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부. 1월 첫 주
은혜로운 회의를 은혜롭지 못하게 초치는 인간, 바로 나!
“하나님, 회의 중 담배 피우면 안 되겠죠?”
며칠 전, 회의를 하면서 나는 줄곧 그 물음을 하나님께 던졌다. 물론, 하고 하나님이 말씀하실까봐 조금 겁은 냈지만 다행히 하나님은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셨다.
사실 나는 회의 중 담배를 피우지는 않는다. 장소와 모인 사람의 성분에 따라서, 그리고 건물 내 금연이라는 한국 법에 의하여, 또는 지극히 동양적인 예의범절에 의하여 나는 많은 것을 양보하는 셈이다.
글 쓰는 인간들과의 회의가 있을 때, 그리고 제법 열을 받았을 때, 나는 자리를 박차고(조금 세게 의자를 끌어내어 내 심기가 불편하다는 것을 인지시키는 것도 잊지 않는다) 일어나 건물의 흡연구역으로 가거나, 삼층이라면 계단을 뛰어 내려가 출입문 옆에 서서 담배를 피웠다. 물론 음식점이나 술자리에서 이어지는 회의에는 상당히 자유롭기는 하다.
하지만 며칠 전의 회의는 장소와 모인 사람의 성분에 약간의 문제가 있었다.
장소는 내가 사십년 가까이 다니고 있는 교회의 지하 회의실. 모인 사람은 목사님 1. 장로님 1. 권사님 서넛(그 권사님들 중의 한 명이 바로 나다), 집사님 서넛.
아무리 열을 받아도 가방을 뒤져 취미용품 일습(내가 좋아하는 말보로 라이트와 내가 아끼는 과문향 라이터)을 꺼낼 수는 없는 일이었다.
게다가 나는 올해, 쉰 두 살이 되었다.
나이 값을 못해도 나이는 먹는 것이 세상의 이치인지라, 자다 일어나서 생각해도 깜짝 놀랄 만큼 나이도 먹었고 해서, 새해 들어 첫모임에서는 좀 조신할 필요가 있었다.
회의가 있던 날 새벽, 나는 하나님께 기도했다.
“하나님, 오늘 회의가 있습니다.
알고 계시죠?
하나님께서 저를 만드시기를 자신도 감당 못할 정도의 벅찬 열기(혹은 혈기)를 주셨기로 제가 평생 이렇게 헤매고 다닌 것도 알고 계시죠?
그렇지만 오늘은 1월 3일. 새해에는 절제의 영을 달라고 제가 얼마 전부터 무지하게 하나님께 떼를 쓴 것도 기억나시는지?
우는 아이 떡 준다고, 기도하면 그래도 쫌(‘좀’을 좀 더 강조하면 ‘쫌’이 된다) 들어주시는 것이 예의가 아니실런지, 하나님.
오늘 저의 입술을 주장하여 주시어 나의 입술의 모든 말과 나의 마음의 묵상이 주께 열납되는 회의시간이 되도록 하여 주십쇼!”
정말 나는 간절한 마음이었다. 그런 실수가 어디 한두 번이어야 말이지!
그 뿐인가, 튼튼한 다리, 버스, 전철, 등의 교통수단을 이용하여 무려 25킬로를 타고 걷고 하면서 교회에 오는 동안에도 쉴 새 없이 화살기도를 올려 드렸다.
“아시지요, 하나님? 절제! 잊지 마십시오, 하나님. 저에게 절제!”
결론부터 말한다면, ‘절제’라는 단어가 있는지조차, 있다면 그런 단어를 써야하겠지만 회의 당시 나의 사전에는 그 단어가 존재하지 않았다, 그렇게 말끔하게 절제를 잊어버린 회의 시간이었다. 고상하게 돌려 말하려니 입에서 가래톳이 돋는 것 같아 아무래도 <솔직한 언어>를 사용해야 할 것 같다.
내가 즐겨 쓰는 욕이 세 개 있다. 나이 쉰이 넘어가면서부터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했는데 욕을 하면 기분이 훨씬 좋아지고, 마음이 너그러워진다. 남들의 평가는 잘 모르겠고, 내 스스로 판단하기 그렇다는 말이다.
기독교인은 욕을 하면 안 되는지 잘은 모르겠는데, 예수님도 열 받으면 욕을 하셨으니 나를 이해하리라고 미루어 짐작할 뿐이다.
아무튼 나는 회의에서 ‘지랄’을 하고야 말았다. 그 때 만일 담배 한 대 피웠더라면 마음이 훨씬(굳이 수치로 계산한다면 절반 정도) 누그러져 그만큼 덜 지랄을 떨었을 텐데.
그렇게 확 줄어들었을 지랄이 원색적으로 적나라하게 튀어나오는 바람에 말하는 나도 속상하고, 듣는 사람들도 속상하고, 아마 그랬을 것이다.
물론 참석자들은 후일 나를 만난 자리에서, 당시 회의 시간에는 격렬한 토론이 필요했고, 그 토론의 활성화가 편집방향을 잡는데 중요한 기폭제가 될 것이라고 위로했다. 어쨌든 그들은 지랄도 토론의 일종이었다고 보는 모양이었다. 게다가 내가 지랄 떤 것이 내가 편집팀장이 되는데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니 그것도 참 신기한 일이다.
새해 벽두부터 이게 무슨 꼴인가. 하나님은 나의 화살기도는 귓등으로도 접수하지 않으신 모양이었다. 내가 필요할 때는 좀 다가와 주시지, 왜 그렇게 멀찍이 떨어져 웃고만 계시는지 모르겠다.
내친김에 다시 화살기도를 드렸다.
하나님, 작년처럼 살라면 저는 못삽니다. 아시지요? 저도 새롭게 살구 싶다구요!
여기에서 부연설명 해드려야 할 편집회의 내용.
내가 다니는 교회에는 일정 기간을 두고 발간하는 출판물이 있다. 그것을 홍보지라고 하는지, 정확한 명칭은 알 길이 없다. 우리는 늘 그 출판물의 제호를 부르니까.
신문의 형태로 매월 발간되었던 출판물은 몇 년 전 계간지 형태로 바뀌었고, 그 때 나는 편집위원으로 합류하게 되었다. 글줄이나 쓴다고 이전부터 계속 섭외가 들어왔었지만 몇 년 동안 나는 거절해왔다.
"편집 방향이 나와 맞지 않습니다.“
“무엇이 그렇습니까?”
“선전 위주, 홍보 위주가 싫습니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났는데 마침 새로 온 담당 목사가 다시 권유했다.
“집사님의 주관을 최대한 반영해드리겠습니다.”
“힘드실걸요?”
“마음대로 쓰십시오.”
이렇게 해서 편집부에 들어간 것이다.
들어가서 아닌게 아니라 웬만큼 나의 솔직한 마음을 별다른 제재없이 토해낼 수 있었다. 그 몇 년 동안 고정 칼럼을 하나 집필했는데 반응은 어차피 상대적이니까 언급하고 싶지 않다.
그런데 작년, 교회에 새로운 목회자가 옴으로 해서 일 년 동안의 공백이 있었다.
교회 전체가 새로 부임한 목회자의 새로운 리더십 패러다임으로 변환되는 과정이었으므로 출판물까지 신경을 쓸 수 없었던 모양이다.
연초 다시 소집된 출판팀은 다시 몇 분야로 나누었고, 그 중 출판물 편집팀장을 내가 맡게 된 것이다.
같이 일했던 기존의 편집위원 몇 사람과 새로 영입한 위원들이 역시 새로 맡은 부목사와 한자리에 모여 회의를 진행했다.
먼저 담당 부목사가, 이 출판물은 ‘따뜻하고 은혜로운 기사’로 채워져서 우리 교회를 홍보하는데 주력해야 할 것입니다, 이런 요지의 모두발언을 했다.
모인 사람들은 거의 교회의 중추적 역할을 맡고 있는 신심 깊은 분들이라 나누는 이야기도 충성, 일심단결, 은혜 충만이었음은 말할 나위가 없었다.
그 중 믿음의 절정을 보이고 있는 한 집사님이 교회 홈 페이지 게시글에 대해 우려를 표명했다. 얼마 전부터 한 권사가 교회의 갱신에 대한 주제로 계속 펌글을 올리고 있는 것에 대한 것이다. 일테면 부끄럽기 짝이 없는 분열된 교단의 현주소, 술과 담배와 교회라는 제목으로 신선한 입장을 드러내 보인 김경재 교수의 글이나, 신앙으로 무장한 오늘의 우상들, 등등 읽을거리가 풍성하다. 하지만 그 밑에 대롱대롱 달려있는 댓글은 ‘은혜롭지 못하게 웬 치부를 그렇게 드러내느냐’는 것이 주론이었다. 그래도 이에 굴하지 않고 꿋꿋하게 펌글을 올리는 권사님이 대단하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교회는 나만의 교회, 우리 교회에서 벗어나야 하고, 교단의 흐름이나 세계 기독교의 흐름도 더불어 알아야 우물 안 개구리 식의 신앙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날 것이 아닌가.
그렇게 올리는 펌 글은 내 취향에 딱 맞아서 나는 펌 글을 프린트해서 밑줄 치면서 몇 번이고 읽고, 아멘, 하고 은혜 받는데 그분들은 정 반대인 모양이었다. 하긴 다양성이 존중되어야겠지.
열혈 집사님은 그런 글은 삭제해버려야 한다, 삭제할 권한을 확실히 하자, 등등 주로 ‘더러운 똥 치우듯’ 펌 글을 대하는 것이었고, 다른 사람들도 대개 동조하는 분위기인데 섣불리 삭제할 수 없는 현실을 어떻게 고칠 것이냐 하는 교회의 인터넷 홈피 게시글에 대한 법안 제정 문제로까지 확대되어가고 있었다.
교회나 한국 교계나 성경 전반, 기독교를 향한 쓴소리는 초신자들에게 시험을 준다는 것이다. 아무쪼록 게시판은 은혜가 철철 넘쳐야 한다는 것이겠지.
나는 그토록 외면당하는 펌 글 하나 읽고 너무 은혜 받아서 그 책자(한완상 교수의 ‘예수 없는 예수 교회’다. 이 책이 과연 교회 홈페이지에서 삭제 할 만큼 은혜롭지 못한 책인가? 여러분들께 나는 진심으로 묻고 싶다)까지 주문했는데 왜 그렇게 사람 마음은 다른지 정말 신기한 일이다.
분명 나와 정반대의 생각이지만 나는 내 생각을 말할 의미를 못 느껴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홈페이지 문제보다 나는 ‘교회 홍보에 주력한다’ 는 담당목사의 말이 더 충격적이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이에 돌아가면서 한 마디씩 하는데 나는 다른 사람들의 말이 잘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마지막 내 차례가 될 때까지 참고 있느라 혈압이 계속 오르는 것을 느꼈다.
그리하여 내가 ‘지랄’ 한 내용의 요지는 이렇다.
나는 편집팀장을 할 수 없다. 목사님이 말한 편집 컨셉이 나와 맞지 않는다. 출판물의 발간 의미가 교회 홍보 차원이라니, 대체 왜 교회를 홍보하는가? 예수를 홍보해야지!(이 말 속에는 우리 교회 홍보해서 힘들고 어려워 점점 쪼그라드는 교회 앞에서 자랑하려느냐, 아니면, 옆 교회 교인 끌어오려고 하느냐, 는 싸가지 없는 나의 내심이 좀 포함되어 있다)
그리고 ‘따뜻하고 은혜로운 이야기’ 발굴도 좋지만 너무 뜨거운 물만 고이면 썩는다. 어디선가는 차가운 물이 스며들고 순환이 되어야지! 나 같은 경우, 너무 은혜 은혜 하는 게 오히려 더 은혜스럽지 못하게 생각된다.
