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대를 살아온 사람으로 518 민주화운동에 빚진 게 참 많다.
그래서 쓴 소설.
(단편소설86매)
눈물의 날
엄마는 첼리스트였다. 아주 오래전 일이다.
살다보면 너무 늦게 사실을 알게 되는 수가 있다. 또 살다보면 사실을 몰랐더라도 어느 순간 잘 맞아떨어질 때가 있다. 아무것도 모른 채 엄마의 관 속에 활을 넣어주었던 것처럼. 별 생각은 없었다. 담배나 성경책처럼 엄마의 옆에 늘 있던 것이었다. 그것이 첼로의 활인지 바이올린의 활인지, 혹은 어떻게 해서 갖고 있게 되었는지에 대해 엄마는 말해주지 않았다. 악기도, 휴대용 보면대나 송진가루나 몇 장의 악보도 없이 활만 남아있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엄마와 칠 년이나 같이 살았던 시추는 자신을 늘 위협하던 작대기가 없어진 것을 다행으로 여길 것이다.
제 6 로전실의 문이 열렸다. 어둡고 좁고 긴 공간이 드러났다. 터널속의 기찻길처럼 레일이 곧고 길게 뻗어있었다. 장제장 직원이 엄마의 관 앞에서 경례했다. 사열식에서 볼 수 있는 절도 있는 동작이었다. 레일 위에 놓인 관은 아주 작아 보였다.
로전실 문이 닫혔다. 장제장 직원이 관망실을 향해 목례했다. 관망실의 유리창에 커튼이 쳐졌다. 두터운 질감의 검은 커튼이 시야를 가로막았다. 대신 오른쪽 상단의 흑백 모니터가 켜졌다. 엄마는 그 곳에 있었다. 관은 롤러에 미끄러져 깊은 어둠 속으로 들어가는 중이었다. 색은 존재하지 않았다. 덜 어두운 곳에서 더 어두운 곳을 향해 서서히 움직이는 관이 가장 어두웠다. 컬러 모니터였더라도 별반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어느 순간 모니터가 꺼졌다. 뒤쪽에 서있는 남편의 모습이 꺼진 화면에 비쳐졌다. 그는 고개를 젖힌 채 와이셔츠의 단추를 풀고 있었다. 느슨하게 풀어진 넥타이를 다소 거친 동작으로 잡아 뺐다. 엄마가 사라진 모니터의 바로 그 지점에서 남편의 눈과 마주쳤다.
“차에 가 눈 좀 붙여야겠어. 지하에 식당이 있다던데 당신이나 가서 뭘 좀 먹든지.”
넥타이를 주머니에 쑤셔 넣고, 와이셔츠 단추를 두 개나 풀어헤치고 상복의 소매까지 걷어 올린 그가 말했다.
“어차피 아무것도 볼 수 없잖아.”
모니터에서 남편이 사라졌다. 잰걸음으로 내딛는 그의 발소리는 가벼웠다. 좀 과장한다면 남편에게는 장모나 시추나 엇비슷한 무게였다. 화장 시간은 두 시간 남짓 걸린다고 했다. 한동안 그대로 서서 굳게 닫힌 커튼과 영정사진을 보았다. 명패를 읽고, 꺼진 모니터를 몇 번이고 쳐다보았다. 모니터에는 엄마도 남편도 보이지 않았다.
대기 의자에 앉았다. 하릴없이 또 다시 명패를 읽었다. 고(故) 강하란.
복도 저쪽에서 웅성거림이 들려왔다. 등 뒤로 장례 행렬이 지나갔다. 젊은 여자의 높고 날카로운 울음이 어수선한 구둣발소리와 섞여 길게 이어졌다. 무심히 쳐다본 모니터에 한 남자가 비춰졌다. 남편의 눈과 마주쳤던 지점, 아니 엄마의 관이 사라졌던 지점에 선글라스를 낀 남자가 있었다. 잠시 머뭇거리던 남자는 이내 모니터에서 사라졌다. 관망실을 잘못 찾은 모양이었다.
지나는 무리 끝으로 나지막한 흐느낌과 노인의 곡소리가 질기게 따라붙었다. 멀리서 찬송가 부르는 소리와 염불소리가 어지럽게 섞여서 들려왔다.
지하 식당은 혼잡했다. 자신과 연결된 누군가가 재로 변해가고 있는 시간에, 누군가는 줄서서 밥을 먹고 이를 쑤셨다. 메뉴판을 세심하게 살펴보았다. 설렁탕, 갈비탕, 육개장, 우동. 식권을 사기 위해 줄을 서면서 침을 삼켰다. 갑자기 허기가 몰려와 옴짝도 할 수 없었다. 우동 그릇을 담은 식판을 들고 빈자리를 찾아 한참 헤맸다.
땀을 흘리면서 우동을 먹었다. 가다랑어 국물이 시원했다. 수저로 뜨다가 아예 그릇을 기울여 다 들이켰다. 목구멍으로 국물이 내려가는 소리가 크게 들렸다. 커다랗고 깊숙한 우동 그릇을 쳐들었다. 마지막 한 방울까지 다 마시고 나서야 남편이 떠올랐다. 차 시트를 한껏 뒤로 젖히고 세상모르게 곯아떨어졌을 것이다.
