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부. 1월 넷째 주
네 번째 주일
온유한 사람의 복.
이번 주일 말씀 제목이다.
평생 온유하다는 말을 들어본 적 없이 살아온 나로서는 더욱 진중하게 들어야 할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생각하면서 경청했다.
교회 다니면서 내가 늘 가슴 아프게 생각하는 것 중의 하나는 나의 성정이 교인들의 보편적 성향과 많이 다르다는 것이다. 나의 블로그에 나에 대한 설명을 이렇게 해 놓았다.
퇴폐적이며 감상적이며 비도덕적이며 비이성적이며 비논리적이며 충동적이며 무모하며 파괴적이며 열정적인!
실은 바로 그것이 나의 본 모습이다.
나는 자주 하나님께 반항한다. 하나님, 나를 그러한 모습으로 만들어 주셨으면 그 모습 그대로 받아주실 것이지, 왜 자꾸 정을 쪼아대십니까요! 모난 돌이어서 이렇게도 많은 정을 맞는 내가 불쌍하지도 않단 말씀이십니까!
화끈하고, 속마음을 거울처럼 드러내 보이고, 할 말은 꼭 해야 하며, 두루뭉수리 한 것을 극도로 싫어하며, 따라서 좋은 게 좋은 것이여, 라는 은혜의 말씀은 나에게 통할 리가 없으며, 자의식이 강하고, 다분히 야성적이어서 남에게 길들여지기 싫어하고(대체 왜 길들어야 하는데? 하고 나는 늘 반문한다. 가장 좋은 것은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 아닌가?), 과할 정도로 솔직하여 사람들을 종종 당황하게 만들며(예를 들면, 당신이 좋다, 나는 당신이 싫다, 나는 이러한 당신의 면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하고 상대방의 정면에서 눈 똑바로 뜨고 말한다든지), 다분히 다중적인 인격으로 말미암아 여러 개의 페르소나로 살아가는 나에게 온유하라니요!
나는 목사님이 온유하라고 말씀하신 거의 모든 의미를 이해하고 수긍했다. 하지만 개성을 없애고 모든 사람이 똑같이 온유해야 한다고 말씀하시는 듯해서 마음에 갈등이 생겼다.
나에게도 분명 온유한 면이 존재한다.
남을 배려하려고 최선을 다하고, 상대방을 있는 힘껏 사랑하려고 노력하고, 그리고 진심으로 대하려고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적어도 나는 겉 다르고 속 다른 인간은 아니다. 형편에 따라 사람을 욕하기도 하고 앞에서는 칭찬하는 사람은 아니라는 말이다.
설교 시간 내내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하나님이 나에게 요구하시는 것이 과연 온유함이란 말인가. 내가 죽고 내 안의 예수님이 산다는 말이 나의 개체성이 완전히 죽어 없어지고 예수님의 성향만 존재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인가?
설마……온유함으로 평준화된 인간을 만드시려는 것은 아니겠지.
나는 일단 집으로 돌아가 목사님의 설교를 인터넷으로 다시 듣고 생각하기로 했다. 죄에서 해방된 자유의 느낌 보다는 묵직하게 가라앉는 여러 생각으로 예배 시간이 여느 때처럼 즐겁지는 않았다.
대중기도
하지만 예배 시간, 대중기도를 맡은 어느 장로님의 기도는 정말 감동의 도가니였다.
마치 내가 기도드리는 듯 했다.
기도문 한 마디 한 마디마다 저절로 아멘이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울려 나왔다. 그렇게 깊은 감동은 근래에 드문 일이었다.
예배 시간의 장로님들 기도는 거의 천편일률적이었다. 누가 해도 대동소이하고 진부한 그런 기도를 매 주일마다 들어야 하는 하나님이 너무 지겹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게다 너무너무 길었다. 분명 목사님은 직분자 교육시간에 대중 기도는 2분을 넘지 말라고 가르쳤는데 말이다.
목사님 말씀 제일 안 듣는 사람이 바로 장로님들 같다.
나도 처음으로 주일 예배 때 단상에서 대중기도를 했던 기억이 있다. 오전 7시 반에 드리는 1부 예배 기도는 보통 권사들이 순서를 맡는데 하도 교회에 권사가 많다보니 권사 된지 3년이 넘어서야 차례가 온 것이었다.
정성껏 기도문 작성을 하고 몇 번 읽어보면서 시간을 재보았다. 실은 정말 내 마음대로 기도문을 작성하고 싶었지만 감사, 고백, 회개, 등의 순서를 배운 터라(정말 기도문에는 그런 것들을 넣어야 하는지에 대하여 나는 어느 정도의 반항하고 있다. 하지만 대중 앞에서 하나님께 대중의 대표성 있는 기도를 드려야 한다는 것에 동의하기에 어쩔 수 없이 기본 배열을 할 수밖에 없었다) 필요한 것들을 넣고 보니 정말 2분은 너무 짧았다. 아무리 줄이고 줄여도 2분 30초는 걸리는 것이었다. 나의 개인적인 간구이기 이전에 그곳에 모여 예배드리는 모든 사람의 간구를 대표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몇 십 년 교회 다니면서 나는 장로님들의 대표기도에 정말 실망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너무도 주관적인 기도문(믿는 사람을 대통령으로 뽑게 해 주시옵소서, 촛불 집회에 좌익분자들이 설치고 있으니 하나님이 그들을 완전 망하게 해주시옵소서, 911 테러를 자행한 이교도들을 처단시켜 주시옵소서, 하다못해 종토세, 종부세가 너무 많이 나오니 부당한 세법을 올바로 잡아주시옵소서 등등) 을 줄줄 읽으면 마음에 시험이 들어 아멘은커녕 내가 하나님께 같이 기도드린다는 것까지 잊어버리면서 분란이 나는 것이었다.
정말 장로님들은 대표기도를 조심해서 해야 할 것 같다.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가 아니라 대중 들으라고 하는 기도가 아닌가 싶을 때도 한 두 번이 아니니 말이다.
하여튼 2분 30초 안에 기도를 끝냈는데, 길고 긴 기도에 길들여진 교인들의 반응은 ‘너무 짧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2분 30초 안에 대중기도를 끝내라고 교육시킨 목회자들 할 말이 있다.
어차피 장로님들이 4분 5분 어느 분은 7분 이상 기도를 할 바에는 현실성 있게 3분 정도에 끝내라고 하면 좋지 않을까.
아니면 예수님처럼 우리에게 좋은 대중기도의 표본을 가르쳐 주시던가 말이다.
주일은 너무 바쁘다!
교회에서 점심을 먹는데 문자가 왔다.
긴급 편집회의를 소집하니 오후 예배 후 모이시오.
이럴 때 나는 대략난감이다. 몸이 아픈 남편을 끌고 왔는데 그럼 우리 남편을 어떻게 한단 말인가. 혼자 집으로 가기는 힘든 남편을 구석에 앉혀 놓고 그 긴 시간동안 회의를 진행하면 남편은 지쳐버릴 게 분명하다.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회의가 있을 때는 동네 교회에 간다고 했는데 왜 이 먼 곳까지 끌고 왔느냐구!”
게다 친구들끼리 약속이 되어 있었다.