우리 가정은 은혜로운 집안이라고 좋은 이야기만 써 놓은 교인의 글을 읽고, 반은 속아 넘어 가고, 그 집 사정을 아는 반은 비웃는다. 아마 속아 넘어간 교인도 언제인가는 그 속사정을 알게 되겠지만. 사람도 양면성이 있고, 교회도 신앙도 양면성이 있다.
은혜스러운 시간도 있고, 철저한 신앙 좌절의 시간도 있고, 기뻐 펄쩍 뛰는 시간도 있고, 낙심하여 오기 싫은 것을 억지로 참고 교회 올 시간도 있다. 신앙의 여정 속에 있는 교인들이니 당연하지 않은가?
교회도 좋은 것, 좋은 점만 있나? 교회도 사람들이 모여 있는데 이런 저런 것들이 섞여 있는 것은 당연하지 않은가. 현 상태를 직시하고 고칠 것 고치고, 안되면 왜 안 되는가 고민하고, 좋은 것은 확산시키고, 이러면 되는 것이다.
그저 우리 교회 참 좋아, 너무 좋아, 이런 글만 올라온다고 사람들이 그렇게 믿을까? 어느 정도의 비판과 문제점 등도 거론할 수 있어야 숨통이 트이지 않겠는가.
새로 온 목사님이 요구하는 편집방향이 홍보 쪽이라면 나는 일하고 싶지 않다. 이런 일은 같은 방향으로 힘을 합쳐 일해도 힘이 든데 이렇게 마인드가 다른 사람과 목회자가 충돌하면 사사건건 힘들 것이 뻔하다. 홍보 잘 할 수 있는 다른 편집팀장을 구하는 것이 나을 것이다.
그리고, (이때 분명 나의 말에 힘이 잔쯕 들어가 있었을 것이다)어느 때 보면 예수님보다 목회자가 더 위로 서 있는 느낌을 가질 때가 있다. 그런 점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더 이상의 언급은 피하겠다.
세상에는 늘 양면이 존재한다. 보수와 진보, 이런 식으로 말이다. 그렇게 본다면 교회는 보수꼴통(미안하다 이런 난폭한 언어를 사용해서)쪽이고 나는 진보 쪽으로 한참 전진한 상태다. 내가 만약 ‘이성적인 중도 입장’이라면 어떡하든 편집팀장을 해보겠는데 내가 생각해도 급진 개혁 쪽에 가까우니 중립성을 지키기 힘들다. 그만 두겠다.
결론을 말씀드린다면 편집팀장을 그만두지 않았다.
소신껏 밀고 가라는 위원장 장로님의 말을 경청하고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어쨌든 새해부터 조짐이 별로였다. 이렇게 새해를 시작하고 싶지는 않았는데!
다시 이제부터
작년 하반기를 완전하게 망쳐버린 나는 12월이 특히 더 힘들었다.
일 년 농사를 마무리해야 하는데 도무지 마무리 할 것이 없었던 것이다. 눈물로 씨를 뿌린 자는 기쁨으로 거둔다고 했지만 눈물로 씨를 뿌리지 못했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여기에서 눈물로 씨를 뿌린다는 의미는 나에게 있어서 열심히 집중하여 소설을 쓴다는 것을 뜻한다.
그러니 자연스레 마음이나 마무리하자는 쪽으로 기울었는데 그 ‘마음’이야말로 곪을 대로 곪아 화농이 터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내가 보아도 그 상처의 두께가 만만치 않았고, 그것은 누군가 실핀으로 살짝 건드려도 내 내면의 고통이 이과수 폭포처럼 철철 흘러내릴 지경이었다. 내 스스로는 도저히 손 쓸 수 없을 정도로 피폐해져 있어 이제는 무릎 꿇고 하나님만 바라보아야 하는 위기(또는 기회)의 순간이기도 했다.
이유야 여러 가지 있고, 해결점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12월 중반 쯤 넘어가자 나는 이상한 결심을 하게 되는데 이왕 헤맨 것 아예 미친듯이 헤매기로 작정을 해버린 것이다. 이른바 <헤매는데 완전 몰입>했다고나 할까?
그리하여 에라, 모르겠다 식으로 진행된 음주가무와 주초잡기의 연락(宴樂)은 도를 지나쳐버렸다. 오죽하면 내 블로그에 12월을 <미친 12월>이라고 제목을 달아 놓았을까……
날이면 날마다 미팅이요, 번개요, 모임이 나를 이끌었다.
단어는 조금씩 틀리지만 한 마디로 말해서 사람들을 만나 진하게 놀아 제꼈다는 말이다. 나에게 ‘논다’는 의미는 글을 쓰지는 않고 글에 대한 이야기만 지천으로 늘어놓는다는 뜻임을 분명히 한다.
그 문학적인 자리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이 바로 술과 담배. 술을 계속 마셔주니 주량이 장난 아니게 늘었고, 그에 대한 당연한 결과로 년놈들 가운데서 가장 술빨(원래는 술발이지만 주당들은 흔히 술빨이라고 말하고 내 생각에도 술발, 이라는 표준어보다는 된소리 나는 술빨이 더 술발을 잘 느끼게 해 주는 것 같다)이 잘 받는 사람으로 뽑히게도 되었다.
뿐인가? 술을 마시면 실과 바늘처럼 따라오는 흡연은 술자리가 더해질수록 점점 더 심해져서, 한 달 새 헤비 스모커 수준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렇게 하루 마시고 하루 쉬고,에서 이틀 마시고 하루 쉬고. 사흘 연짝으로 마시고 하루 쉬고,에서 급기야는 닷새 마시고 하루 겨우 쉬고. 그렇게 엄청난 발전(그것도 발전이라면 발전이겠지)을 이룩한 것이다.
오, 하나님!
건강에 위협을 주는 것은 그것뿐이 아니었다. 늘 밤마다 기름진 안주를 벗 삼다 보니 체중이 급격하게 늘어나는 바람에, 볼 살은 빵빵해지고 허리께가 소복해졌다. 뱃살을 만져볼 때마다 그득하게 잡히는 체지방 덩어리는 음식을 절제하지 않은 결과였다. 과도한 술자리에서 비롯된 과체중이라는 결과를 얻게 된 나는 거울을 보면서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비만은 결국 내가 먹는 것에 탐닉했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는 결정적인 증거가 아니런가!
이런 상태는 지난 5월 다시 담배를 피우기 시작했을 때 다짐했던 ‘자유로움’과는 거리가 멀었다. 나의 이성의 지배아래 있어야 진정한 자유일 텐데 당시의 나는 자유롭지 못했다는 말이다. 술이 술을 부르고, 흡연이 다시 흡연을 부르는 것이다. 나는 그것들에게 질질 끌려가고 있었다. 그것은 내가 원하는 바가 절대 아니었다. 나는 구조조정이 필요했다.
원래 연말이라는 분위기가 흥청망청인 것은 사실이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한 감이 없지 않았다. 그런데도 일단 헤매는데 끝장을 보자는 괴상한 심리까지 덧붙여져서 모든 만남을 마다하지 아니하고, 오케이, 하면서 흔쾌히 나가 말만 무성한 대화의 늪으로 빠져 들어간 을 생각하면 어이가 없다.
거의 매일을 그렇게 굳세게 모이고, 먹고, 마시고, 피우면서 몇 주일이 흘렀고 드디어 새해가 며칠 앞으로 다가왔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남편에게 선언했다.
“나는 새해에는 절제할 거야.”
아마, 내 얼굴은 매우 심각해 보였을 것이고, 대단한 각오로 조금은 벌게져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버락 오바마는 아니지만 변해야 한다, 변해야 산다, 당시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아멘.”
남편도 동조했다.
그리하여 나는 즉시 준비 작업에 착수했다. 내년의 계획표를 잘 세웠고, 내년의 중보기도문을 작성했고, 그리고 할 일과 하지 않을 일을 잘 구분하여 프린트했고, 그것들을 책상 앞에 떡, 하니 붙여놓았다. 인터넷 서점으로 신앙서적과 소설책도 듬뿍 주문했고, 그리고 하루 스케줄을 완벽하게 만들어 놓았다.
나에게 내일은 없다, 지금 이 시간을 절제하라, 바로 그것이 모토였다.
그러자 송구영신 예배가 몸서리치게 가고 싶어졌다. 해마다 거의 똑같은 성경구절이지만(확인해본 결과 올해도 그 성경 구절이었다. 고린도 후서 5장 17절 말씀.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다시 한 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하는 말씀도 받고 싶고, 그 말씀에 힘입어 ‘새로운 피조물이 된 나’를 확인하고 싶기도 했다.
해마다 거의 같은 찬송가를 부르지만 올해도 또 부르고 싶었다. 아침 해가 돋을 때 만물 신선하여라, 와, 시온의 영광이 빛나는 아침, 뭐 그런 찬송가 말이다.
특히 내가 좋아하는 가사 ‘매였던 종들이 돌아오네’를 더욱 힘차게 부르고 싶었다. 나는 매어 있었고, 그리고 다시 돌아오고 있으니까.
하지만.
송구영신 예배는 그림의 떡이나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차가 없다.
우리 집은 대단히 가난하여 나라의 지원을 받고 있다. 일테면 의료보험의 지원인데 나는 병원에 가면 진료비 천원만 내면 되고, 약은 한 달 치든, 일주일 치든 무조건 오백 원으로 쇼부 볼 수 있는 특혜가 있다.
어찌되었든 우리는 차가 없으므로 1시 넘어서야 끝난다는 예배를 참석하기 곤란했다.
작년인가 궁여지책으로 동네 교회 송구영신 예배를 갔는데 영 아니었다.
영 아니었다, 라는 말에 객관성을 좀 부여한다면 이랬다. 새해를 알리는 종소리에 맞추어서 기도를 짤막하게 드린 것 까지는 좋았는데 그 후부터가 문제였다. 한 200여명 정도 모이는 교회였는데 재미있는 행사사진들을 슬라이드로 보여주면서 즐겁게 웃는 시간이 무려 사십여 분이나 지속된 것이다.
나는 새해 벽두부터 웃음이 터지는 일을 계획한 사람에게는 경의를 표하지만 조용히 기도하고 싶은 나의 마음에는 맞지 않아서 결국 중도에 나와 버리고 말았다.
내가 다니는 교회는 우리 집에서 25킬로 떨어져 있었고, 도의 경계를 넘어서 있기 때문에 택시를 탄다는 것도 거의 불가능했다. 그래서 나는 기도했다.
“하나님, 나를 송구영신예배에 갈 수 있도록 해 주십쇼.”
하나님은 나의 갸륵한 소원을 들어주셨다. 하지만 내가 다니는 교회가 아니라 친구 부부가 다니는 오천 명 가량의 교인이 있는, 그리고 대한민국에서 알아주는 목사님이 시무하고 있는 빵빵한 교회였다.
아뿔싸!
‘우리 교회’ 송구영신 예배에 갈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했어야 했는데 내가 그만 급한 나머지 단어 하나 빼먹었더니 기도 그대로만 응답해 주신 것이다.
나는 가끔 하나님이 옹졸하신게 아닐까, 하고 마음속으로 혼자 의심할 때가 있다.
송구영신예배의 뒤끝
영상매체를 통해서는 많이 보아왔지만 실제로 만나기는(만났다고 해야 하나, 그냥 얼굴만 봤다고 해야 하나 모르겠지만 그래도) 처음인 그 유명하신 목사님이 송구영신예배를 인도했다. 결론적으로는 대단한 실망이었다.