오월치고는 무척 후덥지근한 날이었다. 저고리 소매를 세 번 접어 걷어 올렸다. 식탁에 닿은 팔 뒤꿈치가 끈끈했다. 통기성이 전혀 없는 싸구려 상복 치마가 속치마도 입지 않은 맨살에 진득하게 들러붙었다. 꽉 조여 맨 가슴께가 답답했다. 치마를 말아 무릎까지 걷어 올렸다. 의자 위에 발을 올려놓고 살살 주물렀다. 피로가 좀 가시는 느낌이었다. 정신없이 주무르다 언뜻 텅 빈 우동 그릇을 바라보았다. 번쩍이는 스텐 그릇에 우스꽝스럽게 부풀어진 얼굴이 비쳐졌다.
고개를 들었다. 한 남자가 서 있었다. 로만칼라에 짙은 선글라스를 쓴 남자는 관망실의 모니터에 잠시 비춰졌던 사람이었다. 영정사진을 보고 명패를 확인하고 사라졌던 저 사람은. 발을 주무르던 손이 저절로 멈춰졌다. 처음 보는 얼굴이지만 알 수 있었다. 아빠였다. 나를 오랫동안 바라보던 아빠가 입을 열었다.
“엄마는 첼리스트였다. 아주 오래전 일이다.”
하란은 인쇄소 후문 앞에 서있었다. 정확한 시각이었다.
“형.”
하란은 첼로 케이스를 흔들었다. 바보 같으니라고. 누가 보더라도 속이 비었는지 알 수 있으리만큼 가볍게 들려진 케이스를 서둘러 잡아챘다. 인쇄소 화장실은 열쇠로 열고서야 들어갈 수 있었다. 더럽고 비좁은 화장실 변기를 사이에 두고 마주 서서 케이스를 열었다. 활만 덩그마니 케이스 안쪽에 끼어있었다. 16절지 유인물 이천 오백장이 들어가고도 스크롤 부분이 놓이는 공간의 굴곡은 남았다. 하란이 이마를 찡그렸다.
“첼로보다 더 무거워요.” 조직은커녕 아직 강의실도 제대로 찾지 못하는 풋내기 대학 초년생이었다. 허리를 잘록하게 묶고 리본으로 매듭까지 짓고 있는 연두 빛 원피스 아랫단은 레이스였다. 복숭아 뼈까지 올라오는 하얀 양말이 정갈했다. 누가 보아도 운동권과는 거리가 멀었다. 적선동 한옥까지 다정한 모습으로 걸었다.
“전해주고 곧 나와야 해.”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납작하고 단정한 단화를 벗고 하란은 방으로 들어갔다.
나는 시계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일분 삼십초에서 이분동안 그녀는 방에 머물 것이다. 그녀는 자신이 만나고 있는 사람이 어떤 위치에 있는 누군지도 몰랐다. 담배를 한 대 피워 물었다. 안에서 작업할 때 누군가는 밖을 지켜야 하는 것, 그것은 철칙이었다. 예사롭지 않은 눈길이 느껴졌다. 안면이 있는 기간원이 행인을 가장하여 지나는 모습이 보였다. 발소리를 내지 않고도 뛰는 법을 나는 알고 있었다. 그가 주머니 깊숙이 뭔가 찔러 넣었다. 지폐는 제법 묵직했다.
“멀리, 한 닷새만 있다 온나.”
담배가 반도 타들어가지 않은 시간이었는데 하란은 이미 툇마루에 앉아있었다. 신발 끈을 고리에 끼워 넣느라 그녀는 고개를 숙인 채였다. 고리는 잘 끼워지지 않는 모양이었다. 서둘러 다가갔다. 끈을 쥔 그녀의 손이 사정없이 떨리고 있었다. 겨우 끈을 고리에 꿰었다.
제대로 걷지 못하는 하란을 연인처럼 끌어안았다. 허리가 확 꺾이는 그녀의 안색이 파리했다. 몇 발짝을 걸었을까, 등덜미 너머로 좁은 골목을 무서운 속도로 달려오는 차의 굉음이 들렸다. 다급하게 차문이 열리는 소리와 발자국소리가 두서없이 섞였다. 건장한 목소리들이 낮고 무겁게 깔렸다.
“이쪽으로!”
어디서부터 잘못되었을까. 하란과 골목을 빠져나간 직후 투입될 계획이었는데 그들은 예정된 시간보다 오 분이나 먼저 도착했다.
구둣발로 방문을 걷어차는 소리와 함께 외침과 고함, 비명은 길에서도 확연히 들을 수 있었다. 하란이 조금씩 내 쪽으로 기울어졌다. 하얗게 질린 그녀가 무엇인가 말을 할 듯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조용히 앞만 보고 걸어가. 우리까지 잡히면 끝장이야.”
이상한 일이었다. 내 목소리는 차문을 박차고 내리던 기간원의 목소리와 너무도 닮아있었다.
적선동 주택가를 빠져나올 때까지 그녀는 계속 떨었다. 나는 택시를 잡고 흥정했다.
“강릉까지요?”
