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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유다는 교회간다

1월 셋째 주

by 이숙경(2011canna@hanmail.net) 2011. 6. 23.

제 3부. 1월 셋째 주

 

 

놀아도 도서관에서 논다!

 

 

 

독서는 나에게 많은 즐거움을 준다. 즐거움뿐일까. 여행도 별로 해본 일이 없고, 지식도 많지 않은 나를 독서가 키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책을 좋아하는 습성을 가지게 된 것은 전적으로 부모님 덕택이다. 글을 알기 전부터 수많은 책을 사다주고, 책 읽는 모습을 대견해하고, 그리고 늘 책을 접하는 아버지를 대하면서 자연스레 습득된 좋은 습관이다. 서점과 문구점은 그냥 옆을 지나치기만 해도 기분이 좋다. 없는 돈에 필기구를 인터넷으로 주문해서 지인들에게 선물하는 것도 내 취미 중의 하나이다.

새해에도 책이 한 보따리 배달되었다. 나는 그것을 마치 산타의 선물 보따리처럼 가슴을 두근거리면서 꺼냈다. 와우~ 바로 이것이었어!

신앙 계통의 책 한 권, 그리고 외국소설 한 권, 한국 소설가 에세이 다섯 권, 그 외 몇 가지 책이 일 월 한 달 간 먹을 나의 양식이다.

술렁술렁 넘기면서 읽을 책도 있고, 형광펜으로 밑줄 그으며 읽을 책도 있고, 화장실에서만 읽을 편한 책도 있고 음악을 들으면서 즐기는 책도 있다. 나는 그런 모든 종류의 책을 사랑한다. 일종의 연애감정이 불쑥불쑥 솟는 것이다. ‘무정한 사물들과의 연애’라고나 할까.

 

더 좋은 점은 같은 책을 보고 느낀 점을 토로할 수 있는 친구가 있다는 사실이다. 금보다 귀한 나의 친구는 가끔 문자를 보내기도 한다. 며칠 전 아침에도 그랬다.

도서관에 앉아 성경쓰기로 워밍업을 하는데 문자가 왔다. 원래 도서관에 오면 휴대폰을 끄는데 미처 끄지 않은 그 틈을 어떻게 친구가 알았는지 모르겠다.

 

친구 문자 : 예수님 정말 익살꾼이시다~ 너무 웃기셔~^^

나의 답 문자: 뭘 읽고 있는데? 빨리 가르쳐 줘잉~

친구 문자 : 겉옷 속옷 오리 십리

 

엊그제 만났을 때 친구가 하던 말이 생각났다.

“올해는 복음서를 위주로 읽으면서 예수님의 마음을 완전히 파악해 버릴테얏!”

그러니까 그녀는 지금 성경을 읽거나 신앙 서적을 읽는 중인 것이다. 복음서에 나오는 예수님의 말씀, 오리를 가라고 하거든 십리를 가주어라, 겉옷을 달라고 하거든 속옷까지 내주어라, 그 대목인 것 같다. 늘 읽어왔던 성경 구절일 텐데(친구는 성경을 무지하게 많이 읽는다. 늘 성경을 읽고, 또 읽는다. 나랑 비슷하다^^) 어찌하여 오늘 갑자기 친구에게 어필이 되어 아침부터 배를 잡고 뒤집어지게 만들었는지 매우 궁금했다. 정말 성경은 읽을 때마다 새롭다!

 

나의 답 문자: 너무 재밌는 성경~

친구 문자 : 지금 목사님들 다 때려 줘야 해~~

나의 답 문자 : 하 하 하

 

일단 거기까지 문자로 수다 떨고는 휴대폰을 꺼버렸다. 어째서 목사님들이 집단으로 맴매를 맞아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다음에 친구를 직접 만나 진하게 이야기를 나누어야지.

 

도서관에 오면 좋은 점이 많다.

그 중에서도 좋은 점은 말을 할 필요가 없다는 것. 온종일 도서관에서 입을 꾹 다물고 작업하는 시간은 정말 귀하다. 사람들은, 나를 포함하여 얼마나 쓸데없는 말을 많이 하고 사는지 모르겠다. 또 가톨릭 이야기가 나오는데 개신교 측에서는 기도원이 있어 소리 지르고 통곡하고 박수하고 요란한 반주에 맞추어 목청껏 노래하지만, 가톨릭에서는 수도원이 있어서 조용히 묵상하면서 자신을 돌아보는 것 같다.

가톨릭에서는 피정이라는 기간이 있다고 하는데 그것 역시 침묵으로 수련하는 것이라도 전해들은 적이 있다. 왜 개신교에서는 그런 얌전한 기도처가 없는지 매우 불만이었는데 친구 말에 의하면 자신이 다니는 교회에서 그런 용도로 매우 조용한 기도원을 짓고 있다고 해서 내심 반갑다. 마침 장소가 내가 사는 곳에서 멀지 않기에 빨리 빨리 건물이 완공되기만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아무튼 도서관에서 나는 묵언수행하는 기분이 들 정도다.

정말 마음이 통하는 사람은 눈만 보고 앉아 있어도 전기가 찌릿찌릿 오고, 마주 보고 웃기만 해도 염화시중의 미소처럼 속마음이 보이지 않던가. 개신교도 좀 조용했으면 좋겠다.

그런 면에서 교회에는 좀 일찍 오는 것이 좋다고 본다. 일찍 자리를 잡고 앉아 묵상하는 시간은 얼마나 귀한가!

 

도서관에서 가끔 주위를 돌아보면 거의 이십 대 청년들인 것을 알 수 있다. 두꺼운 책을 낑낑 거리면서 들고 와서 공부하는 모습을 보면 안쓰럽기도 하고 대견하기도 하다. 꿈을 이루기 위하여 노력하는 모습은 정말 아름다워 보인다.

그리하여 집에 돌아와 남편과 오롯이 마주 앉아 가정예배를 드릴 때 이 생각을 나누었다.

 

보소, 남편이여, 내, 오늘 도서관에서 열라 공부하는 젊은 녀석들을 봤습니다? (또 미녀들의 수다에서 나오는 누구누구의 말씨를 흉내 내면서)

그런데 그 녀석들 꼭두새벽부터 밤까지 그렇게 열심히 공부하는 것이 다만 오늘을 위해서이겠습니까? 꿈을 가지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하여 인내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여보! 내, 당신에게 꼭 드리고 싶은 말이 있는데 반항하고 싶어도 그냥 참고 들으시오.

나는 당신에게 매우 안타까운 마음 한 가지가 있습니다요. 그것은 뭐냐, 하면 꿈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물론 당신에게 꿈이 있지요. 아들 빨리 결혼시켜서 손주들과 놀고 싶은 꿈, 로또 맞으면 뭐 뭐 할 거라는 꿈(하긴 요즘은 로또를 안 삽디다마는), 내가 잘되면 누구누구 도와주고 싶다는 꿈 등등. 하지만 엄밀히 말한다면 그것은 꿈이 아닙니다. 예전에 소년이여, 야망을 가져라, 고 누군가 말했지요?

(듣고 있던 남편이 이때 영어로 덧붙였다. Boys, be ambitious! 나도 얼른 따라 복창했다. 맞습니다! Boys, be ambitious! 우리 남편 똑똑하기도 하지, 칭찬도 해주었다.^^)

나 역시 쉰이 넘은 아줌마로서 될 수 있으면 퍼질러 있지 않고 기를 쓰고 도서관에 가서 공부도 하고 작업도 하는 것은 바로 꿈이 있지 때문 아니겠습니까!

나에게 꿈이 있다는 것은 나를 개발시키는 원동력도 될 뿐 아니라, 살아갈 힘도 되고, 그리고 에너지의 원천도 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참 불쌍한 사람은 바로 꿈이 없는 사람이라고 나는 개인적으로 생각합니다. 되는대로 산다는 것은 생명의 연장에 불과하다는 것이 나의 지론이기도 합니다. 평안히 누리면서 사는 것과, 아무 뜻 없이 시간을 흘려보낸다는 것은 분명한 차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색하는 삶을 원래 좋아해서 그런지도 모르지만요.

