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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쁜 2019년!

비오는날 코코아 그리고 얇은 담요의 추억

by 이숙경(2011canna@hanmail.net) 2019. 9. 5.

어제 갑자기 핫초코에 필이 꽂혀 두 잔 마셨는데

오늘 아침에도 커피 대신 진하게 탄 핫초코를 마셨다.


나 어릴 때는 코코아라고 했는데 언제부터 이름이 바뀌었는지 모르겠다.

비가 오는 날이면 코코아를 즐겨 마셨다.

비오는 날, 학교에서 돌아오면 얇은 담요를 뒤집어쓰고 지독하게 단 코코아를 마시면 더할나위없이 행복해졌다.

대청마루 끝에 앉아 시멘트로 반질반질했던 마당에 튀어오르는 빗방울과 가장자리에 빨간벽돌을 비스듬히 꽂아놓았던 꽃밭의 사루비아(요즘은 샐비어라고 하는) 잎사귀에 떨어지는 빗방울을 바라보던 기억.

나의 어릴 때 추억으로 우리 아들도 비오는 날 학교에서 돌아오면

젖은 머리를 수건으로 닦아주고 젖은 옷을 벗기고 보송보송한 옷으로 갈아입힌 후,

얇은 담요를 뒤집어씌우고 코코아를 마시게 했다.

따뜻한 코코아를 후후 불며 마시던 어린 아들의 모습이 그립다.

그런데 왜 얇은 담요를 꼭 뒤집어썼던 것일까?

그 담요의 용도는 또 있었다.

피아노 건반에 한쪽을 물려놓고 뚜껑을 닫아 늘어뜨리면 피아노와 의자 사이에 천막이 만들어졌다. 그 작은 공간에 들어가 언니와 소꿉놀이하던 기억.

방석 두 개를 놓고 옹크리고 누워 도란도란 이야기하던 기억.

전지를 넣은 후레쉬를 켜서 이리저리 불빛을 비쳐보던 기억.

그 좁은 공간에 일부러 후레쉬를 켜놓고 어른거리는 잡지를 읽던 기억. (엄마는 내가 그래서 눈이 나빠졌다고 믿었다. 그 후 생간을 어찌나 사다 먹였는지... 그땐 너무 맛이 이상해서 울며불며 먹었지만 지금은 곱창집에서 찬으로 나오면 더 달라고 한다 ㅋ)


창밖이 보이는 책상에 앉아 문득 주위를 둘러본다.

덮어 놓은 책, 아직 읽지 않은 책, 읽다 만 책, 방금 다 읽은 책과 두꺼운 일지 노트와 펜들...

그리고 나긋나긋해진 베토벤까지.

자동차가 미등을 켠 채 단지 내로 들어오고 있다.

평화롭고 아늑하고 아름답다.


모든 게 감사한 하루.


잠들기 전, 다시 한 번 또 코코아 한 잔 마셔야할까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