시내 곳곳에 바리케이드가 쳐져 별 재미를 못 보던 기사의 입이 헤벌어졌다. 하란을 내려놓고 강릉에서 일단 차를 보낸 후, 다시 간성 쪽으로 올라갈 생각이었다. 하란의 집 근처를 두 바퀴나 돌았다. 그녀는 첼로 케이스를 꼭 끌어안고 도무지 내리려하지 않았다. 기사가 자꾸 백미러를 흘낏거렸다.
뭔가 조금씩 어긋나고 있었다. 몇 번의 실랑이를 하는 사이에 차는 시의 경계를 벗어났다. 크고 작은 도시를 빠른 속도로 지나쳤다. 하란의 꼭 다문 입이 어두운 차창에 비쳐졌다. 그녀의 잘못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녀는 클래식 동아리 선배와, 하숙촌과 대학가를 샅샅이 꿰고 간혹 스크럼에 끼어 구호를 외치는 프락치를 같은 인물이라고 생각할 수 없던 것뿐이었다.
나는 그제까지 곧추 서있던 몸을 등받이에 기댔다. 어차피 그녀는 단순가담자로 분류될 테고, 길어야 구류 며칠이었다. 모자를 눌러쓰고 잠을 청했다.
밤의 국도는 한적했다. 쉬지 않고 달려온 차는 바다가 보이는 솔밭가의 허름한 민박집에 섰다. 자정이 가까운 시간이었다. 기사에게 흥정했을 때보다 얼마간의 돈을 더 집어주었다.
“잘 모시고 돌아가세요.”
하란이 힘겹게 첼로 케이스를 들었다. 마치 그 안에 첼로가 들어있는 것처럼, 아니 이천 몇 백 장의 유인물이 그대로 들어있는 것처럼 질질 끌고 차에서 내려섰다. 촉수 낮은 알전구가 툇마루를 비추고 있었다. 어디선가 통금사이렌이 울렸다. 작은 댓돌위에 신을 벗었다. 양말은 이미 하얀색이 아니었다. 발등을 가로지르는 구두 끈 자국이 선명했다.
민박 집 방 모서리에 각각 대각선으로 쭈그리고 앉아 아침을 맞았다. 터미널은 혼잡했다. TV앞에 많은 사람들이 몰려 있었다. 비상계엄 전국 확대, 3 김의 연행 구금 소식이 계속 반복해서 보도되었다. 모여 있는 수에 비해 사람들은 거의 말이 없었다. 침묵 속에 가끔 헛기침이 터져 나왔다. 하란도 말이 없었다. 난 그저 눈만 조금 크게 뜨고 의미를 알 수 없는 난삽한 뉴스에 한 십 여분 귀를 기울였을 뿐이다. 이럴 수는 없는 것이다, 라고 생각했으면 좀 의식이 있는 인간이었겠지. 당시 나는 두 명의 병자를 포함한 일곱 식구의 목구멍에 풀칠을 해줘야 하는 실질적 가장이었다.
하란을 애써 버스에 태웠지만 버스가 떠나려 할 때 그녀는 다시 내렸다. 터미널 근처를 몇 바퀴 돌았다. 하란은 타박타박 내 뒤를 끈질기게 따라왔다. 뒤를 돌아보지 않았지만 그녀의 구깃구깃한 연두색 원피스는 사각지대에 여전히 어른거렸다. 더운 날이었다. 나도 모르는 새 온몸이 땀으로 젖었다. 그녀를 데리고 간성으로 갈수도, 같이 서울로 갈 수도 없었다. 여전히 혼잡한 곳을 가거나 아무도 없는 곳으로 가야했다. 다방이 눈에 띄었다. 타이틀 방어전이 중계되고 있는 다방 안은 활기가 넘쳤다. 그곳은 박찬희만 존재했다. 하란은 어항에 머리를 기대고 졸기 시작했다.
오구마 쇼지는 생각보다 강한 상대였다. 다방 안에 모여 있는 사람들은 그 부분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었다. 물론 링 위의 박찬희는 훨씬 먼저 알아챘을 것이다. 작년 7월 WBC 플라이급 챔피언이 된 이후로 그는 두 달에 한 번꼴로 방어전을 치러왔다. 더구나 대구에서 5차 방어전을 판정으로 막아 낸지 겨우 한 달 남짓 지났을 뿐이었다. 구티 에스파다스와의 2차 방어에서 2회 KO를 보여준 것을 제외하고는 판정이나 무승부였다.
챔피언이 된 후로는 오히려 화끈하게 보여주지 못한다는 세간의 평이었다. 그래서였을까. 필요이상 힘이 들어간 챔피언의 훅이 번번이 허방을 내질렀다. 공기를 가를 때마다, 무게 중심을 잃은 스텝은 자꾸 엉켰다.
4라운드가 넘어가면서 그는 자주 클린칭했다. 레프리가 다가올 때까지 오구마 쇼지를 끌어안고 헉헉거렸다.
“한 방 올려붙여!”
흰 띠로 이마의 정중앙을 질끈 묶은 박찬희의 얼굴이 클로즈업 될 때마다 다방 안이 들썩거렸다. 흰 띠라.
조직에서 한 뭉치씩 길고 하얀 띠를 나누어 주면 저마다 이마에 묶었다. 꽉 잡아매면 느낌이 좋았다. 단단하게 뭉쳐진 혈기가 정수리 쪽으로 모아지고 눈매에도 절로 힘이 들어갔다. 무리의 중간에서 한 발짝쯤 앞쪽에 자리 잡으면 조직원들을 거의 포착할 수 있었다. 앞의 세 줄 정도는 위치까지 외워놓고 뒷줄로 넘어갈수록 허투루 꿰었다.