나는 개인적으로 그 목사님의 책을 서너 권 이상 읽었고, 그 목사님의 설교 테이프를 매월 일정액을 지로용지로 납부하면서 거의 십 년 이상을 일주일에 테이프 하나씩 꼬박꼬박 들었으며, 친구가 보관하고 있는 테이프를 공수해서 온종일 테이프를 갈아 끼우면서, 그 말씀이 하도 달고 맛있어서 화장실 가는 시간조차 아까워했던 사람이다.
언제인가는 혼자 김장을 하는데 온종일 그 목사님 테이프를 옆에 끼고 앉아 고춧가루 범벅이 된 시뻘건 고무장갑을 낀 채 테이프를 뒤집고, 빼고(오토리버스가 되지 않는 고물 카세트였으므로), 감동 받아 혼자 울먹울먹 하면서 김장을 한 적이 있었다.
그렇게 한 십년 이상, 나의 영적인 발전을 이룩하게 해 준 목사님을 지금 폄하할 생각은 절대 없다. 설령 현재의 모습이 내 마음에 맞지 않는다 해도 그 목사님이 한국 교회에, 또는 한국의 기독교인들에게 준 깨끗한 메시지는 많은 사람의 가슴속에 남아있을 테니까.
그날 송구영신 예배에 대하여 주관적인 감상문을 써 올린다면.
목사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말을 하면 벌 받는다는 소리를 무수히 들으면서 믿음 생활을 해 온 나로서는 일단 주저되는 부분이 있어서 일단 잠시 숨을 고른다. 먼저, 이 말을 하는 것이 무슨 유익이 되겠느냐 하는 것도 간과할 수 없다. 그래도 하고 싶은 말은 해야겠다.
일단 그 목사는 나이가 너무 많았다. 나이가 많다는 것이 목회하는데 무슨 지장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오랜 목회 경력은 능숙함, 노련함과 더불어 매너리즘을 동반하는 것을 알았다. 목회자도 사람이기에 그 긴 목회의 기간 내내 뜨거움과 열정과 싱싱함을 유지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에 대한 열정과 사랑은 목회의 기본이 아닐까.
더구나 송구영신 예배였다. 그야말로 모든 옛 것을 벗어버리고 새 사람, 새 피조물이 되자, 는 말씀을 전하는데, 전하는 목사가 맥 빠진 목소리로 어제나 오늘이나 똑같이 늘어지게 설교하니 듣는 나는 말씀에 취하지 못하고 오히려 생뚱맞은 드라마 한 편 보는 것처럼 맹숭맹숭해지는 것을 느꼈다.
말씀의 깊이도 문제였다. 잠자고 있는 영혼을 깨워 일으켜서 이거 봐, 일어나라, 정신 차리고 우리 새롭게 한 번 잘 살아보자! 하나님이 우리에게 새로운 날을 허락하셨는데 신나는 일 아니냐, 하기를 원했는데 받아들이는 나로서는 그 느낌이 없었다.
말씀에는 고백과 회개와 더불어 적확한 말씀 선포와 그것을 누리게 하는 힘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날의 목사는 구태의연해 보였다.
오히려! 새 날을 선포하는, 매였던 종들을 다시 돌아오게 하는 찬송가 한 절 부를 때가 더욱 은혜로웠다.
둘째, 그 교회도(내가 다니는 교회처럼) 신년 헌금을 기도제목 쪽지와 함께 내라고 했다. 이에 순종하는 착한 교인들은 저마다 신중하고 경건한 표정으로 기도제목을 쓰고, 정성껏 준비한 헌금봉투를 들고 줄줄이 줄을 서서 단상 앞으로 나갔다.
순서는 이랬다. 먼저 헌금봉투를 바구니에 넣는다. 기도제목을 다른 바구니에 넣는다. 성만찬을 한다. 하나님이 주시는 성경 구절 바구니에서 하나 집는다. 많은 쪽지 중에서 뽑기처럼 뽑아낸 성경 구절은 일 년을 살아가는 말씀으로 받으라고 했다.
돈 넣고, 소원 넣고, 성만찬하고, 말씀 뽑고.
믿음 좋은 사람은 이다음 구절은 읽지 마시고 건너뛰기 바란다.
좀 더 적나라하게 말 한다면 돈 놓고 돈 먹기랄까?
하나님이 그렇게도 돈을 좋아하시나?
아니면 목사는 하나님이 뻥튀기 기계라고 가르쳐 주려는 심사인가? 그도 아니면 자판기 정도?
만원 넣으면서 백만 원 달라고 하고, 십만 원 넣으면서 일억 원 달라고 하면 하나님이 좋아하시나?
머리가 팍팍 잘 돌아가는 교인은 그렇게 기도하기 면구스러우니 살짝 말을 바꿨다.
하나님, 십일조 백만 원 하게 해주십시오. 혹은, 하나님, 우리 교회에서 십일조 제일 많이 하게 해주십시오. 그러면 그거 다 제가 쓰겠습니까! 교회에도 빵빵하게 내고, 이웃도 돕고 그럴 겁니다. 다, 아시면서~
그렇게 가르쳐준 사람은 바로 목사가 아닌가?
요즘 교회는 돈을 너무 좋아한다. (어느 목사는 추수감사절 헌금은 한 달 봉급 정도라고 액수까지 친절하게 가르쳐 주기도 했다)
교인들이 나래비로 줄을 서서 단상 앞에 놓인 바구니 앞을 지나가야 하는데 헌금 바구니를 그냥 스쳐가서 기도 제목을 넣는 바구니에만 쪽지를 넣으려면 대단한 용기가 필요했다.
단상에서는 유명하신 목사가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교인들이 굴비 두루미처럼 엮어져 나와 바구니마다 넣고 또 넣은 모습을 잘 지켜보고 계신데다가( 그 많은 교인이 다 단상 앞으로 나왔으니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렸는지!), 바구니 앞마다 친절하신 부목사님들이 지켜 서서 미소 짓고 인사하기 때문이었다.
소심한 교인들은 성만찬 하면서 헌금도 안하고 예수님 피와 살을 먹는다는 사실을 껄끄럽게 여겼을지도 모르고, 어쩐지 외상으로 먹는 기분이었을지도 모른다.
참 이상한 일이다. 교회는 성경말씀대로 ‘자원하는 마음으로, 기쁨 마음으로’ 헌금할 기회를 주지 않는다.
교회에 가면 늘 잡부금 같은 돈을 걷는다. 주보 사이에 끼어있는 수많은 명목의 잡부금들! 국내 선교헌금, 불우이웃돕기 헌금, 북한 돕기 헌금, 재해 돕기 헌금, 청년부 해외선교 헌금, 교회 기물 준비 헌금……
주보 사이에 간지로 끼어있는 헌금 봉투이외에도 교회에 가면 또 다른 잡부금이 기다리고 있다. 여선교회 회비, 개척교회 성금, 성가대 회비, 중창단 회비……
그뿐인가? 예배드리고 문밖에 나서면 또 다른 성금함이 기다리고 있다. 불행한 일을 당한 누구누구 돕기 성금함(그분의 불행한 처지를 들으면 지갑을 거꾸로 뒤집어 털어서라도 내지 않을 수 없다), 불우이웃돕기 성금함(옷 잘 빼입은 장로님들과 눈이라도 마주치면 그냥 지나치기 힘들다), 청년부 해외선교를 위한 차 팔기(차 한 잔 얻어 마시고, 헌금함에 지폐를 넣어야 한다. 청년부들이 눈을 반짝이며 주시하는 가운데 거대한 성금함 통에 천 원짜리 넣으면 쪽 팔린다)수많은 물품을 선교 목적이라고 시중보다 비싸게 판다. 떡 팔고, 기름 팔고, 고춧가루 팔고, 김 팔고, 감자 팔고…… 때로는 특강을 빙자하여 올라온 농어촌 교회 목사들이 애절하게 호소하면, 그 날은 무거운 옥수수 한 보따리라도 짊어지고 전철, 버스 타고 가야 한다. 지금 대략 생각나는 것이 이 정도다.
다시 한 번 하나님께 확인하고 싶다.
하나님, 돈 좋아하시는 거 맞죠?
여선교회 회비를 걷는 회계는 늘 힘들어한다. 식당에서 로비에서 회원을 만나 회비를 달라고 하면 열이면 아홉의 얼굴에는 반색이 아니라 땡감 씹은 얼굴이라는 것이다. 마치 자신을 저승사자 보듯이 한다나? 내가 알기로 회비가 부담스러워 여선교회에 들어오지 못하는 교인도 적지 않다.
내 생각으로는 헌금은 주일에 한 번, 그냥 헌금 봉투 하나만 있으면 좋겠다. 그 앞에 십일조 낼 사람은 십일조라고 쓰고, 생일 감사헌금 내고 싶으면 생일 감사라고 쓰고, 각자 자신이 쓰면 될 것을 너무 친절하신 교회 측에서는 갖은 명목의 헌금봉투를 본당 앞에 잘도 구비해 놓으셨다. 교회에서 지갑을 열 때는 딱 한 번, 주일 예배 시간에 드리는 헌금으로 오케이, 하면 설마 교회가 망할까?
셋째. 목사에게는 실망했지만 성도에게는 은혜 받았다.
그 날은 몹시 추웠다. 그렇게 추운 일 년의 마지막 날 밤 11시에 어둡고 바람 부는 길에는 수십 명의 주차안내 위원이 나와 빨간 지시봉을 열심히 흔들고 있었다. 썰렁하기 짝이 없는 지하 주차장에도 수십 명(그 중에는 여자 주차위원도 있었다)의 봉사자들이 만면에 웃음을 띠고(단상에 선 목사의 웃음과는 다르게 느껴지는)친절하게 안내를 해주는 것이다.
그들의 인도를 받으면서 가슴 어딘가 뭉클해졌다.
아름답다!
그것이 나의 느낌이다. 교인들의 하나님 사랑이 저렇게 섬기는 모습으로 나타나는구나, 하고 생각하니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예배당 안에 들어서니 이미 많은 교인들이 와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경건한 표정으로 하나님이 주실 새날을 기대하는 모습이었다. 장성한 자녀들과 앉아있는 노부부, 허리가 굽은 어르신, 장난치고 싶어 몸살하는 초등학생을 잘 달래고 어르고 있는 부부, 아주 갓난아이를 품에 안고 온 젊은 부부, 날아갈 듯한 멋진 패션으로 찬송가를 부르고 있는 대학생들, 두 손을 꼭 잡고 오는 젊은 연인들, 술 꽤나 드실 것 같은 중년 아저씨의 겸허한 고개 숙임(기도하는 것이려니), 3대가 다 모인 듯 긴 좌석을 꽉 채우고 앉아있는 대가족, 성만찬을 하고나서 어깨를 들썩이며 두 눈을 가리고 들어오는 늙은 남자……
남의 교회에서 만감이 교차하는 송구영신예배를 드리고 나니 어언 한 시가 넘었다.
그렇게 시작된 새해 첫날, 1월 1일!
교회 앞, 자판기 커피 한 잔 겨우 마신 상태니 뭔가 아쉬운 마음이었다.
친구 역시 송구영신예배에 대하여 실망한 기색이 역력했다. 아, 이 갈증을 어떻게 풀어야 한단 말인가!
우리는 즉시 토론에 들어갔다. 친구 부부와 우리 부부는 ‘갈증이 난 몸의 상태’에 대하여 동의했다.
“갈증을 푸는 데는 생맥주가 최고지.”
“맞다!”
