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1학년때, 교회에서 고등부 교사로 만난 두 분 선생님(당시 평검사였던 삼십 대의 선생님은 매주 우리를 끔찍하게 사랑해주셨고, 잉그리드 버그만보다 두배는 더 이쁜 음대 출신 사모님은 고등부 성가대 지휘자셨다)께 매년 편지를 쓰는데 올해의 편지를 숙제하듯 해치웠다. 작년에도 선생님은 편지 두께를 확인하시고는 요즘은 성의없이 쓴다고 야단하셨는데 올해도 그러시게 생겼군. 할 수 없지. 사랑이 쫌 식었나봐용, 하면서 편지 냅다 던지고 도망가야징.
41년 생 노구임에도 매달 독서회를 이끄시는 한번 스승은 영원한 스승을 몸소 보여주시는 선생님, 그래도 감사합니당. 이름 몇 자만 지우고 그대로 올린다. 프린트까지 하니 기분 좋군. 이제 감사카드 석장만 쓰면 되는디...)
(상황 설명을 드린다면 우리 교회에서, 가장 아름다운 부부. 박선생님은 우리 선생님의 아내인데 지금은 아주 심각한 중증 치매로 투병중이다. 그래도 우리 선생님은 박선생님과 매일 동행하신다. 박선생님은 지금은 거의 모든 기억이 사라지고 우리 선생님만 겨우 알아보신다... 이제는 화장실 출입은 물론 걷기도 힘들어하시고 식사하는 것도 다 잊어버리셨다. 우리는 날마다 눈에 띄게 심해지는 그 모습을 매달 독서회때마다 아무것도 도와드리지 못하고 그냥 지켜보고 있다.)
아니 벌써 2016년!
존경하고 사랑하는 ...... 선생님께 스승의 날을 맞이하여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두 분 선생님을 만나게 해주신 하나님과 우리 ... 교회에도 감사드려요.
오래전의 인연을 지금 이 시각까지 놓치지 않고 한 달에 한 번씩 만나 배움의 길을 터주시는 독서회 모임은 내 생애의 감사할 일 중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일입니다.
덕분에 마음으로 그리워하며 속앓이 하지 않아도 되니 얼마나 좋아요!
저도 여기저기에서 선생질 좀 하고 있지만 수십 년 째 만날 수도 있고 편지도 드릴 수 있는 스승님이 계시다고 얼마나 자랑하는지 모르실 겁니다.
사람의 마음은 변덕이 심하지만 저는 유독 감정의 기복이 심해서 이때는 좋고 저때는 싫고 하기가 일쑤인데 우리 사랑하는 선생님은 생각만 해도 마음이 좋아요.
(이것은 찬송가에서 빌려온 구절인데요. 구주를 생각만 해도 마음이 좋거든 그 얼굴 뵈올 때에야 얼마나 좋으랴. 아시지요? 가끔 구주 대신 선생님을 집어넣고 아멘 할 때도 있답니다.)
선생님.
저는 지금 현재의 선생님의 모습이 가장 아름다워 보입니다. 그리고 지금의 모습에서 가장 귀한 교훈을 얻습니다. 자기 몸보다 더 우리 박선생님을 사랑하는 모습을, 하루 이틀도 아니고 몇 년도 아니고 수십 년을 보아 왔으니 저도 남편을 선생님의 사랑과 경쟁하면서라도 잘 해드릴 결심을 매일 아침마다 합니다. 선생님이 하늘에서 맺어주신 아내를 위하여 그야말로 24시간 비상체제로 수고하고 애쓰는 그 애틋한 사랑을 하나님은 아십니다. 밖에서 보이는 겨우 몇 시간, 선생님께서 우리 박선생님께 행하시고 마음 쓰시는 모습을 그냥 지켜보기만 하면서도 저를 포함한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반성하고 뉘우치고 조금은 더 착한 아내와 남편이 되려고 노력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저입니다! 우리 남편도 참 만만치 않은 꼴통(아시잖아요)기질로 저를 황당하게 만들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지만 저는 그때마다 선생님을 생각하면서 마음을 다잡곤 합니다.