실황 중계로 후끈 달아오른 다방 안은 사람들의 열기로 가득했다. 그래서인지 더욱 덥게 느껴졌다. 벽걸이 선풍기는 모두 분홍색 보자기로 쌓여 있었다. 하긴 아직 선풍기를 틀 계절은 아니었다. 경기가 잘 보이는 쪽 테이블에 몰려 앉은 사람들은 저마다 주먹을 흔들고 고함을 질렀다. 잠자리같이 얇고 고운 한복을 입은 마담과 미니스커트 차림의 레지들도 손님 테이블에 끼어 앉아 분위기를 맞춰주고 있었다. 오구마 쇼지가 순간, 비어있는 박찬희의 가드 아래로 라이트 스트레이트를 힘껏 뻗었다. 마우스피스가 잇몸 바깥으로 튀어나온 박찬희의 스텝이 크게 휘청거렸다. 무릎이 꺾어지려는 찰나, 링이 다급하게 울렸다. 화면 하단에 8, 7, 6으로 줄어들던 초시계 숫자판이 링이 울리자마자 서둘러 지워졌다. 경기에서는 간혹 시간도 지워질 수 있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이 세상에서, 삶에서, 정말 시간이 지워질 수 있느냔 말이지.
라운드 걸이 피켓을 들고 링을 크게 한 바퀴 돌았다. 크고 풍만한 엉덩이가 리드미컬하게 흔들렸다.
“오마나, 오마나!”
레지들은 쌍화차와 주스와 쿨피스를 몇 잔씩 거푸 마시고 있었다. 방정맞은 호들갑 속에 마담은 고고한 표정으로 위스키티를 마셨다. 그 속에서도 그렇게 격이 존재했다.
나는 어항을 보고 있었다. 하얗고 검은 자갈과 너무도 짙푸르러 그것이 플라스틱임을 극명하게 드러낸 수초와 물레방아가 있었다. 두어 마리의 작은 금붕어가 수초아래 나지막하게 엎드려 미동도 하지 않았다. 입술을 비틀었다. 자식들아. 지금 가짜 풀 밑에 숨는다고 숨은 모양인데 그것은 숨어있는 것이 아니지. 수조를 툭, 쳤다. 꼼짝 않던 금붕어들이 재빨리 흩어졌다.
뒤늦게 레지가 다가왔다. 신나게 웃고 떠드느라 뒤쪽은 돌아볼 겨를이 없었을 것이다.
“커피 주세요.”
레지는 첼로 케이스를 끌어안고 졸고 있는 하란을 쳐다보았다. 커피가 오기 전에 나는 일어섰다. 기척을 느꼈는지 그녀가 눈을 떴다. 잠에서 덜 깬 그녀가 비틀거리면서 일어섰다. 그녀의 발걸음이 조급했다. 어항 옆에 첼로 케이스만 덩그마니 놓였다. 되돌아간 나는 첼로 케이스를 어깨에 둘렀다.
문을 나서려는 순간, 홀 안쪽에서 탄식과 비명이 터졌다. 뒤를 돌아보았다. 링 바닥에 뺨을 대고 엎어진 박찬희가 보였다. 흑백 화면인데도 불구하고 찢어진 눈 밑의 핏자국이 소름끼치도록 선명했다. 분명 시뻘건 핏빛이었다. 1980년 5월 18일, 챔피언은 6차 방어에 실패했다. 9라운드 KO 패였다. 그의 이마를 동여맨 하얀 띠가 쓸쓸해 보였다.
6번 강하란 화장 중. 예상 종료 시각 11시 50분. 현재 시각 10시 47분.
대기실 전광판의 글씨가 번쩍거리며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흘러갔다. 뒤이어 다른 로전실 번호와 망자의 이름이 지나가고 예상 종료시각이 이어졌다. 로전실은 풀가동 중이었다. 편한 자세로 의자에 기댔다. 대기실의 의자는 몸의 각도에 따라 뒤로 젖혀지는 신형이었다. 아빠가 캔 두 개를 뽑아왔다. 아빠는 의자 하나를 사이에 두고 앉았다. 표시나지 않을 만한 각도로 주변을 둘러보던 그가 전광판을 주시했다.
“예전 대학 다닐 때 좀 알고 지냈지. 들은 적은 있는지 모르지만.”
“엄마가 대학을 다녔다고요?”
아빠가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선글라스를 끼고 있어서 정확하게 어디를 보는지 알 수 없었다. 물방울이 흘러내리는 캔을 감아 쥔 아빠의 손을 보았다. 납작하고, 안으로 자연스레 굽어지지 않고 밖으로 발랑 뻗쳐 자주 깎아주어야 하는 손톱이 보였다. 나는 손톱이 보이지 않도록 주먹을 쥐었다.
“그 땐 시국이 하도 어수선해도 얼마 못 다녔지. 그동안 소식을 통 몰랐다가 이제야 어떻게 연락이 닿아서.”
아빠가 캔 고리에 손가락을 걸었다. 아빠도 왼손잡이였다.