그렇게 해서 1월 1일 새벽, 집 앞 치킨 집으로 달려가서 모두 생맥주 500cc를 산뜻하게 마셨다. 헌데 슬슬 배고파진 남편들이 치킨을 더 시키더니만 ‘딱 한 잔 만 하자’는 약속을 어기고 한 조끼씩 더 하셨다. 다행히 대화의 내용은 경건을 유지했으니 망정이지 새해 벽두부터 술주정 할 뻔 했다. ^^ 하지만 내용은 대단히 바람직스러웠다. 모두 진지했고, 오고 가는 대화 속에서 서로의 신앙을 점검하는 유익한 시간이었다.
일테면 교회를 가자, 열심히 가자, 에서부터 술을 어떻게 하면 덜 먹을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절제할 수 있을까 따위를 솔직하게 나눈, 의미 있는 <100분 토론>이었다고나 할까.
신년 성회를 가다
새해에 나를 기다리는 첫 번째 스케줄은 은혜받기였다.
내가 다니는 교회는 새해를 맞이하여 신년 성회를 준비했다. 해마다 우리 교회는 신년 성회를 하는데 올해도 예외가 아니었다. 나는 새해 첫날 교회에 모여 기도하고 찬양하고 말씀 듣는 것이 일 년을 살아가는데 매우 유익하다고 생각한다.
이번에는 1일 저녁, 2일 새벽, 저녁, 3일 새벽, 저녁, 이렇게 다섯 번의 신년 성회 집회가 있었다. 나는 집회 참석해서 은혜 받는 것에 올인 하기로 결심했으므로 각오가 대단했다.
때마침 신년성회의 화두가 바로 ‘집중하라!’ 였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에, 기도에, 말씀에 집중하라!
나는 최선을 다하여 다섯 번의 집회에 착실하게 참석했다.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하나님께 가까이 가고자 해서인지 받은 바 은혜도 강렬했다. 지나간 12월은 내가 나를 이길 수 없었지만, 새해부터는 하나님이 강권적으로 도와주실 것이므로 충분히 나를 절제하고 이길 수 있으리라는 확신이 무럭무럭 자라났다. 거의 취미생활이 되다시피 한 쓸데없는 자학도 싹 거두어 가신 것 같았다.
여기에서 한 가지 집고 넘어가야 할 상황이 있다.
그러니까 전에 말했던 그 회의에서의 ‘지랄’은 바로 신년 성회의 마지막 저녁 집회 전에 일어난 상황이었던 것이다.
더구나 마지막 집회에는 친구를 초대했다. 송구영신 예배를 같이 드렸던 친구였다. 그 친구는 우리 교회 교인은 아니지만(맨 처음은 내가 전도하여 우리 교회에 몇 년 다녔고, 우리 교회에서 세례도 받았다) 한 학기씩 이루어지는 성경공부에 초대하면 즐거운 마음으로 달려와서 우리 교인 못지않게 열심히, 어쩌면 우리 교인들보다 더 신나게 성경공부 시간을 즐기곤 했다. 내가 권하는 기도원도 마다하지 않고 따라 가는데 하나님에 대한 열망, 사랑이 지극한 친구다.
그녀와 나의 소원은 언제인가 한 번은, 태백에 있는 예수원에 들어가 묵언 수행을 해보는 것이다.
친구와 나는 성정이 비슷하여 시끄러운 분위기는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신년 성회이니만큼 그것은 호, 불호에 상관없이 무조건 아멘이었다. 우스운 일은 하도 나를 따라 우리 교회에 많이 와서 우리 교인을 적잖이 알고 있다는 것이다. 그 날도 몇 몇 아는 사람들과 눈꼬리를 접으며 인사하는 모습이 우리 교회 집사급은 되어 보였다.
그녀는 은혜 받을 만반의 준비를 하고 온 듯, 싱싱한 눈빛으로 앞자리를 차지하고 앉았다. 나는 들어오면서부터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교회는 서로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곳이 맞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말이다.
집회에 참석하면 내 눈에 뜨이는 사람이 있다.
첫째는 봉사하는 사람, 둘째는 초신자.
(대단히 죄송하지만 장로님은 잘 눈에 뜨이지 않는다. 계속 눈에 뜨이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나에게 장로님의 이미지는 약간 거들먹거리고, 목소리가 상대적으로 크고 위엄 있고 교만스럽고, 거의 담임 목회자 옆에서 식사를 하고, 높은 분들하고만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지치지도 않고 수십 년을 보여주며, 큰 승용차를 타고 다니고, 교회 사무실에서 덕담(왕수다라고 쓰고 싶다)나누기를 즐기며, 헌금 많이 하며(이 점 하나만 유익스럽다), 별로 겸손하지 않는 표정이며, 그리고 회의 진행하기를 좋아하며, 회사 사장 같은 포즈를 잘 취한다. 그러니 내가 장로님들과 과히 친하지 않은 것이 당연하지 않은가! 나는 장로님 몇 분에게 일방적으로 호된 야단을 들은 적이 있는데, 문제 자체를 놓고 본다면 오히려 내가 야단을 칠 상황이었다, 하지만 나는 K.O 패 당했다. 사회나 교회나 똑같은 사고방식이 작용되었기 때문이다)
어쨌든 봉사자와 초신자 모습에서 똑같이 감동받는다. 아니, 기독교적 언어를 사용하자면 진짜 은혜 받는다.
안내를 하거나 집회 후 차를 대접하거나, 그 추운 바람을 온몸으로 껴안으며 차량 봉사하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나는 예수님을 만나는 것이다. 그들의 표정은 늘 밝고 아름답다. 그렇게 표정관리를 잘 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늘 느끼는 것이지만 경이롭다.
지난 12월, 우리 부부는 안내위원을 했다. 난생 처음이었다. 나는 원래 남 앞에서 서는 것에 알레르기가 있다. 누군가와 웃으며 인사하는 것도 익숙하지 않다. 기독교인이 그래서야 쓰겠냐고 하면 할 말은 없지만 사람에게는 성격이라는 것이 있지 않은가.
펄쩍, 뛰면서 고사했음에도 불구하고 전도사의 끈질기고도 집요한 권유의 통화 끝에 억지춘향이 되어 수락하고 말았다.
그리하여 시작된 고난. 나는 그것이 고난이었다.
“근데 전도사님, 저는 사시시철 청바지 차림인데요?”
“그냥 바지 입으셔도 됩니다. 청바지는 말고.”
간곡하고 완곡하게 말하는 의미는 잘 알아들었다. 나도 일찍이 청바지 입고 주보 나누어 주는 안내위원을 본 적이 없으므로, 내가 무슨 유시민이라고 거역할 것이냐, 하는 마음이었다.
나의 얕은 생각으로는 현대에 예수님이 나타나면 찢어진 청바지 입고 오실 것 같은데……
기를 쓰고 반항하려면 할 수도 있었겠지만 워낙 내 마음이 피폐해져 있던 터라 만사가 귀찮아서 승낙했다.
나는 하나님께 하소연했다.
“청바지는 안 된다네요, 하나님. 그러면 치마나 몇 벌 사주실거죠?”
과묵하신 하나님은 묵묵부답이었다. 나는 그것을 니 맘대로 해라, 로 받아들였다.
이번을 기회로 겨울 스커트 몇 벌 사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겠거니 하고 80% 세일하는 할인매장을 뒤지고 또 뒤져서 내 맘에 들기보다는 교인들 마음에 드는 매우 원만한 스타일로 치마 몇 장을 마련했다. 구색을 맞춰야 하므로 아울러 장만한 스타킹을 신으면서 너무 낯설어 따져보니 8년 만에 스커트를 샀다. 이거야말로 버락 오바마의 Change가 아닌가! 그렇게 나는 체인지 되었다.
생각난 김에 덧붙여 말한다면, 본당 안내위원은 한 번도 한 적이 없는데, 예전 집회 때에는 한복을 입으라는 명령이 떨어졌기 때문이었다. 나는 한복이 없었다.
화려하고 멋지고 아름다운 한복은커녕, 결혼식 날 폐백 드릴 때 입었던 신부 한복인 초록저고리 빨강치마가 장롱 밑바닥에 깔려 좀이 슬어가고 있는데다가, 그때나 지금이나 언제나 변함없이(그런 것은 변하면 좀 좋을까!) 가난한 우리 형편으로는 한복을 마련할 수 없었던 것이다.
집회가 있을 때 가끔 전화가 왔다.
“안내위원 하시죠?”
“저는 한복이 없는데요.”
그러면 무난하게 안내위원을 넘어갔다. 지금 생각해도 참 희한한 일이었다.
집회와 집회 안내위원과 한복의 상관관계를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예수님이 혹시 한복을 좋아하시나?
그렇게 생각하면서 한복 입으신 예수님을 상상하니 웃음이 절로 나왔다.
사실 솔직하게 말한다면 한복이 아닌 정장 차림의 안내위원의 모습도 대단히 전형적(솔직하게 표현한다면 고리타분하다)이다.
전도사 스타일의, 색감이 튀지 않는 얌전한 정장에 블라우스, 굽이 높지 않은 무난한 구두, 대개 그렇다.
나는 안내위원이 왜 그렇게 펑퍼짐한 옷을 입어야 하는지 정말 모르겠다.
손톱에 매니큐어도 새빨갛게 칠하고, 머리도 살짝 블릿치를 넣고, 안으로 얌전하게 구부린 머리가 아니라, 밖으로 야단스럽게 뻗은 머리카락의 안내위원은 왜 접수가 안 되는지?
교인들 눈에 거슬리다면, 자꾸 그런 모습을 보여주어 익숙하게 만들면 되지 않을까나……
안내위원 뿐 아니라 교인들 옷차림도 좀 더 자유로웠으면 좋겠다.
주일, 남녀 교인들의 모습이 대동소이하다. 그분들은 사회에서도 그런 모습인지 모르지만 그렇다면 더욱 갑갑하다. 재벌 그룹에 다니는 친구 남편은 양복차림으로 교회가야 한다는 사실을 무척 못마땅해 했다. 날마다 와이셔츠 양복차림으로 온종일 지내는 것이 너무 지겨워 주일만이라도 좀 편한 옷차림으로 지내고 싶다는 것이다. 넥타이 안하고 싶다고 버티는 남편 때문에 주일 아침마다 실랑이를 벌이던 친구도 떠오른다.
도대체 교인들의 옷차림은 이래야 된다, 저래야 된다, 혹은 이러면 더 좋고, 저러면 더 좋고의 기준은 어디에 있는지 그것을 정말 모르겠다.
또 물어봐야지. 하나님은 정장을 좋아하시나요?
옷차림도 술 담배 커피와 마찬가지로 취향이고, 기호의 문제이다. 내 마음에 저런 옷차림이 껄끄럽게 보인다고 예수님도 껄끄럽게 보실 것이냐, 에 대하여 나는 정말 회의한다.
우리는 가끔 예수님보다 더 안목이 높은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이에 대한 리얼 스토리를 뒤에 붙여 놓았다.)
하여튼 한복 조달에 별무리가 없는 안내위원들은 모두 잠자리 날개 같은 한복을 잘 빼입고 등장하시곤 했다.
예배당 입구에 도열하신, 마치 미스 춘향 선발대회 같은 미녀 집사님.
한복 패션을 멋지다고 인사치레는 해주면서도 마음 한 쪽은 편치 않았다.
예쁜 것을 보고 실쭉해지는 것은 필시 살짝 꼬여있는 성질 탓이라고 돌려야겠지.
하다못해 성가대에서 크리스마스 칸타타를 할 때에도 한복을 입으라는 명령이 떨어지는 바람에, 한복 빌리러 다니느라 스트레스 엄청 받았다.
왜 교회는 한복을 좋아하는지 모르겠다고 의아해 했는데 꼭 그렇지도 않은 모양이었다.
