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언)QT 말고 관상기도!
결국 집에 있는 날은 단 하루.
1. 관상기도를 20일 했고 횟수로는 41번을 했다. 별 진전은 없지만 그래도
계속할 의지를 가지고 있다. 그것을 알게 된 것이 나에게 축복이다.
2. 관상기도는 침묵 속에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느끼는 것이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쓸데없는 말을 하면서 살아왔는가, 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다. 조용히 있는 것.
특히 개신교에서는 뭔가 움직임을 원하고 있지만 사실 경건생활은 너무 바쁘면 하기 힘들다고 생각한다. 쉴 새 없이 어디론가 달려가야 하고, 뭔가 해야 한다는 것 자체가 어느 날 힘에 겨우면 주저앉게 되고 쓰러지게 될 것이다. 이른바 실족하게 되는 것이다.
3. 나는 잠언을 읽을 때마다 마음이 매우 힘들어진다. 여러 가지 말 중에서도 거의 말은 그래도 하지 않는 것이 중간은 간다, 는 우리나라의 속담과 많이 비슷하다. 나는 잠언에 있는 모든 말이 성경적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야말로 잠언이다. 마음속으로 반항하게 되는 구절도 몇 개 눈에 뜨인다. 하지만 내가 느끼는 것은 아무래도 말이 많으면 손해도 많다는 사실이다.
4. 나는 일 년에 한번 이상씩은 꼭 남에게 하지 못할 말을 해서 상처를 준다. 나는 그것이 고통스럽다 못해서 나 자신을 마구 학대하기도 한다. 내가 왜 그랬을까. 다시는 그러지 말자, 하면서 이제껏 살아왔는데도 올해도 그냥 지나가지 못하고 말았다.
예를 들어, 내가 어떤 친구에게 신앙적인 조언을 한 일이 있었다. 그런데 그 친구가 몇 달을 내 말에 시험 들어서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나는 그 친구가 이제는 그 말을 받아들일 수 있을만한 믿음이겠거니 하고 생각했는데 아직은 아니었던 것이다. 물론 조목조목 따지고 든다면 내 말이 결코 틀린 말은 아니었다. 하지만!!
언젠가 목사님이 하신 말씀. 내용이 아무리 좋아도 그릇이, 그러니까 그 전하는 태도 등이 걸맞지 않으면 문제가 많이 생긴다고 하셨는데 그 꼴이었던 것이다.
이후로 나는 더욱 말을 조심하게 되었지만, 또 속이 답답해져서 내가 병이 생길 지경이 되고 말았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사람들을 가까이 하고 싶은 마음이 없다. 내가 본의 아니게 상처를 줄 뿐만 아니라, 나 또한 상처받기 때문이다. 내가 좋아하는 것은 그러니까 상처받지 않는 책, 무생물, 하늘 바람, 꿈, 이런 것들이다. 그것들은 나에게 상처를 주지 않는다. 대화를 나누는 것보다는 자연을 바라보는 것이, 책을 보는 것이 가만히 명상하는 것이 더욱 나에게 좋은 경험이 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변함없다.
나는 사람들이 나에게 뭐라고 하는 것에 별로 관심이 없는 편이다. 누구든 자신의 생각대로 남을 생각하게 마련인데 그것을 가지고 틀렸느니, 잘못 생각했느니 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누구나 마음대로 생각할 자유도 있고 의지도 있다. 그것을 이해하고 용납해야 나의 생각도 용납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성인학교만 해도 그렇다. 나는 어느 정도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하는 편이다. 그것은 나의 천성이기도 하다. 그리고 무엇을 숨긴다면 그것을 왜 숨겨야하는지 도무지 계산을 할 수 없는 것이 나의 체질이기도 하다. 하지만 성인학교에서 이야기하는 모든 것들은 이 안에서 소화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좋은 것도 밖으로 나가면 왜곡되게 마련인데 하물며 뭔가 험담이라면 더욱 언어행실을 조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세상 사람들이 교회에 썩었다, 혹은 교회가 잘못되었다고 말한다. 교회 안의 일을 어떻게 아는가? 교회에 다니는 사람이 다른 곳에 가서 말하기 때문이다. 자기얼굴에 침을 얼마나 뱉었는지 이제는 우리보다 우리들을 더 많이 알고 평가하는 세상 사람들이 많다.
똑같은 이야기를 들어도 어떻게 자신이 받아들이느냐에 따라서 다르게 전달할 수 있다. 나는 성경도 그런 관점에서 이해하는 편이다. 결국 최선은 아니지만 차선은 말을 하지 않는 것이다. 나는 그것이 매우 괴롭다. 사람과 교제하고 싶지 않다. 수도원에라도 들어가야 할까...?
관상기도를 하면서 더욱 많이 조심하려고 노력하지만 글쎄 후일 내가 어떻게 변할지는 모를 일이다. 다만 나는 날마다 내적 침묵을 가지려고 노력하면서 예전보다 많이 진중해지는 자신을 느낀다. 아주 조금씩이라도 변하면 다행이겠다. 하나님이 나의 특질, 성질, 성향을 바꿔주신다면 변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나는 노력하겠다. 노력할 것이다. 관상기도와 그것을 통한 내적 침묵의 시간이 생활에까지 연결되는 그런 앞날을 나도 기대하면서 살고 있다. ♦
'유다의 QT'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잠언 QT? 하지만 나는 관상기도 (0) | 2011.06.25 |
---|---|
요한복음 QT (0) | 2011.06.25 |
예수님의 음성을 듣는 시간 (0) | 2011.06.25 |
비전 선언문 (0) | 2011.06.25 |
느헤미야 7~13장 (0) | 2011.06.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