시국이 어수선했던 것이 무슨 연관이 있는지 모르지만 엄마도 좀 어수선하게 살았다. 엄마의, 네 번째인지 다섯 번째인지 모를 남자는 집 근처에서 호프집을 했다. 내가 알기로는 엄마의 마지막 남자였다. 엄마는 필시 밀린 외상값 대신 문 닫은 호프집 구석에 옹색하게 누워 가랑이를 몇 번 벌려주었을 것이다. 호프집 남자는 얼마 전까지도 집을 들락거렸던 눈치였다. 그는 엄마가 시추를 위협하곤 했던 활을 또 다른 용도로 사용했다고 한다. 마흔 몇 살이나 된 엄마를 발가벗겨 놓고 이웃집에서 들릴 정도로 짝짝 소리가 나게 후려쳤다는 것이다. 엄마 집 벨을 누르면 엄마보다 먼저 문을 열고 내다보던 옆집 할머니의 말이었다. 앞이 보이지 않아서인지 더욱 예민한 귀를 가지고 있는 할머니는 늘 엄마보다 먼저 인사를 받았다.
“왜 꼭 때리고 나면 그 짓거리여?”
몇 발짝 뒤에서 따라오던 지금의 남편이 걸음을 멈췄다. 남자 친구를 데리고 오겠다고 며칠 전부터 전화를 해두었는데 하필이면. 웬만한 사이는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등 뒤의 그는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그냥 돌아갈까, 하는 그의 망설임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그냥 돌아가자고 내가 먼저 말을 꺼내려는 순간 문이 열렸다.
“요즘 몸이 안 좋아져서 말이야.”
엄마는 무릎걸음으로 기어 나와 문을 열어주었다. 활은 신발장 옆에 있었다. 그것은 내가 아주 어렸을 때부터 그 자리에, 마치 우산이나 구두주걱처럼 세워져 있었다. 어디선가 시추가 달려와 내 발에 감겼다. 엄마는 얼른 기대있던 활을 집었다. 벽을 탕탕 치며 시추를 을렀다.
“시추! 저리 가지 못해!”
마치 나에게 활은 그 용도로만 사용한다고 보여주려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 결혼 후에 남편이 물었다.
“어째 장모님은 개 이름 하나 제대로 지어주지 않은 거야?”
엄마가 늘 술만 마신 것은 아니었다. 제멋대로 남자를 끌어들인 적도 없었다. 언제나 인사를 시켰다. 주로 술 마시다 만난 옆 테이블 남자였다.
“아빠라고 불러라.”
아빠라고 불렀다. 싫지도 좋지도 않았다. 엄마는 한번 술을 마시면 며칠 동안 꼼짝 않고 방에 쳐 박혔지만 그 외의 시간은 부지런했고, 어느 면으론 억척스러웠다.
몇 년 전 호프집 남자를 만난 뒤부터 술 마시는 간격이 조금 더 밭아지고, 조금 더 주량이 늘어난 것뿐이다. 그 남자가 결코 나쁜 사람은 아니었다. 엄마가 모든 것을 자초했을 것이다. 먼저 호프집에 드나들며 은근한 눈길을 보내고 술을 얻어마셨을 것이다. 술값이려니 하면서 달려드는 남자에게 활을 쥐어주었을 것이다.
“힘껏, 힘껏 때려줘요.”
맞으면서 엄마는 울었을 것이다. 아프니까 더더욱 소리를 높여 울었을 것이다. 술 마시고 매를 맞고 울고 덤벼들고, 또 술 마시고 매를 맞고 울고 덤벼들고.
로전실이 풀가동 중인 것처럼 대기실도 풀가동 중이었다. 상복을 입은 한 무리가 일어서면, 피곤하고 지친 표정의 또 한 무리가 들어와 의자 하나씩을 차지하고 고개를 가슴팍으로 꺾었다. 몇 몇 남자들은 구석 의자에 동그랗게 몸을 말고 졸기도 했다. 사는 것도 쉽지 않지만 죽는 것도 고달프다, 고 누군가 뒤쪽에서 말했다.
“밖으로 좀 나갈까.”
아빠는 로만칼라를 만지작거렸다. 눈물과 애통함과 죽음이 묵직하게 깔려있는 대기실처럼 성직자에게 어울리는 장소가 또 있을까. 하지만 아빠는 부담스러운 모양이었다. 천정이 높은 건물 실내는 쾌적했다. 마치 예식장처럼 화려한 꽃 무더기가 한 아름씩 꽂혀있는 복도를 지나 문 밖으로 나왔다.
막 도착한 장의 버스 짐칸이 열렸다. 삼베 건을 쓴 늙은 상주가 허리를 굽힌 채 짐짝처럼 관이 나오는 모습을 물끄러미 보고 있었다. 구석에서 소곤거리던 여자들이 서둘러 관 옆에 둘러섰다. 차렷 자세로 서있던 장제장 직원이 흰 국화 한 송이를 관 중앙에 올려놓고 정중하게 허리를 굽혔다. 엄마 역시 생면부지였던 저 직원에게 꽃 한 송이를 받고 작별인사를 받았다. 꽃 한 송이 준비해 오지 않은 아빠는 저만큼 앞서가며 계속 통화중이었다.
