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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쁜 2019년!

교회에서 살았던 시절의 크리스마스

by 이숙경(2011canna@hanmail.net) 2019. 12. 21.


중학교 2학년이었던 1971년 겨울부터 교회를 다녔으니 햇수로 몇년일까?


먼저 교회를 다니던 친구가 교회에 나가자고 꼬신 이유는

예수님 믿어 구원받자는 물론 아니었다.

성탄극에 엑스트라와 조연 사이의 배역을 할 아이가 필요하다는 거였다.

여주인공 역을 했던 내 친구 옆에서 시다바리(?)같은 역할을 했던 나는

생각해보니 그녀 옆에서 거의 언제나, 지금까지, 성실하고 충실하게 그리고 일관되게

그녀의 시다바리 역을 계속하고 있다. 나는 그 역할이 싫지 않다.


고등부 때부터 성가대를 했다. 

어느 해인가는 불우이웃돕기로 고등부 아이들이 모두 카드를 그렸다.

나는 그림을 잘 그려 더욱 많은 카드를 그려야했다.

물감을 칠하고 글씨를 쓰고 장식을 해서 교회 어르신들에게 팔았던 거 같다.

난로를 피운 교회 독서실에 남녀학생들이 모여서 열심히 카드를 그렸던 기억.


고 2때는 명동 예술극장에서 합창 공연도 했다. (원래 성인들의 공연이었는데 어떻게 끼었는지 모르겠군)

연합 합창단 연습은 매주 날을 정해서 명동 YWCA 강당에서 모여 했다. 이름은 잊었지만 유명 지휘자였다.

겨울 밤 명동을 걸으면 흥겨운 연말 분위기를 만끽할 수 있었다. 북적이는 사람들, 구세군 남비의 종소리, 캐럴이 울려퍼지는 명동 골목을 지날 때는 나도 모르게 가슴이 설렜다.


해마다 빠지지 않았던 성탄절 칸타타.

     무슨 곡을 하던, 마지막 피날레는 할렐루야 였다. 소프라노는 물론 알토, 테너 파트까지 음을 외울 정도로

     수없이 했다. 할렐루야를 부를 때는 모든 교인들도 자리에 일어나 경청할 정도로 많이. 


추운 예배당에서 언 손을 비비며 연습을 하면 차례를 만들어서 간식거리를 꼭 내놓았다.

어느 장로님 댁에서는 집에서 만든 떡볶이 한 양동이를 끙끙 거리며 들고 오셨고, 어느 분은 그 때 유행하던 따뜻한 호빵을, 

어느 분은 건빵을,어느 분은 오뎅국(그땐 그렇게 말했다 ㅋ)을, 어느 분은 떡을... 

찬양 연습하다 쉬는 중간의 짧은 시간에 난로가에 둘러서서 누군가 정성으로 준비한 간식을 먹는 시간.

크리스마스 이브, 칸타타를 하는 날은 모두 한복을 차려입고 (남자들은 검은 양복에 나비넥타이를 맸다) 온종일 교회에서 살았다.

리허설을 하고, 반주를 맞추고, 스트링 오케스트라와도 맞추는 시간이 꽤나 길었다.

나는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가난해서 한복을 준비하지 못해- 이리저리 빌리러 다녔다.


결혼 후 어느 해 성탄절에는 작은 교회를 방문해서 연주를 하기도 했고

어느 해인가는 외국인 근로자들에게 줄 선물을 하나씩 준비해서 전달하기도 했고

자선단체를 방문해서 선물을 나누어주기도 했다.

너무 많은 기억이 떠오르지만 잊은 추억도 그만큼 많으리...


성탄절 칸타타를 하면 교회 어르신들이 모두 정장을 하고 오셔서 경청하셨다. 정말 온 교인이 다 온 것 같았다.

어른 아이 할 것없이 모여 가득찬 예배당에서는 1부에서는 아이들의 재롱잔치나 연극을 하고 2부는 칸타타였다.

새벽송도 많이 돌았다. 당시에는 교회 근처에 사는 어르신들이 많아서 코스를 잘 정해서 돌았다.

새벽에 떡국도 끓어주시고, 과일에 과자, 어느 어르신은 용돈까지 챙겨주시곤 했다.

우리가 올 때까지 집에 환하게 불을 밝혀놓고 기다리다가 웃으며 문을 열어주시던 마음 따스한 교회 어르신들!


성탄절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그래서 칸타타와 할렐루야 찬양.

아무리 생각해도 그 때의 추억은 내 생의 가장 아름다웠던 한 때였고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가득했던 시절이었다.


올해도 어김없이 칸타타를 하는 것 같다. 우리 교회와 교인들은 음악에 대한 사랑이 유난하다.

크지 않은 교회인데도 삼사십년 전부터 오케스트라에 팀파니까지 있으니.

성가대원을 보면 2/3 이상이 삼십 년 사십 년 동안 성가대원을 하는 선배나 동료들이다.

청년때부터 하던 성가대를 환갑이 지나도록 계속 하고 있으니 얼마나 아름다운지!

이번 칸타타는 12월 25일 11시 성탄예배에 한다고 한다. (크리스마스 이브에는 교인들이 잘 오지 않아서 ㅠ.ㅠ)


나를 교회로 인도한 친구는 25일 마지막 칸타타를 하고 그 다음날인 26일 제주도로 떠난다.

평생 살던 서울을 떠나 낯선 제주도에 여생을 보내기로 한 것이다.

몇 년 째 본 교회 크리스마스 예배는 참석하지 못했는데 이번에는 꼭 갈 생각이다.

50년 넘게 한 교회만을 다닌 내 친구가 마지막으로 부르는 칸타타를 꼭 함께 하고 싶기 때문이다...


모두 그리운 추억들.


좋은 교회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게 해주시고 아직까지 그 교회에 다닐 수 있는 여건을 허락해주신

나의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바라기는 죽을 때까지 다닐 수 있게 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