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 전철에서 만난 서영훈 목사님의 설교! 두 번 되풀이해서 듣고 너무 감질나서 인터넷에서 다른 설교도 찾았다. 읽고 또 읽으면서 피가 되고 살이 되어야징!)
내가 반드시 너에게 복 주고
본문 히6:1-20
찬송가 368장 ‘주 예수여 은혜를’
신자가 교회에 나와 시간이 가고 오래 다니면 신앙이 자라고 있는 것으로 착각을 하고 살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깜짝 깜짝 놀라는 것은 전혀 신앙의 본질과는 멀리 서 있는 분들을 많이 만나게 된다는 것이고 과연 그 분이 생각하는 신앙이 성경이 말하는 그것인가 의구심을 갖게되는 경우도 있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자기의 생각이나 부모님과 세상에서 온 가치관을 더 강화하고 그것이 신앙이라고 굳게 믿고 있는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6절을 보시면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의 도의 초보를 버리고 죽은 행실을 회개함과 하나님께 대한 신앙과 세례들과 안수와 죽은 자의 부활과 영원한 심판에 대한 교훈의 터를 다시 닦지 말고 완전한 데로 나아갈지니라.’
초보에서 벗어나라고 명령합니다. 5장12-14절을 보시면 늘 젖만 먹는 어린아이의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혹독하게 평하고 있습니다. 영적인 수준이 유치한 수준에서 늘 어린 수준의 것만 소화하고 좀 수준 높은 내용은 먹지도 못하고 이해도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내용이 뭔가 하면 ‘죽은 행실을 회개함, 하나님께 대한 신앙, 세례, 안수, 부활, 심판’ 이런 것들이랍니다. 그 유치한 수준, 즉 그 기독교 신앙의 기초가 되는 수준들 회개, 세례, 부활 이런 것들만, 이런 내용의 정도에만 머물러 늘 그 이야기만 하지 말고 완전한 데로, 성숙한 곳으로 나아가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늘 내가 구원받았다, 나는 죽어서 천국 간다, 지금 죽어도 천국 간다, 이 수준에서 벗어나지를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당신도 예수 믿고 천국가라, 지금 입으로 시인하고 확신을 가져야 천국 간다’ 이렇게 밖에는 내가 예수 믿고 하나님 믿고 있다는 내용을 확인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천국 갈 티켓 받았다, 이것 밖에 없지 않은가? 이는 젖을 먹는 어린아이다. 참 어리다. 이 말입니다.
자, 그러면 신자의 성숙함은 어떤 모습입니까? 11-12절입니다. “우리가 간절히 원하는 것은 너희 각 사람이 동일한 부지런함을 나타내어 끝까지 소망의 풍성함에 이르러 게으르지 아니하고 믿음과 오래 참음으로 말미암아 약속들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을 본받는 자 되게 하려는 것이니라”
뭐라고 하느냐 하면, 끝까지 오래참고 인내하여 약속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을 본받는 자 되게 하려고 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신앙의 초보의 수준, 유치한 수준을 벗어나서 약속을 기업으로 받는 수준으로 나아가라, 라고 합니다. 자, 그럼 약속을 기업으로 받는 수준이란 무엇인가? 13절부터 그 설명을 해 나갑니다.
13-15절입니다. 하나님이 자신의 이름을 걸고 약속을 하셨습니다. 내가 너에게 반드시 복 주겠다. 그리고 오래 기다려서 그 약속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약속의 실체가 아니라 약속의 결말을 본 것이 아니라 그 약속을 받았다고 합니다. 17-18절입니다. 분명이 그 약속이 실현되는 것임을 보여주기 위해 그렇게 하지 않으셔도 되는 분이 자기의 이름을 걸고 맹세하사 믿는 신자들에게 안위를 주셨다고 합니다.
반드시 복주고 복 주겠다, 번성케 하겠다 맹세하셨다고 합니다. 그런데 왜 내 인생은 요모양 인가? 왜 늘 실패하는가, 왜 이렇게 못났는가? 이러한 질문이 우리를 괴롭힙니다. 뭐 하나 제대로 되는 것이 없습니다. 가정도, 사업도, 자녀도, 내 자신의 문제도 늘 절망스럽습니다.
이걸 해결하기 위해 너무나 잘 아는 믿음장이라고 불리는 히11장으로 가 보겠습니다. 13-16절입니다.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약속의 결과를 보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임을 증언하였으니 그들이 이같이 말하는 것은 자기들이 본향 찾는 자임을 나타냄이라 그들이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 그들을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
여기 11장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세상적으로 보면 다 보잘 것 없이 죽은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보통 말하는 복이라는 개념과는 거리가 먼 사람들입니다. 어찌 보면 참 볼 품 없고 지지리 못나고 어찌 그리 비루한 인생들인지 모릅니다. 그렇게 멋있지 않습니다. 잘 나가지 못했습니다. 구겨진 인생이고 답답한 인생입니다.
36-40절에 더 적나라하게 묘사됩니다. 그런데도 약속된 것을 받지 못하였다고 합니다. 이 세상에서는 도망자와 저주받은 자와 같이 구질구질하게 살았다는 것입니다.