“네, 네. 좀 늦겠습니다.”
목소리를 낮추기는 했지만 못들을 정도로 작은 것은 아니었다.
“아, 예전에 좀 알던 사람이 갑자기 상을 당해서.”
예전에 좀, 알던 사람... 예전에...좀...
아빠의 걸음이 조금 빨라진 반면 나의 걸음은 점점 더디어졌다. 돌아갈까. 어느 순간 걸음은 저절로 멈춰졌다. 자꾸 맨살에 휘감기는 치마를 치켜 올렸다. 구두 뒤축을 눌러 신은 맨발 뒤꿈치가 훤히 드러났다. 하지만 어디로? 6번 관망실로? 남편이 곯아떨어져 있는 차로?
작년 결혼한 이래 남편은 단 두 번 엄마를 찾았다. 그는 엄마를 노골적으로 싫어했다. 나는 그런 그를 질책하거나 엄마에 대해 변명하지 않았다. 나는 엄마가 싫지도 좋지도 않았다. 엄마가 데려온 ‘아빠’가 싫지도 좋지도 않은 것과 같은 비중이었다. 그것은 또한 나의 남편이 싫지도 좋지도 않은 것과 같은 비중이기도 했다. 남편과 나는 엄마를 자주 보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생각은 일치했으므로 자연스레 발길을 끊었다. 엄마도 나에게 전화하지 않았다. 아마 전화기를 들고 싶을 때마다 술을 들이키거나, 너덧 번째의 아빠를 불러들였을 것이다.
발걸음은 다시 아빠를 향하고 있었다. 아빠가 자리 잡은 벤치에 나란히 앉았다. 발을 올려놓고 뒤꿈치를 살폈다. 잔금사이로 때가 끼어 지저분했다. 아무리 관리해도 두터운 굳은살은 늘 갈라졌다. 문득 아빠의 양말을 벗겨보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선글라스를 낀 아빠가 내 뒤꿈치를 보고 있을까.
멀지 않은 곳에서 나팔소리가 들렸다. 산 위쪽이었다. 제법 긴 소절인데 끊어뜨리지 않고 부는 솜씨가 대단했다. 자주 듣던 곡은 아니었지만 귀에 익은 곡조였다. 음 하나하나가 대단히 길었다. 호흡이 긴 남자일 것이다. 문득 호프집 남자가 떠올랐다. 그 남자가 예전에 나팔을 불었다는 얘기를 들은 것도 같았다. 아빠에게 고개를 돌렸다.
“그런데 엄마가 돌아가신 소식은 누가 알려줬어요?”
하란은 나를 보자 빙긋 웃어 보였다. 그녀는 재래시장 구석에 좌판을 벌려놓고 있었다. 이십 몇 년 만인데도 그녀는 어제 만났다 헤어진 듯한 표정이었다. 두리두리한 뱃살을 조인 국방색 전대 아래 무릎을 덮은 낡은 담요가 조금 들썩였다. 그녀는 앉은 채로 엉덩이를 움직여, 마치 늘 오는 단골손님을 맞는 것처럼, 자리를 만들어주었다. 나란히 앉으니 어깨가 부딪혔다. 짙은 술 냄새가 그녀의 어깨 언저리에 흠뻑 젖어있었다. 이미 부딪힌 어깨를 다시 한 번 부딪히며 그녀가 말했다.
“형의 설교는 가끔 듣고 있어요.”
“그렇습니까.”
짐작대로 하란은 방송을 타기 시작한 나를 알고 있었다. 나는 그녀의 옆에 앉아 TV를 보았다. 새해부터는 케이블 채널에서 내가 설교하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지난 육 개월 간 민영 라디오 프로그램에 고정패널로 출연했다. 위쪽에서 물밑작업을 해서 다리를 놔주긴 했지만 짧은 시간동안 청취자의 마음을 사로잡는 일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예상대로 반응은 호의적이었다.
일주일에 한 번 삼십 분 설교를 방영하는 조건으로 나는 기독채널에 막대한 헌금을 기부했다. 단기간 내 교회를 급성장시킨 목회자의 반열에 들 날도 멀지 않았다. 대중은 자신들의 인식에서 조금만 벗어나고 뭔가 특이하다고 생각하면 어김없이 주시하고 추종하게 마련이었다. 며칠 구류를 살았어도 운동했다고 목소리에 힘을 주는 세상이었다. 수염을 기른 운동권 출신의 목회자는 이제 서서히 두각을 나타내게 될 것이다.
열이틀 동안 솔밭 옆 민박집에 머물렀다. 방에는 TV도 신문도 없었다. 하란은 문밖을 나가지 않으려했다. 방안에서 라면을 끓여먹거나, 민박집 아줌마가 차려주는 밥상을 받았다. 밥상을 밀어놓은 자리에 누워 그녀는 원피스를 허리까지 걷어 올렸다. 구석으로 피해있는 나에게 달려들었다.
“제발이요, 나 좀 어떻게 해봐요.”
활을 손에 쥐어주며 그녀는 애원했다.
“실컷, 실컷 때려줘요.”
그녀는 분명 술 한 모금 마시지 않은 맨 정신이었다.
