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독서회에 특별 강사님으로 초대받으신 목사님께서 릴케에 대하여 장장 A4용지 13장 분량의 리포트를 준비해 오셨다. 모두에게 나누어주신 귀한 그 자료집을 가지고 강의하신 나직하고도 분명한 목소리... 덕분에 모두 감사하고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바쁜 권사 나쁜 권사의 토요일 일요일을 보내고 어제는 허랑방탕한 시간을 보내고(나의 소울메이트가 곧 다시 미국으로 돌아간다기에 만남^^ 그런데...웬 송별회가 그렇게도 길었던지! 광화문 옥토퍼페스트에서 수많은 화이트칼라들 틈에 끼어 그 소란함을 견디며 갖가지 맥주를 맛보고-독일맥주축제 행사기간이어서 무제한 리필이었다능... 중간 생략... 야밤에 택시 타고 이태원까지 날아가 또 다시 수제맥주, 다시 중간 생략하구... 11시가 다 되었는데 다시 또 삼차...에구 말을 말자....) 오늘 오후 지나 겨우 정신을 차렸다...
그리하여 지난 토요일 받았던 자료집을 다시 한 번 찬찬히 읽어보는데 감동의 물결이...
나도 독서회에서 가장 많은 발표를 한 사람으로서 리포트 작성이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어가는지 알고 있다. 그런데 목사님이 준비해오신 릴케는 여기저기 검색해서 짜맞출 수도 있으련만 정말 단 몇 줄도 어디에서 주워온(?)게 아니라 정성을 다하여 작성해오신 것이었다.
감격! 감동!
한국의 목사들 정말 너무 바빠 온통 바쁜 목사 나쁜 목사 투성인데 아니, 이 목사님은 어떻게 귀한 시간을 내어 이토록 길고도 성실하고도 아름다운 리포트를 만들어내셨단 말인가!!
집중하여 읽으면서 정말 리포트 전체를 이곳에 필사해서 올리고 싶은 심정이다...
그래도 꾹 참고 목사님의 글 중에서 마지막 결론 부분을(시에 대한 아름다운 이야기들을 못 적는 것을 아쉬워하면서, 감사의 마음으로 필사해서 올린다.
....저는 어느새 목회를 시작한지 30년이 되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갈수록 모르겠는 것 투성이입니다. 여전히 많은 것들이 서툴고 낯섭니다. 아닌 척 하지만 중심이 흔들릴 때도 많습니다. 사람을 신뢰하고 사랑해야 마땅함에도 그렇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사람이 싫어지기도 하고, 신뢰를 포기하고 싶기도 하니까요. 긴 가뭄 끝에 물이 말라 갈라진 바닥을 보이는 호수처럼 인내와 관심과 애정이 바닥을 드러낼 때가 있습니다. 과연 교회가 세상을 향한 희망의 담지자인지, 제게는 어머니 품과 같은 교회에 대해서 안 믿는 사람들보다도 더 지독하게 회의적일 때가 있으니 참 딱한 일이지요.
30년 목회를 하며 줄곧 지켜온 일이 있습니다. 교회와 세상, 믿음과 일상 사이에 다리를 놓듯 매 주 주보를 만들며 주변의 소소한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별 것이 아니어서 경건한 아들이 보기에는 쓸데 적은 일이었지만, 제게는 징검다리를 놓는 일이었습니다.
그렇게 만든 주보 표지에는 짧은 글 하나씩을 써서 실었습니다. 그것을 '시'라 부르는 이들이 드물게 있지만, 제게는 짧은 생각을 적당히 줄을 바꿔 적은 것에 불과합니다. 그렇게 쓴 글 중에 '어느 날의 기도'가 있고, 부끄럽게도 같은 제목을 가진 책으로도 발간이 되었습니다.
틀에 박힌 뻔한 기도, 감동이나 공감의 여지가 없는 기도, 잠시 허공을 맴돌다가 사라지는 기도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이었습니다. 상투성에서 벗어나기 위한 일종의 안간힘이기도 했습니다.
그 일은 릴케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기도시집>에 진 빚이 큽니다. 익숙함과 소란스러움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도록, 미숙하더라도 미답의 세계를 향한 순례자의 걸음을 내딛도록 릴케는 때로 등을 토닥이기도 하고 같은 등불 아래로 초대를 하기도 했습니다.
한 줄 기도에 얼마든지 우리의 마음과 삶과 믿음이 담기는 것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럴 수 있음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릴케는 고마운 사람입니다.
서툰 이야기를 들어주신 여러분의 인내와 애정에 감사를 드립니다. 토니 모리슨의 말로 제 이야기를 끝맺으려 합니다.
"당신이 정말로 읽고 싶은 책이 아직 씌여지지 않았다면, 그것을 써야 할 사람은 바로 당신이다."
목사님. 진심어린 목회현장에서의 고백이 너무도 은혜가 되는군요...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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