암이 재발되어 곧 수술하게 된 친구 병문안을 가기로 했던 것이다. 수술날짜가 임박했고, 시간을 낼 수 없는데 마침 교회에 온 김에 모두 모여 같이 병원을 가기로 했다. 병원은 또 좀 먼가. 사실 남편을 끌고(죄송하다 매일 끌고 다닌다는 말을 해서. 하지만 그것은 사실이다. 대체로 교회에서는 아내 되는 교인들이 남편들을 끌고 다니는 경향이 강하다.) 병원까지 동행하는 것도 무리가 있다.
같은 교인인 친구 병문안하는 것도 주님의 일이요, 회의하는 것도 주님의 일이요, 병든 남편을 꼭 붙잡고 집에 가는 것도 주님의 일인데 이렇게 겹치면 정신이 혼란해진다. 도무지 정리가 안 되는 것이다.
회의는 참석하지 않지만 병문안은 가야겠다는 말에 남편이 안색이 살짝 변했다.
“그럼 나는 어떡하라구!”
어떻게 해야 할지는 나도 모르는 상황.
마침 그 때 같은 지역에 사는 권사님이 다가왔다.
“집에 언제 가실라우?”
“아, 예. 저는 친구 병문안을 가야하는데 우리 권사님만 이제 집에 가려구요.”
“마침 잘 되었네. 우리도 지금 집에 가려는데 같이 갑시다.”
그 권사님은 종종 우리를 자신의 차로 집까지 데려다 준 적이 있는 분이었다.
나는 너무 기뻐서 하나님께 기도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급할 때 항상 좋은 길로 인도해 주시고, 해결해주시는 하나님, 오늘도 진짜 감사 만땅이옵니다.
해서, 마음 편하게 친구들과 저 먼 곳 일산 암센터까지 병문안을 갈 수 있었다.
병실에서 친구를 만났다.
친구의 얼굴을 보자, 같이 동행한 친구들은 말을 잃었다. 사실 평생 마음고생을 많이 한 친구였다. 교회에서 만난 친구는 고등학교 시절부터 붙어 다녔다. 우리는 그녀의 거의 모든 사정을 다 알고 있었다. 유난히 힘들고 어려웠던 어린 시절에서부터 현재의 고난까지.
이럴 때 나는 하나님께 부르짖는다. 하나님은 어느 때 보면 정말 불공평하신 것 같습니다! 그 긴 인생동안 행복하지 못한 삶을 꾸려온 친구에게 왜 이렇게 엄청난 고난을 주신단 말입니까!
찬송가가 은은히 울려 퍼지는 병실에서 우리는 한동안 묵묵히 찬송가를 들었다.
“나 어느 곳에 있던지 늘 맘이 편하다……”
그 찬송가 가사는 친구의 바람이기도 할 것이다. 우리도 모두 아멘 하는 심정으로 찬송가를 들을 수밖에.
수술을 앞두고 금식하면서 장세척을 하기 위하여 링거병을 주렁주렁 달고 화장실을 들락거리는 친구. 친구 말에 의하면 그 힘든 수술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했다.
“그냥 몇 시간 죽었다가 깨어나면 되는 거니까. 그런데.”
친구가 한숨을 쉬었다.
“그 후에 있을 항암치료를 생각하면 정말 무서워져.”
친구를 병실에 두고 혼자 예배를 드리러 온 친구 남편이 차안에서 우리에게 한 말이 있었다. 친구는 교회 커플이어서 친구 남편과도 우리는 반말을 하면서 친하게 지냈다.
“정말 눈을 뜨고 볼 수 없어.”
우리는 숨을 죽이고 그의 말을 들었다.
“항암치료를 받고 혼자 고통당하는 모습을 보면 정말 남편으로서 아무것도 해 줄 수 없다는 것이 그렇게도 무기력하게 느껴질 수가 없어. 정말 지옥이 따로 없는 거 같아. 온 몸의 살갗을 바늘로 찌르는 듯한 통증이래. (얼마 전 손톱 밑을 찔려서 며칠 동안 고통 받은 기억이 떠오른 나는 온 몸에 소름이 끼친다. 단 한 군데 바늘로 찔려도 그토록 고통스러운데 온 몸이 바늘에 찔린 것 같은 고통이라니!)그 통증이 하루 24시간 일주일 넘게 지속된다고 생각해봐. 혼자 방을 이리 뒹굴고 저리 뒹굴면서 통증과 싸우는 모습을 보면, 어느 땐 나도 모르게 이렇게 기도하는 거야. 하나님, 차라리 그냥 데려가세요.”
병문안하고 돌아오는 길은 한없이 우울했다. 결국 친구 부부를 불러 같이 저녁을 먹으면서 술 한 잔. 결코 술이 위로가 되지는 않았지만 잠시라도 힘든 친구를 잊고 싶은 마음이었다.
교회 홈피에 들어가 주일 설교문을 출력했다. <온유한 자의 복>
형광펜을 들고 경건한 마음으로 다시 읽었다.
설교를 분석한다는 것은 아니다, 읽으면서 보니 전개에 무리가 많았지만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그것이 아니다.
나는 성경에 나오는 예수님의 산상수훈을 읽을 때마다 그런 생각을 해 왔다. 이것은 그렇게 하라는 요구가 아니라 선언이다!
이런 사람은 복이 있으니까 가난한 사람이 되고, 온유한 사람이 되고, 애통하는 사람이 되고,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가 되어라, 가 아니라 그 앞에 모인, 당시에 고통 받는 민중들(당연히 그들은 가난하고, 애통하고, 아무것도 내세울 것이 없으므로 온유할 수밖에 없고, 핍박받고 괄시 받는 계층들이기에 의에 주리고 목마를 수밖에 없는) 앞에서 “바로 너희들이 복 있는 사람들이다!”이렇게 인지시켜 주신 것이다.
“바로 여러분들이 복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기뻐하고 즐거워하십시오. 하늘에서 받을 상이 큽니다.”
예수님의 이런 강력한 선언은 당시 모인 많은 사람들에게 큰 기쁨을 주었음에 틀림없다.
지금은 비록 고난당하지만 미래의 소망을 예시한 선언을 듣고 얼마나 기뻤을까나! 그들은 즐거운 마음으로 돌아갔을 것이다. 이런 면에서 예수님은 삶의 현장 속에 계신, 생생하게 살아있는 예수님이다.
이미 가난한 상태인 자, 현재 애통하고 있는 자들에게 이제껏 생각해 왔던 구약 시대의 복의 개념을 완전히 전복시키는 선언을 하신 예수님은 얼마나 멋진가!
설교자들은 팔복에 대하여 설교할 때 꼭 마태복음을 인용하지 마가복음은 잘 인용하지 않으려 한다.
마태복음에는 ‘가난한 자’ 앞에 ‘마음’을 갖다 붙였기 때문에 편한 것이겠지.
누가 복음에서는 그냥 ‘가난한 자’라고 명시되어 있다.
너희 가난한 사람들은 복이 있다.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의 것이다.
너희 지금 굶주리는 사람들은 복이 있다.
너희가 배부르게 될 것이다.
너희 지금 슬피 우는 사람들은 복이 있다.
너희가 웃게 될 것이다.
나는 특히 너희, 라는 단어와 지금, 이라는 단어에 주목하고 있다. 단호하게 현재 상태를 말씀하시는 예수님은 정말 멋지다.
나는 가난하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나라가 나의 것이다!
정말 신나지 않은가^^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 이렇게 설교하면 참으로 곤란한 일이 많기 때문이겠지.
나는 당시 상황에 맞추어 이리저리 각색한 2000년 전의 마태가 싫다!
예수님의 행적으로 미루어 볼 때, 예수님은 분명히 그냥 ‘가난한 자’라고 말씀하셨을 것이다.
