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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라

그래도 유다는 교회가야 하나?

by 이숙경(2011canna@hanmail.net) 2013. 7. 3.

요즘 새벽 산책에 맛이 들렸다.

해서... 매일 라이브로 듣던 새벽예배 실황을 팽개치고(!) 어느 목사님의 설교를 다운받은 Mp3를 귀에 꽂고

5시도 채 되기 전에 집에서 뛰어나간다. 조오타!

평상시에는 왕복 50분 거리의 천변을, 기분이 업되어 팔팔하면 왕복 120분 거리를 좀 빠른 걸음으로 걷는다. 행복의 극치를 맛보는 시간.

어제는 열심이 특출하여 우산을 쓰고 걷기도 했다. 노란 우산 속에서 숨어 걸으며 중얼중얼 기도도 왕창 올려드렸다^^

하도 열심히 설교를 들은 후유증으로 귀에 염증이 폭발지경으로 심해져서 이비인후과에서 팔팔한 의사선생님께 무지막지한 욕을 먹긴 했다.

그래서 어제 오늘은 헤드폰을 끼고(좀 볼썽사나웠을 수도 있겠지만) 새벽 천변을 걸었다.

비개인 새벽, 어미 오리와 일고여덟마리의 새끼 오리들이 종종 줄을 지어 물살을 헤치는 모습이 정말 아름다웠다. 거참 모성은 사람과 짐승의 구별이 없는 거 같다. 아니, 어쩌면 인간이 더욱 모질지도 모르겠다....

 

새벽 산책에 은혜를 따따블로 받는 것과 정반대로 교회 사정은 영 말씀이 아니다.

올해 교회에 아홉수가 끼었는지(아, 죄송) 새해 첫날부터 조짐이 영 이상하더니만, 신년 성회를 완전 망쳐버리더니만,

목사님 사임이니 사임번복이니 하면서 보통 시끄러운 게 아니다. 세상에.... 우리 교회에 사십 년 넘게 다녔지만 올해처럼 막무가내의 엉망진창이며 무모하며 어이없는 상황은 또 처음이다. 처음이라서 어리둥절한데 게다가 편이 갈라져서 패싸움 수준으로 치닫고 있다. 세상에, 세상에....!!

 

그 와중에 다행인 것은 우리 식구들의 무고함이다. ㅋㅋ

매 주일마다 꼬박꼬박 열심히, 성실히, 새벽마다 아들이 동행하여 주일 예배를 드리는데, 아무리 교회가 시끄러워도 예배 시간 만큼은 경건하게 은혜롭게 잘 드리고 온다. 좌청룡(남편) 우백호(아들) 사이에 앉아서 예배드리는 그 시간은 완전 천국!

게다가 울 남편이 아주 이쁘게 변했다.

올해부터 거실(거실인지 안방인지 묘한 장소이긴 하지만 하여튼 우리 아파트에서 가장 넓은 공간) 탁자위에 성경책이 올라가 있다. 그 성경책은 늘 펼쳐져 있는데 매일 체크해보면 매일 조금씩 진도가 나가고 있다. 군데군데 형광펜을 친 자국도 새로 생겨난다.

날짜도 적고 표시도 해놓았다. 모두 남편 짓(!)이다. 와.....이쁜 짓하는 남편이 구여워 미칠 지경이다.

조금 전 아직 날이 저물기 전, 피아노 앞에 앉아 삼십 분 가량 가스펠을 쳤는데 기아 응원하던 울 남편이 귀를 쫑긋하고 가스펠을 음미하는 눈치였다. 내가 손가락이 어긋나서 살짝 삑사리( G를 잡아야 하는데 고 옆 건반으로 미끄러졌걸랑) 내니까 막 웃는다.

 

그 와중에 또 다행인 것은 5월 26일 주일 오후, 포이에마 설교를 듣다가 또 손가락이 미끄러져서 고 위의 동영상을 클릭하는 바람에 알게된

김성수 목사님 때문에 요즘 완벽한 행복을 누리고 있다는 것.

그 날 이후 한 달 여의 기간 동안 내가 전파한 두 인간들과 더불어 날마다 은혜와 기쁨과 감격을 누리고 있다. 하나님, 감사해요!

 

오늘 새벽 산책을 마치고 돌아오는데 전화가 왔다. 새벽 6시 10분에!

커피마시러 오라는 소울메이트 집으로 다시 방향을 선회하여 들렸다. 그리하여 부흥회.

그녀와 내가 하이파이브를 하면서 결론 내린 것.... 지금 죽어도 좋아. 좋은데....

하.... 나야말로 너무 이룬 것이 없어서 그것이 쪼매 슬프다고 했다...

 

지금 나를 일으켜 세우는 것은 우리 교회 절대 아니고, 우리 교회 목사님 절대 아니고, 나를 둘러싼 인간의 군상들도 아니고, 

600 여개의 설교를 남기고 몇 달 전 소천하신 김성수 목사님의 말씀이다.

...나에게는 역시 무생물이 더 가깝다...

지금처럼 클래식과 커피와 읽다 만 책과 팔팔하고도 생동감 있는 인문학 강의와 그리고.... 하늘에서 떨어지는 말씀들....

난 아직 멀었고, 사람들과의 교류는 역시 어렵고, 그러므로 도망치고 싶고, 그리고, 그러므로

나의 고치 안에 단단히 웅크리고 있고 싶다.

 

교회만 생각하면 정신이 어질어질하다.

그래도 유다는 교회가야 하나....?

한 삼년 집에서 말씀만 듣고 내적 수련을 쌓은 후 가면 어떻게 될까...?

모난 모서리를 잘 깎고 단련하고 그렇게 나를 완전히 죽이는 연습을 마스터하고

자애로운 미소와 넓은 가슴을 만들어서 교회가면 그때는 덕을 끼칠 수 있을지...

그 역시 장담하지 못하지만...

이제껏 사십 년 넘게 교회생활했지만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던 이런 생각은 대체.... 중얼중얼.....

휴...그래도 유다는 교회가야 하나....?

 

하나님은 사랑하는데

예수님은 너무도 좋은데

성경말씀도 가스펠도 찬송가도 너무너무 은혜로운데

사람들은...다가서기 어렵다는....우울한....고백....

 

커피 마저 마시고, 읽던 책이나 마저 읽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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