내 남자 친구가 회색 개량한복을 입고 교회에 왔더니 많은 교인들이, 웬 ‘중’ 옷을 입고 왔느냐고 하더란다. 중, 이란 승려나 스님이라고 부르는 타 종교인을 비하하는 말, 아닌가? 나는 남의 종교나 남의 종교인을 멸시하는 분위기를 매우 혐오하는 편이다.
누가 개독교, 먹사 이렇게 말하면 우리 역시 기분 나쁘잖나!
나도 개량한복 정도는 입고 다니고 싶지만 첫째 개량한복을 사 입을 여유가 없고, 둘째 나보고 ‘보살님’같다고 할까봐 못 입고 간다.
요즘 들어 한복 입는 추세가 점점 사라지고 있는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랄까.
그렇게 어렵사리 구한 치마 입고 스타킹 신고 하이힐도 어디서 구해신고, 정장 비슷한 차림으로 주보를 나누어 주는데, 인사하는 것이 여간 힘들지 않았다.
한 사람 한 사람 주보를 나누어 줄 때마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얼굴에는 웃음을 띠고 은혜로운 표정을 잘 관리해야했다. 나는 최선을 다했지만 역시 힘든 일이었다. 사람에게는 다 각자의 달란트가 있지 않은가. 나에게 안내위원은 적절한 포지션은 아니었다는 말씀이다.
하여튼 집회 때 칼바람을 맞으면서 밖에서 안내하는 분들의 모습은 정말 아름다웠다.
아름답다! 그렇게 밖에 표현할 수 없다.
주차장 쪽에서부터 몇 몇 봉사자들의 진정어린 사랑의 인사를 순차적으로 받으며 본당으로 들어올 때면 마음이 훈훈해지고, 뭔지 모를 은혜의 열기가 확 오르면서, 에라, 오늘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 만땅 받고 갈 것이다, 라는 결심을 단단히 하게 되는 것이다.
초신자들의 모습은 또 어떠한가!
그들은 늘 조용하게 앉아있지만 반짝이는 눈에서부터 은혜를 사모하는 열기가 느껴진다. 소박하고 진실한 표정으로, 예배와는 많이 다른 시끌벅적한 집회의 낯선 광경을 순종하면서 받아들이려는 의지가 몸 밖에까지 뿜어져 나오는 것을 나는 알겠다. 한마디로 그들은 순수하게 말씀만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가만히 친구의 눈치를 보니, 수준이 보통 아닌 친구도 설교자의 말씀에 웃고, 고개를 끄덕이고, 박수치고, 기도하고, 손들고 찬양도 드리고, 폭소를 터뜨리기도 하고, 가끔 눈물도 짓는 모습은 마치 어린아이처럼 순수해보였다.
이럴 때 하나님은 말씀하실 것이다.
“보기 좋았더라.”
여보야, 가정예배를 드립시다!
지난 12월은 환락을 충분히 누린 달이기도 했지만, 인터넷으로 성경필사를 시작한 달이기도 하다. 나는 마음이 꿀꿀할 때면 성경 필사를 하곤 하는데 제일 먼저 찾아 필사하는 대목이 시편이다. 시편 말씀은 나에게 당근과 회초리를 동시에 준다. 정말 가슴이 빠개지는 슬픔이 뭉쳐있을 때, 시편 작가의 하소연 섞인 기도문을 읽으면 동병상련을 절감하고, 내 입에서 욕이 튀어나오기 일보 직전 시편 작가의 무시무시한 저주를 읽으면 내 속이 다 후련해진다.
뿐인가 어느 대목에 이르러서는 눈물이 주르르 흐르기도 하고, 한숨이 절로 나기도 하고, 아무튼 시편은 신묘막측(神妙莫測: 감히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신기하고 오묘하다는 뜻이라고 사전에 나와 있다. 글씨조차도 신묘막측해 보이니 참 신기하기도 하다!)하기 이를 데 없다.
12월도 시편을 필사하는 것으로 시작했다.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황제를 들으면서. 나는 황제를 나폴레옹이 아니고 하나님, 예수님으로 대입시켰다.
나는 음악을 무척 좋아하는데 한마디로 말해 잡식성이다. 클래식, 판소리, 뽕짝, 팝, 하드락, 월드 뮤직, 퓨전국악, 가요를 막론하고 모두 다 섭렵하는 것이다. 내가 휴대폰을 살 때 가장 염두에 둔 것은 MP3 음악을 몇 개나 저장할 수 있느냐가 가장 관건이었다. 그래서 내 휴대폰에는 자그마치 99곡의 음악이 내장되어 있다. 그것을 랜덤으로 들으면서 시장도 가고, 교회도 가고, 동네 산책도 한다. 음악을 들으면서 길을 걸으면 뮤직 비디오가 따로 없다.
집에서는 주로 인터넷으로 FM 클래식을 듣거나, 잔소리가 귀찮으면(요즘 클래식 방송은 설명하고, 주절거리는 대목이 많이 좀 짜증스럽기는 하다) 저 멀리 노스 캐롤라이나에서 보내주는 인터넷 클래식 방송을 듣는다. 그 방송도 살짝 멘트를 하긴 하지만 영어는 어차피 알아듣지 못하므로 별로 귀에 거슬리지 않아서 좋다.
그런데 어느 날 FM을 듣다가 베토벤의 황제에 필이 확, 꽂혀버렸다. 예전에 들었을 때와는 다른 무한한 감동이 휩쓰는 것이 아닌가. 루돌프 제르킨이라는 명연주자가 피아노를 치는데 그 솜씨가 장난 아니었다. 나는 12월 한 달 동안 황제를 거의 50번 이상 들었다. 전곡을 다 들으려면 삼십 여분이 소요되는데도 도무지 지루한 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래서 그, 황제를 들으면서 시편을 필사한 것이다. 시편을 다 쓰고 나서, 피폐해진 마음에 어울리는 전도서를 다시 필사하고, 그리고 메마른 가슴에 사랑을 불어넣기 위하여 달착지근한 아가서를 필사했다. 아가서를 필사할 때는 정말 손가락이 날아갈 것 같았다. 진한 사랑은 누구에게라도 감동을 주겠지만 (나는 표준 새번역을 매우 즐겨 보는데 아가서는 우리 교회에 소속 목사로 계시는 분이 하룻밤 새 번역한 것이라고 한다. 시인이기도 한 그 분은 남다른 감성으로 번역도 끝내주게 하셨다)애틋한 사랑의 표현이 나를 아주 가게 만들었다.
그러니까 나에게 12월은 크리스마스 안내를 포함한 매 주일 안내위원 역할과, 성경 필사와, 황제와, 풍성하다 못해 철철 넘쳤던 말의 잔치와, 구원은 받았는데 왜 이리 엉망이다요, 하는 하소연 섞인 자학, 그리고 종종 자정을 넘겼던 술자리로 정리할 수 있겠다.
새해가 되자 남편과 결심을 나누었다.
“가정예배를 드리자!”
남편은 아멘으로 일단 동조하고, 토를 하나 달았다.
“당신이 예배를 인도해. 당신이 설교하고 당신이 기도해.”
그 말의 뜻은 이랬다. 우리는 거의 매해 하늘양식이라는 일 년치 가정예배 책자를 구입하여 예배를 드렸는데 가끔 그 책에는 도무지 아멘 하기 어려운 목사님의 주장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위장하여 슬쩍슬쩍 끼어있는 것을 남편은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은혜 받으려고 가정예배 드렸다가 도중에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지면서 집필한 목사 인신공격으로 끝나, 도무지 은혜 되지 않은 순간도 꽤 많았던 슬픈 과거가 있었다.
“당신은 속회 인도를 이십 년 가까이 했으니 이제 나를 인도하는 거지.”
허걱!
속회 인도는 일주일에 한 번이면 되었는데 이제 매일 남편에게 말씀 인도를 하게 되었으니
혹 하나 떼려다가 혹 서너 개를 왕창 달게 된 셈이었다. ^^
대신 남편도 새해부터는 성경을 열심히 읽기로 약속했다. 남편도 작년에는 매우 헤맸지만 그 전에는 성실했었다. 일 년 동안 성경을 필사했고(나처럼 노트북에 자판을 똑똑 두드린 것이 아니라, 팔목 인대가 나갈 정도로 펜을 힘 있게 쥐고, 한 자 한 자 노트에 써서 기어이 완성시켰다. 하이고 인대가 늘어나버린 팔목 때문에 고생은 또 얼마나 했던지!), 그 전 해에는 일 년 내내 일주일에 한 번씩 기도원을 한 번도 빠지지 않고 들락거리면서 크고 작은 은혜를 빠뜨리지 않고 주워왔었다.
어제 인도한 가정 예배 한 토막.
음, 오늘 말씀 제목은 <오늘 속의 미래>가 되겠습니다.
아빠야(남편을 사랑스런 마음으로 부를 때 가끔 쓰는 지칭어이다). 오늘 도서관에서 말입니다. 검색할 일이 있어서 뒤지다가 글쎄 예전 성가대 지휘하던 모모 권사님 동영상을 봤지 않겠습니까? (이럴 때 미녀들의 수다에 나오는 브로닌의 목소리 흉내를 낸다.)
아 글쎄 그 권사님이 엊그제 음악 목사가 되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보니까니, 장충체육관만한 본당에서 예배 찬양 인도를 하고 있지 않겠습니까? 깜짝 놀라서 한참 보았습니다?
헤드폰을 가지고 가지 않아 뭔 말인지 들을 수는 없었지만 가만히 보니 그 교회는 <열나게 찬양>하는 것으로 예배를 시작하는 모양입디다? 시간을 재보니 딱 16분 동안 같은 찬송가 서너 번씩 부르고 또 다른 찬송가 서너 번씩 부르고 또 부르는데 그 모습이 끝내주지 않겠습니까?
나중에 집에서 다시 들으려고 하는데 그 동영상 시간이 무려 한 시간 오십 몇 분인 것을 보면 그 교회는 예배가 그렇게 긴지 긴가민가하기도 하고.(고개를 갸웃거리는 나)
하여튼 제가 남편님께 드리고 싶은 말씀은 우리와 같이 성가대에서 동거동락 할 때, 그 권사님의 모습을 보고 오늘의 잘나가는 모습이 떡 하니 그려지지 않았습니까요? 당근, 그려졌지요?
그 권사님으로 말할 것 같으면, 순수하고 순전한 믿음으로 성가대 지휘를 한 것은 물론, 십년이 넘는 기간 함께 있으면서도 늘 열정적이고, 너무 열정적이다 못해, 기도만 빡세게 하면 다냐, 는 이상스런 욕도 먹어가면서 그렇게 신앙생활을 했던 분 아닙니까?
어느 날 지휘자 권사님 가라사대, 성가대는 성경공부 할 시간이 없으니 우리는 주 중 연습시간에 30분이라도 일찍 와서 공부합시다, 선언했던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는 당장 다음 주 연습하는 날부터 성경공부가 시작되었습니다? 아, 정말 놀라워라, 우리 지휘지 권사님이여~
새카맣고 빨갛게 줄 잔뜩 친 글씨를 백과사전처럼 빼곡하게 적은 당신의 노트를 펼쳐놓고, 겨우 서너 명의 성가대원 앉혀놓고도 땀을 뻘뻘 흘리면서 성경공부 인도한 것을 생각하면 지금도 내 가슴이 아리아리합니다.
