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을 꽉 채워 캥거루족이었던 아들이 드디어 분가했다.
자기 돈 1도 안들이고 들어간 아파트에서 아들은 난생 처음으로 혼자의 삶을 살게 되었다.
최소한의 가전제품을 구입하기 위하여 매장을 방문하고
최소한의 생필품을 사기 위해 마트를 갔는데 혼자 살아도 필요한 개수는 똑같았다.
치약 있어야 하고 칫솔 있어야 하고 컵 있어야 하고 물 있어야 하고
수건도 있어야 하고 도마와 칼도 있어야 하고 냄비도 하나는 있어야 하고
그릇도 몇 개는 있어야 하고...
어떻게 생각하면 없어도 될 듯한데 없으면 불편한 것들이 하나둘이 아니다.
텅빈 집에 하나 둘씩 가재도구가 들어가는 것을 보는데
채워지는 것이 좋아보이지만은 않네.
혼자 사는 것은 어떤 것일까.
어쨌든 나는 아들이...
부러웠다.
눈뜨면 아무도 없다는 것.
한국의 결혼생활은 외롭다는 감정을 느낄 새가 없다. 그리움이 생길 사이도 없다.
그냥 마구 부대끼며 살아가게 되어 있다.
혼자만 누릴 수 있는 자유의 폭이 너무 좁아 숨이 막힌다.
요즘 흔하게 말하고 있는 이른바 사회적 거리두기가 결혼제도, 가족에게도 통용되었으면 좋겠다.
결혼생활도 휴가제도가 있으면 좋겠다.
열한 달은 같이 살고 한 달은 떨어져서 마음대로 살고.
아니면 일주일에서 엿새는 같이 살고 하루는 휴가를 가고.
휴가 없는 삶은 얼마나 팍팍한가 말이다.
가족이든 형제이든 좀 떨어져 있어봐야 하는데
도무지 그럴 기회가 없으니.
심지어 하루 중 저녁 한 때 외출하는 것도 남편의 눈치를 보아야하는 인간이(환갑이 넘었는데도)
내 주위에 몇은 있다.
아들이 가니 다시 나의 서재가 생겼다.
남편이 식탁까지 기증하는 바람에 책상이 두 개 생긴 것처럼 넓어졌다.
아들에게 하사받은 튼튼책장도 흘러넘치는 책을 어느 정도 캄푸라치해주니 다행.
화장대도 내 방으로 돌아왔다. 그래도 방이 널널하다.
어제, 새롭게 정리된 내방에 있는데 거실의 TV 소리가 너무 시끄러워 살그머니 방문을 닫았더니
어느새 남편이 다시 열어놓고 갔다. (문은 대체 왜 만들어 놓은 거람?)
결국 본의아니게 요즘은 가장 많은 시간을 유배하는 기분으로 집에서 보내게 되는데
그 기분이 꼭 나쁘지는 않다. 다만 그 사회적 거리가 너무 가까운 바람에
답답하긴 하다. 하는 수 없지.
오늘은, 만사태평시대에 돌입했음에도, 이상스레 기분이 다운되어
손을 놓은 채 오전을 보냈다.
시 필사 리추얼도 건너뛰고, 새벽 라이브 예배 실황(우리교회도 많이 세련되었군)도 어제는 함께 했는데
오늘은 건너뛰고, 느지막히 일어나 느지막히 아침을 먹고 코로나 일색인 TV 앞에 앉아서 두어 시간을 보내니
영혼 한 군데가 뻥 뚫린 것처럼 허전, 허무하다.
게다가 하필 손에 든 책이 크누트 함슨의 <굶주림>이다.
몇 장 넘기다가 마음이 꿀꿀하여 내던지고 아주 오랜만에 피아노 앞에 앉았다.
그러구러... 한 시간 정도 가스펠을 두드려댔나 모르겠다.
하도 오랜만에 건반을 만졌더니 손가락이 자꾸 삑사리나긴 했지만 씩씩하게 노래까지 부르며
신나게 쳤다. 그랬더니 훨씬 마음이 나아진 기분이다.
피아노를 내 방으로 옮겼어야 했다...
내년 즈음에는 피아노에 집중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그거...스트레스 해소에 그만이다...
피아노나 키보드 모두 타건법이므로 건반 두들길 때는 키보드 두드릴 때 느끼는 희열 버금간다.
무엇인가 때려잡고 싶은 건가? 두들겨 패고 싶은 건가? (그게 나라는 것은 비밀이다)
내일부터 하루의 일과 중에 가스펠 두들기기를 첨부해야겠다!
아무튼, 변명하자면 코로나 때문에 (이건 정말 변명일 뿐이다)
마음이 안정되지않고, 책도 눈에 안들어오고, 글은 책보다도 더 잡기 힘들고...
그러니 은근히 우울이 자리잡는 것 같다. (이것은 말도 안되는 사치를 부리는 거 맞다!)
정신차려 이 친구야!! (넵!)
이 와중에 마스크 한 번 사본 적 없는 나는, 마스크 살 걱정 1도 없이 심사 편한 나는
남 눈치 보느라 외출도 잘 못하고... 그냥 헝겊 마스크 대강 쓰고 마트나 간다.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신 기똥차게 평안한 삶을 요렇게 밥맛없이 보내는 저를 용서하세요...
오늘 하루 남은 시간은 좀 잘 살아보자...
(나, 진짜, 사순절의 시작인 재의 수요일에는 교회가서 사순절을 경건하게 시작하려고 했다. 그런데... 교회에서 오지말라는 연락이 온 것이다.
내 마음은 하나님은 아시리... 대신 사순절 묵상집을 읽는다. 우리와 인연이 깊은 한희철목사님께서 사순절 묵상집을 이번에 냈는데 쉽고 좋다.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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