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동안 내가 '자발적 유배'의 시간을 즐기는 동안 무료했던 남편은 방을 바꾸는 놀이(?)를 했다. 안방을 아들에게 내주고, 아들방은 내 방으로, 내 방은 침실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거의 이십 년 동안 아들의 방이었던 곳에 나의 사유물들이 들어차 있는데 아직까지 적응이 되질 않는다. 내가 무엇인가 한 줄이라도 끄적인 종이는 절대로 버리지 않는 남편의 세심한 배려에 의하여 구시대적인 나의 유물은 어딘가에 보존이 되어 있겠지만 내가 놓았던 자리가 아닌 엉뚱한 곳에 뒤섞여 있으므로 있으나마나한 유물이 되어 버렸다. 그것은...집을 바꾸게 되어야 '발굴'되어질 것이므로 나는 포기했다. 분명히 어딘가 있겠지만 찾을 수 없는 것들에 대해 미련을 버리기로 한 것이다.
그래도 소득은 하나 있었다.
남편이 방을 바꾸는 작업을 하다가 콘솔 구석에 숨어있던 목걸이를 찾아낸 것이다. 엄밀히 말해 그것은 언니의 목걸이다. 그것은 작년에 두 달 동안 머물렀던 언니가 비행기안에서 산, 제법 값이 나가는 십자가 목걸이였는데, 잃어버렸다고 며칠 동안 쌩 난리를 치다가 결국 찾지 못하고 그냥 출국했다.
남편의 말에 의하면 그 목걸이는 콘솔 위의 화장품 박스 밑에 깔려있었던 것을 '발굴'해 냈다고 한다.
처음, 언니가 그 목걸이를 보여주었을 때, 딱 내 취향인 것을 알았다. 나는 Y자 형의 목걸이(만) 좋아한다. 내가 사년 넘게 목에 걸고 다닌 목걸이(내가 무척 좋아했던 제자, 무당이 선물한 목걸이다) 역시 Y자 목걸이어서 그토록 좋아했다. 언니의 목걸이는 Y자 모양에 앙증맞은 십자가까지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기에 더욱 마음에 들었지만 언감생심이었던 것이다.
언니가 그 목걸이를 잃어버렸다고 했을 때 얼마나 속이 상했는지 모른다. 그렇게 칠칠맞게 잃어버릴 것이면 차라리 나를 줄 것이지, 하면서. 그런데 하나님의 은혜로(ㅋㅋ) 그것은 거의 일 년만에 내 손에 들어온 것이다.
목걸이를 본 순간, 나는 흥분했다. 즉시 목에 걸었다. 퍼펙트한 만족감!!
이처럼 아름다운 은색의 목걸이를 돋보이게 하기 위한 심플한 검은 원피스를 어제부터 꿈꾸고 있다. 여름이 가기 전에 사고 싶은데 말이다....
지금 글을 쓰면서도, 뉴욕 플러싱의 지저분하기 짝이 없는 언니의 화장대 위에 뒹굴고 있어야 할 목걸이가 내 목에 걸려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아, 현실 감각의 충만함을 누리기 위하여, 살살 만져보았다. 감촉도 좋구나!
한달 동안의 변화라면 변화, 영향이라면 영향은.... 방이 바뀐 것과 목걸이가 새로 생긴 것, 그 정도? 아니, 덧붙일 것이 있다. '고통의 밴치'에 앉아 담배만 빡빡 피워대던 내가, 운동기구에 올라타 느긋하게 흘러가는 시간을 바라보게 되었다는 것?(이것은 개안에 버금가는 놀라운 일이다. 토요일 성경공부에서 누군가 언급했던 '의사결핍상태'였음을 깨닫게 되었다는 것이므로)아, 놀라워라...
감마선은 달무늬 얼룩진 금잔화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가.... 급작스레 튀어나온 잠재언어이다.
여전히 새벽에 일어나 동영상 설교를 듣고 커피를 마시고 베란다로 기어나가 담배를 피우며 타인들의 소란한 아침 출근 풍경을 관람하며 아들과 남편의 식사를 각각 따로 챙겨주고, 나는 우유 한 컵을 마시고, 생각날 때마다 담배를 피우고, 무엇인가 끄적이거나 읽거나 하는 일상으로 돌아왔다.
어제 도서관에 갔는데, 노트북을 포함한 가방이 어찌나 무거운지 팔목이 부러지는 줄 알았다. 엄살이 아니라 정말 개고생했다. 그리하여 오늘은
여전히 내방같지 않은 내방 문을 꼭 닫고(남편의 양해를 얻어서) 적업모드 전환을 위하여 고군분투하는 아침이다...
그나저나 저 목걸이를 발굴한 것처럼 내 머릿속의 어떤 보물, 하다못해 시커먼 석탄덩이라도, 을 발굴해 내야 할 터인디....
다시 목걸이를 만지작거린다. 목걸이의 십자가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면서 인색하기 짝이 없는 나의 하나님께 기도한다.
하나님, 아시지요? 당당하되 겸손하게!
'유다의 하루' 카테고리의 다른 글
주일은 말씀과 함께! (0) | 2012.07.09 |
---|---|
멋진 금요일!! (0) | 2012.06.29 |
슬픔이 없는 십오 초 (0) | 2012.06.18 |
오래전의 QT랄까.... (0) | 2012.06.05 |
단독자로의 시간 (0) | 2012.05.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