당신도 그렇지요? 그 때 성경공부 잘 안 나와서 잘 모르겠다고요? 저는 그때나 지금이나 항상 ‘성실 맨’으로(하하) 지휘자 권사님의 성경공부를 한 번도 빠짐없이 참석했으므로 당신에게 성실하게 증언해 드리는 것입니다. 그 때 글줄이나 쓴다고 하는 내가 그 빽빽한 노트(그렇게 쓰려면 얼마나 많은 수고와 얼마나 많은 시간과 얼마나 많은 생각을 해야 하는지 익히 알기 때문이지요)를 보고 어찌나 감동을 받았던지, 티슈도 없이 눈물 콧물 아무도 모르게 닦느라고 보통 고생한 게 아닙니다?
그 때 나는 감히 생각했지요. 저 지휘자 권사님 분명히 하나님이 더욱 크게 쓰실 것이다!
그랬더니 보소! 몇 년 전 음악목사 안수 받았다는 얘기 들었는데 그 새 저렇게 큰 교회 성도들을 은혜의 도가니로 몰아넣는데 최선을 다하고 있지 않습니까!
이제 오늘 말씀 본론으로 들어갑니다. 잘 듣고 계시지요? (고개 끄덕이는 남편)
언제인가 우리 원로 목사님이 속회 인도자를 교육시키는 데 이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습니다.
“우리가 꼭 미래를 봐야 아느냐?
오늘 하는 것을 보면 미래가 보이지 않느냐?”
이렇게 화두를 던지셔서 대체 뭔 말이신가 하고 맨 앞에 앉은 나는 연필 들고 눈만 깜빡거렸습니다?
이어 하시는 말씀.
“여러분의 자녀가 지금 열심히 공부하면, 시험 치고 한 달 있다가 성적표 꼭 가지고 와야 성적 잘 나왔구나, 하고 아느냐?
여러분의 자녀가 지금 뺀질거리면서(물론 목사님은 이런 단어는 사용하지 않으셨다) 놀고 있으면, 꼭 성적표 가지고 와야 이크, 이 녀석 엉망이구나 하고 아느냐?“
이렇게 말씀하실 때, 내 마음속에 하나님의 은혜가 밀물처럼 밀려왔더랬습니다. 그렇구나!
우리 지휘자 권사님이 당시 열심히 하나님의 뜻을 따라 최선을 다하는 모습 속에는 오늘의 업그레이드 된 모습이 숨어 있다는 말씀입니다.
마찬가지로, 오늘 내가 도서관에서 손가락, 팔목 아픈 것을 꾹 참고 여덟 시간 이상 한 자리에 박혀 앉아 글을 쓰기 위하여 최선을 다했다면, 내일의 모습이 반드시 오늘 속에 있다는 것이지요. 남편님! 이 말을 나의 자랑으로 듣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하지만 더 나아가 최선을 다했는데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아무런 결과물도 주어지지 않는다고 해서 하나님께 대한 감사가 사라질 수는 없지 않습니까? 성경 말씀대로 우리는 피조물이고 창조주 하나님께서 꼴리는 대로(하나님, 죄송합니다. 애정 섞인 표현이라고 생각해 주십시오) 하시겠다는데 우리가 대체 뭐라고 입을 벙긋이나 한답니까?
우리는 피조물이므로 하나님이 무엇을 주신다 해서, 또는 바라던 만큼 주시지 않는다고 해서 불평하거나 속상해할 일이 없고 우리는 그저 아멘, 감사합니다, 하여야 하지 않겠습니까!
결론 말씀드립니다. 남편이여, 잘 들으시옵소서.
올해부터 당신과 내가 새로운 피조물이 되려고 이렇게 아등바등 열라 살고 있는 것을 하나님은 필시 기뻐하실 것입니다. 아마 입이 귀까지 걸리셨을 줄로 짐작합니다.
당신이 성경책 펴놓고 형광펜으로 그어가면서 중얼중얼 성경을 읽을 때, 하나님이 웃음소리를 혹시 듣지는 않으셨는지?
우리는 약한 존재이므로 이 경건의 모습을 언제까지 유지하기 매우 어렵습니다. 하지만, 늘 오늘이라는 시간을 최선을 다하여 살면 오늘 속에 미래가 보인다는 그 말씀처럼 하나님께서는 우리 지휘자 권사님에게 내려주신 은혜를 우리에게도 한 줌 떼어 주시지 않을까 하고 기대하는 것입니다. 아니면 말고요.
그러니까 당신이나 나나 내일까지 갈 것도 없습니다? 우리에게 내일이 있기나 한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렇죠?
나도 아침에 일어나면 날도 밝지 않았는데, 게다 바람 불고 추운 날씨에 무거운 노트북하며 두 보따리 짊어지고 도서관 가는 거 과히 즐겁지 않습니다. 누워서 생각합니다. 오늘 진짜 춥다는데 오늘은 내 서재에서 얌전히 공부하고 내일부터 도서관갈까, 이렇게 갈등 때리는 것이지요. 하지만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서 하나님, 도와주십시오, 나의 게으름, 나의 나태함, 내일, 내일 하는 사탄의 속삭임을 없애 주시고 강건하게 해 주십시오, 하고 기도합니다. 정말입니다.
그렇게 애를 써서 도서관에서 하루를 보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가방 하나도 안 무겁고, 글을 잘 진행했던지 아니던 간에 무조건 감사하고 기쁜 것입니다.
그러니까 아빠야. (다시 코맹맹이 목소리로 돌아왔다)
내일은 잘 모르겠고, 과거는 흘러가 버렸고, 그리고 하나님은 주홍빛 같은 죄도 눈처럼 희게 해주시고, 기억조차 하지 않으신다는데 우리가 과거에 연연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저 오늘만 하나님 뜻에 따라 살려고 애를 쓰면, 머리털도 일일이 세느라 힘드신 하나님이 우리 마음 헤아리지 못하겠습니까? 오늘 속에 미래가 있으니, 여보야, 늘 감사하면서 열심히 삽시다!
기도하시겠습니다.
대강 이렇게 가정 예배 인도를 하면 중간 중간 우리 남편은 열라 웃기도 하고, 심각하게 고개를 끄덕이기도 하고, 아멘, 하기도 하면서 제법 성실하고도 은혜로운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마지막 신년성회가 끝나고 집으로 오면서 나는 기도했다. 정말 간절한 기도였다.
하나님, 제게 바람직한 정리의 시간을 갖게 해 주십쇼!
제가 지금 결정해야 할 것이 몇 개 있습니다. Are You Here Me?
절제에 대한 한계를 정하자, 는 것입니다. 과체중, 체지방 감소를 위하여 매일 저녁 빠르게 걸으면서 한 시간 산책하겠습니다. 괜찮은 생각이지요?
그리고 담배는 최대한 절제하겠습니다. 집에서는 최대한 금연하겠습니다.
술은 한 달에 두어 번 정도면 그냥 봐주실 수 있겠습니까?
아무튼 분명히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결코 술독에 빠지지는 않겠다는 것이지요!
그리고 또 있네요.
중독 증상이 있어서 매일매일 드나들어 시간을 허비하는 글쓰기 카페도 1월은 들어가지 말고, 그 후부터는 삼십 분 이내로 제한하도록 하겠습니다.
올해는 다른 무엇보다 하나님께 집중하는 마음으로 살겠다는 말씀이지요!
(이번 성회 주제도 ‘집중하라!’였지 않습니까!)
나는 하나님과 대충 이렇게 의견을 맞추어 놓았다.
작년의 고민이 거의 해결된 셈이었다.
하지만 음주 흡연에 대한 과도한 죄책감에 대하여 다시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었다.
기호품이고 취미생활인 만큼 건강의 문제로만 생각하면 좋겠다는 것이 진정한 나의 바램이다. 윗분들에게 말할 수 없는 박해를 당한다고 해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겨우 술 담배 자유롭게 하려고 성당을 찾아가는 일도 얼마나 우스운가 말이다.
나는 다시 하나님을 찾았다.
하나님, 나로 하여금 진짜 자유를 누리게 하여 주시기 원합니다.
나는 간절했다. 누림에는 일말의 양심의 가책도 없어야 한다. 누림은 완전해야 하는 것이다.
신년 성회가 끝나고 집으로 들어가기 전, 공원을 찾았다.
10시가 넘은 한밤 중, 어둑한 벤치에 앉아 담배 한 대를 피웠다. 그때의 느낌은. 누려라, 이 시간을, 즐겨라, 이 맛을! 이었다.
위에 계신 분들(목회자나 신심 깊으시기로 소문난 어르신들을 총칭한다)이 불쾌해 한다면 정면으로 나서서 싸울 수도 있겠지만, 그러지 않기로 했다. 그냥 조용히 푸른 초장에 누워 밥상을 받아먹는 시편에서의 누구처럼 그렇게 느긋하게 즐기면서 살기로 마음먹었다. 그렇게 정리하고 나니 한결 담배 맛도 좋고, 마음도 가벼워졌다. 역시 하나님은 해결사이시다!
새해 첫 주일
새해 들어 첫 주일이 되었다.
12월 내내 스커트 차림으로 안내위원을 하다가 바지를 입으니 정말 살 것 같았다. 두툼한 코트를 입고, 칼바람 부는 영하 10도 가까운 온도를 견디면서 교회에 갔다. 남편의 옷도 두툼하게 입혔다.
남편은 한 달간의 안내위원 사역(^^)을 나처럼 힘들어하지는 않았다. 그는 정말 교인들에게 진심어린 사랑으로 주보를 나누어 주고 있었다. 왼손에 장애가 있어서 빨리빨리 주보를 나누어 주지 못하는데도 교인들은 웃으며 기다려주기도 했다.
늙고 병든 남편이 만면에 미소를 띠며 주보를 나누어 주는 모습을 본 교인들은 하나같이 남편을 칭찬했다. 옆에 서 있는 나도 덩달아 칭찬을 받았다.
“너무 보기 좋습니다~ 추운데 수고 많으시네요, 감사합니다.”
인사를 받을 때마다 그렇게도 겸연쩍어지는 마음이 드는 이유를 나도 모르겠다.
모처럼 한가하게 본당 안에 앉아 사십 여분이나 남은 예배 시간을 기다렸다. 주보를 보고, 성경 구절을 찾아 끈으로 표시해놓고, 집에서 준비해 온 헌금봉투-남편은 교회에 와서 뒤적거리면서 헌금봉투에 헌금하는 것을 극도로 싫어한다 -를 내놓았다.
조용히 앉아 묵상하기도 하고 뒷자리에 붙박이로 앉아계신 할머니 권사님들과 인사도 나누었다.
남편과 나는 교회에 일찍 오는 편인데 예배 전의 이 시간을 대단히 좋아한다.
마음도 가라앉히고, 반성(그것을 회개라고 해야 하나)도 하고, 앞으로의 다짐도 하고, 주보의 설교제목을 보고 오늘은 대체 목사님이 무슨 말씀을 하실까, 유추하기도 한다.
단상을 보니 오늘도 역시 태극기와 교회기가 단상 양 옆에 후줄근하게 늘어져있다. 깃대에 꽂아놓았지만 바람 하나 없는 곳이어서 태극기와 교회기가 마음껏 펄럭인 적이 없었고, 늘어진 깃발은 주름치마 말아놓은 것처럼 문양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말려있다.
대체 단상 앞에 왜 태극기와 교회기가 있어야하는지 정말 알 수 없는 일이다. 나는 예전에도 교회 홈페이지에 몇 번 태극기와 교회기가 있어야 하는 이유에 대해 물었지만 아무도 대답해 주지 않았다. 교회에서 제대로 답변해 주지 않는 의문점들은 어디에 질문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단상에 있는 것들은 조그만 것들에도 신경을 써야 할 것이다. 불필요한 것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리는데 걸림돌이 되기 십상이므로.