하여튼, 소년들아, 꿈을 가져라, 이 말은 꼭 젊은 사람에게만 해당하는 말은 아니라고 봅니다. 당신이 좋아하는 프로에서 엊그제 70세 된 노인이 나왔지 않습디까!

65세 때 병에 걸려 움직이지도 못했는데 이래서는 안 되겠다 결심하고 열심히 운동한 결과 완전 근육맨, 튼튼맨으로 변모되었지요? 그 노인 참 멋있었습니다. 그런데 당신은 그 노인과 당신을 왜 결부시키지 못하는가요! 당신은 그 노인보다 나이도 몇 살 적습니다. 그런 프로그램을 보면서 야, 참 대단하다,에서 그냥 끝나버리고 자신에게 적용을 시키지 못하면 백날 그런 프로 보면 뭐합니까? 사람은 어디서 무엇을 보든 자신의 깨달음으로 돌아와야 하지 않겠습니까!

사람은 죽을 때까지 꿈을 버리지 않아야 하는 것이고, 또 꿈을 위하여 한 발짝 한 발짝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것이라 이 말씀입니다.

그런데 당신에게 매우 가슴 아픈 이야기를 하자면, 오 년 전 당신이 뇌경색으로 쓰러져 입원했을 때 바로 옆자리에 있던 50대 환자 분 기억나시지요? 혈기가 장난 아니던, 마치 깡패 비슷한 남자 말이지요. 그 환자에게서 당신은 두 가지를 보았을 것입니다.

뇌경색으로 쓰러져 입원한 주제에도 담배를 피우는 모습과 그리고 열심히 재활 운동하는 모습을요. 그런데 당신은 그 환자의 모습에서 딱 자신이 원하는 것은 따라 하고(내가 담배를 끊어야 한다고 했더니 당신이 그랬잖아요. 저 분 봐, 똑같은 병인데 담배 피우잖아, 그러니까 괜찮아. 저 사람도 피우는데 뭘, 하면서), 자신이 하고 싶지 않은 것은 외면하고(내가 운동 좀 하라고, 저 분은 저렇게도 열심히 재활치료를 하는데 좀 따라하시라고 했다니 못 들은 척 누워 잠만 열심히 잤지요?) 하여튼 그 결과 그 환자는 금세 회복하여 차 운전하고 우리 집에도 몇 번 놀러오고 완전히 정상인으로 되돌아왔지 않습니까!

그 때 실은 당신에게 좀 실망했습니다.

꿈을 이루려면 자신의 각오와 희생, 인내, 끝없는 노력이 있어야 하거늘, 당신은 그 때 회복의 기회를 놓쳐버린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다 지난 일이고, 이제 결론적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당신도 지금부터 꿈을 가지고 열심히 살아야 하는 겁니다.

 

내가 밤마다 산책하러 나가면 호호백발 할머니도 머플러 매고, 모자 쓰고, 구부정한 몸으로도 열심히 걷고 또 걷는 모습을 봅니다. 그 모습이 너무 아름답고 귀해서 나는 늘 감동 먹습니다. 내가 꼭 당신더러 나처럼 밤마다 뛰쳐나가 십리씩 걸으라는 말이 아니지요. 다만 내가 산책하러 갈 시간만이라도 싸이클에 올라가서 페달을 밟으면 얼마나 좋습니까!

추운 겨울이라도 대낮, 햇볕이 따스할 때 슬슬 걸어 한 바퀴 돌고 오면 좀 좋겠나요? 당신이 그렇게 수족을 꼼지락거리지 않고 있으면 병이 절대 낫기는커녕 조금씩 조금씩 더 쇠약해 지는 것은 당연하지 않습니까!

이제껏 같이 살았는데 당신이 아파서 먼저 천국 가면, 나 보고 과부로 살라는 말입니까! (단호한 목소리로!) 아니, 내가 과부로 사는 것이 좋단 말입니까! 건강을 잘 유지해서 아들 장가가는 것도 보고, 손주도 품에 안고, 그리고 나랑 두 손 꼭 잡고 놀러도 가고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꿈은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노력해야 비로소 그 꿈이 더욱 값진 것이지, 저절로 굴러오는 꿈은 없습니다. 자, 내 자신이 나를 쳐서 복종할 수 있는 힘을 달라고 하나님께 간구하면 당신의 약한 의지를 강하게 만들어 주실 것을 믿습니다, 아멘? (보일듯 말듯 입술을 달싹이면서 아멘, 하는 남편)

기도합시다.

 

그 날 밤, 산책하러 나가려고 운동화를 신는데 남편이 얼른 일어나 싸이클에 올라타는 것이었다. 하하하.

 

 

뉴욕의 언니도 변화 중

 

 

 

뉴욕에 살고 있는 언니가 전화했다. 언니는 지난 가을 두 달 동안 우리 집에 머물다 갔는데 그 두 달 동안 언니는 신앙 서적에 완전히 폭 빠져 지냈다. 내 서재가 언니의 침실이었는데 언니는 책꽂이에 꽂혀있던 종교 관련 서적을 집중탐구했던 모양이다. 나처럼 언니도 글자편집증이 있다. 언니는 나보다 강도가 더 심해서, 식사를 할 때, 책을 보지 않으면 밥맛이 없다고 할 정도다.

이하 뉴욕에서 전화해서 언니가 고백한 내용.

 

내가 있지, 새해 들어 갑자기 기분이 다운되는 거야. 어쩐지 맥이 탁 떨어지고, 시들하고, 그리고 남편도 어쩐 일인지 꼴 보기 싫고, 해서 이혼할까, 별 생각이 다 나더라. 이틀 동안 나는 완전히 헤맸어. 나도 놀라운 것은 내 마음을 내가 어떻게 다스리지 못하겠더라는 것이지. 남편은 갱년기 우울증이라고 진단하더라만 어쨌든 내 마음이 컨트롤되지 않으니 정말 미치겠는 거 있지. 갑자기 죽고 싶은 생각도 들고, 결혼한 딸네 집으로 가버릴까 하는 생각도 들고. 사람을 만났는데도 그 사람들 이야기가 전혀 들어오지 않고 멍하니 있고……

그런데 전 주일 교회에 갔는데 목사님이 새벽기도를 나오라는 거야. 근데 내가 겁이 좀 많냐, 껌껌한 새벽에 어딜 가냐고요. 더구나 밤에는 깨어있고, 아침에는 푹 자는 습관이 수십 년인데 새벽에 교회를 어떻게 나가냐. 그래서 목사님께 생각해 보겠다고 대강 얼버무렸지.

그런데 엊그제 밤이었어. 마음이 하도 뒤숭숭하고 잡을 수 없어서 그럼 새벽기도라도 한 번 가볼까, 하는 마음이 들어 시계를 알람 해 놓았지. 하지만 잠이 도통 오질 않는 거야. 새벽 두시가 지났는데도 말똥말똥 깨어있으니 정말 미치겠더라. 수면제를 한 알 씩 연거푸 세 알인가 먹었는데도 역시 잠을 잘 수가 없으니 얼마나 고통이었겠어. 네 시 가까이 되도록 잠이 안와서 결국 새벽기도 가려고 맞춰놓은 알람을 꺼버리고 잠을 잤지 뭐야.

그런데 말이야, 정말 이상한 일이 일어났어.

갑자기 쾅, 하는 폭발음 같은 것이 들리는 거야. 나는 아니, 무슨 또 911 테러가 난 거 아닌가 하면서 깜짝 놀랐어. 집도 약간 흔들리는 느낌이었어. 그런데 내 왼쪽 귀에서 소리가 들리는 거야. 아주 또렷하게 이렇게.