주일 설교 말씀처럼 온유한 자가 되어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받는 것도 정말 중요한 일이다. 내 삶에 적용을 시킨다면 그렇게 되어야 하리라고 생각한다. 나를 예수님에게로 길들인다는 말은 정말 좋은 말씀이었다.
엊그제 한국의 어느 교회에 모여 예배드린 우리도 당시 모인 5천명의 군중들처럼 목사님의 말씀, 멋진 선언을 듣고 기뻐하고 즐거워하면서 집으로 돌아갔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목회자들은 단상위에 서서 단상 아래 교인들을 ‘교육’시키려 한다. 이렇게 하시오, 저렇게 하시오, 그렇게 하면 안 되오, 그렇게 하면 복을 못 받으오, 이렇게 하면 하나님이 기뻐할 것이요 등등. 그야말로 ‘설교’하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나는 ‘설교’ 라는 단어를 좋아하지 않는다.
나는 성경에 나오는 예수님의 ‘설교’로서 모든 설교는 완성되었다고 생각한다. 목회자들은 예수님의 설교를 가장 정확하게 전달하면 되지 않을까? 어느 때는 목회자들의 ‘내가복음’을 듣고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질 때도 없지 않다.
본말이 전도되고, 예수님의 말씀을 목회자 당신의 생각과 짬뽕을 시켜서, 너무 각색을 해버린 것이다.
기억나는 이야기 한 토막.
언제인가 목사님께서 수요예배 시간에 말씀하신 적이 있다.
가끔 교인들은 목사를 무당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누구누구가 아프니 와 주세요, 그런데 될 수 있으면 담임 목사님이 와 주시면 좋겠어요.”
이렇게 특별 주문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큰 무당이 와서 기도해 주는 것이 새끼 무당이 와서 기도해 주는 것보다 더 좋다는 것과 무엇이 다르냐는 것이다.
나는 종종 그 말씀이 생각난다. 내가 혹시 목사님을 무당으로 생각하는 것은 아닌가, 하고 나를 돌아볼 때가 많다.
내 생각을 말한다면 믿음에도 여러 종류가 있다고 본다.
말씀만 하셔도 나을 줄 믿습니다, 하는 백부장의 믿음은 예수님께 칭찬을 받았다.
믿음은 어떤 존재가 어느 곳으로 꼭 가서 현실적으로 보여져야 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보지 않고도 믿는 자가 복되다고 예수님도 말씀하셨지 않나!
아플 때 심방을 가면 환자에게 매우 위로가 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환자나 보호자의 믿음이 단단하여 예수님이 온전하게 마음속에 있으면 그것으로 ‘모든 것을 가진 자’가 되는 것은 아닐까.
예수님 말씀 전하는 게 직업인 목회자가 심방 가는 것이 뭐 그리 중요한 일일까.
개업심방이나 집들이 심방에 동행하곤 하면서도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하다못해 차를 샀는데도 (차에)안수기도를 해달라는 사람까지 있었다. 이것은 엄밀하게 말한다면 샤머니즘 적인 한국 토착신앙과 기독교가 믹스된 상황일 것이다.
아들의 기도문
교회 홈피에 들어간 김에 게시판에 아들의 기도문을 올렸다.
엊그제 책상 정리를 하다 발견한 기도문은 이십년도 훨씬 전, 아들이 초등학교 저학년 때 쓴 것으로 보였다.
당시 우리 가족은 착실하게 가정예배를 드렸다. 해마다 연말이 되면 365일 날짜별로 가정예배를 드릴 수 있는 책을 교회에서 구입해서 날마다 저녁이면 한 자리에 모여 성실하게 가정예배를 드리곤 했다. 지금 생각해도 그 시간은 바로 천국이었다.
사도신경으로 시작하고 찬송가 한 장 부르고, 그리고 주어진 성경 구절 읽고 말씀은 주로 내가 읽었는데 그 다음의 기도는 남편과 아들 그리고 날마다 돌아가면서 했다. 그렇게 기도드린 후 주기도문으로 끝나는 아주 간략한 가정예배였다.
아들은 자신의 기도순서가 돌아오는 날이면 책상에 앉아 반드시 기도문을 썼다. 그 때의 기도문이 오래 된 책갈피에서 발견된 것이다.
들쑥날쑥한 글씨체, 서툴기 짝이 없고, 맞춤법이 틀려 새카맣게 지운 부분도 있고, 덧입힌 글도 있지만 그래서 더욱 정감이 가는 기도문이었다.
요즘 홈피에서는 비판적인 글이 많이 오른다고 교회 어르신 쪽에서 걱정하는 눈치여서(나도 비판적인 느낌이 드는 글을 몇 개 올리는 데 동참했지만) 이번에는 마음이 따뜻해지는 아들의 기도문을 올리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게시판은 말 그대로 자유게시판이므로 비판적인 글이나 마음이 따뜻한 글이나 무슨 글이든 자유롭게 올릴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아들의 기도문을 폰카로 찍어서 기도문에 덧붙여 올렸다. 서툴게 쓴 기도문이 더 감동스러웠기 때문이다.
지금 읽어도 그 기도문은 상당히 격이 높다, 고 생각한다. 그야말로 자비로운 하나님의 성품을 그대로 인정하는 기도문이었던 것이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드립니다.
오늘 하루 아버지는 회사에서 어머니는 집에서(당시 무척 어렸던 아들은 늘 엄마, 아빠라고 불렀는데 기도할 때는 깍듯하게 호칭하니까 너무 웃겨서 눈감고 고개 숙인 남편과 나는 웃음이 터지는 것을 참느라 얼마나 고생했는지 모른다) 저는 학교에서 사고 없이 보내게 하심을 하나님의 뜻으로 알고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아주 자비로우신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믿지 않은 사람도 사랑으로 보살펴 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자비로우신 마음으로 교회나 성당 그리고 안 믿는 사람도 하나님께서 사랑으로 보살펴 주세요.
그리고 하나님은 저희들의 미래를 훤히 알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저희들의 좋은 미래를 만들어 주세요.
어느 때 보면 어린 아이들의 믿음이 교회에서 내노라 하는 열성신자의 믿음보다 더 순수하고 아름다운 것 같다. 그 짧은 기도문에서도 온 세상을 다 사랑하시는, 악인에게나 의인에게나 똑같은 햇빛과 비를 내려주신다는 하나님의 온 우주적인 사랑의 너비를 어린 아들은 진심으로 깨닫고 있었다. 누가복음에는 ‘하나님은 은혜를 모르는 사람들과 악한 사람들에게도 인자하시다’고 또렷하게 명시되어 있지 않은가!
우리들의 미래를 훤히~ 알고 계신다는 그 확실한 믿음은 아무나 가질 수 없지 않은가 말이다. 우리들에게 좋은 미래를 만들어 달라는 하나님께 대한 전폭적인 신뢰도 정말 귀할 따름이다. 내 아들의 기도문이어서가 아니라 어린 아이들은 정말 폭넓은 신앙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지금은 비록 아들이 교회에 다니지 않지만 나는 아들의 믿음을 믿고 있다. 마음 속 깊은 곳에서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이 무엇인지 분별하는 능력이 분명 내재되어 있을 것이다.
아들은 성당에서 운영하는 유치원을 다녀서 친구들 중 성당에 다니는 친구나, 안 믿는 친구들도 많은 모양이었다. 아들은 그 친구들을 생각해서 이런 기도를 간절히 올렸던 것 같다.
