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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라

스승의 날 보냈어야 할 뒤늦은 편지...

by 이숙경(2011canna@hanmail.net) 2013. 5. 21.

선생님.

이제 몇 시간 후면 선생님을 뵙겠네요. 조금 떨리기도 하고 두렵기도 하고(대체 왜 그런지 모르지만) 또 무슨 좋은 조언을 해주실까 기대도 하면서 이렇게 잠깐 연필을 들었습니다.

오랜만이어요.

그동안, 이토록 철딱서니없고 성장속도가 느리고 엉망진창인 제자는 천국과 지옥을 번차례로 드나들면서 혹독한 시험을 겨우겨우 통과했습니다.

너무 힘들었어요, 선생님.

죽는 줄 알았어요, 선생님^^;;

아니, 정말 죽을 뻔 했어요!!

사는 거 별거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별거 아닌거는 아니더라고요...

내 믿음도 꽤 괜찮지 않나, 하고 생각했는데 하나님은 저를 완전히 진흙뻘에 나뒹굴게 하셔서 온갖 수치와 멸시를 당하게 하시더니만 이제서야 손을 내밀어 주시면서 '그래도 애썼구나, 별 보람은 없었지만 나름 수고했구나' 하시면서 머리를 쓰다듬어 주시는 것 같습니다.

선생님.

이런 복음성가 혹시 아세요?

"내가 어둠속에서 헤매일 때도 주님은 함께 계셔

내가 시험당하여 괴로울 때도 주님은 함께 계셔

기뻐 찬양하네 할렐루 할렐루야...."

 

저는 요 몇 년 동안, 특히 작년 내내 피아노 앞에 앉아서 한 바가지되는 눈물은 족히 흘렸을 겁니다.

거의 매일 울면서 피아노치고 울면서 노래하고

노래하다가 울고 피아노치다가 흑흑 울고...그랬습니다.

 

그런데 요즘 이런 복음성가에 푹 빠져있습니다. 가사 들려드릴께요.

"내가 지금 사는 것 주님의 크신 은혜요

주를 믿게 된 것은 더욱 크신 은혜라

넘치는 주의 사랑 놀라운 주의 은혜

날마다 경험하며 주께 감사합니다...."

 

가사를 쓰고 보니 너무 피아노 치고 싶네요. 그런데 시간을 보니 좀 이른 것 같아 포기합니다...

선생님.

이전에 전화드리면서 제가 그랬잖아요.

"선생님, 저 죽을뻔 했어요."

그것은 정말 뻥은 아니었고요, 정말 죽을 뻔 했습니다. 살고 싶지도 않았고, 살 힘도 없었습니다. 에구...

그때를 떠올리니 마음이 다시 슬퍼지려고 합니다.

가장 힘든 것은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시고 계시기나 한 것인가'하는 회의였습니다.

나를 사랑하신다면 나를 이렇게 고통속에 쳐박아두시지는 않으실 텐데,

나를 사랑하신다면 이렇게 나에게, 평생 이렇게 힘든 상황만 만들어주시고 메롱, 하시면서 약을 올리실 수는 없을 텐데.

 

말해 무엇하겠어요.

어쨌든 지금으로서는 불구덩이속을 걸으면서도 악착같이 하나님의 손을 붙잡고 발버둥을 친 끝에

푸른초장에 누워 하나님이 주시는 잔칫상을 받아먹고 있습니다.

유종의 미...를 거둔다고 하면 하나님이 뭐라고 하실라나 모르겠는데요

일단 잠시 쉬어가라, 그런 싸인은 알아듣고 있습니다.

내 생애에서 가장 행복한 시절을 보내고 있다고 선생님께 말씀드릴 수 있게 되어서 정말 기뻐요!

화양연화.

지금 그런 시절, 보냅니다. 물론 대단히 짧은 기간일 것은 분명하고, 그 후에 닥칠 수많은 난제들은 아직 풀지 못했고

제 힘으로는 도저히 물 수도 없는 터라, 내일일은 내일 걱정하기로 하고 지금 신나는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참 좋아요, 이런 시간.

오늘도 일어나 하나님께 감사기도 드리고, 오늘 선생님을 만날 생각을 하니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기쁨이 솟아오르고

나에게 평생 곁에 계시는 멘토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하나님께 다시 감사기도 빡세게 드렸습니다.

누군가 선물한 콜롬비아 원두로 드립커피 마시면서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3번 듣는 행복한 시간.

낡은 욕실에서 부지런히 세수를 하면서 거울을 보니, 요즘 은혜살이 쪄서 통통해진 저의 얼굴이 그처럼 편안해 보일 수가요!

 

이따 선생님 만나면

속깊은 고백을 하게 될지 알 수는 없지만

오늘 아마 선생님 만나면 기쁨 두 배 될 것같아요.

 

한 가지 참...부끄러운 것은....

선생님의 가르침을 (살아오시는 그 모습으로 생생하게 보여주신 실천적 사랑을) 저는 이제껏, 이 나이가 되도록 조금도 실천하지 못하고

실천하기는커녕 내 앞가림도 제대로 못해서 늘 이웃을 돌아보지 못하는 이 얄팍한 사랑이 대체 언제 선생님처럼 깊고 넓어질 수 있나,

하는 자괴감입니다....

이제 아주 조금이나마 이웃이 보이기 시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이 조금씩 생기기는 하는데

부디 저에게도 이웃에게 나누어줄 수 있는 여력이 있기를....

이제는 누군가의 사랑으로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나의 사랑으로 누군가 살아갈 수 있게 되기를....

(과연 그런 날이 오기는 할까, 회의하면서도 그래도 통크신 하나님의 아량으로, 앞으로는 제발 베풀면서 살기를 원합니다,

선생님처럼이요)

 

내년 스승의 날에는 선생님을 찾아뵙고,

"제가요, 선생님께 맛난 식사 왕창 쏩니다!"

이렇게 큰소리 치게 되었으면 좋겠어요.

그러니 선생님, 이따 만나면

맛있는거 사주세요. 책도 물론 몇 권 주실거죠?

꿀보다 더 달콤한 말씀들로 저의 영혼도 꽉 채워주실거죠?

 

이제 선생님을 만나러 갑니다.

우리의 행복한 시간이 오후까지 저 햇살처럼 밝고 환하게 우리 앞에 펼쳐지겠지요,

먼저 저의 환호성을 들려드립니다. 야~ 호~~

 

      -40여 년간 이끌어주신 나의 선생님께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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