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빛나라 60

전혀 그렇지 않다

by 이숙경(2011canna@hanmail.net) 2017. 2. 21.

어제 남편 폐 CT를 찍으러 국립암센터에 갔다.

그곳에서 12월에 건강검진을 했는데 연구 대상자로 뽑혀 공짜 CT를 찍게 된 것이다.

뽑힌 연유가 재밌다.

오래동안, 적어도 30년 이상 담배를 피웠고

아직까지 줄기차게 담배를 피우는 분으로서

폐암에 안걸리고 각종 폐질환에도 안걸리고

폐 CT를 한번도 안찍어보신 분, 에 한하여.

 

극진한 대우를 받으며 CT를 잘 찍고 설문조사에 응하게 되었다.

가만히 보니 금연을 유도하려는 문항이 많아보였다.

상품권을 준다기에 성실하게 임하기로 하고 한 문항 한 문항 체크를 시작했다.

나는야 잘 보이지 않는 남편의 도우미^^ 옆에 찰싹 붙어 앉아 읽어드리기 미션 수행!

 

세세한 기억은 나지 않지만 대략 이런 문항이 50개쯤 있었다.

담배를 피우는 것에 죄책감을 느끼십니까

-전혀 그렇지 않다

담배를 피웠던 지난날에 화가 나십니까

-전혀 그렇지 않다

담배를 피우면서 끊을 생각을 하십니까

-전혀 그렇지 않다

담배 때문에 삶의 질이 나빠졌습니까

-전혀 그렇지 않다

담배로 인한 건강 걱정에 불면증이 있습니까

-전혀 그렇지 않다

담배를 끊지 못해 불행하다고 느끼십니까

-전혀 그렇지 않다

담배를 끊을 생각이 있으십니까

-전혀 그렇지 않다

담배로 인한 질병 걱정에 우울하십니까

-전혀 그렇지 않다

담배로 인해 주위사람에게 핀잔을 들은 적이 있습니까

-전혀 그렇지 않다

담배를 피워 몸의 불편을 느낀 적이 있습니까

-전혀 그렇지 않다.......

 

음....이로써 국가에서 시행하려는 금연정책에 절대 호응되지 못하는 인간이 되어버렸다.

담배값이 어마무시하게 올라 담배를 끊을까 하는 남편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렇게 재미있고 즐겁고 신나는 취미생활을 그만두려 하다닛!

내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당신 담배값은 댈 테니까 걱정말앗!!

 

검사 끝내고 암센터를 나오면서 우리 남편님은 맛나게 담배를 피우시고

나는 담배 냄새를 이리저리 피하면서도 남편 손을 꼭 잡고 걸었다.

버스를 기다리다가 저만큼 가 앉아 다시 담배를 피우는 남편이 너무 보기 좋아서

사진도 한 장 찍어드리궁

 

내가 남편에게 말했다

일흔 네살까지 이런 곳(암센터)에 드나들지 않게 된 것을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그만하면 매우 잘 산 것이니 앞으로도 행복하게 삽시다.

돌아오는 길에 시장에 들러 선물받은 상품권으로 닭 한마리 샀다. 제법 크다!

둘이 싱글벙글하면서 잘 다녀왔다.

일주일 후 검사결과 보고 금연치료 1회 받으러 또그 먼곳까지 버스타고 가야한다.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궁금.

바라기는

폐암이십니까?

전혀 그렇지 않다

로 종결짓기를^^

 

 

 

 

 

 

 

'빛나라 60'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전혀 그렇지 않다 2탄  (0) 2017.02.28
40년 전과 오늘  (0) 2017.02.26
2만원의 행복  (0) 2017.02.13
내친김에 나의 5분 인터뷰  (0) 2017.02.10
21세기를 위한 평신도 신학  (0) 2017.02.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