“일어나라!”

(이때, 내가 농담했다. 혹시 영어로 들렸어?^^)

노! 한국말이야. 남자 목소리 같았어. 그러면서 내 몸이 마치 무슨 줄로 끌어당긴 것처럼 한 삼십 도 가량 상체가 일으켜지는 거야. 네가 동생이니까 얘기하는 거지, 누가 그런 말하면 제 정신이 아니라고, 꿈 아니냐고 하겠지. 그렇지만 너는 내 말을 믿지? (믿지!)

기절을 할 듯이 놀라 나는 일어났어. 그런데 시계를 보니 5시 10분 전이야. 그런데 또 목소리가 들리는 거야.

“예레미아 24장.”

내가 똑똑하게 듣지는 못했는데 아무튼 그런 말이었어. 나는 일어나 얼른 성경을 뒤져보았지, 그런데 예레미아는 24장이 없더라고. 그래서 내가 잘못 들었나 싶어서 14장인가를 읽었네? 내용은 별 거 없어. 뭐가 어떻고 저떻고 하는데 하나도 귀에 안 들어오는 그렇고 그런 내용이었어.

그런데 참 이상하게도 머리가 말짱한 거야. 겨우 몇 십분 자고 일어난 셈인데, 게다 수면제까지 한 알도 아니고 연거푸 먹었잖냐. 예전에 그랬다면 아주 힘들고 도저히 일어나지 못했을 텐데 개운한 기분이 드는 거 있지?

어쨌든 빨리 준비해서 교회에 가서 새벽기도를 드렸어. 우리 교회는 새벽마다 성경을 석 장씩 함께 소리 내어 읽고 목사님이 설명을 해주거든? 그런데 너무 신기한 게, 그날 읽은 성경이 바로 그 예레미아, 바로 내가 읽은 그 부분이었어! 아유 언더스탠? (예스!)

그런 우연도 있을 수 있나? 쾅 하는 폭발음 같은 커다란 소리는 남편도 못 들었다고 하고.

목사님이 갑자기 나에게 와서 안수기도를 해주데? 그런데 그렇게 해서 집에 오면서는 이상하게도 마음이 편해지는 거야.

어제 친구를 만났는데 친구가 나를 보고 그러더라. 얼굴이 참 좋아졌다고. 예전에는 좀 힘들어 보였었다나. 내가 내 얼굴을 봐도 지금 평안해 보이고 혈색도 좋아졌다. 어때, 정말 신기하지?

 

나는 언니에게 성령이 강력하게 역사하고 있는 중이라고 말해주었다. 스스로 감당할 수 없을 때 도와주시는 성령! 언니도 그것을 믿는다고 했다. 나는 언니에게 조언했다.

“언니! 될 수 있으면 새벽기도 계속 나갔으면 좋겠고,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집에서 성경을 더욱 열심히 읽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이전처럼 삼분 기도 하지 말고 진실한 마음으로 깊게 기도해 봐. 언니에게 곧 좋은 일이 있을 거야. 그러면 언니에게 있는 두려움도 사라질 것이고 진짜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을 누릴 수 있을 거야!”

 

언니는 미국으로 가면서 인터넷으로 주문한 많은 신앙서적을 가지고 갔는데 읽고 또 읽는 중이라고 했다. 베리 굿! 이제 나도 중보기도 할 때 언니에 대하여 더욱 빡세게 기도할 것을 느꼈다. 가족과 떨어져 70년 대 미국으로 건너 간 언니는 무척 외로웠을 것이다. 언니에게 하나님의 따뜻한 손길이 함께 하기를! 그리고 이번 기회에 더욱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기를!

 

(이 글을 쓴 이후 뉴욕 플러싱의 언니 집을 방문한 경험을 글로 쓴 단상 한 토막.)

 

하나님은 나의 스토커

 

얼마 전, 한 달 여의 캐나다 미주 여행을 다녀왔다.

자그마치 40여 년을 바라보는 우리 교회에서의 신앙생활을 잠시 접고(?), 죽었다 깨어나도 본교회로는 도저히 발길을 옮길 수 없는 아메리카 대륙으로 날아갔다.

하나님, 놀다 오겠습니다. 잠시 눈을 좀 감아주세요, 하는 심정이기도 했다.

 

장성한 아들과 함께 한 여행은 즐거웠다. 해박한 지식으로 무장한 가이더를 만난 덕택에 이국의 문화유산을 마음껏 즐길 수 있었고, 유명한 관광지마다 증명사진을 찍는 것도 잊지 않았다. 패키지여행 후 뉴욕 플러싱에서 삼십 년째 살고 있는 언니를 만나기 전까지는 참, 많이, 자유로웠다.

 

그런데! 바로 그 후부터가 문제였다.

언니는 뒤늦게 하나님의 은혜에 푹 빠져 있는 상태였다. 내가 선물로 가져간 새 찬송가, 가스펠, 찬송가 모음 CD, 그리고 각종 신앙서적을 보고 언니는 환호성을 질렀다.

결국, 언니 집에 머무는 내내 가스펠을 치기위한 코드를 알려주기 위해 피아노 앞에 앉아있어야 했고, 때마침 간증집회를 하는 부흥회에 내리 참석을 해야 했고, 본 교인들도 몇 명 참석하지 않는 금요철야기도회까지 빠짐없이 참석해야 했다. 결코 내 뜻은 아니었다. 나는 분명히 휴가차 여행을 왔는데 이게 뭐람!

 

게다가! 뉴욕 교회에서도 사순절 특별 40일 새벽기도를 계획하고 있었다. 어쩔 수 없이 나도 40일의 날짜 밑에 일수 찍듯 사인하는 난이 그려진 꽃분홍색 카드를 받았다. 그리하여 뉴욕에서부터 <하나님을 경험하는 삶, 새벽기도 40일>을 시작했던 것이다.

한국을 떠나서는 좀 자유롭게 실컷 놀고 싶었는데!

 

지금 나에게 남아 있는 것은 벽에 자랑스럽게 붙어있는, 뉴욕 순복음 안디옥 교회에서 나누어 준, 40개의 동그라미가 꽉 차게 채워진 새벽출석카드이다.

아, 정말 하나님은 나의 스토커!!

 

 

 

이웃과, 그리고 내 자신과 함께

 

 

 

모처럼 친구 부부와 드라이브를 가기로 했다. 만난 지 이십 년이 훨씬 넘는 친구는 늘 그녀의 남편과 동행했다. 생각해보니 따로 친구만 만난 적은 한 번도 없는 것 같다. 무지무지한 잉꼬부부인 그들은 차가 없는 우리 부부를 위해서 가끔 드라이브를 시켜준다.

나는 일찍 도서관에서 돌아와 장애 3급인 남편 머리도 감겨주고 꽃단장도 해주었다. 오랜만의 드라이브라 남편은 기대가 큰 모양이었다.

올드 팝송을 크게 틀어놓고 우리는 달렸다. 행선지는 산정호수.

나는 황량한 들판을 보는 것을 참 좋아한다. 그 모습에는 십자가에 달린, 피골이 상접한 예수님의 모습이 들어있다. 앙상한 나무들, 우울한 잿빛 풍경을 보면 마음이 멜랑꼴리해진다. 나는 녹음이 우거진 울창하고 화려한 여름의 산보다 어둡고 슬퍼 보이는 겨울 들판이 훨씬 정서에 와 닿는다.

산정호수에서 우리는 미끄럼을 타면서 놀았다. 오륙십 대 중늙은이들이 말이다. 너무 추운 날이고 평일이어서인지 관광객이 많지 않았는데 그 황량함도 마음에 들었다. 산정호수 가로 조성된 산책길로 크게 한 바퀴를 돌며 친구와 도란도란 이야기도 나누었다.

