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는 매달 한번씩 모여 수필을 공부하는 구사모라는 모임이 있다. 왜 구사모인가 하면 94년부터 만난 문우들의 모임이어서... 이십년 넘게 그 모임은 계속되었다...
나까지 네 명인데 몇 년 전 네 사람의 글을 모아 사인사색이라는 책도 출판했다.
그녀들과(남자도 좀 끼어있으면 좋으련만^^)는 매달 시집 한권을 골라 매일 아침에 시 두편씩 필사하는 작업을 이년 반째 계속하고 있다. 그동안 필사한 시집을 세어보니 10월이 서른 권 째다...
매일 아침 하루 두 편의 시를 필사하는 시간은 삼십분 정도. 하지만 마음 정리하고 오탈자 확인하고 작가 검색도 해보고 하면 한 시간은 후딱 지나간다.
몇 년 째 매일 아침 거의 같은 시간에 구사모는 같은 시를 필사해서 단톡방에 올리고 서로의 감상을 이야기하는 것으로 아침을 시작하곤 했다.
그런데 요 며칠 째 그 아침이 적적해졌다.
한 문우는 동생이 갑자기 폐암말기 진단을 받아 (본인이 빨리 죽기를 바랄 정도로) 극심한 고통에 시달리고 있어 며칠 째 시를 필사할 마음의 여유, 시간적 여유가 없는 모양이다. 시를 필사한 사진을 올리지 않은지 사나흘이 지났다.
또 한 문우는 지독한 불면증에 시달린지 어언 일년이 다 되어가는 모양인데, 만날 때마다 일킬로씩 빠지는 것 같더니 요즘 거의 해골이 되어 버렸다. 겨우겨우 필사한 노트를 사진 찍어 올리기는 하나 마음 편하게 잡담, 이야기 댓글을 올릴 정도는 못되는 모양으로 달랑 필사 사진만 올라와있다. 언제나 짧고 긴 마음의 이야기들이, 문학에 대한, 작가에 대한 글들을 주룩주룩 올리곤 했는데...
새벽까지 눈을 뜨고 있어야 하는 고통이 오죽할까... 게다가 작년에 직장을 그만 둔 후 일년 넘게 쉬다가 몇 달 전부터 다니는 네 시간짜리 알바가 무척 힘든 모양이어서 몸이 견디지를 못하는 것 같다.
그리고 또 한 문우... 그녀의 큰오빠도 역시 최근에 위암말기 판정을 받았는데 그의 아내는 치매환자여서 오빠가 보살펴주는 중이었다고 하는데 오빠는 자신의 병보다 아내의 병구완을 더 걱정하고 있다고... 아무리 다른 여건이 풍족하고 편안해도 집에 우환이 있으면 그쪽으로 마음이 쏠리게 마련인가보다...그래도 이 문우는 계속 시 필사며 일상의 자잘한 이야기들을 올리고는 있다...
가만 보니 우리의 나이가 이제부터는 생에서 노와 병의 강을 깊숙하게 건너는 중인가 보았다. 언제인지 모르지만 레테의 강을 건너 사의 세계로 들어가게 되겠지... 물론 나에게는 영생이지만.
그래서... 언제부터인가 단톡방에 너무너무 좋다, 너무너무 행복하다는 말을 꺼내기가 미안해서 주춤거리게 되었다. 매일 아침 새소리처럼 재잘거리던 나의 얄팍한 수다도 좀 수그러들 수 밖에...
그러면서 생각한다.
별 것 아닌 것 같았던 하루 두 편씩 시를 필사하는 리추얼이 실은 굉장한 축복이었구나....
이런 저런 걱정이 많으면 시 필사는커녕 하루의 일상도 그렇게 편안하게 보내지는 못하리...
매일 아침 하루 두편씩 시를 필사할 수 있는 여건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해야지, 더욱 감사해야지!
어제 무엇인가 작업을 하다가 오후 쯤 나른해져서 부엌으로 갔다.
가서, 냉장고를 뒤져(히야, 가득찬 냉장고!)호두, 아몬드를 넣은 멸치볶음을, 그리고 식초를 살짝 넣어 상큼한 무생채나물을, 그리고 무와 소고기만 넣은 담백한 맛이 우러나는 무국을 끓였다.
음식을 만들면서 콧노래가 절로 나왔다.
일용할 양식을 듬뿍 주신 하나님께 감사찬양드리며 음식을 만들었다. 정말 행복한 시간이었다...
행복의 순간은 잠깐이다. 그 잠깐을 얼마나 길게 유지하느냐가 관건이겠지.
집을 사면 몇 달, 차를 사면 한 달 기분이 좋다고 한다.
나는 4월에 이사한 이 국민임대아파트의 공간을 눈을 뜨면서부터 감사한다. 매일 남편과 눈을 동그랗게 뜨면서 이런 대화를 나눈다. 와, 정말 멋진 집이지 않아? 이렇게 좋을 수가! 이렇게 쾌적할 수가! 우리 이곳에서 영원히 살자! 물론 언제까지 하나님이 살게 하실지는 알 수 없지만, 정말 하루 종일 꿈속처럼 집안을 헤집고 다니면서 어메이징 그레이스를 외친지 벌써 반년이 지났네! 그런데도 그 즐거움 기쁨은 조금도 줄어들지 않는다. 남편은 내가 외출하기만 하면 식탁을 이곳에서 저곳으로 서랍장을 이방에서 저방으로 탁자를 이쪽 벽 저쪽 쪽으로 옮겨가며 배치해놓는다.
외출에서 돌아와 신발을 벗는 나에게 별것도 없는 가구들을 여기저기 옮긴 자랑을 늘어놓는 남편이 순진하고 귀엽다. 나는 날마다, 한 백여 가지의 남편의 허물을 잘 안보이게 하시는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물론 남편의 눈에도 나의 백여 가지의 허물이 잘 안보이는 모양이다. 하하
이틀에 한번 꼴로 내 억장을 무너지게 하는 꼴통남편에게도 진심으로 애정의 눈길를 줄 수 있게 되었다. 저 양반이 없었더라면 내 교만은 하늘 꼭대기까지 올라가 있었겠지.....
비록 교통카드의 잔액을 매일 헤어려보아야 하는 인생이지만(내일 남편이 만원 보태준다고했다. 25일 연금 들어오는 날 전 며칠은 쫌 궁핍하기는 하다 ㅋ)
밑바닥에 깔린 고춧가루를 아껴아껴 먹으면서 세상에 한근에 만오천이나 하는 고춧가루를 대체 언제 구비한단 말이냐, 하면서 날짜를 헤어보기는 해도
만삼천원 잔액이 며칠 째 계속되고 있는 헐렁한 지갑을 가지고 다니기는 해도
공과금 빼면 7천원 남은 체크카드를 들고 오늘은 성경모임에 갈 때 7천원어치 빵밖에 못사겠네, 아쉬워하기는 해도
나는야 수퍼리치!
그러면서 기도한다.
사인사색의 인생을 살고 있는 네 사람(나를 포함하여^^)이 부디 평안하시기를.
하루 온종일 책만 붙들고 있어도 먹여주고 재워주는 나의 하나님이 계시니 감사합니닷!!
많은 시간, 걱정 근심에 시달리지 않게 해주시고 내 하고 싶은 것 할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닷!
내게 주신 환경을 감사하게 생각할 수 있는 마음 주셔서 그 또한 감사합니닷!!!
(하나님께 굿나잇인사하려고 들어왔는데 어쩐지 아부하는 듯한 감사기도가...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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