새해 첫 주일이어서인지, 한국 경제가 불황이어서 정신이 번쩍 들었는지 -사실, 97년 IMF 때에는 갑자기 교인들이 늘어 복도에 접이의자를 놓을 정도였다. 힘들면 교회를 찾는다는 마음은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힘들어서 교회도 못 나오겠다, 힘들어서 술 마신다, 보다는 훨 낫지 않은가!- 예배당은 교인들로 꽉 찼다.
사람들은 좋을 때는 하나님이 잘 생각나지 않다가도 힘들면 아이쿠, 하면서 교회로 직행한다^^ 그러고 보니 내가 존경하는 어느 선생님(실은 장로님)의 가훈이 생각난다.
나는 가훈이라고 해서 한자 성어로 씌어 있거나 성경구절을 하나 인용했으려니, 짐작했는데 너무 예상 밖이었다.
“매 맞고 울지 말고, 맞기 전에 잘하자.”
하하하. 정말 모든 일에 다 통용되는 가훈이었다.
흔히, 교회 다니는 사람들이 하는 말이 있다. 그러다가 매 맞는다. 저 잘난 듯, 맘대로 헤갈하며 다니면 하나님이 맴매하신다는 것이다.
예배 순서에 따라 장로님의 기도가 있었는데 오늘도 예외 없이 ‘특별’이라는 단어가 튀어 나왔다.
“……오늘도 <특별>히 사랑해주시는 우리 교회에, <특별>히 사랑하시는 목사님을 통하여…… <특별>히 이 시간 주님 앞에 나온……”
도대체 하나님에게 누가, 무엇이, 어떤 것이 ‘특별’하다는 말인가?
하나님은 공평하시고, 차별이 없으시다. 하나님은 이명박(내가 왜 이명박 대통령을 거론했느냐 하면 내 개인적으로는 이명박 대통령을 과히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좋아하지 않아도 하나님은 사랑하시니까 상관없겠지!)이나 나나 똑같이 사랑하시고, 우리 교회나 천막교회나 똑같이 사랑하신다.
말 많은 권사님이나 초신자나 전도사나 똑같이 사랑하지 않나?
그런데 왜 ‘특별히’ 우리 교회를 사랑하신다고 하고, ‘특별히’ 우리 교회에 좋은 목사님을 보내주셨다고 하고, ‘특별히’ 교회학교를 사랑하신다고 하고, ‘특별히’ 모모 성도를 사랑하신다고 하고, ‘특별히’ 한국 교회를 사랑하신다고 하는지 나는 정말 모르겠다.
특별하다는 것은 변별성과 다른 차원이다. 누구는 하나님의 사랑을 ‘특별히’ 더 받고, 누구는 하나님의 사랑을 ‘보통으로’ 받는가?
교회 안에서 정말 사라져야 할 단어 중 하나가 바로 ‘특별’이라는 말이다.
광고를 보니 오후 예배는 임원헌신 예배, 오후 예배가 끝나면 곧바로 임원 세미나가 있다고 한다. 임원은 장로, 권사, 집사 등인데 우리 교회는 권사가 200여 명, 집사는 600여 명이다. 그러니까 이들이 모두 오후 예배를 드린다면 3부 예배처럼 예배당이 꽉 찰 것이다.
호호호.
나는 사라처럼 속으로 웃었다. 나는 거의 예배를 참석하는 편이다. 예배에 참석할 수 있는 여건이 비교적 좋은 편이기 때문에 그렇다. 하지만……
점심 식사하러 가니 내가 전도한 친구가 주방에서 열나게 설거지를 하고 있다. 몸이 약한 그 친구가 감당하기에는 벅차 보이는 설거지 양이었다. 힘이 하나도 없어 보이는 가냘픈 몸으로 휘청거리면서 설거지하는 모습이 아름답기보다는 안쓰러워 보였다.
“아이고, 설거지 당번이신 모양이네? 웬만큼 했으면 슬슬 빠져나오시지?”
“응, 그러고 싶은데 사람이 없네.”
나는 친구가 몸살이라도 날까봐 걱정이었다.
나 역시 지난주일 설거지 당번이었는데 매우 곤욕스러웠다. 그 주일은 12월 마지막 주일이었고, 남편 생일이었다. 오후에 우리 집에 열일 곱 명이 모여 식사하기로 되어 있었기 때문에 나는 사실 주일 예배만 드리고 집에 가도 시간이 없을 정도로 바빴다.
하지만 가끔 하나님은 짓궂으시다. 안내위원 하느라 꼭두새벽에 나왔는데 설거지 당버까지 맡겨 주시다니!
게다가 맡고 있는 속회에는 함께 설거지할 분이 거의 없었다. 80대 독거노인 권사님 두 분, 70대 권사님 두 분, 60대 권사님은 집에서 환자 두 분 뒤치다꺼리 하느라 말도 벙긋 할 수 없고, 젊은 집사 한 사람은 교회학교 교사로 눈코 뜰 새 없다.
나는 남편에게 말했다.
“당신은 점심 먹고 조금만 기다리세요. 내가 한 시간 동안만 빡세게 설거지하고 올 테니까. 원래는 두 시간 정도 해야 하지만 그러면 너무 늦고 또 다른 속에서 갹출된 인원이 나중에 와서 도와주겠지.”
그리하여 시뻘건 고무장갑을 찾아 끼고, 정육점 주인 같은 비닐 앞치마를 두르고, 그리고 펑퍼짐한 고무 슬리퍼를 신고, 평소에도 잘 하지 않는 설거지를 시작했다.
아, 그렇게 막무가내로 밀려드는 빈 그릇을 나는 본 적이 없다!
내 딴에는 최선을 다하여 씻고, 또 씻었지만 쌓이는 빈 그릇을 감당 할 수 없을 지경이었다. 나는 교육부에서 정신없이 뛰고 있을 젊은 집사님에게 문자를 했다.
“설거지 당번이라네요.”
성실하고 착하고 너무도 아름답고 믿음 좋은 젊은 집사님은 곧 답 문자를 보내왔다. 필시 교회 학교 일을 하는 중일 텐데 땡땡이 치고 오려는가 보았다.
“네, 갈게요.”
구석에서 살며시 비닐 앞치마를 벗는데 주방 담당 권사님께 딱 걸렸다. 아, 깜짝이야!
“어디 가려구!”
“아, 네~ 마침 오늘 남편 생일인데 집에 손님이 무지하게 와요, 그래서 음식 준비를 해야 하기 때문에(낯색이 변하는 주방 담당 권사님의 눈치를 보면서), 지금, 가야, 하는데요……”
“지금 사람 없는데 어떻게 해! 갈려면 사람 찾아 채우고 가욧!”
“아, 네, 그래야겠지, 그래야죠……”
그 주방 담당 권사님으로 말할 것 같으면, 인심 좋고, 마음 좋고, 음식 맛있게 잘하고, 정말 만점짜리 권사님인데, 그날 나는 진짜 무서웠다.
기회를 봐서 날 살려라, 출행랑을 쳤다. 주방 담당 권사님이 뒷목을 잡아당길 것 같아 뒤도 안돌아보고 교회 마당으로 뛰어가는데 잡힐까봐 오금이 저렸다. 나는 잡히는 것에 대한 공포가 유달리 심해 어릴 때는 술래잡기 한 번 제대로 하지 않았다. 숨어서 술래가 기웃거리는 모습을 훔쳐보면서 가슴이 터질 것같은 두려움에 숨도 제대로 못 쉬던 기억이 있다.
탈출에 성공. 절룩거리는 남편을 무리하게 질질 잡아끌면서 지하철 계단을 내려가서야 비로소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전철에서 젊은 집사 문자를 받았다.
“권사님. 교회 학교 때문에 그만 하려고 했더니 뭐라고 하시네요.”
나는 한숨이 나왔다. 이것이 교회의 현실이었다.
80여 개의 속을 서너 속씩 엮어서 주일 점심 설거지 당번을 시키는데, 대략 일 년에 두 번 정도 돌아왔다. 그런데 설거지 당번이 돌아오면 정말 거의 모두가 힘들어한다. 속도 중에서 나이 많으신 분은 나이 많으시기 때문에 설거지는커녕 점심도 갖다 드려야 하는 판이고, 젊은 사람은 아이가 어리거나, 남편이 불신자거나 해서 오랜 시간 교회에 붙어 있을 수가 없는 형편이고, 제법 튼실한 중년 여인네들은 성가대니, 교회학교니, 각각 교회에서 중추적으로 맡은 일이 태산 같아서 몸을 빼내 설거지 당번으로 투입되기 진짜 힘든 형편인 것이다.
교회 측에서는 말한다.
“매 주일 점심을 먹으면서 일 년에 한두 번 설거지 봉사도 못하나!”
“못한다.”
그것이 나의 생각이다. 정말 하기 힘들다.
나 역시 오랜 교회 짬밥에 따라, 순서대로 돌아오는 설거지 당번을 무수히 맞이하면서, 편집회의 빠져나와 회의 진행도 제대로 못하고, 성가대 빠져 나와 연습 제대로 못하고, 그리고 기다리다 지친 남편에게 지청구 먹느라 집에 가는 길이 한없이 고달픈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교회에서 점심 먹었으면 설거지를 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일에서 좀 벗어나게 해 주었으면 좀 좋은가.
교회 일 때문에 교회 일을 욕먹어야 한다는 것은, 한 사람이 교회에서 너무 여러 가지 일을 맡았기 때문이다.
주일 날 평안한 마음으로 오직 예배만을 생각하면서 오고, 그 예배의 감격을 경험하고, 그 외 잡다한 다른 어떤 것에도 마음을 빼앗기지 않았으면 좋겠다. 교회에서의 일을 단순화할 수는 없는 것일까?
실은 일 년에 한 달씩 주어지는 주방 당번도 마찬가지다. 예배드리러 왔는데 주방에 앉아서 파 다듬고, 김치 썰어야 한다. 그것도 베푸는 일이지만,
나의 경우, 부침개 부치면서 헐떡거리다가 예배에 참석하면 도무지 집중이 되지 않는 것이었다.
예배를 드리면서도 생각은 딴 곳으로 졸졸 잘도 흘러간다.
“내가 빠졌는데 주방 일은 잘 되어 갈까? 아까 김치를 다른 곳에 보관했는데 다른 분들에게 위치를 제대로 얘기 해줬나 헷갈리네, 지금이라도 다시 가서 확인해야 하나?”
그것은 예전 몇 년 동안 출판부 편집위원 일을 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회의는 대개 예배 한 시간 전에 있게 마련이었다. 초스피드로 회의 진행하고 토론하고, 어느 때는 작은 말다툼까지 하면서 한 시간을 보내고 허겁지겁 예배에 참석하면서 나는 계속 회의에 빠졌다. 깨끗하게 비워있어야 할 마음이 편집 회의 내용으로 뒤범벅이 되어 말씀이 순수하게 접수되지 못하는 것이었다.
편집위원 일을 할 때 제일 힘든 점이 바로 그것이었다.
예배 전의 회의를 뒤의 시간으로 미루려고 무진 애를 썼지만 각자의 교회에서 포지션이 다르므로 시간을 맞추기가 너무 어려웠다. 예배에 집중할 수 없게 만드는 회의를 대체 왜 해야 한다는 말인가! 그렇게 해서 만든 출판물은 무슨 은혜가 되겠는가!
나의 경우 뇌 속 용량이 너무 작아서인지 예배 전에 뭔가 일을 하면 그 일이 자꾸 연상이 되어서 정작 예배 시간에는 앉아는 있지만 집중이 되지 않아 건성으로 예배를 드리는 것처럼 느껴졌다.
교회는 일단 기도하러, 예배드리러 와야 하는 곳이 아니런가?
요즘 교회는 너무 일이 많다. 교회에서는 비용을 많이 들여서라도 더욱 많은 사람이 예배에 집중할 수 있게 배려해야 한다.