아침부터 내리 문자, 전화가 쇄도한다. 병원에 있는 친구 수술 날이기 때문이다.
수술이 시작되었다는 연락이 왔으니 다 합심해서 기도하자!!
또래 모임의 연락병으로부터 문자였다. 멀리 떨어져 있는 친구들로부터도 전화가 빗발쳤다.
전화를 받을 때마다 그 긴 사연을 차분하게 설명해 주려니 내 가슴이 쓰렸다. 통화 내용은 비슷했다. 나의, 친구에 대한 그간의 경과 보고, 전화 한 친구의 한숨소리, 걱정 한 삼태기! 그리고 함께 문병 갈 계획, 시간 짜기, 그리고 맨 나중에 하는 말.
“우리 열심히 기도하자!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기도밖에 뭐가 있겠니!”
지금 수술하는 친구에게 필요한 것은 정말 아무것도 없다. 간절한 기도 외에는.
아무것도 함께 해줄 수는 없지만, 기도는 할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했다.
오후 늦게 다시 연락병의 문자를 받았다.
수술 양호. 현재 수술 후 정리 중. 주님께 감사^^*
술과 친구는 오래 될수록 좋다고 하던데 그 말은 사실인 것 같다. 삼십 여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우정, 특히 믿는 자들과의 우정은 이럴 때 더 빛이 난다. 친구들은 각자의 스케줄에 따라 문병을 갈 시간을 정했다. 사랑 가득한 문병이 고통 중에 신음하는 친구의 마음을 녹여주고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다.
마음을 잡고 성경쓰기를 하고 싶은데 노트북에 이상이 생겨 인터넷이 자꾸 끊어지기 때문에 인터넷 필사 성경을 못하는 게 한이었다. 아침부터 마음이 붕 뜬 것 같이 갈피를 잡을 수 없었는데 이럴 때 성경 말씀을 쓰면 얼마나 좋을까!
도서관으로 친구가 찾아왔다. 나의 믿음의 동역자인 바로 그 친구다. 뒤늦게 사이버 대학에서 장학금까지 받으면서 열심히 공부 중인 사랑하는 친구와 같이 점심을 먹었다.
“맛있는 것 사줄게 말만 해.”
도서관 지하 식당은 아주 깔끔하고 맛있고 값이 저렴하다. 나는 메뉴를 골랐다. 비싸봤자 삼, 사천 원이면 거하게 먹을 수 있는 천국 같은 곳이다.
어제 밤 술 한 잔 하고 점심이 지나도록 해장을 못한 나는 시원한 우동국물로 속을 달랬다.
“해장술이라도 한 잔 해야 하는 거 아냐?”
친구가 놀린다.
친구는 가난한 나를 위하여 늘 지갑을 열고 산다. 점심 사주고, 책도 사주고, 그리고 사우나 가면 사우나 비용까지 책임지는 것은 물론이고 나는 늘 달랑달랑 맨 몸으로 가고 친구는 샴푸에서부터 모든 준비물을 잘 싸가지고 온다. 그래서 친구의 별명은 ‘엄마’다. 아낌없이 베풀고 주는 우리 엄마, 고마워요~
언제인가 문학상을 받을 때는 시상식에 입고 가라고 코트까지 선물해 주었다.
세상에 이런 친구가 있나!
친구가 선물해 준 책 ‘잃어버린 예수’와 같이 읽은 책 ‘예수 없는 예수 교회’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누는데 정말 즐거웠다. 친구는 자신이 다니는 교회에 대하여, 엊그제 주일 설교 말씀에 대하여 나에게 다시 말씀을 되새겨주었고, 나는 그동안 읽은 성경 구절에 은혜 받은 이야기, 내가 다니는 교회의 설교(온유한 자의 복^^), 인터넷으로 읽은 교계 상황에 대하여 주고받기를 한 시간 여. 이어 친구의 친구가 당한 뜻밖의 고난과 나의 친구가 당한 질병의 고난을 나누면서 하나님의 뜻을 바르게 알려고 눈을 반짝거렸다.
결론은 오강남 교수의 책 ‘기도’에서 알려준 기도밖에 할 수 없다는 것에 동감했다.
주 예수 그리스도여, 우리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사실 그 기도문을 알게 된 후, 가슴이 먹먹해질 때면 한 줄짜리 그 기도를 되뇌이곤 했다. 어린 아들의 기도문에서처럼 하나님은 자비로우신 분이신 것을 우리가 알고 있으므로, 사랑으로 보살펴 주시리라는 것을 마음으로 깨닫는 것.
하나님이 우리의 미래를 훤히 알고 계시므로 아무쪼록 우리에게 좋은 미래를 만들어 달라는 것. (갑자기 어린 아들이 존경스러워진다^^)
우울이라는 달콤한 병
사람에게는 리듬이라는 것이 있나 보다. 저녁 무렵부터 기분이 디플레스 되기 시작했다. 하긴 작년 내내 그런 상황이 벌어졌었다. 이른바 갱년기 우울증이랄까. 무겁게 느껴지는 육신을 잘 추스르고 산책길에 나섰다. 새해 들어 하루도 빠짐없이 산책을 하는데 그 시간은 나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귀한 시간이다. 처음에는 그렇게 길던 한 바퀴 길이 요즘 들어서는 가뿐하게 돌게 되는 것은 그만큼 몸이 건강해졌다는 신호겠지.
얼마 전 병원에 가서 고혈압 처방을 받는데 의사가 반색을 했다. 혈압이 많이 내려갔다는 것이다. 그것은 음식의 절제와 매일 걷기운동의 좋은 결과일 것이다. 한 이 년 전부터 고혈압 약을 정기적으로 처방해서 먹는데 나의 병명은 ‘비만으로 인한 고혈압’이었다. 게다 부모님의 약력도 가지고 있으니 웬만해서는 낫지 않을 지병을 가지게 된 셈이지만 음식 조절하고 체중을 줄이면 많이 나아질 거라고 했는데 그 말이 맞았다.
홀로 걷는 한 시간의 산책길에서 나는 어떤 필에 이끌려 집에 오자마자 블로그에 글을 써서 올렸다.