우리 선생님은 저렇게도 하시는데 나는 요것도 못할까, 하면서요. 그러니 선생님은 죽을 때까지(죄송해요) 선생님이시죠! 이런 나의 마음을 우리 남편이 알면 선생님을 찾아가 감사의 인사를 드려야 하지 않을까요?
선생님.
다정하게 불러봅니다. 제가 은근 내성적이라 선생님께 전화도 못 드리고, 정작 만나도 선뜻 다가가 쉽게 말을 나누지 못합니다. 저의 이런 소심증을 아시나 몰라. 물론 우리를 바라보는 독서회 회원들은 우리가 아주 친하다고 생각하겠지만 글쎄요, 우리가 친한가요? 전 잘 모르겠어요. 하지만 이것은 알아요. 제가 선생님을 아주 많이 존경하고 사랑하고 있다는 거요. 어느 순간 마음속에서 떠오를 때마다 감사와 기쁨의 미소가 저절로 흘러나오게 하시는 분, 선생님!
배울 것이 너무 많아 지치게도 하시지만, 저도 수십 년 동안 요령이 생겨서 한 번의 만남에서 한 가지만 착실하게 챙겨서 배우고 있습니다.
저의 인생에서 어떤 모범적인 예시를 할 때, 가장 많이 거론되는 대상이 바로 우리 선생님이십니다. 저는 그것이 참 자랑스러워요. 우리 하나님은 정말 멋지시죠? 선생님을 만나게 해 주셨으니, 그리고 지금까지 그 인연을 소중하게 이어가게 하셨으니 앞으로도 선생님과 절연하는 일은 없을 것 같아요. 하하하.
저로 하여금 삶의 순간순간마다 선생님의 교훈을 떠올리면서 헛발질을 멈추고 제자리를 향해 발길을 돌리게 하여 주셨던 나의 선생님.
선생님의 격려와 사랑과 그리고 물심양면의 도움으로 저는 보잘 것 없긴 하지만 하나님 안에서 당당한 크리스천이 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세상은 생각보다 더 아름다우며 따뜻하며 충분히 살아갈 만한 곳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었어요.
책과 음악을 하나님과 삶의 질서를 몸소 행동으로 보여주셨던 나의 선생님을 정말 사랑합니다.
이번 독서회에서 다루는 조지 기싱의 책 서두에 ‘우아한 나이듦의 품격’이라고 써 있잖아요. 저는 그 멋진 말을 선생님과 우리 박선생님께 드리고 싶습니다. 특히 우리 박선생님!
저는 있는 그대로의 선생님의 상황을 바라보면서 더욱 많은 것을 깨닫습니다. 아마 많은 사람들이 선생님과 박선생님을 지켜보면서 수많은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고 그 생각은 결코 값싼 감상만은 아닐 것이고, 그들의 자기중심적인 사고방식을 고치는 데 한 몫 했을 것이 분명합니다. 하나님은 왜 선생님께 그렇게 힘든 상황을 만드셨는가 하면, 제 생각으로는 끝까지 사람들에게 온몸으로 무엇인가 가르치게 하시려는, 그야말로 죽을 때까지 ‘선생질’하라는 하나님의 생각이 아닌가 싶어요. 그래서 배웁니다. 매 독서회에서 만날 때마다 배웁니다. 눈으로 분명히 보았으니 가슴으로 더 깊이 파고듭니다. 그것은 감동이고 아릿한 슬픔이기도 하지만 분명 사랑의 실체가 어떠한 것인가를 보여주는 가장 멋진 모범답안입니다.
선생님.
저는 왜 이렇게 말이 많아요? 선생님만 떠올리면 이말저말 두서없이 나오는 통에 제 손이 얼마나 바쁘게 자판을 두드리는지 모르겠어요. 할 말이 그렇게 많다는 것이겠지요.
