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 자기결정에 의한
5시 묵상에서 선물같은 문장을 발견.
하나님은 당신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는 다 끝났다고 생각하고 있지. 너는 네 상황밖에 볼 줄 모르는구나. 실패하고 망하고 아무 결과도 거두지 못했다고.... 그래서 '이젠 끝장이다'라고 말하고 있지. 하지만 내가 볼 때는 그것이 시작이다!
내게 네게 부어주려고 하는 상을 나는 지금 보고 있다. 너를 위해서 좋은 것을 예비해 두고 있다.
그러니 이제 그만 징징거리거라!"
징징거리려고 마음먹고 앉아있다가 깜짝 놀랐다. 헤헤. 하나님은 참, 새벽부터 나를 놀래키시네.
이리저리 자료를 찾고 있던 중 흥미있는 기사를 발견했다. 오늘은 발견의 날인가보다.^^
자신이 '주초문제에 자유롭다'고 밝힌 어느 유명 목사의 기독교 신문 기고문 중에서의 일부이다.
('주초문제에 자유롭다'는 말을 내 나름대로 해석하기에는 본인의 자율적인 행위안에, 그러니까 본인의 의지로 주초를 장악하고 있다는 뜻으로 들렸다. 그것이 바로 나의 바람이다. 술을 마시지만 나의 의지에 따라 안 마실 수도 있고, 담배는 피우지만 중독이 되어 생활에 폐해를 끼치는 순간까지 진도 나가면 좋지 않다는 의미가 되겠다. 요즈음의 나를 이 관점에 비추어 점검해보자면 담배는 나의 스스로 규제가 되는 반면, 술은 기대에 못미친다. 어느 순간이 되면 술을 마시고 싶은 욕구가 일어나는데 그것은 매우 잦다. 일주일에 한 번 정도 기분 좋게 술 마시는 정도로 나를 규제하고 싶은데 각종 모임이나 만남이 그것을 매우 힘들게 한다. 반성.)
하여튼, 그의 논지를 살펴보면.
기독교 윤리에서는 비본질직인 것, 중립적이니 것이라는 아디아포라(adiaphora)를 매우 중요한 주제로 취급하여 왔다. 어떤 신학자들은 성경에서 적극적으로 금하고 있지 않는 것은 선과 악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것이기 때문에 그리스도인은 자유를 누릴 수 있다고 말한다.
루터를 비롯한 루터파 신학자들, 그리고 최근에 들어 비본질적인 것에는 자유를 누린다는 라인홀드 니버 교수가 바로 이런 입장이다.
술 담배의 문제가 하나님의 영광과 이웃의 유익에 기여할 것인가 아닌가를 항상 살펴야 한다. 즉 기호품으로서 술과 담배를 즐기는 문제는 한국 교회 전통과 공동체에 속한 형제의 유익과 하나님의 관점에서 판단해야 한다.
아, 이런... 내 생각에 하나님은 주초잡기가 생의 어떤 규율을 깨뜨리지 않는 범위에서는 별 잔소리 안하실 것 같은데 전통과 형제의 유익에서 좀 문제가 된다. 형제의 유익을 위하여 내가 굳이 속회의 노권사님들께 제가 술 담배를 아주 좋아해요, 라고 말하지 않고 얌전히 있는 것이 아닌가. 하지만 교회에 계신 수많은, 나를 아는 분들이(친구들이야 나를 잘 알지만) 나의 커밍아웃을 보고 기함을 하면 참으로 난처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런 면에서 위의 목사의 발언은 참으로 용맹스럽다고 칭찬을 해주어야 할지, 어떨지...
원래 전통이라는 것이 어느 종교나 막론하고 사람의 자유를 옥죄이는 구실을 한다. 어느 면에서는 일치감을 줄 수도 있고, 동질성을 느끼면서 서로 독려할 수도 있겠지만 전통도 시대에 따라 변해야 하지 않는가. 전통으로 매어 놓아서 많은 사람들의 전도에 방해가 된다면, 그리고 세태를 잘 파악한다면, 매어 놓은 것을 풀어주는 결단도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고양이 목에 누가 방울을 달 것인가.
과거 신학자는 이신득의以信得義)는 디아포라(diaphora)로 보았으나 예배의식, 성상, 성직자의 예복 등은 아디아포라의 문제로 간주하였다. 당연하지 않은가.
모르겠다. 지금 상황에서는 라인홀드 니버의 기도문이나 다시 읊는 것이 정신건강에 이로울 것 같다.
하느님(하나님, 하느님의 칭호에 대하여 민감하게 반응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우리가 변화시킬 수 없는 것들은
그저 평온한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은혜 주시고,
우리가 변화시켜야 하는 것들은
우리가 그것을 마땅히 바꿀 수 있도록
용기를 주시옵소서.
그리고,
우리가 그 두 가지의 차이를 분별할
지혜를 주시옵소서.
아멘, 라인홀드 니버 교수님, 아멘, 아멘!
예전에 아는 집사님의 권유로 MTBI 라는 성격검사를 받은 적이 있는데 나는 INTP 유형이라고 나왔다.
짧게 요약된 결과물에 나의 성격은 이렇게 설명되어 있었다.
논리적인, 회의적인, 인지적인, 초연한, 이론적인, 정확한, 독립적인, 독창적인, 자율적인, 자기-결정에 의한.
거의 맞는다.
초연과 독립과 독창과 자율과 자기 결정은 다 비슷한 말이 아닌가! 한 마디로 내 맘대로 하는 꼴통이라는 것이다. 이런 성격으로 나온 사람의 비율은 검사자의 1%라고 한다. 하긴 꼴통이 많으면 말이 안 되지 ㅎㅎ
나의 꼴통 기질을 잡을 분은 단 한 분, 바로하나님!