오늘의 요리
나는 영하 20도, 그대는 36. 5도
그대를 위해 나는 계속 언 상태로 있을 것이다
에이프런을 두른 그대를 바라보며
나의 심장을 얼리고 나의 시간을 얼리고
그대와 함께 한 모든 기억들을 얼릴 것이다
이제 곧 정부와의 식사를 위하여 그대는
단단하게 언 내 슬픔 하나 들어낼 것이다
그대는 내 몸을 열 것이다
따뜻한 손을 내 몸에 넣고
시든 가슴을 주무르고 오래된 상처를 관찰할 것이다
나는 그대의 손에 안겨 울 것이다
녹아져 내릴 것이다
잘라지고 삶아지고 튀겨져서
그대 몸속으로 들어갈 것이다
나는 그대가 될 것이다
자, 이제 나를 먹어요
선물
당신이 나에게 양피 장갑을 선물한 이유를 나는 알아요 온순한 양의 껍질로 당신과 나를 갈라놓으려는 거죠 내가 더 이상 당신을 만질 수 없도록 피를 발라놓은 것이지요 유월절, 피묻은 문설주를 넘어가는 유대인처럼 나의 죄를 묻고 나의 죄를 속죄시킨 것이지요 오늘도 나는 피 칠갑을 한 장갑을 끼고 밤길을 걸어요 동굴 같은 밤을 걷고 또 걸어요 아무리 걸어도 아침은 오지 않아요 그대가 가두어버린 나의 손에서는 늘 비린내가 나요 나는 그렇게 갇혀버렸어요 단추하나 제대로 풀 수 없으니 이제 당신을 위해 옷을 벗을 수도 없겠지요 차가운 뺨을 양의 목덜미로 감싸고 비린내 나는 밤을 걸어가요 대체 속죄양은 왜 죽였나요 내가 당신을 위해 죽으면 안되었나요 이제 나의 손가락은 양의 울음에 갇혀 담배 한 대 마음껏 피우지도 못해요 내 사랑에, 내 손에, 내 살에, 내 샅에 양의 껍질을 씌워놓고 당신은 어디로 갔을까요? 더 이상 당신을 만질 수 없게 된 손끝에서 양의 피가 흘러내려요 양의 허벅지로 내 두 눈을 가려요 거세된 양의 다리에 고이는 비린내 나는 눈물
작년 가을부터 나는 짧은 글을 쓰기 시작했다. 시(詩)가 되기 전, 씨앗의 단계라고나 할까. 감성이 그렇게 치솟을 때는 하루에도 몇 편씩 글이 이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올해 산문을 쓰기 시작하면서, 그리고 예전처럼 술도 마시지 않게 되면서 감성적인 면이 많이 사라졌나 했는데 마음이 가라앉으면 내면의 어떤 것들이 숨어있다 튀어나오는 모양이었다. 내가 쓰는 짧은 글은 거의 모두 연서(戀書)이다. 누구에게인가 보내는 연애편지라고나 할까?
그것들을 쓸 때, 나는 온 몸의 촉수가 곤두서는 느낌을 받는다. 처절하리만큼 외로워지고, 그리고 마음이 뻥 뚫린 것처럼 아득해진다. 작년 몇 달 동안 나는 그 우울을 누렸다. 그럴 때는 소설책이나 인문학 책 보다는 시집을 읽는 것이 정서에 이로웠다.
짧은 글을 올린 김에 누군가 선물해 준 이성복 시인의 ‘남해금산’을 뒤적였다. 아, 저 빛나는 감수성이라니! 시인들은 정말 보통사람들보다 몇 배는 더한 감성을 지니고 사는 사람들인 것 같다. 아이고, 그런 감성으로 세상을 살려면 얼마나 힘들까나……
마침 남편과 둘이서 드리는 가정예배 책의 오늘 날짜에도 오늘의 감성과 걸맞는 글이 씌어 있었다.
메멘토 모리, 죽음을 기억하라.
남편과 나는 힘들게 수술을 마친 친구의 이야기와 그리고 죽음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누었다. 친구로 말한다면 죽음을 구태여 기억하려고 애쓰지 않아도 너무 가까이 와 있는 것이다. 나의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이 내 몸속에서 자라는 나쁜 종양들을 어찌하면 좋을 것인가.
나는 젊었을 때부터 죽음에 대하여 많이 생각해 왔다. 무슨 헛소리인지는 모르지만 스물여덟 살까지만 살겠다고 친구들에게 선언한 적도 있었다. 반항적인 기질이 다분한 나로서는 세상이 너무 불합리해 보였고, 그리고 인간의 다중적이고도 추악한 내면(물론 나를 포함해서)을 들여다보면 볼수록 삶은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아 보였다. 친구들은 그러한 나를 보고 늘 놀렸다.
“쟤는 평생 사춘기라니까.”
그럴지도 모른다. 나는 늘 회의했고, 늘 고민에 빠져 살았다. 이것은 왜 이렇게 되어야만 하는 것인지, 저것은 왜 저런 법칙으로만 운영되는 것인지, 사람들은 왜 저런 생각으로 밤잠을 설쳐야하는지에 대하여 고민하느라 나는 늘 우울한 얼굴이었다.
아,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 그리고 삶.
게다 나에게도 여러 고비가 있었다.
나에게 죽음은 늘 가까이 있다. 무슨 힘든 일이 생겼을 때 내 자신에게 반문하는 것이 있다.
“그렇다고 죽는 것은 아니잖아! 돈이 없다고, 좀 아프다고, 화가 난다고, 실망했다고, 싸웠다고, 괴롭다고 죽는 것은 아니잖아!”
살아가면서 모든 상황을 죽음과 대비시켜 보면 너무나 하찮은 일에 불과했으므로 나는 굳건하게 모든 것을 이겨낼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침묵의 수도원으로 유명한 트라피스트 수도원에는 단 한 마디 말만 허용된다고 한다.
“메멘토 모리, 죽음을 기억하십시오.”
어떻게 보면 우울증은 감미로운 면도 있다. 우울증은 감성을 극대화시키기도 한다.
내게 오는 것을 자연스레 흘려보낼 것.
밤늦도록 나는 우울을 즐겼다.
삶의 쉼표
아침, 나는 눈을 뜨자마자 내가 아픈 것을 깨달았다. 목이 심하게 부어 침을 삼킬 때마다 아프고, 잇몸이 흔들리는데다 머리까지 무거웠다. 뿐인가, 배탈기가 있는지 배도 살살 아파왔다.
거울을 보니 술도 안 마셨는데 왼쪽 눈에 핏줄이 터져 시뻘겋다.
몸살이 왔구나, 하고 나는 짐작했다.
새해 들어 매일 도서관에 출근하여 작업하느라 힘이 들었나보다.
일단 집에 있는 모든 감기약을 다 꺼냈다. 발열 두통에 먹는 감기약 캡슐, 아스피린, 쌍화차를 한 입에 털어 넣었다. 몸이 휘청거릴 정도로 힘들었지만 이를 악물고 가방을 쌌다.
남편은 집에서 좀 쉬라고 펄펄 뛰는데 내가 말했다.
“몸살 좀 났다고 회사 안 가는 사람 봤어?”
안약을 넣고, 매일 들고 가던 일회용 커피 대신 일회용 생강차를 챙기고 호올스 캔디로 연신 목구멍을 진정시키면서 도서관으로 향했다.
“오전에만 좀 앉아 있다가 올 게. 봐서 오후에 병원에 가야하니까.”
아뿔싸! 빈속에 감기약을 먹었더니 속이 무지하게 쓰렸다. 도서관에 가면서 생각했다.
우습지도 않은 몸살감기도 이렇게 힘든데, 친구는 그 힘든 수술을 하고 지금 얼마나 고통스러울 것인가……
고통이라는 것은 참 이상하다. 정신적인 고통으로 온몸이 죽도록 아플 수도 있고, 육체적인 고통으로 정신까지 고통으로 휩싸이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언제인가 말했지만 그런 생각이 든다.
<그러나 그대, 고통 하나 없는 완전한 인생을 진정 원하는가?>
또 나는 대답한다.
<그렇지는 않다.>
여기서의 고통은 아무래도 정신적인 어떤 고통을 더 함유하고 있다고 봐야겠다. 대단히 사치스럽게 느껴지는.
어쩌면 친구처럼 극도의 육체적인 고통을 아직 느껴보지 못했기에 이렇게 배부른 소리를 하는지도 모르겠다. 사람은 자신이 아는 것만큼 밖에 못 느끼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
둔기로 머리를 맞은 것처럼 둔탁한 두통이 머리 전체를 감싸며 욱신거리는 가운데 인터넷 성경을 필사했다. 우울할 때 성경 필사는 나에게 안정감과 평안을 준다. 요즘 로마서를 필사하는 중인데 쓰면서 늘 느끼는 것이지만 바울 선생은 정말 말이 많다. 여기에서 했던 소리 저기에서 또 하고, 앞에서 했던 소리, 뒤에서도 계속 늘어지게 늘어놓는다.