남자들은 일찌감치 산정호수 가의 식당을 찾아가서 빙어튀김을 시켜놓았으니 빨리 귀가(^^)하라고 전화질이다.

푸짐한 빙어튀김을 보자 남편은 술 생각이 간절한 모양인지 자꾸 메뉴판을 뒤적였다.

“여기 막걸리가 아주 맛있다는데 한 잔 할까?”

(나는 도리도리. 친구는 술을 못 마시니까 도리도리, 친구 남편은 운전을 해야 하니까 도리도리.)

남편이 다시 또 메뉴판을 펼친다.

“그럼 다른 거라도 하나 더 시켜 먹을까?”

(나, 친구, 친구 남편 모두 도리도리)

계속 브레이크를 거니까 하는 수없이 남편도 포기한 눈치여서 그제서야 나는 파전을 하나 더 시켰다.

솔직하게 고백하자면, 막걸리 없이 먹는 파전은 맛이 별로였고, 소주 없이 빙어튀김을 먹는 것은 정말 고행의 수준이었다.

하지만 새해의 다짐, 하나님 절제!, 절제, 하나님!

이 말을 주문처럼 외우면서 식당에서 시간을 보냈다. 빙어튀김은 빙어가 살이 너무 없어서 씹는 맛이 덜했다. 식당 주인아줌마 왈, 빙어 튀김은 2월은 되어야 살이 통통하게 올라 제 맛이 난다고.

 

집에서 남편과 저녁으로 오리 주물럭을 만들어 먹었다.

로스 감으로 포를 떠온 오리에 약간의 고춧가루 양념을 하고, 버섯, 양파, 감자, 부추 등을 함께 넣어 먹으면 맛이 끝내 준다. 문제는 오리 주물럭은 반찬이라기보다는 안주에 가깝다는 것! 오리 주물럭은 절대 맨 입으로 먹을 수 없다는 남편의 아우성에 소주 한 병 꺼냈다. 나도 한 잔 받았는데 소태처럼 쓰다. 이게 웬 일일까? 결국 한 모금도 못 마시고 말았다.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예전 같으면 주거니 받거니 화기애애했을 텐데 혼자 술을 마시려니 술맛이 안 난다고 남편이 투정을 부렸다.

 

“여보, 나도 술이 땡기면 마시지, 근데 안 받는 걸 어떻게 해!”

“당신이 안마시니까 진짜 재미없다.”

“이런 물귀신 같은 양반아. 술 안마시면 좋은 거지, 뭘 그러신다냐!”

“그래도……”

그러고 보니 혼자 홀짝 거리는 남편이 좀 쓸쓸해 보였다. 하지만 어쩔 수 없잖아. 안 넘어가는 걸.

나도 남편의 마음을 이해한다. 술자리에서 요리조리 뺀질대면서 술 한 잔 따라 놓고 삼박 사일 있는 인간은 진짜 밥맛없으니까(^^::)

남편 옆에 찰싹 달라붙어 술잔에 술 채워주고, 안주 집어주는 기쁨조 역할을 열심히 하던 나는 갑자기 요상한 생각이 들었다.

혹시, 하나님께서, 담배 맛도 시큰둥하게 만드시는 거 아닐까? 별거 아닌데 끊어야겠다, 이런 생각이 들게끔?

아악, 나는 속으로 비명을 질렀다. 그리고 하나님께 싹싹 빌었다.

“하나님, 아직은 아니옵니다. 조금만 더 즐기다가요. 얼마간의 시간을 주옵소서!”

 

 

 

산책의 시간, 묵상의 시간

 

 

 

온종일 기분이 이상스레 가라앉는 날이 있다. 그 날은 정말 추운 날이었다. 영하 13도라고 하지만 체감온도는 영하 20도 가까이 되었다. 강하고 매서운 바람을 맞으면서 도서관으로 가는데 그 날 따라 짐 보따리가 왜 그렇게 무겁게 느껴지는지.

2킬로 가까이 되는 노트북, 묵직한 어댑터, 헤드폰, 노트북용 마우스, 스케줄 노트, 각양각색의 필기도구, 안경, 티슈, 안약, 핸드크림, 보온 컵, 갖가지 차와 사탕, 휴대폰, 동전 지갑, 담배 일습, 소형 가그린 병…… 당장 눈에 보이는 것만 써놓았는데 이렇다.

짐 보따리를 풀어놓고 팔레스틴 난민 같은 표정으로 한동안 맥없이 앉아 있었다. 가끔 나는 멍해진다.

“내가 하는 일이 정말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일까?”

이미 진행하고 있는데 그런 생각이 들면 정말 머리가 아파진다. 길어야 한 달인데 일단 끝을 맺어야지! 하고 내가 나에게 소리친다. 한 동안 가만있다가 나는 다시 하나님께 항의한다.

“하나님, 이러다가 진짜 소설은 아예 못쓰게 하시는 건 아니시겠죠? 설마?”

대답 없으신 하나님이기에 나는 몇 마디 더 웅얼거리다 포기한다. 나도 언니처럼 한 밤중에 “일어나라!”하는 음성 비슷한 거 들어봤으면 좋겠다.

 

인터넷 검색을 하는데 우연찮게 옛날에 좋아하던 노래가 하나 걸려들었다. 헤드폰 끼고 약간 볼륨 높이고 듣는데 가슴이 녹는 것이다. 노래 한 곡에 푹 파묻혀서 한참 어딘가를 헤매는데 다시 마음이 나약해졌다. 기독교인이라고 날마다 “내가 매일 기쁘게” 만 소리 높여 외칠 수는 없는 노릇이지 않겠는가, 하고 자신을 위로하지만 내가 나를 위로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오후 몇 시간을 멜랑꼴리한 기분으로 늘어져 있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아무래도 그 노래가 너무 끌렸다. 나는 듣기만 했지 한 번도 부르거나 피아노로 치지도 않은 곡이었지만 노래 악보를 출력해서 피아노를 쳤다. 슬픈 단조의 곡이었다.

그 노래를 작사 작곡한 사람은 우리 교회의 후배였는데 작년에 세상을 떴다. 그는 오랫동안 교회에 나오지 않았는데 암으로 죽기 얼마 전, 병문안 온 선배에게 회복이 되면 좋은 복음성가를 만들겠다는 의지를 보였다고.

이십 몇 년 전에 작곡된 그 노래 가사에 눈 덮인 조그만 교회당, 이라는 구절이 세 번이나 나온다. 어릴 때 다녔던 교회당의 이미지가 알게 모르게 노래 속에 스며든 것이 아닐까.

언젠가는 우리 모두 세월을 따라 흘러가지만.

젊었을 때 그런 가사를 지었다는 것이 경이롭다. 녀석, 인생이 어떤 것인지 일찌감치 알고 있었구나. 피아노를 치는데 시편 구절이 떠올랐다.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니이다.”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의 마음을 얻게 하소서.”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니이다……”

대체 그 노래와 시편이 무슨 연관이 되는지 나도 모르지만 피아노를 치면서 마음속으로는 계속 시편 구절을 읊조리고 있었다.

 

저녁의 독서, 예민한 책을 읽는 중이다. 소설가인 그녀의 생각은 대체로 나와 비슷하다.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을 그녀는 정확하게 쏟아낸다.

 

...우리는 욕망을 통해서 에고를 확립한다. 욕망에의 갈증과 그것을 희구하는 그리움의 과정이 있고 충족의 기쁨이 있고 자극이 사라진 이후의 권태가 있고 그런 식으로 자기 자신에게 끊임없이 집착한 후에 다가오는, 이유가 모호한 죄의식이 있다.

이런 과정은 욕망의 생로병사이며 인간과 인간 사이의 규정할 수 없는 힘이며 역사의 내용이기도 하다...

 

... 이 모든 것이 로테이션 된다, 끝이 있을까?

