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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현장에서 붙잡힌 여인이 가로되

아무 날의 도시

by 이숙경(2011canna@hanmail.net) 2016. 5. 17.

<아무 날의 도시>는 매일 아침 시를 필사하는 나의 리추얼 중에서 5월의 시집이다.

난생 처음 들어보는 시인, 신용목이라는 지구 아래 어느 인간이 어느땐 살갑게 어느땐 차갑게

내 몸과 영혼을 스치며 지나간다. 나는 아침마다 이 인간이 맹글어놓은 시 세계를 탐험하는데

어느땐 그야말로 쿨해지고 어느땐 나에게 정념을 한 바가지 붓게한다. 저 시인, 쉼표를 나만큼이나 좋아는 것을 알았다. 오늘까지 서른 몇 편의 시를 필사했는데 마음에 드는 시는 대여섯 편. 그 정도면 양호한 편이랄까.

 

오늘은 너무 일찍 일어나는 바람에(어제 초저녁에 쓰러져버렸기에) 너무 일찍 시집을 들쳐보게 되었다. 뭐, 나에게는 시 한 편이나 성경말씀이나...하면서 이책 저책 뒤적이는데, 또, 아이고, 하나님께 감사하고 싶어 견딜 수 없었다. 그래서 커피 마시다말고 가슴께를 꾹 누르고 하나님이 여기 계신가 확인해보고, 완전 무지의 허여멀거름한 천정을 올려다보고 저 꼭대기에 계신가, 조금 열어놓은 창문으로 들어오는 새벽의 상쾌한 공기속에 계신가, 마구마구 찾아다녔다. 하나님과 새벽부터 술래잡기하는 기분. 결론. 이 세상이 다 하나님이네요.

 

아무 날의 도시에서 한 인간이(죄도 많고 탈도 많고 사건사고도 많고 짜증도 많고 허빵도 많고 실수도 많지만 그래도, 그러므로, 그러니까 하나님의 자녀라는 나) 여전히 감격스러운 아침을 맞는다는 것이 어디 그리 쉬운일일까. 그것이 완전 수동태로 나의 삶으로 파고 들어온다는 것이 어디 그리 쉬운 일일까. 인간의 힘으로는 되지 않는다는 것을 나는 지난 토요일 독서회 모임 이후 몇 사람과 함께 한 티타임에서 알아봤다.

아흔아홉가지 은혜를 입은 어떤 사람이 그 아흔아홉가지 은혜를 자신의 능력이라고 착각한 나머지, 가장 완벽한 바리새인이 되어, 가장 사랑해야 할 가족에게 트러블메이커가 되어 있는 팩트를 알게 되면서, 그자리에서 놀라움으로 나의 눈이 두 배는 커졌으리라. 그분, 나도 참 좋아하는 분인데. 그래서, 그분 자가당착에 빠져 홧병이 나셨다는 것이다. 그 말을 듣는 내 마음이 안타까움과 슬픔으로 엉망이 되었다. (그러면서도 허니와 휘핑 크림이 잔뜩 올려진 허니브레드는 야금야금 먹어치웠다. 검색해서 알게 된 사실인데 내가 먹는 약에 식욕증진제가 있다능...흑) 허니브레드 한 귀퉁이를 포크로 한 입 크게 베어물면서 나는 물었다.

"설령 세상 사람들은 철저한 거래방식으로 그렇게 생각한다 하더라도 그분은 하나님을 잘 믿으시는(믿음 좋다고 자타가 공인하는, 특히 자신이 더욱 확신하는) 분인데 그 괴로운 상황에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향으로 생각하지 못하실까요?"

그분 가까이서 지켜본 여러 사람들의 증언인즉슨,

"그게...자신이 하는 생각이나 말은 다 옳다고 생각하시니까..."

제발, 그분 스스로 만들어버린 불행(그런 상황을 남들은 행복이라고 할 텐데도)에 빠져버린 그분께 하나님이 귓속말이라도 하여주시기를.

 

나는 하나님께 살짝 물어보고 싶었다. 그분 연세도 꽤 있으신데 대체 언제 수동테로 만들어주실건가요?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 같았다. 내맘이야~~~)

그러니까 아무 날의 도시에서 행복한 미소로 아침에 눈을 뜨는 인간이 되어버린 나는, 아이고 감사, 만 연발하고 가만히 있는 것이다.

 

오늘, 아무 날의 도시에서, 나는 남쪽 어디 교회의 목사님이 전해주는 말씀을 들으며 눈부신 아침을 걸었다. 이슬에 맺힌 풀잎이 파릇파릇했고(엄허나 냉면에 넣을 계란 삶다가 냄비 태울 뻔했넹, 지금. 남편 모르게 얼른 싱크대에 물 부어놓았다. 하마터면 아침부터 한소리 들을 뻔 했넹 ㅋㅋ), 엊그제 비에 쑥쑥 자란 나무와 풀섶이 정말 싱그러웠다. 게다가 꿀보다 더 달콤한 말씀이 들려오니 정말 죽어도 여한이 없을 것 같은 아침이었다.

새벽교회도 안가고 그 시간에^^ 뭐, 갈 생각 없으면 안 간다는 나의 자유를 누가 뭐라겠어!

 

그런데 나의 하나님, 어제보다 오늘 정확하게 500그램 몸무게 늘었어요.

어제, 두 시간 운동도 했고, 뜨거운 어딘가 누워서 장장 두 시간도 있었는데 대체 이게 뭔일이래요~~~

하면서 벌써부터 옷 차려입고 앉아있다.

어제부터 헬쓰를 시작했거등요. 자그마치 일년치 끊게 해주신 나의 하나님께 감사드리옵고 걷기 하면서 말씀 들으려고 몇 개나 다운 받아놓았어요. 앗, 여덟시 알람.

하나님. 헬쓰에서 만나요^^

 

아무 날의 도시에서 현장에서 붙잡힌 여인이 잠시 하나님 귓전에 속살거렸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