하긴, 바울선생이 어떻게 알았으랴. 자신이 보낸 편지 조각들을 모아 수많은 사람들이 성경으로 통독하고 동양의 어느 아줌마는 열심히 필사까지 한다는 사실을.
그런 면에서 예수님은 질이 틀리다. 명확하고 유머러스하고 그리고 단호하며 사랑이 깊다. 결코 훈계하지 않는다. 빨리 복음서를 필사하고 싶은데 아직 진도가 안 나간 것이 한이다. 내가 인터넷 성경 필사를 친구에게 소개시켜 주었더니, 필 받은 친구는 하루에 200절씩 신나게 필사하고 있다고 한다.
“너무너무 재미있어!”
무릇 좋은 정보는 이렇게 나누어야 하느니라^^
결국 병원을 갔다. 목이 심하게 부었고, 열이 40도 가까이 치솟아 마치 만취 상태인 것처럼 사물이 희미하고 얼굴이 화끈거렸다. 어지러운 상태도 술 취했을 때와 비슷하고 보니 내가 술을 마신 상태인지 아픈 상태인지 헷갈릴 지경이었다.
이불을 뒤집어쓰고 끙끙 앓으면서 생각하니 이런 증세는 사랑의 열꽃이 피는 증세와도 매우 흡사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닿을 수 없는 곳에 있는 어떤 사람이 그리워질 때, 미칠 듯한 마음의 형상이 이렇게 열병처럼 가슴을 끓게 할 때가 있지 않은가!
하여 나는 지독한 몸살감기를 그냥 즐겨버리기로 마음먹었다.
모처럼 집에서 이불을 벗 삼아 이리 뒹굴 저리 뒹굴 하면서 온갖 상념에 젖어 자다깨다를 반복하면서 나는 느꼈다.
사람에게는 휴식이 필요하다!
있는 힘을 다하여 자신을 당길 때가 있으면 어느 순간에는 당겼던 줄을 놓아 느슨하게 여유를 갖는 상태, 삶의 쉼표.
성경 필사하는 친구, 내가 늘 엄마라고 부르는 그 친구가 전화했다.
“뭐하십니까?”
“아파서 누워계십니다.”
“그래용? 그럴 땐 사우나에서 땀 빼는 게 최고지, 오시오!”
나는 친구의 말을 존중하여 아픈 몸을 이끌고 발을 질질 끌다시피 하면서 사우나를 갔다.
그리하여!
친구 집 옆에 있는 아방궁 저리가라 할 정도의 초호화판 사우나에서 몇 시간 동안 호사를 누렸다. 너댓 시간을 그 안에서 노닐면서 나눈 이야기는 얼마나 쫀득쫀득 맛이 있던지!
집에서 만든 식혜 한 병 준다는 꼬임에 빠져 친구의 집에 가니 일찍 퇴근한 친구 남편(친구 남편은 내 친구 격이다^^)이 날 보고 반색을 한다.
“같이 저녁 먹자!”
열 번쯤 같이 식사하면 겨우 한 번이나 우리가 낼까 말까하는, 지극히 손해 보는 저녁 식사를 친구 남편은 즐겨 제의한다. 나는 친구 남편에게 어리광을 부렸다.
“제가 지금 매우 아프거든요?”
“어이구, 몸살감기시구만!”
어설픈 내 어리광을 아주 잘 받아주는 친구의 남편.
“감기에는 그저 고춧가루 팍 넣은 콩나물국에 쏘주 한 잔이 최고여!”
그런 얘기 들어본 것도 같고 해서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요즘도 그런 거 어디서 팔아요?”
“비슷한 거 있지.”
차가 없는 우리 남편을 위하여 내가 사는 동네로 이동하는 배려까지 아끼지 않는 친구 남편이 떡하니 매운탕 집으로 데리고 간다.
혼자 집에 있던 남편이 이게 웬 떡이냐(이게 웬 술이냐, 겠지만^^) 하면서 합세했다.
결국 고춧가루 왕창 풀어 넣은 잡고기 매운탕에 소주를 한 병씩 마셔버렸다.
친구와 술은 오래 될수록 좋다는 말은 진리다.
만난 지 이십 년이 넘어가는 친구 부부와 마주 앉으면 대화도 달착지근하고 술도 덩달아 달다.
감기몸살로 화끈거리던 몸이 사우나에서 땀을 빼고, 다시 그 안에 술이 들어가니 몸이 살살 녹았다. 집에 돌아와 남편에게 말했다.
“왜 이렇게 몸이 녹작녹작 한 걸까?”
“하하. 감기 한 잔, 술 한 잔이 섞이면 그렇게 된다네.”
나를 인도하시는 분, 가르쳐주시는 분
가끔 이메일도 주고받는 신학자(우리 교회의 소속 목사이기도 하다)의 강의를 기독교 TV로 보았다. 주보 광고에 기독 TV에서 강의한다는 사실은 주보 광고를 보고서야 겨우 알았다. 시간을 기다려 채널을 돌렸는데 알고 보니 벌써 몇 주째 진행되고 있었다.
낯익은 모습을 TV로 보니 정말 반가웠다.
그 신학자는 몇 년 동안 성경공부를 우리에게 인도했는데 정말 새콤달콤매콤이었다. 모든 맛이 다 들어있다는 말이다. 색다르고 경이로운 말씀 전개는 충격이었다. 좀 뻥을 친다면 코페루니쿠스적 전환이었다고 할까?
욥기와 아가서, 비아돌로로자, 등 한 한기씩 이루어지는 성경공부를 대 여섯 번 참석하면서 신학자는 나에게 성경에 대하여 새로운 눈을 뜨게 해주셨다.
그 중에 911 테러에 대하여 말씀하신 기억이 난다.
슬픔의 축제, 고통의 축제, 눈물의 축제를 누립시다.
근본주의 기독교인의 시각과는 정 반대의 시각도 보여줌으로 우리의 시야를 넓혀주었던 노신학자에게 나는 더할 나위없는 존경심을 가지고 있다.
그렇게 아픈 중에도 거실 탁자에 필기도구를 꺼내놓고 필기를 하면서 꿀맛 같은 한 시간 강의를 들었다. 강의는 몇 달 정도 계속 될 거라고 하니 오늘처럼 행복한 시간은 계속될 것 같다.
여기서 잠깐 Q & A
작년엔가 친구 부부가 우리 집에 와서 몇 시간을 싸우고 돌아간 적이 있다. 바로 그 교회에서의 옷차림 때문이었다. 결국 성경학자이신 목사님께 이메일로 문의했고, 목사님은 친절하게도 답을 보내주셨다. 그 오간 이메일을 소개한다.
Q&A 이것이 궁금해요
“찢어진 청바지에 모자를 눌러쓰고 예배드린다?”
Q: 목사님, 평안하시지요?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시간에 목사님과 함께 계시다는 것이 저에게 많은 기쁨을 줍니다. 이상 접대성 멘트였고요(^^), 바쁘신 줄 알면서도 약간 바보스러운 질문 하나 드리게 되었습니다.