지금 생각할 때는 끝없이 윤회될 것 같지만 언제인가는 끝이 날 것이다

 

...욕망이 사라지는 그 순간, 생각하면 조금 슬프기도 하다. 왜냐하면 욕망과 함께 영원한 내 친구였던 내 몸과 이기적이고 비합리적이고 공명정대하지 못했던 나를 언제나 변명해 주었던 나의 아이덴티티, 에고가 사라져 버리고 사람들이 의미 있게 생각하는 영혼도 날아가고 (아, 그녀도 시편 기자처럼 ‘날아가고’ 라는 표현을 쓰는구나!) 내 은밀한 부끄러움, 수치심이나 죄의식도 남지 않을 것이다... 아주 오래 전에, 누군가가 말했었다. 육체가 없으면 고통도 없다. 그러니 아가야, 그날 이후를 겁낼 것은 아무것도 없단다, 라고.

 

... 부정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의사소통의 기본은 육체이다. 그 사람의 인상이나 말투, 목소리나 태도도 육체에서 파생되는 것이다. 인간이 진정으로 추상화될 수 있느냐는 질문에 대해 나는 아직까지 부정적이다. 정신이란 것도 결국은 뇌의 작용이 아니던가. 이유 없는 끌림이란 것은 언어로만 존재할 뿐이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사람은 인격이 육체화된다...

 

...오늘 밤은 좀 이상하다. 몸이 갈기갈기 찢어지는 것 같다

 

늦은 밤, 추위를 대비해 머플러로 얼굴 절반을 감싸고 산책길에 나섰다. 날씨가 너무 추워서인지 한 시간을 걸을 동안 겨우 몇 사람밖에 만나지 못했다.

참 쓸쓸한 길이었다. 창백한 가로등, 얼어붙은 하천, 맹렬하게 부는 차가운 바람, 그리고 불 꺼진 아파트, 모두 그로테스크해 보였다. 저벅저벅. 내가 걷은 발소리가 다시 내 귀에 들려오는데 어쩐지 내 발소리 같지 않은 느낌이 들었다. 나는 지금 어디로 가는 것인가.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니이다……

혼자 걷는데 나도 모르게 눈물이 주르르 흐른다.

암이 재발되어 수술을 앞두고 있는 친구 생각도 났고, 뉴욕에서 우울증에 시달리는 언니 생각도 났다. 그 와중에도 하나님께 화살기도를 올렸다.

“하나님 그들에게 영육 간에 강건함을 주세욧!”

내 나이 쉰 둘. 많다면 많은 나이고, 아직 젊다면 젊은 나이다. 오래 사는 것만으로 보람 있게 사는 것이 보장된 것은 아닐 것이다.

어떻게 사는 것이 정말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삶일까. 이런 생각 저런 생각으로 한 시간 동안 걸었을 뿐인데 마치 수 십리를 걸은 것처럼 피곤했다.

가만히 날짜를 더듬어 보니 13일이다. 서양 사람들이 왜 13일을 싫어하는지 모르지만 나는 13일에 대한 거부감은 없는 편이었는데 오늘은 생각이 좀 달라졌다.

성경에서 말하는 숫자는 다 의미가 깊다. 3, 7, 12. 그 깊은 뜻을 다 알 수는 없지만 산책을 하면서 새롭게 다가오는 의미가 있었다.

완전수라고 일컫는 12. 그 12일 이후의 13일은 새로운 날의 시작이다. 나는 새해 들어 1일부터 12일까지 매우 열심히, 작년과는 다른 모습으로 살려고 노력했고, 살았다. 그런데 이제 진이 빠졌다고나 할까. 절제의 힘이 소진된 것이다. 12일 동안 엄밀한 의미의 안식이 나에게는 없었다. 날마다 힘을 내려고 애썼고, 기도했고, 그리고 절제하려고 최선을 다했다. 이제 새로운 12일이 시작된 13일은 또 다시 완전한 12일을 만들기 위해 애쓰는 시간이 되기에는 나는 쉼이 필요한 것이 아니었을까.

정신적인 안식. 긴장되어 있는 몸과 마음을 이완시키고, 늘어져서 휴식을 취하는 날이 필요한 것이다. 그리고 누르고만 있었던 감성을 잘 다독여서 슬픔이나 외로움, 고통을 누리는 시간도 필요하다. 그것이 바로 삶의 여유이다!

산책에서 돌아오면서 나는 이렇게 생각을 정리했다. 순간순간 솟아나오는 눈물은 나로서도 어쩔 수 없었다.

누워서 잠이 들 때까지 시편 구절과 노래 가사가 짬뽕이 되어 나를 울렸다.

언젠가는 우리 모두 세월을 따라 흘러가지만……

나는 잠들기 전 감사기도를 하면서도 눈물을 흘렸다. 감사의 눈물이 아니라 내 감정을 주체 못해서 흘리는 눈물이었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흐르는 눈물은 흐르게 놔두자.

 

모처럼 꽃단장을 했다. 평소 도서관에 갈 때는 세수만 겨우 한 몰골로 보따리를 짊어진 1.4후퇴 피난 가는 형색이었지만 마음먹고 롱코트도 주워 입고, 립글로스도 발랐다.

점심 때 수강생들과 점심을 먹기로 했기 때문이다.

12월로 수필 강의는 끝났는데 열성이 넘치는 수강생들은 동아리를 만들어서 자체적으로 공부를 하고 있었다. 기특하기도 하지^^

이메일로 보내준 작품을 읽어보고 가볍게 멘트라도 해 줄 생각으로 기다리는데 도무지 문자가 오질 않다가 1시가 훨씬 넘어서야 겨우 문자가 왔다.

선생님. 도서관으로 갈게요. 이제 수업이 끝났어요.

40대 주부들로 이루어진 수강생들은 보통 열심히 아니어서 늘 눈을 반짝거리면서 강의에 몰두해 나를 즐겁게 했다. 선생이 없이 공부하는데도 어찌나 열심인지 세 시간 동안이나 회원 작품을 파고들었단다.

같이 점심을 먹으면서 수필을 비롯해서 문학 전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뒤늦게 글쓰기에 맛을 들인 그녀들은 정말 생기가 넘쳐보였다. 나는 그 모습이 대견해서 자꾸 웃는데 그 중 한 수강생이 말했다.

“선생님. 정말 귀여워요.”

그녀들과 헤어지고 화장실에 들러 거울을 보았다. 아무리 보아도 귀엽기는커녕 엽기스런 모습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 말의 의미를 안다. 사랑이 깃들면, 정이 깊어지면 상대방이 아름답게 보인다는 것을.

하나님은 바로 그것을 원하시는 것이리라. 세상의 모든 사람을 그렇게 사랑의 눈으로 바라보기를. 마치 하나님이 변변치 못한 나를 보고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는 것처럼.

 

집으로 돌아와 한완상 교수의 “예수 없는 예수 교회”를 다 읽었다. 가슴 아픈 책이었다.

교회 힐링 메시지라고 씌어 있는데 맞는 말이다. 나는 한 교수의 예수님 사랑과 그리고 한국 교회에 대한 애정에 대하여 깊은 경의를 표했다. 진심으로 토해내듯 쓴 글이어서 더욱 가슴에 와 닿는 책이었다. 한 교수도 성경에 있는 예수님의 말을 전부 존칭어로 바꾸어 표현했다. 내 생각에도 서른 몇 살 된 예수님이 나이 많은 사람들을 대할 때 거만하게 반말로 지껄이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나 역시 성경을 읽을 때는 예수님의 말을 전부 존대어로 바꾸어 읽곤 하는데 그럴 때마다 이전과는 다른 깊은 감동을 맛보게 된다.

바라기는 한국 교회가 좀 더 예수님이 원하는 공동체로 한 걸음씩 전진했으면 좋겠다. 율법처럼 옭죄는 수많은 교리와 교회법에서 벗어나 진짜 지키고 알아야 할 것들을 소중하게 여기는 교회가 되기를 꿈꾼다.

