뒤졌다. 오백 원 동전 두 개를 포함하여 만 팔천 원이 전 재산이었다. 혹시 눈먼 지폐라도 어디 있을까싶어 손가락 끝으로 가방의 바닥을 아프게 훑었다. 없는 줄 나도 알고 하느님도 아시겠지만 그래도 하면서, 오직 그것밖에 할 일이 없다는 듯이 뒤지고 다시 뒤지고 또다시 뒤졌다. 역시 없었다. 파산자 주제이므로 ‘신용카드’라는 단어가 나의 사전목록에서 사라진지 꽤 된 즈음이었다. 갑자기 혹독한 겨울바람이 싸아하니 온몸을 휘감았다.
그토록 맛있게 쩝쩝거렸던 치킨은 아직도 반 넘게 남아있었지만 이미 뇌를 이탈한 나의 영혼은 맛의 신비를 더 이상 체험할 수 없게 만들었다. 문학의 궁합이 잘 맞아 흥겨웠던 대화는 안드로메다 언저리로 날아가 버렸고 그 순간 이후 나의 기도는 오직 유체이탈이었다. 하나님 어떻게 해야 이곳을 무난히 나갈 수 있을까요. 용기가 조금만 더 있었다면 먹다 남은 치킨을 들고 가서 이거 너무 맛이 없으니 먹은 양 만큼만 내고 가겠다고 땡깡이라도 부리고 싶었다.
그토록 입에 짝짝 달라붙던 생맥주가 혐오스럽게 느껴졌고, 과연 십전대보탕 마시는 것처럼 목 넘김이 힘들었다.
치킨 집에 혼자 남겨진 채 계산해야 할 금액과 내 수중의 돈 사이의 갭이 마치 크레바스처럼 깊었다. 참 이상한 일인데 그 차액이 겨우 몇 천 원이라는 사실이 더욱 나를 고통스럽게 했다. 그 때의 모습이 지금도 가끔 떠오른데 그럴 때마다 나는 심장이 오그라드는 경험을 한다. 나의 사회적 위신과 체면을 고려하여 어떻게 해서 무사히 치킨 집을 나설 수 있었는지는 영원히 함구할 생각이다.
앞으로는 내 수중에 돈이 없을 때는 누구든 만나지 말 것이며 치맥 같은 것은 입에 대지도 말아랏!
이런 결심을 그때 했더라면...
그 이후 거의 십년 동안 나는 아무도 만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니 어떡한담?
어딘가로 전화를 해서 돈 좀 갖고 뛰어와, 라고 소리칠만한 사람을 만들던지,
급한 일로 뛰쳐나가는 인간을 더 빠른 걸음으로 뒷덜미를 잡은 후
계산은 하고 가야지! 하고 큰소리치면서 따지던지...
아니면
소소한 치맥값 정도는 구비하고 다닐만큼 하나님이 나를 좀 싸랑해 주시던지...
그 여러방법 중에서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 마지막 방법 : 하나님이 나에게 푼돈은 많이 넣어주셨다,
한달 두달만 그렇게 해주신 게 아니라 오년 넘게 지속된 하나님의 사랑이 놀랍도다!
ㅋ 이 간증을 할 수 있게 되어 참 감사하다.
하나님. 앞으로도, 밥값, 술값 정도는 낼 수 있도록...부탁드려욤
그때의 해프닝과 대동소이한 서글픈 경험들을 ‘폭신하고 시큼하면서도 달콤한, 여러 맛이 섞여서 더 맛있는 생의 술빵에 고통이 콩처럼 박혀 있던 세월’이었다고 떠올리는 나는 제대로 된 인간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