하나님 밖에 없다는 것을 하나님은 아시므로 어느 순간에는 나를 꽉 조였다 슬며시 풀어주기를 반복하며 나의 삶을 리드미컬하게 조절하고 계시다는 것을 나는 익히 알고 있다.
친구 부부들과 야유회 가는 일이 자꾸 꼬이는 바람에 줄줄 새는 시간이 아까워 모처럼 가스펠을 치며 놀았다.
어제 밤, 겟세마네 기도회 때 부른 노래가 너무 좋았는데 제목을 알 수 없어 찾지 못하는 것이 너무 약올랐다.
그래도 한 곡은 찾았다.
주님 말씀하시면 내가 나아가리다
주님 뜻이 아니면 내가 멈춰 서리다
나의 가고 서는 것 주님 뜻에 있으니
오, 주님 나를 이끄소서...
비가 온다는 이유 같지 않은 이유(비가 오면 물가에서 더 재미있게 놀 수 있는데 말이다. 또 그 비오는 운치는 환상일 텐데 오늘 여러가지 꼬인 관계로 핑계거리가 되었다)로 결국 야유회는 취소되고 친구 부부 한 쌍과 함께 고기 먹으면서 낮술 마셨다.
엉키고 설킨 미묘한 문제들이 특별 안주가 되어 술이 잘 먹혔다. 결국 대낮에 각일병씩.
4시도 안되어 집으로 돌아오니 마음이 허무해져서 머리라도 자를 겸 미장원에 갔다.
석 달 넘게 에라 모르겠다 하면서 머리카락이 맘대로 자라도록 내버려두었더니 제법 길게 내려왔다. 생각 같아서는 젊은 시절처럼 길게 기르고 싶었지만 꾹 참고 머리를 다듬었다. 거울을 보니 발그레한 나의 얼굴이 보인다. 혹 술 냄새가 날까하여 양치질도 정성껏 했지만 나의 담당 헤어디자이너 선생님(서태지처럼 멋진 젊은 남자이다)은 눈치를 챈 것 같다. 나는 입을 꼭 다물고 한 시간을 버텼다. 힘들었다.
미용실에 앉아 창밖을 보니 비가 제법 많이 오고 있다. 비가 오면 글 쓰는 사람 대부분은 거의 미쳐버리는 기질이 있다. 평소 멀쩡하고 조신한 문우 한 년(미안, 친밀감의 표시란다)은 비가 오는데 가슴이 벌렁거려서 도저히 집에 있을 수가 없어 미친 뭐처럼 밖으로 뛰쳐나와 한참을 걸었다고 한다. 우산은 폼이었고 사실은 비를 쫄딱 맞고 싶었는데 사람들 눈치가 보이기 때문에 일부러 우산을 반쯤만 쓰고 이쪽저쪽 어깨를 교대로 적시었다고! 비를 보니 나도 살짝 미치고 싶었다. 게다 술도 마실만큼 마셨겠다, 이런 상태로 대낮에 집으로 기어들어가고 싶지는 않고 어찌할꼬... 한참 머리 굴리다가 한 동네에 사는 시인에게 문자를 보냈다.
시간 있어요? 한 시간?
역시 비오는 날 미치는 시인은 득달같이 나왔고 비오는 한 시간을 금쪽같이 즐기면서, 시, 글, 문학, 소설얘기로 온통 도배를 하면서 다시 술잔을 기울이다. 술이 거나해서 담배까지 피우니 백만 원짜리 소파 한 세트 산 것보다 더 행복해졌다. 진짜다! 하나님이 나에게 백만 원은 주지 않으셨지만 그만한 즐거움은 누릴 수 있게 해주셨다. 감사해요, 하나님!
안 떨어지는 발걸음으로 억지로 집으로 돌아왔는데 몇 시간 후 시인으로부터 다시 문자가 왔다.
그 사이 시인 한 사람이 더 붙어서 있단다. 또 잠깐 들리시지요. 화장실 간 것처럼.
그사이 이 닦고 세수하고 쌩얼로 앉아있던 나는 홈웨어에 남방 하나 걸친 모습으로 다시 시인들을 만났다. 걸어서 5분 거리에 있는 분위기 좋은 선술집이 우리 아지트인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
거의 두 달 만에 얼굴을 보는 시인이 반가워한다. 비도 오고 술도 마시고 문학 이야기도 하고, 즐거운 시간이었다. 생각 같아서는 날밤이라도 새우면서, 빗소리 들어가면 이야기 하고 싶지만 나는 대한민국의 오십대 아줌마! 그것까지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나는 포기한다.
한 시간도 못 채우고 다시 집으로 달려왔지만 달콤한 시간이었다.
밤에 미국 친구로부터 전화 보고. 삼십년 만에 목소리를 들을 옛사랑의 두 남녀, 이것들이(미안합니다) 글쎄 날마다 한 시간씩 전화질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참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던 친구의 목소리에 생기가 도는 것이 듣기에 좋았다. 열심히 들어주다가 내가 한 마디 했다.
"미국에 떨어져 있는 것이 참 다행이다. 한국에 있었으면 일 났겠다."
친구가 큰소리로 웃었다. 하나님이 짱구냐, 그럴 줄 알고 나를 이렇게 멀리 보냈나봐.
누워 생각하니 오늘 하루도 참 즐거웠다. 하나님께 감사기도를 드렸다.
하나님, 저에게 자유를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허락해 주신 자유를 방종에 빠지지 않게, 죄 속으로 스며들지 않게
잘 누릴 수 있도록 저를 지켜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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