교회가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 교회가 물들어가는 듯한 모습을 볼 때, 나 역시 가슴 아프다.

누군가 말했지 않나. 예전에는 교회가 세상을 걱정했지만 요즘은 세상이 교회를 걱정하고 있다고. 참으로 뼈아픈 일침이다.

그렇지만 나는 교회의 자정 능력을 믿는다. 예수를 못 견디게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 바로 교회가 아니런가! 나 역시 교회에서 많은 사랑을 받았고, 예수님을 만났다.

교회를 움직이는 사람이 목소리 큰 사람은 아닐 것이다.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히 자리를 지키고 앉아 흔들림 없이 경건하게 예배드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귀담아 듣는 자, 아무도 보아주지 않는 구석에서 봉사의 손길을 펼치는 자들은 얼마나 귀한 존재들인가.

 

새해 들어 첫 눈이 왔다.

마침 도서관이 휴관인 날이어서 나는 일찌감치 산책길에 나섰다. 햇살을 받아 반짝이는 눈 위를 걸어갔다. 눈이 쌓인 산책길은 한적하다. 눈으로 하얗게 덮인 길, 아무도 지나지 않은 눈길을 걸으면서 마음의 충만함을 느꼈다. 눈을 밟으니 정말 뽀드득 뽀드득 하는 소리가 난다. 주홍빛 같은 네 죄 눈과 같이 희겠네, 하는 찬송을 마음속으로 부르면서 걸어갔다. 주홍빛 같은 나의 죄가 눈처럼 하얗게 희어진다는 그것이 바로 복음이 아닌가!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이 환하게 비추는 햇살처럼 내 온몸에 뻗어나가는 것을 느꼈다.

갑자기 암이 재발하여 고통당하는 친구 생각이 나 눈길을 걸으면서 친구와 통화했다.

친구는 힘든 가운데서 오락가락하는 자신의 심경을 토로했다. 솔직한 마음이겠지.

나는 만약 내가 그런 상황이라면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그런저런 생각을 하니 마음속이 복잡해졌다. 세상에는 나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불가항력적인 일들이 적지 않다.

어느 날 갑자기 - 친구처럼 -병이 들이닥치기도 하고, 예기치 않은 사고가 생기기도 한다. 편안할 때 주님을 찬양하는 것이 얼마나 큰 행복인가는 꼭 당시에는 잘 깨닫지 못하다고 어렵고 힘든 일이 닥쳐서야 비로소 느껴지는 것을 보면 인간은 얼마나 우스운 존재인지. 남의 일을 보면서도 자신에게는 그런 일이 설마 닥치겠는가, 그렇게 생각하기도 한다.

친구는 병에 걸린 후 더욱 믿음이 돈독해졌다.

무섭기도 하고, 두렵기도 하고, 그리고 감사하기도 하다는 것이 친구의 복잡한 심경이다.

일 년 전 그렇게 큰 수술을 했는데 다시 또 수술을 한다는 것이 보통 일인가. 게다 누구나 두려워하는 말기 암이다.

친구에게 같이 열심히 기도하자고 위로, 격려하고 집으로 오는 길은 마음이 편치 않았다.

나만 편하게 눈이 왔다고 좋아서 산책하고, 즐겁게 산다는 것이 어쩐지 미안해서 마음속으로 계속 친구를 위하여 기도했다.

하나님, 힘주세요, 도와주세요, 그의 마음에 평안을 주세요, 담대함을 주세요!

 

필 받은 김에 집에 돌아와 내가 좋아하는 찬송가를 대 여섯 곡 골라 쳤다.

 

우리는 주님을 늘 배반하나 내 주 예수 여전히 날 부르사

그 참되신 사랑을 베푸시나니 내 형제여 주님을 곧 따르라

 

만세 반석 열리니, 도 쳤다. 나는 언제인가 이 찬송가를 부르면서 내가 죽을 때 이 찬송가를 불러 달래야지, 하는 생각을 했었다.

 

빈손 들고 앞에 가 십자가를 붙드네

의가 없는 자라도 도와주심 바라고

생명 샘에 나가니 맘을 씻어 주소서

 

가끔 기도하기 힘들 때, 나는 찬송가를 잘 부른다. 찬송가는 나에게 새로운 감사, 새로운 은혜를 선물한다.

화분에 물을 주던 남편도 찬송가를 따라 불렀다. 피아노 소리를 좋아하는 열두 살 먹은 개도 내 발치에 엎드려서 은혜 받고 있다. ^^ 예전 개가 좀 더 씩씩했을 땐 피아노 의자까지 폴싹 뛰어올라 눈을 반짝이며 찬송가 소리에 귀를 기울이곤 했다.

그 녀석은 내가 기도의자에 꿇어앉아 기도하면 기를 쓰고 옆에 달라붙어 앞발을 쭉 내밀고 엎드린 자세(얼마나 진실한 모습이던지!)로 함께 기도에 동참하기도 한다.

 

 

 

성령의 도우심으로 우리는 변하고 있습니다

 

 

 

친척들이 회의 차 우리 집을 방문했다. 원래 우리 집은 철저한 유교집안이었다.

나의 할머니는 철저한 불교신도로 어릴 때 할머니를 따라 절에 많이 다니기도 했다. 하지만 아버지는 내가 중학교 때 동네의 교회(결국 그 교회를 아직도 다니지만)에 다니게 된 것을 나무라지 않았다. 우리의 인격을 존중해서 신앙의 자유를 인정한 것이다. 아, 정말 멋진 우리 아버지!

고등부 때 교회 행사로 연극을 했을 때는 가족이 모두 와서 구경하기도 했다. 결국 아버지는 말년에 나의 인도를 받아 우리 교회에 다니게 되었고, 그리고 아주 즐겁게 교회 생활을 해서 권사 직분까지 받았다. 그런 면에서 나는 우리 집에서 초대 신앙인이다.

작은 아버지를 위시한 사촌 동생네는 유교의 풍습을 따랐다. 제사 지내고, 시제도 지내고, 사고방식도 철저하게 유교적이었다. 그런데 힘들고 어려운 일을 많이 겪으면서 사촌 동생 가정이 주님을 영접했다. 나는 그 사실이 정말 놀라웠다. 그 가정이 힘든 일을 여러 번 겪게 되면서 사촌 올케가 먼저 교회에 나가게 되고 뒤이어 자녀들, 마지막에는 사촌동생까지 다니게 된 모양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면 어려운 일을 당하는 것이 나쁜 일은 절대 아닌 것 같다. 그것은 위기의 순간이기도 하지만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기회도 되니까 말이다.

예전과는 판이하게 달라진 모습으로 변한 사촌동생의 모습을 보면 나는 경이로움에 사로잡힌다. 겸손해지고, 남을 배려하고, 그리고 좋은 일이 생기면 하나님의 도와주심이라고 생각하는 순수한 믿음을 가지게 된 그를 바라보면서, 그 변모는 분명 성령의 역사라고 확신했다. 사람을 변화시키는 하나님의 능력!

아직 결혼하지 않은 동생들과 결혼한 동생 가족도 자리에 참석했는데 나는 대단히 민감한 성격을 가진 남동생에게 나는 조언을 했다. 우리끼리는 개똥 철학자라고 놀림을 받곤 하는 남동생이다.

나의 강력한 권유로 우리 교회에서 결혼도 했지만 지금은 교회에 다니지 않는다. 정말 나무랄 데 없는 인격을 지닌 남동생을 보면 나는 늘 나를 반성하게 된다.

 

몇 년 전 우리 교회 부목사님이 나에게 전해 준 말이 있다.

“어제 동생 댁에 심방을 갔었지요.”

마침 다음 날 우리 집으로 심방오신 목사님은 놀란 표정이었다.

“내가 그렇게 심방을 많이 다녔어도 그런 기도제목은 처음 들어보았습니다.”