얼마 전, 저희 집에서 속회를 드리고 맛난 음식이 많이 남아 대학로에 있는 어느 교회에 다니는 친구 부부를 초청하여 저녁식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좋은 사람과 좋은 음식을 마주하고 좋은 대화를 나누는 시간이 얼마나 좋은지 아시겠지요?
그런데 대화 중 토론이 벌어지게 되었습니다. 예배 중 옷차림에 대해서 친구 부부간에 설전이 오갔던 것입니다.
좀 더 자세히 말씀드리자면 친구에게는 대학생 딸이 있는데 그다지 신앙이 깊지 않은 모양이어서 부모의 강권에 의해 한 달에 한두 번 억지로 (교회에) 끌려가는데요, 친구 남편은 딸의 옷차림을 무척 못마땅해 하고 있었습니다. 모자를 푹 눌러쓰고, 찢어진 청바지 차림이라네요.
친구는 딸이 억지로 교회에 오는데 옷차림까지 간섭하면 더욱 교회에 가지 않을 것이라고 걱정하면서 마음이 문제이지 옷차림을 이렇게 저렇게 하라는 것은 율법주의적인 생각이 아니냐는 것이고, 친구 남편은 교회에도 예법이 있는 것이니만큼, 그것을 잘 모르는 딸에게 제대로 가르쳐주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단정하고 제일 좋은 옷차림으로 경건하게 예배를 드리는 외형적인 형식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그렇게 한 치 양보도 없이 팽팽히 맞서다가 급기야는 친구 딸과 같은 또래인 우리 아들까지 불려나오게 되었습니다.
아들은 ‘교회에 많은 사람을 오게 하려면 좀 더 열려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의견이었습니다.
자, 목사님, 친구 부부의 분란을 어떡하든 막아야하는데 도와주시는 거죠?
좋은 답변 부탁드립니다~
A: 환하게 웃으시면서 쓰신 메일 반갑게 잘 읽었습니다.
유대교 회당에는 남자들은 모자를 안 쓰면 못 들어가지요, 여자들은 마라카락이 많다고 그것으로 모자를 대신합니다. 물론 이 문제하고는 다릅니다만.
젊은이들에게 그들 나름의 문화도 있는 거니까 그것이 존경받아 마땅하다고 봅니다.
스포티한 옷차림에 야구 모자 같은 것 쓰면 아주 귀엽지요.
우리가 밤새워 토의할 문제는 어쩌면 그 딸에게 있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 딸이 예배에서 해방감(=구원)을 체험하느냐가 더 중요한 것이지요.
문제는 딸에게 있지 않고 교회의 예배에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 귀여운 따님을 두신 부모님께 이렇게 말씀드리세요.
“내삐둬!!(내버려두라)”
“오늘은 차이코프스키 듣자.”
몸이 오슬오슬해 도서관행은 포기하고 집에서 이것저것 책을 뒤적이던 내가 남편을 불렀다.
내 말을 듣자마자 남편은 CD를 찾느라 부산해진다. 착한 남편.
거실에서 볼륨을 크게 해 놓은 음악을 내 방문을 열어 놓고 듣다가 다시 소리친다.
“그거, 멋진데 제목이 뭡니까?”
남편은 얼른 안경을 끼고 케이스 뒷면을 떠듬떠듬 읽는다.
“음.... JULY라고 되어 있는데?”
“그거 몇 번 리핏 해주세요!”
“당근!”
음악 들으면서 책 보면서 커피(그렇게 아파도 나는 커피를 마셔야 한다. 커피 중독이다)를 마시는 천국의 시간을 누리고 있는 중이다.
약을 먹기 위하여 하루 세 끼 밥을 다 찾아먹으려니 정말 힘들었다. 사람은 그냥 하루 두 끼 정도만 먹으면 안될까? 평소 아침을 잘 먹지 않는 습관이 있는데 아침부터 밥에 국에 한 상 차려놓고 먹으려니 그렇게 잘 먹는 나도 목에 넘어가질 않는다.
더부룩한 배를 살살 달래면서 평소 손을 대기 힘들었던 책을 몇 권 골라 읽었다. 책을 넘기면서 그런 생각이 든다. 한 일 년쯤 잡아놓고, 글을 한 자도 쓰지 않을 결심을 하고(물론 일기나 잡글은 예외겠지만) 푹 독서에 파묻혀 사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고. 도서관에 가서 읽고 싶은 책을 쌓아놓고 한 장 한 장 넘기면 얼마나 좋을까나.
요즘 인문서적들은 읽기 편하게 잘 편집되어 있고, 알기 쉽게 풀어놓은 책이 많아서 예전처럼 접근성이 뒤떨어지지 않아서 읽기에 편하다.
도서관의 서적들도 고리타분한 옛 책은 거의 없고, 서고 한 칸만 들여다보아도 읽고 싶은 책이 서너 권 이상 나올 만큼 생생하고 싱싱하고 맛있는 책이 즐비하다.
내 생각으로는 내년이나 후년은 그렇게 온통 독서로 보내고 싶다.
그렇게 독서를 하려면 나에게 제일 필요한 것은 ‘집필에의 욕심 버리기’이다.
무엇을 쓰고 싶다, 빨리 쓰고 싶다. 시간이 없으므로 더욱 열심히 집필하자, 이런 욕심을 내려놓기만 한다면 일 년 동안의 ‘집필 방학’이 더욱 나를 살찌우게 할 텐데.
책을 보면서 생각한다. 나에게 책이 없었더라면? 책이 없는 곳, 그것은 바로 지옥이겠지!
나의 천국은 책과 책상과 작은 노트북과 그리고 음악과 (술과 담배도 있어야 하는데 혹시 천국에서는 판매금지가 아닐까^^) 마음 가득 찬 사랑이 있는 곳이다.
그리고 그 곳은 지금 나의 집이다.
하나님, 나에게 설마 열두 진주 대문, 수정과 같은 순금 거리, 벽옥, 사파이어, 홍마노, 홍옥수, 황보석, 녹주석, 황옥, 녹옥수, 청옥, 자수정, 그런 거 가득 찬 이상한 집 주시는 것은 아니겠죠?
명절을 쇼핑하다
지인이 시골에서 짠 진짜 참기름과 들기름을 택배로 보내왔다. 뚜껑을 열고 냄새를 맡아보니 정말 고소했다. 제법 큰 참기름 병을 보면서 일사천리로 뻗어가는 생각, 누구에게 나누어 줄까!
마침 도서관에 강사서류를 접수시켜야 할 일이 있는 참에 수강생에게 문자를 날렸다.
나 좀 보고 가소!
끙끙 앓으면서 뒤 베란다에 쭈그리고 앉아 빈 소주병을 찾아냈다. 모두 여덟 개의 빈 병이 나왔다. 많기도 하여라. 이 안에 가득 찼던 술을 누가 다 마셨는고!
여덟 개의 빈 병을 일렬로 세워놓고, 커다란 참기름 병을 가늠하면서 잘 나누었다. 반병보다는 많지만 한 병을 꽉 채우지는 못할 양이었다. 참기름이 들어있는 여덟 개의 소주병(그 안에 참기름이 들어있으므로 소주병이 아니라 참기름 병이라고 해야 하는지?)을 들고 수강생을 만났다.
“선생님, 이게 대체 뭐라요?”
“설음식 만들 때 쓰라고, 이거 진짜 참기름이란다.”
“근데 이렇게 많아요?”
“성심성의껏 나누었지. 맛나게들 먹거라!”
