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므로 생각하라.
‘생각하는 쪽으로 삶은 스며든다. 마치 소설가의 현재 삶이 소설을 결정하는 것처럼.’
며칠 전 읽은 동년배 여류 소설가의 산문집에서 주운 문장이다. 너무 허술해서 중간 중간 딴청하면서도 세 시간 만에 책 한 권을 뚝딱 해치울 수 있었다. 어느 책을 읽든 그 중에서 무엇인가 건질 것은 있게 마련인데 그 책에서는 딱 그 한 문장만 건진 것 같다.
생각하는 쪽으로 삶은 스며든다. 백번 아멘이었다.
요즈음 나는 ‘생각’에 대하여 곰곰이 ‘생각’해 보는 중이다.
나의 생각이라는 것이 얼마나 유치하고 어리석고 보잘 것 없는 지는 이천에서의 한 달 동안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다. 그런 자각을 할 수 있게 하여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내 딴에는 나도 꽤 생각을 많이 하는 편이라고 그렇게 오해했는데 사실이 아님을 깨달았다. 종잡을 수 없는 생각, 두서없는 생각, 처음과 끝이 오리무중인 생각, 안개처럼 희미한 생각, 엉뚱한 생각, 한 곳으로 심하게 몰려 객관성이 결여된 생각, 감성이 너무 깊게 스며들어 논리가 전혀 성립되지 않은 생각, 일관성이 전혀 없는 생각, 뻔뻔한 생각, 아, 끝이 없다. 내가 생각한다고 생각했던 거의 모든 것들의 정체가 바로 그러했다.
한 달 동안 정말 맹렬하게 반성했다. 그곳에서 만난 어떤 작가는 나에게 이렇게 충격적인 말을 하기도 했다.
-선생님은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행동하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세상에! 그때까지 나는 나의 생각이 비교적 깊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딱 들키고 말았다. 평소 그 말은 내가 입에 달고 다니면서 남들을 ‘교육’시켰던 바로 그 말이었다.
‘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는 유명한 말은 폴 발레리인지 누구인지 했던 말이라고 하는데, 내가 도서관에서 강의를 시작할 때마다 늘 강조하던 말이었다. 그렇게 강의할 때 나는 어느 정도 교만이 있었다. 여러분들, 제발 나처럼 생각 좀 하고 사세요, 하는.
그 말을 면전에서 들었을 때의 당혹감이라니!
하지만 감옥 같은 내방으로 돌아와 냉정하게 지난날의 나를 떠올리는데 과연 그 말이 맞았다. 나의 삶을 돌아보건대 거의 그렇게 살았다. 순간의 충동질로 일단 무모한 행동이 앞섰고, 그다음에 정신을 차리면서 대체 내가 왜 그런 행동을 했을까, 에 대한 자기모멸로 보낸 세월이 얼마나 길었는지 모르겠다.
부끄러웠다. 너무 부끄러워 얼굴을 들 수 없었다.
그리하여 작업노트에 이렇게 써놓기도 했다.
행동을 멈추어라
입을 다물어라
손을 움직이지 마라
이제껏 내가 했던 행동에서 열에 아홉은 후회할 일 뿐이었고
이제껏 내가 쏟아냈던 말에 열에 아홉은 ‘내가 미쳤지, 왜 그런 말을!’ 하면서 고통당했고
이제껏 내 손으로 했던 거의 모든 것이 심각한 자책감을 불러왔다.
그럼에도 어느 순간 생각 없이 튀어나오는 말과 손짓과 행동으로 내 인생의 많은 부분을 얼룩지게 만들었던 것이다. 아, 그때 정말 미쳤었나봐!
그것은 다 생각보다 앞섰기 때문이었고, 나에게 엄중하게 충고해준 작가의 말대로 나는 행동하는 대로 생각을 끼워맞추면서 살아온 것이다.
성경에서 굉장히 좋아하는 구절 중에 ‘그러므로 생각하라’라는 말씀이 있다.
(지금 성경을 미친 듯이 뒤지면 그 구절이 어디에 있는지 찾아내긴 하겠지만 여력이 없네)
결국 나는 이제껏 남들에게는 충고 내지는 조언을 아끼지 않았지만 그것을 정작 나에게는 적용시키지 않고(아예 나는 생각이 깊은 사람으로 치부해 놓고) 그렇게 멍청하게 살아온 것이다.
그 후에 생긴 후유증은, 누군가를 만나려면 겁이 더럭 난다는 것.
내가 혹시 또 옛 버릇이 튀어나와서 모진 말을 내뱉거나 이상스런 제스처를 하거나 쓰잘데 없이 손으로 무엇인가 죄 되는 일은 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앞서기 때문이었다. 결국 나의 약함을 주님 앞에 내려놓고 자비와 긍휼과 은혜와 용서를 바라는 수밖에 도리가 없었다.
제일 먼저 예수님을 앞세우고, 기도해보고, 그리고 나서 액션을 취해야 평균치의 하루를 보낼 수 있었다. 착하게 살기에도 남은 인생이 짧은데 멋지게 살기에도, 사랑하며 살기에도 너무 짧은 시간인데 대체 이제껏 나는 뭘 생각하면서 살았는지 알 수 없었지만 지난 일에 연연하지 않기로 했다.
Yesterday is history. 지난일은 이미 역사의 뒤안길로 물러섰으니 오늘을 선물처럼 기쁘게 살아야 할 것이 아닌가.
예수님도 주홍빛 같은 내 죄를 눈처럼 희게 하여주시기 위하여 내 대신 십자가를 지셨다는 것을 늘 기억하면서 말이다.
이제부터, 오늘부터 또 다시 시작하기로 했다.
생각하는 쪽으로 삶이 스며든다고 했으니, 찬양과 감사와 기도 속에 나를 완전 밀어 넣자!
잊지 말자. ‘그러므로 생각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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