“대체 제 동생이 뭐라고 했는데요?”

“심방하면서 기도제목 있으면 말해달라고 했더니 이렇게 말하더군요. ‘저는 편하게 잘 살고 있습니다. 굳이 말씀 드린다면 온 세상 사람들이 마음 편하게 잘 살았으면 좋겠어요. 싸우지 않고, 사랑하면서 말이지요.’ 다른 곳에 심방을 가면 교인들은 대개 집이 팔리기를 원한다거나, 자녀 취직이 되었으면 좋겠다, 병이 낫게 해 달라, 등등 개인적인 문제를 기도제목으로 내놓거든요. 그런데 인류의 평화와 행복을 기원하는 기도제목은 난생 처음 들었습니다.”

목사님은 정말 놀랐다고 했다. 나는 웃었다. 동생이라면 그렇게 말했을 것이다.

동생이 편하게 잘 살고 있다, 는 말은 사실이었다. 물론 그도 나 못지않게 가난하여, 재산은 단 한 푼도 없고, 허드렛일을 하면서 산다. 하지만 그는 나보다도 더 많은 감사를 하면서 하루하루를 천국처럼 누리고 살고 있다는 것을 옆에서 지켜보고 있는 나는 알고 있다.

늘 동생은 말했다.

“이렇게 좋을 수가 있다니! 정말 아름다운 세상이야!”

정말 아무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소유한 자가 바로 동생이다.

하지만 동생에게도 한 가지 흠은 있었다. 건강에 매우 예민하다는 것이다.

며칠 전, 동생의 아내가 심한 두통으로 병원을 갔다고 한다. 의사의 진단은 별 일이 아니니 괜찮을 것이라고 했다고. 그런데도 남동생이 우기는 바람에 부득불 MRI 검사까지 했다는 것이다. 비용도 만만치 않고 게다 의사도 찍을 필요가 없다고 하는데 동생은 마음을 놓을 수가 없었다는 것. 나는 너무 어이없고 우스웠다.

“아니, 의사가 찍을 필요가 없다고 하는데 대체 왜 찍은 거야?”

“그래도 확실하게 하려고. 의사 말이 찍어서 나쁠 거야 없겠지요, 라고 했다니까.”

올케가 옆에서 미치겠다고 가슴을 쳤다.

“과민성이어요. 완전 과민성.”

올케가 그렇게 안 찍겠다고 하는 것을 억지로 찍게 했다는 것이다. 검사 비용은 동생 월급의 1/5이었다. 나는 어이가 없었다.

“아니, 병원에서 의사 말을 안 들으면 누구 말을 들어? 괜찮다고 했다면서!”

“그래도 확실하게 하려고……”

건강에 대해 너무 민감해서 일어난 해프닝은 내가 아는 것만 해도 여러 번이었다.

내가 조언했다.

“불안하기 때문이겠지. 불안한 마음. 그 불안해하는 마음은 네 스스로 컨트롤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닌 것 같다. 이제까지 죽 옆에서 지켜 본 바에 의하면.”

동생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불안을 없애는 방법은 신에게 맡기는 수밖에 없지.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을 누리면 더 이상 불안하지 않을 텐데.”

동생은 계속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동생이 교회에 나오지 않는다고 해서 그리스도인이 아니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믿음의 동역자들과 교제하면서 많은 위로와 기쁨도 함께 누리기를 바란다. 일테면 이렇게 조언하고, 조언 받고 하는 것이 모두 그런 범위가 아닐까.

친지들과 몇 시간 동안 모여서 회의한 것은 선산의 개발에 따른 재산 문제였는데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잘 진행되었다. 일의 성사여부와 관계없이 나는 마음이 기뻤다.

어르신을 포함한 사촌 가족이 돌아간 후 나는 동생들에게 선언했다.

이제껏 우리는 가난하지만 나름대로 잘 살아왔다. 앞으로 어떤 일이 생길지 모르지만 혹여 돈 문제로 형제나 친척 사이의 의가 깨지는 일은 절대로 있어서는 안 된다. 우리도 사람이기에 돈을 보면 예전 생각은 잊어버리고 욕심이 날지도 모른다. 하지만 늘 마음을 잘 정돈해서 그런 사단이 끼지 않도록 조심하여라!

사촌 가족이 어떻게 해결하건 우리는 마음을 비우고 감사한 마음으로 받아야 할 것이다. 또한 우리 형제간에 있어서도 배분에 어떤 차이가 있어서 분란이 생기는 것을 나는 반대한다. 우리는 현재 상태에서 감사하고, 그리고 앞으로 하나님이 주실 복에 대하여도 순종하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자!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를 명심하여라!

마음 착한 동생들은 모두 내 말에 동의했다.

아닌 말로 사촌 가족들이 우리의 몫을 하나도 남겨주지 않는다 해도 우리는 마음 상하거나 미워하지 말기로 서로 다짐했다.

 

가난하기 짝이 없는 동생들이 몸이 편찮은 매형을 위하여 모처럼 맛있는 저녁도 사주고, 그리고 같이 라이브 카페에 들러 맥주도 마시면서 노래도 하고, 진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헤어지면서 막내 동생이 남편 주머니에 뭔가 찔러주고 갔다.

3만원! 동생은 주머니를 톡톡 털어 매형에게 주고 간 것이다. 그 돈의 가치는 3만원이 절대 아니었다. 사랑!

남편이 3만원을 소중하게 지갑에 넣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하니 돈이 좋긴 좋다!

 

친척들과 회의가 끝난 후, 나는 기도의 시간이 온 것을 깨달았다. 많은 사람들이 돈이 있으면 더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돈이라는 것이 얼마나 좋은가. 하지만 돈은 일단 가치중립적인 것을 인정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서 독이 될 수도 있으니까 정말 늘 자신을 돌아보고 조심해야 하는 것이다. 더구나 나의 노력과 상관없는 돈이 생겼을 때 사람들은 얼마나 많이 실수하고 잘못된 길로 가는지 익히 알고 있는 나로서는 더욱 더 기도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그날 밤, 가정예배를 드리면서 남편에게 말했다.

“우리의 삶과 죽음과 어려움과 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깁시다. 이제까지 힘들게 살면서도 감사하고 살았는데 혹여 좋은 일이 생기면 좋은 것이고, 그렇지 않다고 해서 우리가 못 살 것은 무엇입니까! 늘 마음을 비우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뜻을 분별하며 삽시다!”

 

 

 

까르페 디엠!

 

 

 

주말, 문인의 시집 출판기념회가 있었다.

쉰 중반이 넘는 시인의 첫 시집 출판이었다. 시인은 마치 고희 잔치처럼 자신의 노부모를 상석에 앉히고 부모님께 시집을 증정해 드렸다. 보기 좋은 모습이었다.

고등학교 국어 교사인 시인은 자신이 속해 있는 모든 카테고리의 지인들을 모두 초대한 모양이었다. 성당 주임 신부부터 시작해서 학교 동료직원, 제자들, 문인들, 친척들이 총 망라되니 초대한 인원이 홀에 가득 찼다. 각 분야에서 대표 격 되는 사람들이 나와 각자 축하인사를 하고, 그리고 시 낭송, 가야금 연주까지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출판기념회를 했는데 거의 한 시간 이상은 소요되었다. 나로서는 신기한 일이었다.

나에게 소설을 가르친 소설가 선생님의 출판기념회도 몇 번 참석해 보았는데 분위기가 아주 달랐다. 사부님은 자신이 가르친 제자들만 모아놓고 사인을 해주고, 모인 제자들은 자신의 작업에 대한 고민을 토로하고, 문단의 동향을 서로 나누고, 글쓰기에 대한 정보를 나누고, 그리고 경향을 분석하고 서로 격려해 주느라(물론 암암리에 서로에 대한 질투심을 감추고 술잔을 기울이지만)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열띤 분위기였다. 그야말로 글생글사, 라고나 할까.