나는 술을 마셔야했다. 술을 마시면 상대방이 술을 마시지 않은 맨 정신이라는 것을 잊어버린다. 세상은 나의 편이 아니었고 나는 죽지 않으면 까무러치기로 살고 있었다. 아무것도 무섭지 않았다. 두려운 것은 나 자신이었다. 갑자기 파도 속으로 내 몸을 던져버리지 않을까 해서, 내 자신이 못미더워 백사장도 맘대로 걷지 못했다.
하루에도 몇 번씩 하란은 허리를 묶은 리본을 제 손으로 풀었다. 정신을 차리고 보면 그녀의 몸 여기저기에 길고 가는 상처자국이 보였다. 부풀어 오르고 피가 맺힌 상처를 보면 피가 다시 끓어올랐다. 화사하던 연두 빛 원피스는 심하게 구겨지고 더러워졌다.
담배를 사러가면서 모처럼 신문을 펼쳤다. 나 같은 잔챙이들은 알 수 없는 어떤 상황이 종료된 듯 보였다. 직원에게 전화했다.
“내일 저녁까지 머물러.”
다음 날 13시 35분, 서울에서 급파된 형사들에 의해 우리는 검거되었다.
나는 기관의 용의주도한 처리로 석 달을 넘기지 않고 출소했고, 단순 가담자로 분류된 하란은 조서 후 곧 풀려났다. 그녀는 학교에 나오지 않았고, 나는 이내 그녀를 잊었다. 사소한 것까지 기억하기에는 큼직한 사건들이 너무 자주 터지던 시기였다.
TV 화면에서는 수염을 단 남자들이 말을 타고 어디론가 달려갔다. 그녀는 내 옆에 앉아 드라마에 집중했다. 드라마는 클라이맥스를 향해 치닫는 중이었다. 둥둥 북소리가 나는 배경 음악이 점차 빨라졌다. 그들은 호기롭게, 과장되게 소리쳤다. 짬짬이 그녀는 미제 수통 뚜껑을 열었다. 사하라 어디쯤에 모래바람을 맞고 서 있는 용병의 허리춤에나 달려 있어야 할 그것이 어째서 그녀의 전대 안에 들어 있는지, 내용물이 어째서 술이어야 하는지 물을 수 없었다. 나도 모르게 덥수룩한 턱수염을 더듬었다.
“누구나 한 때는 저렇게 살 때가 있습니다.”
“그거, 형 이야기예요?”
“아닙니다.”
하란이 느닷없이 일어섰다. 능숙하게 방수천으로 물건들을 뒤집어씌우고 검고 굵은 고무줄로 옥죄었다. 세 개의 알전구를 끄고 그녀는 외투를 걸쳤다. 철시한 맞은편 가게의 거무스레한 유리창으로 그녀가 내 등을 바라보며 담배를 피우는 모습이 비춰졌다. 손을 외투 주머니에 찔러 넣은 채였다. 새빨간 담뱃불이 그녀 입 언저리에서 명멸했다. 불빛이 별처럼 반짝거렸다.
“눈매는 여전하네요. 단번에 몇 군데를 꿸 수 있는 그 재주 말이야.”
등 뒤에서 조금 쉰 듯한 하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역시. 하란이 그때 왜 그렇게 구두끈을 매지 못했는지 알 것 같았다. 그녀와 좀 더 가까워져야 할 필요가 있었다. 망설이다가 그녀의 허리를 감았다. 한쪽 어깨에 그녀가 머리를 기댔다. 두툼한 외투안의 투실한 살집이 느껴졌다. 순간 이 여자가 정말 그때의 하란이 맞는지 혼란이 왔다.
“형은 이제 술은 못하시겠네?”
“할 수도 있습니다.”
시장 골목이 끝나는 곳에 좁고 지저분한 호프집이 있었다. 호프집 남자는 별로 말이 없었다. 셔터를 내리고 술을 마셨다. 술 취한 하란이 혼자 떠들었다.
“여긴 내 집이나 마찬가지고, 저인 내 남편이나 마찬가지고, 그렇지? 여보? 이 분은 이제 좀 있으면 엄청 뜰 거야. 요즘은 목사도 스타니까. 그렇죠, 형? 저이는 나팔을 불어요. 멋들어진 양반이지?”
나는 술잔을 입에 댔다 떼기를 반복했다.
며칠 전 호프집 남자가 전화를 걸어왔을 때, 자신과 하란과의 관계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 요지에서 벗어나 적당히 생략된 부분이었다. 호프집 남자가 협박한 것은 아니었다. 간절했고 정중했다.
“얼마 못 삽니다. 한 서너 달? 목사님이 한 번은 만나셔야 정리가 될 것 같아서 그럽니다.”
하란이 다시 담배를 입에 물었다. 라이터는 쉽게 불이 붙지 않았다. 나는 하란의 두 손을 감싸 쥐었다. 그제야 불길이 길게 솟아올랐다. 찌직. 하란의 앞 머리카락 몇 가닥이 그을렸다. 누린내가 확 끼쳤다. 그녀는 양 뺨이 옴폭 파이도록 깊게 담배를 빨았다. 하란이 어깨를 으쓱 올렸다 내렸다.
“딸내미는 시집가서 매 맞지 않고 잘 살고 있고, 나 역시, 보시다시피 이만하면 아쉬운 것은 없고. 그런데 형. 그렇게 자꾸 존대하지 않아도 되는데. 우리 그래도 한 때 그런 사이가 아니었잖아? 말 놔요.”