선생님.
저는 정말 잘 살고 있습니다. 저는 내 생애에서 가장 행복하고 아름다운 시간(그런 것을 화양연화라고 한다지요?)을 보내고 있습니다. 아침에 눈을 뜨면서부터 감사와 감격으로 시작하고 잠자리에 들면 황홀했던 하루에 대한 회상으로 미소가 떠나지 않습니다. 마태복음 5장의 산상수훈 첫 마디와도 같습니다. 행복하여라! 복 있는 자여!
비교해서는 안 되겠지만 저의 어려움과 힘든 것들은 선생님이 우리 박선생님을 돌보시는 것에 비한다면 놀이터에서 공놀이하는 것처럼 즐거워 보일 지경입니다. 그래서 말인데요. 가끔 마음속에서 분란이 일어나면, 그래서 마음이 상하면, 생각의 끝에서 결국 선생님을 만나게 됩니다. 그래, 선생님은 매 순간을 그렇게 보내시는데 이런 것 쯤이야!
저는 지금 저의 상황에 만족하고 감사하고 매일 오늘처럼, 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이게 대체 웬 복이란 말입니까! 잘한 것 하나도 없는데 거저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으로 날마다 부족함 없이 살아가게 하시는 나의 하나님께서 우리 선생님도 잘 지켜주시죠?
늘 혼돈스럽고 갈팡질팡하던 머릿속도 많이 진정되어서 요즘은 제법 질서도 잡힌 것 같고, 무엇보다 일상의 순간순간이 저를 행복하게 합니다. 저는 정말 복 있는 자, 가 되었나 봐요!
요즘 암치료제 복용약의 후유증으로 통통하게 살이 쪄서(아 글쎄 일주일에 일 킬로씩 느는 것 같아요)어떡하지, 하면서 고민하다가 깜짝 놀랐습니다. 아니, 내가 그 많던 고민과 문제들이 다 해결되어 이제는 겨우 고민이라는 것이 뱃살 나오는 것이라니요!! 아니 대체 그것이 무슨 고민이랍디까! 저는 즉시 하나님께 감사드렸어요. 세상에, 하나님. 이럴 수가요. 대체 언제 저의 모든 고통을 단숨에 쓸어가 버리셨나요?
저는 무슨 복으로 매달 독서회라는 기가 막힌 장소에 가서 천국의 시간을 누린단 말입니까.
아이고 그만 쓰려고 했는데 종이가 또 넘어가네요.....
이제는 저의 주위에 있는 거의 모든 사람을 사랑의 눈으로 이해의 눈으로 감사의 눈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하여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아마도 저는 앞으로도 저에게 주어진 시간을 자유롭게 활용하면서 그 자유 안에서 책을 읽고 생각을 하고 글을 쓰고 그리고 다정한 사람들을 만나 깊은 대화를 나누며 행복할 것 같아요.
설령 그리하지 아니하실지라도 이미 제 안에 있는 천국을 누가 침노하겠어요!
사랑하고 존경하는 선생님, 그리고 박선생님!
선생님의 힘든 여정에 조금도 도움이 되지 못하는 바보 제자를 오늘도 용서해 주실 거죠?
맨날 스승의 날이라고 글 몇 자 써서 드리고는 나 할 일 다 했어요, 하면서 도망가는 저를 그래도 이쁘게 보아주실 거죠?
두 분 선생님을 하나님께 맡깁니다.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과 사랑으로 선생님의 하루하루가 은혜로 넘쳐나게 되기를 기도드립니다. 제가 순간순간 떠오를 때마다 화살기도 하고 있는 거 아시지요?
이 모든 객쩍은 소리, 선생님께서 다 이해하여 주실 줄 믿~쑵니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2016년 5월, 스승의 날을 맞이하여, 엉터리 제자 ...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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