따끈따끈한 시집을 들춰보았다. 대단히 평이한 시들, 그러므로 시 세계에서는 그다지 주목받을 수 없는 조용한 정서가 흐르는 시들이 태반이었다. 시에서 정서는 기본이지만 그것은 일종의 베이스이다. 뛰어난 감성, 놀라운 이미지, 은유들은 찾아보기 힘든 시였다.

독자들이 읽기에는 무난하지만 글을 쓰는 사람들이 음미하기에는 깊이가 없어보였다. 시인들에 의하면 시집은 아는 사람들끼리 주고받는 것에 그칠 정도로 판로가 보장되어 있지 않다고 한다. 가련한 일이다. 하지만 소설도 대중의 외면을 받기는 마찬가지다. 책을 팔아서 먹고 사는 사람이 대한민국에는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찌 보면 작가들은 대중에게 왕따 당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마치 고희 잔치같이 시끌벅적한 분위기에서 문인들은 한 구석에 모여 술잔을 나누었다. 우리는 서로에게 쫌팽이들이라고 놀려대면서 말이다. 내가 아는 작가들은 하나같이 소심하고, 예민하고, 그리고 자의식이 강한 아웃사이더였다. 세상과 불화한 사람들이 글을 쓴다고 누가 말했는데 백번 수긍되는 말이다. 문인들은 절대 사업할 수 없다. 틀림없이 망한다. 코드가 맞지 않기 때문이다. 글 쓰는 문인들과의 대화를 누군가 듣는다면 어처구니가 없을 것이다. 생의 이면을, 인간의 이면을 들추어내고 싶어 안달하는 게 바로 문인들이므로 선과 악, 정의와 불의가 혼재되어 있다. 우울한 회색분자들!

개성이 강한 년놈들이 모여 이차를 갔다. 대화는 즐거웠다. 자신이 추구하고 있는 작품 세계에 대하여, 하늘아래 새로운 것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뭔가 새로운 어떤 것을 추구하지만 늘 부딪히는 자신의 한계 때문에 우울한 년놈들은 술이나 마시자, 주의로 나갔다.

 

나에게도 풀 수 없는 문제가 있었다. 엄밀하게 말한다면 신앙과 문학은 정 반대의 위치에 있다. 문학은, 특히 내가 몸담고 있는 소설 분야에서는 거의 기쁨과 환희를 말하지 않는다. 내면의 고통과 현실에 대한 아이러니, 실존과 그 존재의미와 다중적인 인격에 대하여, 그리고 소통되지 않는 관계에 천착한다.

하지만 종교인은 마인드 자체가 다르다. 특히 기독교인은 최선을 다하고, 늘 기쁘게 살아가고, 그리고 충만한 힘을 얻고 세상에 구원의 메시지를 전한다. 이웃과는 화목하며, 가족과 우애 있고, 사랑하고, 자신을 늘 정화시키려고 노력한다.

나는 나의 삶에 작가라는 본분보다는 종교인이라는 것에 더 비중을 두고 있다. 아침에 눈을 뜨면 남편과 곧잘 노래를 부른다. 누워서 말이다. 남편이 가르쳐준 노래인데 무척 마음에 와 닿는 가사여서 즐겨 부르게 되었다. 부르면서 생각한다. 정말 그래야지, 그렇게 살아야지. 그리고 새날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기도를 한다. 뭔가 풀리지 않을 때나, 내 마음이 정처 없이 헤매고 있을 때도 나는 기도한다.

주님.

나도 모르게 무의식적으로 튀어 나오는 소리다. 하루에도 열 두 번씩 주님을 외쳐야 하는 상황이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주님, 주님……

 

2차 술자리가 끝났는데 대화는 끝이 나질 않아 결국 3차를 갔다.

문인 중에 시 쓰는 의사 양반이 하나 있는데 글도 죽이 잘 맞지만 욕하는 데도 죽이 아주 잘 맞아서 마주 보고 앉아 연신 애정이 듬뿍 담긴 욕과 함께 에고, 슈퍼 에고 찾으면서 열띤 토론을 벌였다.

글은 물론 혼자 쓰는 것이지만 문인들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시너지 효과가 생겨서 그 날 밤부터는 또 다시 심기일전하여 글쓰기 모드로 진입하게 된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그런데 이 의사 양반 평소에는 담배를 입에도 안 대다가 술 한 잔 들어가 나와 합석했다 하면 내 담배를 자기 담배처럼 피워 버렸다.

이런 벼룩의 간을 빼먹을 인간 같으니라구! 라이터로 불을 붙여주면서 내가 한 마디 했다.

“나, 미치겠다, 담배 한 갑 사주지도 않으면서 맨날 내 담배만 축내니 나는 못 살아요!”

“아, 나중에 아예 한 보루 안겨 줄 테니 기둘려요!”

어째 어디서 많이 듣던 소리였다 했더니 바로 내 아들에게 내가 한 말이었다.

얼마 전, 도서관 가면서 담배가 떨어졌기에 아들 방에서 아들이 쟁여놓은 담배 몇 개비 슬쩍 주머니에 넣어갔다. 언제인가 한 번은 아들에게 담배 훔치다 현장에서 들켜버렸다.

“엄마! 요즘 담배 값이 얼마나 비싼데!”

“저금했다고 생각해라. 나중에 아예 한 보루 사 주마!”

“부도내면 안 돼!”

그런지 몇 달 지났는데 담배 한 보루는커녕 단 한 갑도 사주지 않았다. 아들과 나는 취향이 달라 담배를 다른 것을 애용한다. 담배를 살 때도 내가 좋아하는 담배 사기에 급급한 나머지 늘 내 담배만 챙겨오기 때문이다.

(미안, 아들아. 언젠가는 약속을 지킬 날이 있을 것이다!)

 

술자리는 자정을 훌쩍 넘기고도 이어져, 결국 두 시가 다 되어서야 끝이 났다. 끝이 나려고 해서 끝난 것이 아니라, 시간이 너무 흘러 중간에 대화를 잘라버린 것이었다. 문학은 입으로 하는 것은 절대 아니지만 사람들은 글로도 쓰지 못하는 어떤 것들에 대하여 끝없이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했다. 대화가 되는 사람들과 같이 시간을 보낸다는 것은 정말 즐거운 일이다.

지금은 모르지만 예전 이혼 사유로 제일 많이 꼽히는 것이 성격차이가 아니던가! 다른 성격이 만났더라도 충분히 대화할 수 있으면 오히려 성격차이가 더 조화를 이루며 살 수 있을 텐데, 문제는 결국 사람들과의 소통부재가 오해도 낳고, 불신도 낳고, 그래서 힘에 부쳐 쓰러지는 것이 아닐까.

간만에 술을 많이 마셨는데 이상하게 정신은 더욱 또렷해졌다. 집에 오는 길, 또 벤치에 머물렀다. 깊은 밤중, 인적이 끊어져 고요하고 적막한 밤을 즐기며 담배를 피웠다. 여럿이 모여 있다가 헤어져 다시 홀로 된 시간도 역시 나에게는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집에 오니 잠자던 남편이 고개를 번쩍 든다.

“지금 몇 시야?”

“으음. 한 시 좀 넘었나?”

두 시 가까이 되었다고는 양심상 말 못하고 대강 얼버무렸다.

“일찍도 들어오시네, 대강 하고 오시지 말이야.”

“3차까지 가느라고, 미안!”

“뭐 그렇게 3차까지 악착같이 쫓아다닐 게 뭐람.”

“그러게나……”

실은 문인들과 모여서 약속한 것이 하나 있었다.

조만간 일박이일로 펜션하나를 빌리든지 해서 밤새도록 못다 한 이야기 좀 원 없이 해보자는 것이다. 남편이 허락할지 모르지만 일단 오케이, 했다. 생각만 해도 즐거운 약속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