“죄송합니다.”
“......개새끼.”
휴대폰 속 남편의 목소리에는 짜증이 묻어났다.
“대체 어디 있는 거야? 시간이 다 되어 가는데, 관망실에도 없고, 식당에도 없고, 대기실에도 없고.”
“아, 여기......”
“아, 저기 있구나, 보여, 보여.”
남편이 휴대폰을 든 채 길을 건너는 모습이 정면에 보였다. 얼결에 일어났다. 남편은 걸음이 빨랐다. 다가온 남편 앞에서 아빠는 선글라스를 벗었다. 외까풀의 매서운 눈초리가 드러났다. 하지만 웃으면 눈두덩이 소복해지면서 부드러워질 것이다. 선글라스를 벗으면 안 되는데, 눈웃음치면서 웃으면 안 되는데.
“대학 선배입니다. 어떻게 소식을 전해 듣고 부지런히 왔는데 좀 늦었습니다.”
“아, 네에.”
남편은 의아한 눈치였다. 그 의미는 알아들었다. 대체로 이런 뜻이었을 것이다. 장모님이 대학을 다녔다고? 술주정이 남달라 온 동네 소문이 나고, 시장 통 놈팡이들을 끊이지 않고 끌어들이던 장모님이?
대기실의 의자에 앉기도 전, 전광판의 글씨가 바뀌어졌다.
6번 화장이 종료되었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유가족께서는 분골실로 오시기 바랍니다.
종료, 라고 쓴 커다란 원이 호프집 네온처럼 호화로웠다. 시계를 보았다. 한 시간 삼십 이분동안 엄마가 활과 함께 태워졌다.
마스크로 눈 바로 아래까지 가린 직원이 엄마의 흔적을 빗자루로 쓸었다. 모으니 두어 줌 쯤 되어보였다. 그 흔적 속에는 활의 잔해도 얼마간 포함되었을 터였다. 작은 삽으로 떠서 흰 종이에 담고 규격에 맞추어 잘 싸 푸른빛이 감도는 항아리에 담았다. 뚜껑을 닫기 전, 다시 흰 종이로 입구를 감쌌다. 두 손으로 항아리를 안았다. 엄마는 놀라울 정도로 뜨거웠다. 가슴께가 불에 덴 것처럼 화끈거렸다. 저리 가지 못해! 엄마가 활로 나를 후려치고 있었다. 마치 시추를 몰아내듯 나를 몰아내고 아빠를 몰아냈다.
유해를 모시는 입구에 마련된 작은 대리석 단에 항아리를 내려놓았다. 향을 사르고 새 초에 다시 불을 붙였다. 남편이 영정 사진을 기대놓았다. 엄마는 낯설었다. 엄마는 늘 그렇게 낯설었다. 직원이 와서 명패를 꽂고 갔다. 8274 강하란. 항아리에 담긴 엄마는 대형 마트의 물품 보관함만한 곳으로 들어갔다. 나의 뒤를 남편이, 남편의 뒤를 아빠가 천천히 따라오고 있었다. 아빠가 주위를 둘러보았다. 실내는 서늘했고 고요했다.
“잠깐 기도하십시다.”
눈을 감은 아빠는 두 손을 모으고 숨을 고르고 있었다. 로만칼라에 살짝 가려졌던 목울대가 몇 번 오르내렸다. 침 삼키는 소리가 정적을 갈랐다.
“여기, 사랑하는 자매님을 당신에게 보내드립니다. 그가 지니고 살아온 고통과 아픔과 상처는.”
기도는 중간에 끊어졌다. 아빠는 잠시 동안 가만히 있었다. 발소리를 내지 않고 아빠와 남편의 곁을 떠났다. 이제 다시는 아빠 곁에 서는 일은 없을 것이다. 대신 엄마처럼 가끔 라디오 채널을 돌려 아빠의 목소리를 들을지는 알 수 없다. 향을 사르던 곳을 지날 때 다시 이어지는 아빠의 기도소리를 들었다.
“여기 슬픔을 당한 유족의 마음을 주님께서......”
건물 밖으로 나왔다. 정오의 땡볕이 뜨거웠다.
검은 광택이 번쩍거리는 캐딜락이 정문 쪽으로 미끄러져 들어왔다. 보닛위의 조화다발은 풍성했고, 싱싱했고, 아름다웠다. 차의 지붕위에 장식되어 있는 커다랗고 하얀 레이스 리본이 살짝 바람에 날렸다. 리본 한 가운데 가득 꽂혀있는 백장미 다발에서 진한 향내가 났다. 육중한 차의 뒷문이 열리자 꽃으로 가득 장식한 관이 보였다.
어디선가 나팔소리가 들려왔다. 비브라토가 없는 나팔 특유의 음색으로 곧게 퍼져나가는 소리도 꽃만큼이나 향기롭고 아름다웠다. 누구의 진혼곡일까. 머릿속을 더듬는데 느닷없이 곡명이 떠올랐다.
내 기억이 정확하다면 모차르트가 죽어가면서 만들었다는 그의 마지막 작품인 레퀴엠 라크리모사, 눈물의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