오후 예배를 기다리면서 일찍 예배당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내가 좋아하는 자리를 차지하려면 일찍 들어가야 한다. 거의 우리 고정석처럼 되어버린 앞자리를 차지했다. 항상 뒤 자리에 포진하고 계신 할머니 권사님들은 언제 식사를 마치셨는지 일찌감치 자리를 잡고 앉아계시다가 눈을 가늘게 뜨고 반겨하신다.
“어여, 와. 착하기두 하지.”
그 분들이 보시기에 쉰이 넘은 내가 어린아이로 보이는 모양인지 잘하면 머리까지 쓰다듬어 주실 듯이 칭찬하신다. 아아, 진짜 아름다운 천사가 바로 할머니 권사님들이다!
아무튼 첫 주일 오후 예배까지는 비교적 은혜로운 시간으로 채워졌다.
새로 임명된 임원의 마음가짐, 각오, 이런 말씀하시는 데 어찌 아멘하지 않을 것이냐!
하지만 그 후부터가 문제였다. 오후 예배가 끝난 시각이 이미 세 시를 훌쩍 넘어섰는데, 목사님의 청천벽력 같은 엄명이 떨어졌다.
잠깐의 브레이크 타임을 가진 후에 임원 세미나를 한다는 것이다.
말이 임원 세미나이지 전교인이 다 참석하라는 단호한 엄명이었다.
나는 새 해 첫 주일이고 하니 될 수 있으면 ‘말씀’에 순종하고 싶었다.
여기에서의 말씀은 담임목사의 말씀을 말하는데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인지는 잘 모르겠다.
가만히 눈치를 살피니 남편은 슬슬 열을 받는 모양이었다. 사실 장애 3급을 자랑하는 남편의 몸 상태와, 참을성에 대해서는 보통 사람보다 훨씬 아래 점수를 받는 것을 감안한다면 열을 받는 시각이 좀 늦추어지기는 했다.
“아니, 오후예배까지 다 드렸는데 또 무슨 세미나를 한다는 거야!”
“그게…… 새해도 되고 했으니 최선을 다한다는 차원에서 순종하면……”
“됐어. 나는 집에 갈라네! 당신이나 은혜 많이 받고 오소!”
남편은 벌써 밖으로 휑하니 나가버렸다. 그러더니 교회 마당에서 소리치는 것이 아닌가.
“나, 이제 이 교회 안 나온다!”
몇 몇 교인들이 남편의 이 선언을 들으셨다. 아아, 이럴 때는 정말 어떻게 해야 하나.
하나님, 해결해 주십쇼!
……
역시 묵묵부답이신 하나님 때문에 가끔 나는 속이 터질 때가 있는데 바로 그 시각이 그러했다.
나는 가방을 둘러메고 뛰어가 저만큼 걸어가는 남편의 팔을 꽉 붙잡았다. 내가 붙잡아야 하는 것은 바로 남편이다, 이렇게 필이 왔기 때문이었다. 하나님, 내 필이 맞기나 한 건가요?
“아니야, 같이 가자. 나도 갈 생각이었어.”
결국 나는 남편을 잘 달래고 어르면서 같이 손잡고 집으로 왔다.
전철 안에서 나는 남편에게 고백했다.
“실은 나도 무지하게 지겨웠어. 너무너무 길어.”
하나님께서 주신 직분 잘 감당하라는 말을 오후 예배에서 설교 시간만 장장 한 시간을 들었는데, 또 무슨 말씀을 더 하시려는지, 온종일 앉아서 듣고 또 들어야 하는 교인들의 마음은 헤아려주지 못하는 목사님이 원망스럽기까지 했다.
효율적인 시간 관리도 필요한 것이 아닌가?
새해 첫 주일 예배가 매우 은혜롭게 시작해서 남편의 볼멘소리로 끝이 났으니 뭐라 결론짓기는 매우 애매하게 지나고 말았다.
중간에 땡땡이를 치고도 집에 오니 5시가 넘어가서 날은 어둑어둑해지고 있었다. 만약 세미나까지 참석했더라면 어쩔 뻔 했나.
하나님, 새해에는 집중하라고 하셔서 열심히 최선을 다하고 싶었지만, 오늘은 좀 과하신 것 아니었습니까?
교회의 존재 의미 중에는 ‘도피성’의 역할도 있다는 말을 어디선가 들었다. 죄를 지었을 때 디립따 그곳으로 도망치면 아무도 접근할 수 없어서 마음 편히 그 안에서 숨어 있었다는 구약 시대의 도피성처럼, 세상에서 힘들고 어렵고 지쳤을 때 누구든지 와서 위로를 얻고 평안과 안식을 누리는 곳이 교회가 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예배의 감격에 빠지면 그 안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을 누릴 수 있을 것이고, 힘을 얻을 수 있을 것이고, 기쁨과 용기가 솟아나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온종일 예배, 또 예배, 그리고 말씀, 이렇게 교회에서 보내면 일단 집으로 와서는 진이 빠져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집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연체동물처럼 몸을 흐느적거리면서 소파에 누워버리는 것이다. 손끝하나도 까딱하고 싶지 않은 주일 오후! 냉장고에 아무리 반찬이 그득해도, 밥통에 밥이 아무리 많아도 부엌에서 서성거리고 싶지 않은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그래서 주일 저녁은 주로 외식하기 십상이다. 도무지 부엌에서 무엇을 만들 엄두가 나지 않는 것이다. 나만 그런지는 모르지만.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는 사자성어를 이럴 때 쓰면 목회자들은 별로 좋아하지 않겠지.
주일 저녁, 친구 부부와 저녁을 먹기로 했다. 친구 부부는 우리 집까지 와서 차가 없는 우리를 픽업해서 근교의 식당으로 데리고 갔다. 그 친구 부부는 우리에게 밥 사주는 것이 취미라고 했다. 교회에서 점심을 먹으면서 친구 부부와 미리 저녁 약속을 해 놓았기 때문에 남편이 기분이 다시 좋아져 있었다.
유명한 오리 구이 집으로 가니 주차장에 차가 꽉 차 있다. 그 집은 늘 만원이어서 또 대기표 받고 기다려야 하나 했는데 다행이 자리가 있어서 편하게 앉았다.
그곳은 오리로스도 맛있지만 찬으로 나오는 취나물과 탕 맛이 끝내주고 게다 값도 저렴하여 사람들이 많이 찾았다.
우리는 신나게 오리를 구웠다. 감자 한 조각 가지고 신경전을 벌이고, 송이버섯 하나씩 공평하게 나누어 먹느라고 어린아이들처럼 우격다짐도 벌어지면서 말이다.
거기에 술이 빠질 수 있나! 남편은 술을 주문할 때부터 이미 술에 취한 듯 기분이 업되어 있는 상태였다.
그럴 때 흔히 하는 말이 있다.
“자, 낮에 주님을 만났으니 밤에도 주(酒)님을 만나야지, 오늘은 주님의 날!”
믿음 좋은 사람이 들으면 기겁을 할지도 모르지만 우리끼리는 가벼운 농담이다.
그렇게 술잔 쳐들고 건배, 하면서 막 흥이 날 때였다. 옆에 앉아있는 남편이 갑자기 어? 하고 눈을 크게 뜨는 것이 아닌가!
“왜?”
“저어기……”
남편의 시선을 따라가 보니 저만큼 떨어져있는 테이블에 우리 교회 권사님 부부가 앉아있다. 마침 그 권사님 부부도 우리 남편과 눈이 마주쳤는지 얼른 우리 테이블로 인사를 하러왔다.
순간, 우리 일행은 우리 테이블을 점검하지 않을 수 없었다. 소주 한 병과 각 사람 앞에 놓인 작은 술잔. 이를 어쩐다? 나는 남편에게 속삭였다.
“여보, 저 테이블에는 술이 있어? 없어?”
“어, 없는 거 같은데?”
“딱 걸렸네?”
친구 부부가 막 웃었다.
“뭐, 어때, 한 잔 하는 건데!”
하여튼 약간 껄끄러운 기분이 드는 것은 사실이었다. 이럴 때는 차라리 목사님을 만나는 게 낫다. 목사님은 우리 때문에 시험 들만한 믿음의 용량이 아닌 것이 확실하니까.
하지만 저 권사님은 하하, 저도 한 잔 하고 싶은데 요즘 한약을 먹어서, 하면서 지혜롭게 넘어가주실 아량 있는 믿음이신지, 아니면 세상이 이런 일이, 하면서 기함을 할 보수 꼴통 믿음이신지 우리가 알 수 없지 않은가.
“아이고, 여기서 뵙게 되네요!”
별로 말을 많이 나누진 않았지만 오후 성가대를 할 때 총무를 맡으셨던 분이라 반갑게 악수하고 인사를 나누었다.
그 분은 교회 근처에서 사는데 이 먼 곳까지(도의 경계를 넘어서) 식사를 하러 온 것이다.
“아이고, 오후까지 교회에서 뵈었는데 여기서 또 만나게 되다니요!”
“그러게 말입니다. 많이 드십시오.”
총무 권사님은 한순간에 우리 테이블의 동향을 파악하고, 우리가 민망해 할까봐서인지 서둘러 다시 자리로 돌아갔다.
우리는 한참 웃었다.
“죄 짓고는 못살아. 설마 여기서 저 권사님을 만날 줄이야!”
아, 제발 이럴 때 편안하게 술 한 잔 할 수 있게 개신교 위엣 분들이 면죄부 좀 발부해 주었으면 좋겠다. 아니면 술의 양을 지시해 주시던지! 예를 들면 포도주는 쉬어가면서 슬슬 한 병, 소주는 반 병, 맥주는 천 씨씨 이렇게 말이다.
얼마 전 속회 인도자 교육 시간에 담임 목사님이 하신 말씀이 생각났다.
예전 어느 교회에서 시무할 때의 일이었는데 어느 날 저녁 심방을 마치고 돌아가던 길이었단다.
포장마차 앞을 지나는데 때마침 포장이 열리며 포장마차를 나오는 그 교회 집사님(약간 얼굴이 불콰한^^)과 딱 정면으로 마주쳤다고.
목사님은 너무 반가워서 집사님! 하고 불렀단다.
“아마 포장마차에서 술을 한 잔 하셨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 집사님은 나를 보자 너무 당황해 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아니, 술 한 잔 한 것이 뭐 어때서요. 나는 그냥 잘 넘어가 줄 준비가 다 되어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그 집사님은 인사도 하는 둥 마는 둥 우물쭈물 가버렸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그 후부터 그 집사님이 교회에 나오지 않더라고 했다. 몇 번이고 설득했지만 잘 받아들여지지 않았는데 결국 그 집사님은 얼마 후에 다른 교회로 나가게 되었다고 한다.
목사님이 말했다.
“아니, 일 끝나고 술 한 잔 하는 것이 뭐 그리 큰 죄라고요. 나는 정말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고 반가운 마음에 집사님! 하고 인사한 것이 그렇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하시는 말씀.
“여러분, 너무 그런 일에 가책 받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서로 좀 더 넓은 마음으로 받아들였으면 좋겠습니다.”
나는 그 말씀에 은혜 받았다. 정말 큰 죄를 짓는 것에는 무감각하고 오히려 떳떳한 반면, 소소한 술 담배의 문제에 있어서 너무 신경 쓰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하는 뜻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모든 것은 절제의 문제이다. 친구 부부와 저녁을 먹으면서, 즐거운 이야기를 나누고 곁들인 반주로 기분이 더욱 좋아지는 것이 뭐 그리 죽을죄일까?
우리들은 새해 표어인 절제하라, 에 맞게 알맞게 술을 마셔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