히브리서의 저자가 말하는 유치한 수준, 영적으로 어린아이의 수준을 벗어나 단단한 것을 먹는 장성한 수준이란 무엇입니까? 살펴본 바와 같이 하나님의 약속, 자신의 거룩하고 성실한 이름을 가져다 쓰면서까지 우리에게 복주고 복주며 번성케 하고 번성케 하리라 기필코 그렇게 하리라고 하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우리는 예수를 믿음으로 이전까지와는 다른 세상적 복을 받고 근심이 물러가고, 하는 일은 무엇이든지 형통케 되는 것이라는 믿음을 갖습니다. 그래서 내게 닥치는 현실 속에서, 이해되지 않는 현실 속에서 방황하고 고뇌하고 자신을 탓합니다.
그러나 그러한 생각은 어린아이 같다고 합니다. 유치한 것이라 합니다. 오히려 이 땅에서는 고난을 당하고 고민하게 되고 난관에 부딪히고 이해할 수 없이 벼랑 끝에 서는 상황에 휩쓸리게 된다고 합니다. 왜? 내가 이 땅의 소유가 아니므로, 이 땅의 소속이 아니므로, 예수의 자녀가 되었고 하나님의 소유가 되었으므로, 그것 때문에 그런다는 것입니다.
11장이 끝나고 12장에서 어떤 내용이 이어집니까? 너희는 내 자녀라, 자녀기 때문에 징계의 매를 대는 것이다, 이겁니다. 우리는 이해할 수 없지만 하나님의 자녀가 된 이후에도 시련을 당합니다. 고통을 당합니다. 죽을 것 같은 어려움과 고독과 괴로움을 만납니다. 어찌 믿는 자에게 이런 일이 벌어질까, 과연 하나님은 살아계신가, 어찌 이렇게 나를 대우하시면서도 나를 사랑하신다 하실 수 있는가, 이런 고민으로 밤을 샙니다.
히12:5-10을 봅니다. 하나님은 그 자녀인 우리를 혹독히 다루십니다. 고아가 아니기 때문이라 합니다. 세상이 주는 혜택이나 이익 앞에 무릎을 꿇지 않도록 하기 위해, 오직 하나님으로만 살게 하시기 위해, 오직 하나님으로만 만족하고 세상성이 주는 조건이나 유혹에도 항복하거나 타협하지 않고, 그 모든 자존심이 구겨지고 예수 믿는다는 체면이 서지 않고 비루해지더라도 그런 세상의 여건 때문에 하나님을 포기하지 않는 자녀 만드시기 위해서 지금도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되심을 성실히 수행하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디 가서 인간구실 하도록 하시기 위해, 어디 가서 하나님의 자녀로 부끄럽지 않게 하려고 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목적은 단지 나를 천국에 데려가는 정도가 아니라 하나님 닮은 자녀, 영광스럽고 위대하시고 거룩하신 하나님을 닮은 자녀 만드시는 데 목적이 있습니다. 유치한 수준의 성도가 아닙니다. 정말 위대한 수준입니다. 하나님이 부끄러워하지 않는 정도의 성숙입니다. 거기까지 우리를 만드실 것이라는 약속을 변개치 않으시는 하나님 자신의 이름을 들어 맹세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끝까지 이루시겠다는 하나님의 선언입니다.
하나님을 등에 업고 보란듯이 사는 것이 신앙의 목적이 아니고 하나님의 나를 향한 목적도 아닙니다. 그것보다 훨씬 큰 목적 즉, 어린아이의 수준에서 벗어나 장성함에 이르는 목적, 고난 가운데 처해도, 심한 절망에 떨어져도 세상이 주는 이로움 때문에 무릎 꿇지 않고 나의 아버지 되시는 하나님 때문에 세상 앞에 항복하지 않는 자녀다운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약속을 기업으로 받은 자들입니다. 그리고 그 약속은 하나님이 맹세하신 약속입니다. 하나님의 목적, 나를 자녀삼으사 하나님이 부끄러워하지 않으시는 수준의 자녀삼기 위해 오늘도 일하고 계신 하나님 때문에, 비록 약속의 결과는 보지 못하고 이 땅에서 고난만 당하다가 죽더라도 우리는 주님을 포기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아니 그 분으로 만족하고 그 분으로 살고 그 분 자신을 주신 그 사랑 때문에 오늘도 믿음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우리는 약속을 기업으로 받은 자들입니다. 그리고 그 약속은 하나님이 변개치 않으시고 결코 자신을 포기할 수 없는 하나님 자신의 이름을 들어 맹세하신 약속이기에 그 약속은 곧 실행이며 실제이며 결과입니다. 우리는 유한하고 믿음이 없어 늘 눈에 보이고 손에 만져지는 것만을 믿는 자들입니다. 그래서 실망하고 그래서 실패하고 언제나 패배자로 남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우리의 못남을 개의치 않으시사 오로지 의로우신 하나님을 근거하여 우리를 구원하시고 뿐만 아니라 자랑스러운 자녀로, 하나님의 기준에도 부끄럽지 않은 자녀로 삼으시는 성실하신 손길이 포기되지 않고 오늘도 우리를 붙들고 있고 계속해서 완성을 향하여 전진하고 있음을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그 자녀를 징계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이 나로 하나님 닮은 자녀 만드시기 위해 오늘도 세밀한 계획과 부지런함을 펼치시고 계심을 믿으며 비록 견디기 어렵고 고통스러운 상황과 세상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박탈감이 찾아와도 하나님만으로 만족하고 하나님을 소유한 것으로 감사하는 신자, 장성한 분량의 자녀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출처] 내가 반드시 너희에게 복주고... 서영훈 목사|작성자 보리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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