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독이라고 다 나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중독을 미치는 것의 한 종류로 본다면 말이다.
사도 바울도 말했잖나. 내가 미쳐도 예수를 위해 미치고!
어제, 주일을 보내는 방법을 살펴보니 완전히 말씀 중독에 빠져 있었다.
중독에도 좋은 점은 꽤 있다. 예를 들면 그 시간을 즐겁게 누린다는 것.
이른 아침(5시 반인데 하도 날이 빨리 밝으므로 이른 시각도 아닌 것 같다)에 일어나 모처럼 얌전하게 귀가하신 아드님의 배려로
교회에 갔다. 참, 좋은 시간.
양복입은 신사가 된 남편을 뒷좌석에 태우고, 나는 운전석 옆자리에 앉아 아들과 왕수다를 떨면서 가는 그 시간부터 '행복'이 반짝였다.
7시 반에 시작하는 1부 예배는 다른 예배에 비해 더 경건한 듯 느껴진다. 이른 아침이어서일까, 안부 인사로 부산스러운 3부 예배와는 달리 모두 기도를 하거나 성경을 찾고 있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아직 목사님이 카자흐스탄에서 미션 수행 중이라 청년교회를 맡고 있는 목사님이 설교를 했는데 역발상이 참 신선했다.
-죽었다가 살아난 사람이 과연 이 세상에서 즐거워했을까요?
목사님의 논리에 넘어간 나는 결국 고개를 흔들었다. 천국의 기쁨을 맛 본 사람이 괴로움 가득한 이 세상에 다시 와서 대체 무엇이 좋겠느냐 말이다. 결론이야 물론 하나님이 주신 사명이 있을 테니 이 세상 잘 살아가자였지만 전개 과정이 재미있어서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나를 포함한 교인들이 생각없이 살고 있다는 것을 여실히 증명해준 설교였다고나 할까.
주일 성수는 거룩하게 지켰으므로 집으로 돌아와 그냥 최선을 다하여 푹 쉬기만 하면 될 텐데
말씀 중독끼가 있는 나는 인터넷으로 기어들어갔다.
그러구러 시작된 폭포수같은 말씀의 세례!
주로 참회의 느낌이 강한 가스펠 몇 장을 뚱땅거리면서 마음의 얼룩을 씻어낸 후, 커피도 마시고 취미생활도 하면서 오전을 보내다가 말이다.
100주년 기념교회 2시 예배 실황을 눈이 뚫어져라 보았다.
그리고 메모 한 구절.
-선 예수그리스도, 후 교회.
교회 창립 7주년 기념 설교라 교회에 대한 말씀이 많았는데 요즘 교회 때문에 생각이 많은 나에게 꼭 필요한 말씀이었다. 가차없는 비판의 말씀도 저렇게 온유한 스타일로 하실 수 있구나, 그 역량도 참 존경스러웠다. 그리고.
모처럼 지구촌교회로 들어가 이동원 목사의 지난 설교를 하나 건졌다.
그러면서 잘 살펴보니 청년예배 실황이 중계되고 있다네? 얼른 클릭해서 나에게는 좀 생소한 청년 집회 스타일의 예배에 동석했다. 이동원 목사님 후임으로 온 목사님 역시 같은 스타일로 행함을 많이 강조하는 것처럼 보였다. 내가 보기에는 미국 스타일? 첫째 둘째 셋째 하면서 할일과 생각할 거리를 명확하게 집어주는 것은 좋은 것 같으면서도 주입식 교육같아 좀 그랬다.
설교는 무슨 결단을 이끌어내기는 해야겠지만 입속에 넣어주기만 하면 신자들의 영적 성숙의 자립에는 좀 문제가 있을 것 같았다.
문제를, 화두를 던져주고 스스로 고민하고 기도하고 깨달아 갈 수 있도록 여백을 주고 싶지만 신자들의 신앙 성숙도에 따라 길을 못찾고 헤맬 염려가 있어서 그런 것일까?
어쨌든 명쾌한 느낌의 설교는 듣고 나서 주먹을 불끈 쥐고 무엇인가 하도록 만드는 추진력은 굉장했다.
그리고 저녁.
우리 교회 홈피에 들어가 이재철 목사님의 워싱턴 한인교회(말씀을 잘 들어보니 우리와 같은 감리교회 교단이었다, 반가웠다)에서 집회에서의 말씀을 듣게 되었다. 그 목사님의 집회 말씀은 처음 접하는 것이라 흥미있게 들었다. 무려 한 시간 반짜리였지만 도무지 지루하지 않았다.
어떻게 듣다보니 오늘 100주년 교회 설교와 일맥 상통하는 부분이 많았다. 교회에 대한 말씀이었던 것이다.
참 신기한 일이다.
나는 몇 년 전 은혜 받았던 한완상 교수님의 <예수없는 예수 교회>를 근 일주일 넘게 붙잡고 씨름하는 중이었다. 교회 힐링에 대한 글이었는데 이번에는 연필 들고 밑줄 치면서 읽는 중이었다.
참으로 하나님의 멋진 분이시다!
지금 나에게 필요한 '교회란 무엇인가' 에 대한 궁금증을 책을 통하여 들려주셨고, 100주년 교회 창립기념 예배에서 다시 확인시켜 주셨고, 그리고 저녁에는 워싱턴 집회 말씀을 통해서 다시 각인시켜주신 것이다.
미라클!
저녁에 산책을 나가면서 산책하는 한 시간 동안, 100주년 교회 수요예배 고린도 전서 강해를 한 바닥 들었다.
으윽, 신음이 나올 정도로 좋은 말씀. (그 말씀은 나의 기억으로는 세번째인가 네번째 듣는 설교인데도!!)
말씀을 다 듣고 예수없는 예수교회를 다 읽어버렸다. 그렇게 쫑을 치고 나니까 마음이 개운해지면서 뭔가 정리가 된 느낌이 든다.
그 결론 중 하나를 살짝 공개한다면.
사랑과 용서와 섬김이 있는 교회. 기도하고 같이 눈물을 흘리는 목회자와 교인.
비록 말씀 중독에 빠져 산 어제였지만 마무리까지 깔끔하게 해주시는 하나님께 감사드렸다.
내가 이 맛에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거 아닙니까!
마음 바닥에, 내 영혼에, 큰 글씨로 써놓아야겠다.
교회는, 믿는 자는, 이것이 필요하다....
사랑
용서
섬김
기도
눈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