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벗들이 되라
올해 초, 중보 기도자 명단을 만들고 나의 비전과 소원을 적으면서 제목을 이렇게 정했다.
‘너와 나의 담을 허물고 세상의 벗들이 되라’
제법 그럴싸한 제목 아래에는 괄호를 만들고 좀 작은 활자체로 이렇게 썼다.
'피 흘리기까지 악과 불의와 싸워라. 어리석은 삶에 마침표를 찍어라.'
나와 타인과의 담을 허물기 위해서는 먼저 나의 어리석은 삶을 종결지어야 한다는 뜻이었다.
마음 어딘가에 숨어 있다가 나의 영혼이 가장 나약해질 때 기다렸다는 듯 튀어나오는 미움, 시기, 질투 같은 것들을 나로서는 당해낼 수가 없었다. 아무리 노력해도, 주기도문을 백번쯤 되뇌이고, 설교를 듣고 성경을 뒤적여도, 어느 순간 나를 미치게 하는 그 못된 감정들은 죽을 때까지 나를 괴롭힐 것이 분명하다. 사람이니까.
그러나 나의 영혼을 갉아먹는 그런 감정들을 곰곰 생각해보면, 모두 너(타인, 이웃)가 가진 것에 대한 질투이고 나보다 훨씬 잘난 ‘너’에 대한 시기이고 ‘너’의 잘남을 뛰어넘을 수 없는 나의 못남이 만들어 낸 미움이라는 것을 안다. 그것이 바로 나의 악이며 나의 불의라는 것도 알았다. 결국 내가 싸워야 하는 상대는 나보다 잘난 ‘너’가 아니라, 잘난 너로 인하여 스스로 고통당하는 내 자신이었기에 더욱 힘들었다.
하나님도 이겨먹는 나였다.
하나님, 이제는 정말 항복합니다, 그렇게 말은 하면서도 나의 알량한 의지와 고집으로 하나님의 의지와 고집을 꺾으려고 얼마나 고군분투했던가. 안되는 줄 알면서도 도저히 이길 수 없는 상대인 하나님과 샅바 싸움을 참 질기도록 오래도 했다.
몇 년째 하나님이 날리는 잽을 맞으면서도 그렇게 서서히 그로기 상태가 되어가면서도, 작년 즈음에는 마침내 링 바닥에 뻗었으면서도 항복을 외치기는 싫었다. 하나님, 이렇게 나를 대동댕이치시고 사방에 멍투성이 상처투성이로 만들어 놓으시고 링 바닥에 쫘악 뻗게 만드시고 통쾌하십니까? 만신창이로 누워서도 나는 하나님께 그렇게 대들었다.
하나님께 ‘졌습니다’ 하고 고백하기 싫었다.
초막이나 궁궐이나 내 주 예수 모신 곳이 그 어디나 하늘나라라고 가르쳐 주셨으면서도 궁궐은 코빼기도 안보여주시고 맨날 초막에서만 살게 해주시는 하나님이 서운하기도 했다.
나도 가끔은 큰소리치고 살고 싶은데 맨날 비굴하게, 부끄럽게, 어리석게, 눈물 나게, 드디어는 완전 비참하게 만드시는 하나님이 나의 아버지라니, 그렇게 매정하고 가차 없고 배려도 없는 아버지가 나의 압바, 아버지라니 미칠 것 같았다.
작년 가을에서 겨울까지 사면초가로 마치 쥐 잡듯 나를 몰아세우시는 하나님을 경험하면서 정신이 온전한 새벽에서부터 오전까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감사’와, 해가 기울고 사물이 어렴풋해지는 개와 늑대의 시간에는 ‘오호라 곤고한 자로다의 탄식’을 규칙적으로 반복하면서 살았다. 그렇게 새해를 맞이하였을 때 하나님이 주시는 깨달음이 왔다.
내 마음의 지옥을 없애는 방법은 나와 너의 경계를 허무는 것이라는 것을. 네 이웃을 내몸처럼 사랑하라는 말씀은 바로 나와 너의 경계를 없애라는 뜻이라는 것을. 친구의, 교인의, 친척의, 가족의 기쁨이 온전히 내 기쁨으로 다가오게 하라.
