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글쎄다...한 달 전 쯤일까?)블로그의 이름 밑에 부언한 작은 제목을 바꾸었다.
'대한민국에서 교인으로 살아가기' 에서 '현장에서 붙잡힌 여인이 가로되' 로.
바꾸니까 얼마나 좋던지 내가 만약 무슨 신앙 에세이를 쓴다면 그 책의 제목으로 꼭 써먹어야겠다는 굳은 결심까지 했다.
크게 본다면 우리 모두는 모두 죄의 현장에서 붙잡힌 여인들이다.
현행범으로 평생 살아가야 하는 운명을 도저히 거스를 수는 없을 것이다, 그 누구도.
그것은 한나 아렌트가 말한 죄의 평범성과는 또 다른 의미의 죄의 평범성이다.
누군가 엄중하게 나의 죄의 목록을 나열하면서 나의 목덜미를 잡아끈다면 기꺼이 끌려갈 결심이다.
약간의 조소가 나의 표정에 드러나지 않도록 고개는 숙여야 할 것 같다.
내가 '너도 현장에서 붙잡힌 년이 아니냐'하고 마음속으로 말하는 것을 눈치채지 못하도록.
현재 한국의 교인들의 가장 심각한 문제점은 너의 죄는 바라보는데 나의 죄는 절감하지 못하는 데 있는 것 같다.
죄인이지만 의인으로 살아가는,
의인이라 불러주셨지만 여전히 죄인으로 살아가는 인간의 한계를
예수님이 나를 업고 단번에 뛰어넘은 히말라야 높이의 거대한 허물들을 눈보다 더 희게 해주신다니 놀라워라.
이 아이러니하고도 판타지적이고도 기가 막힌,
인간의 사고로는 헤아릴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 때문에 나는 오늘도 거룩한 하루를 맞이한다.
어쩌면 현장에서 붙잡힌 여인이 가로되, 에서 <가로되>는 영영 발화되지 못할 내심의 언어일지도 모르겠다.
그러거나말거나.
(다시 그러니까) 이곳이 좋은 것이다.
가끔 가슴을 치받치며 올라오는 수많은 <가로되>를 눈치 안보고 마음껏 내보일 수 있으니.
지금은 달달한 아침.
지금 마시는 달달커피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