그렇게 나누어 주고 보니 우리 집에 남은 참기름도 역시 소주 병 한 병이 안 되는 양이었다.
그런 모습을 본 남편이 혀를 끌끌 찼다.
“저렇게 주고 싶어 하는 마음, 진짜 못 말리것네! 우리 것도 딱 고만큼이니, 얼마 먹지도 못하고.”
그렇게 타박은 하지만 남편의 얼굴도 싫은 기색은 아니었다. 나누어 주는 것 좋아하기로 말한다면 남편도 하이레벨에 속하니까.
설날, 우리 집으로 모이겠다는 연락을 받았다.
또다시 열일곱 사람을 즐겁게 할 시간이 온 것이다. 남편과 머리를 맞대고 메뉴를 짰다. 차례 상을 차리는 것이 아니므로 좋아하는 음식만 잔뜩 만들면 되는 것이니 얼마나 좋은가!
간만에 남편과 손을 잡고, 걸어서 이십 분 거리에 있는 홈플러스로 직행.
천변의 겨울 풍경도 제법 운치가 있어서 우리는 한 걸음 걸을 때마다 감탄사를 연발하면서 느릿느릿 산책하는 기분으로 걸었다. 얼음이 얼지 않은 곳에서는 오리 가족들이 모처럼 따뜻한 볕을 즐기고 있었다. 작고 앙증맞은 아기 오리들은 헤엄을 배우는지 연신 왔다갔다 하는 모습이 정말 귀여웠다. 까치와 참새들도 나뭇가지에 다닥다닥 붙어 앉아 있다. 잿빛 풀섶에 앉아 깃털에 머리를 박고 졸고 있는 새도 보였다. 평화로운 오후였다.
설맞이 준비를 하려는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매장을 돌고 돌면서 우리도 음식 거리를 준비했다. 명절은 신나는 날이니만큼 푸짐하게 상을 차리고 싶은 마음이었다.
남편과 나는 양손에 쇼핑 물품으로 가득 찬 비닐 보따리를 끙끙 거리면서 들고 집에 왔다. 집에 와서 보따리를 풀어놓으니 입이 딱 벌어졌다. 그 많은 덩어리, 덩어리가 마치 미니 슈퍼에 온 것 같다.
“야아, 대단하다. 이게 다 먹을 것이라니!” 이것은 남편의 말.
“야아, 대단하다. 이게 다 만들 것이라니!” 이것은 나의 말.
저는 온유하지 않아요
설날 연휴 첫 날 저녁, 속회 모임을 갔다.
야간 속은 일주일에 한 번씩 모이는 다른 속과 달리 형편상(결국 이것은 핑계이겠지) 한 달에 한 번 정도 모인다고 한다. 소문에 듣자하니 내가 속한 속은 작년 일 년 동안 단 한 번도 모인 적이 없다고 한다. 나로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어쨌든 이번은 모인다고 하니 갔다. 오래 된 친구의 집에서 모이므로 샐러드 좋아하는 친구 남편을 위하여 감자 샐러드 만들어 가지고 갔다. 생각대로 감자 샐러드 한 접시에 매우 감격해하는 친구 남편!
속회 공과는 이전 주일 목사님의 설교를 토대로 하는 요약 말씀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는 오픈 형식이었다.
이전 주일 설교라... 그것은 바로 <온유한 자의 복> 말씀이 아니런가.
돌아가면서 설교를 듣고 난 후의 감상을 이야기하는데 내 차례가 되었다.
“난 설교 말씀을 들으면서 무지하게 갈등을 느꼈습니다. 따라서 평소처럼 예배가 그다지 기쁘지 않았습니다. 목사님이 주시는 말씀과 나의 마음이 계속 충돌하니까 마음이 괴로워졌거든요. 나는 하나님께 항의했어요. 하나님, 그렇게 온유한 자를 원하신다면 나를 천성적으로 온유한 사람으로 만들어주실 것이지 왜 그렇게 뾰족한 심성을 주셨다는 말씀입니까?
나의 성격은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온유한 자와 정 반대입니다. 극과 극이라고도 할 수 있지요. 견디지 못하는 것을 견딜 수 없다고 나는 말합니다. 소리 내어 항의하기도 합니다. 때로는 싸우기도 하고 열띤 토론도 마다하지 않습니다.
좀 방향은 다르지만, 나는 내 안에 내가 컨트롤 할 수 없는 악이 존재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마치 사도바울의 고백과도 비슷할 것 같습니다.
오호라, 곤고한 사람이로다.
그렇다면 온유하지 않은 성격을 가진 사람은 정말 악한 것일까요? 나는 그 말에 심한 회의를 느낍니다. 하나님은 각자에 맞게 어떤 성품을 주셨을 것입니다.
아닌 말로 (같이 예배드리는 한 친구-나와 초등학교 때부터 같이 지내던- 를 가리키며) 저 친구로 말한다면 누가 보더라도 온유한 성품을 지니고 있습니다. 늘 조용하고, 조신하며, 남의 말을 잘 듣고, 자신의 의견을 내세우는 법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저 친구는 하나님이 특별히 더 사랑하셔서 온유한 성품을 갖게 해주신 것일까요?
정말 온유하다는 깊은 의미가 무엇입니까? 나는 목사님의 말씀을 반은 긍정하고 어셉트하지만 그 반면, 온유함을 단순히 정의하는 것에는 동의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분명 하나님은 목사님의 그 말씀을 통해 나에게 말씀하고 싶으신 것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으므로 찬찬히 말씀을 살펴보았지요. 말씀을 프린트해서 형광펜을 들고 진실된 마음으로 다시 읽었습니다. 공부를 했단 말입니다.
그것에서 나는 몇 가지의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목사님은 말씀하셨어요. 제일 먼저 우리는 누구나 자신이 온유하지 않다는 사실을 직시하고 깨닫고 그것을 고백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저 친구도 외면적으로는(내면은 보지 않아 알 수 없으므로) 온유하지만 고백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나는 온유하지 않습니다.
이렇게요, 저와 똑같이요. 그것은 깊은 감동이었습니다. 정말 우리는 온유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저는 제 마음을 알기 때문에 그렇게 고백하는 것이고, 여러분도 역시 여러분 자신을 돌아볼 때 그렇게 고백하지 않을 수 없겠지요.”
우리는 오랜 시간동안 서로 고백했고, 서로의 마음을 나누었다. 그 시간은 분명 감동의 시간이었다. 우리가 이렇게 속회 모임을 갖는 동안 친구의 남편은 부엌에서 우리를 위하여 떡만두국을 끓이고 있었다.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아흔이 훨씬 넘은 연로한 장모님을, 있는 힘을 다하여 정성으로 모시고 사는 친구 남편은 누가 뭐래도 지극히 온유한 사람이지만 그 사람 역시 마음으로 고백해야 한다는 것에 나는 (물귀신 작전 같은 요상한 마음이 생겨서) 위안을 받았다.
그래도 하나님 보시기에는 똑같잖아!
늦은 밤 집으로 돌아와 나는 다시 앓아누웠다. 끙끙 소리를 내면서 투병중인 친구를 떠올렸다. 죽음을 앞에 둔 환자와 병 같지도 않은 감기몸살로 아픈 나이롱환자인 나는 분명 다르다. 고통도 아픔도 그리고 그것을 누리는 것도. 가슴 아픈 일이지만 나는 하나님께 기도했다. 요만한 고통을 누리는 것을 감사합니다. 누릴만한 여유가 있는 작은 고통만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