어려운 일이었다.
‘너’의 슬픔은 어느 정도 나눌 수 있지만 너의 행복과 너의 기쁨은 나에게 순수하게 행복과 기쁨을 가져다주지 못했다.
그러니까 내 자식은 삼류대 나와서 변변찮은 직장에 다니면서 제 앞가림도 못하는데 너의 자식은 명문대 나와서 효도하고 성실하고 부모 용돈 주고 늘 안부전화 한다는 말을 들으면 순수한 마음으로 손뼉을 치면서 아, 정말 좋은 자식 두었구나, 하면서 같이 기뻐해야 한다는 것이다.
내 남편은 십년 째 병석에 누워서 어린아이처럼 보채고 칭얼거리고 고집부리면서 시중들기를 바라고 마누라를 평생 간병인처럼 생각하는데 네 남편은 돈 빵빵하게 벌어다주고 몇십 년 째 초지일관 마누라를 정신없이 사랑해주고 인정해주고 날마다 신혼처럼 지내는 ‘너’를 보고 마치 내 일처럼 즐거워하면서 너무너무 감사한 일이라고 같이 행복을 나누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네 이웃의 것을 탐내지 말라는 십계명과도 통하는 말씀이었고, 탐내지 말라, 에서 같이 희로애락을 나누는 사랑의 공동체를 실천하라는 예수님의 말씀과도 통하는 말씀이었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건대 그렇게 마음먹기가 어디 그리 쉬운 일인가.
그렇게 쉬운 일이면 어째서 하나님은 성경 전체를 이웃 사랑으로 도배를 했단 말인가.
그래도 지난 연말에는 내가 하도 급하니까 하나님과 타협을 했다.
성령님이 나를 도와주신다면 못 할 것도 없죠, 그러니 내 마음을 변화시켜주십시오. 나름 노력은 하겠나이다. 그것이 나의 마음의 악과 불의를 없애는 방법이라는 것을 압니다.
그리하여, 거룩한 연습을 하기 시작했다.
영혼의 어둔 밤을 지나는 어느 순간, 미친 듯 격렬하게 마음속에서 솟아오르는 미움 시기 질투의 감정을 느끼고, 왜 나는 맨날 여기에서 넘어진단 말인가 하는 탄식이 신음과 함께 마악 터져 나오려고 하는 그 순간 악과 불의를 흡수하려고 물컹물컹해진 어리석은 내 마음을 확 움켜쥐었다.
너와 나의 담을 허물자. 그리고 세상의 벗들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세상의 벗들이 되려면 계산되지 않는 순수한 마음이 필요하다. 하나님이 지금 나에게 주실 것이다.
완악하고 교만하고 불순한 나의 마음을 열고 하나님께 펼쳐보였다.
이 모습 이대로 주 받으옵소서. 그리고,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로 세상의 벗들이 되게 하여 주십시오.
노력하고 연습하고, 날마다 코피를 쏟으면서도 그렇게 해야 내가 살 수 있었다.
하나님의 사랑, 예수님의 사랑을 생각하면 못할 것도 없는데 왜 그렇게 그것은 힘든가.
많은 빚을 탕감 받은 자로서 나를 때리지도 않았고 나를 모함하지도 않았고 나의 집을 빼앗지도 않은 타인들을 왜 그렇게 용납할 수 없는가. 매일 하나님께 나의 약함을 고백하고 간구하지 않으면 마음 어디선가 똬리를 틀고 있는 미움 시기 질투의 감정이 득달같이 튕겨 나오는 것을 매일 경험하며 살아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믿는다.
하나님이 나의 연약함을 아시고, 나의 입술로 범죄하지 않도록 도우시며 나의 생각이나 마음으로 타인들에게 칼을 들이대지 않도록 이끄신다는 것을.
그리하여 오늘도 주님의 옷자락을 붙들고 간절하게 외치는 것이다.
주님, 나의 허물을 계수하지 마시고 긍휼과 자비로 덧입혀 주셔서 나로 하여금 세상의 벗들이 되게 하여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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