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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붙잡힌 여인이 가로되

그렇지 않다

by 이숙경(2011canna@hanmail.net) 2015. 5. 11.

사람들은 작가라고 하면

그냥 옆에서 툭, 치면 탁 하고(이건 또 무슨 비유람) 글을 쏟아지는 줄 알지만

그렇지 않다.

글이 내게로 와야 하는 것이다.

거의 모든 시인이, 거의 모든 작가가 "그분"이 오시기를 기다리고 기다리지만

그분이 오는 시기를 절대 알 수 없으므로

글쓰는 인간이 할 짓이라고는 맹하니, 무턱대고, 하릴없이, 가만히, 마치 루저처럼, 맥놓고

처량맞은 표정으로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현상이 눈에 보이는 물질 세계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머릿속이 회전되므로

참으로 기약없는 '지랄'을 하고 있는 것이다.

토요일, 카드 두 장을 써야한다고 전화 독촉을 두 번이나 받고, 문자 독촉은 여러 번 받고

금요일 저녁에 온, 카드는 다 쓰셨지요? 하는 전화에 아니요, 아직, 했더니 깜놀하시는 상대방.

아니, 몇 자 쓰면 될 것을 왜 이리 뜸을 들이나 하는 목소리였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글이라는 것이 마음이 가야 나오고 순수해져야 글자 하나라도 튀어나오고 사심이 없어야 자연스레 그것이

나를 방문하는 것이다.

카드 써야 하는데 카드 써야 하는데, 하면서도

금요일 밤 자정이 지나도록 사람 만나고 가족들과 밥먹고(어버이날 아닌가말이다) 늦은 밤까지 남편과 앉아서

실은 별 재미도 없는 TV를 보았다. 그러곤 자버렸다.

꿈 속에서 두분의 스승님이 번갈아 나타났다. 꿈속에서도 아이고 카드 써야 하는데, 하는 내가 정말 우스웠지만.

내 손목이 저절로 움직일 수밖에 없는 노릇.

하여

토요일 새벽에 일어나 '목욕재계' 하고 내 안에 글을 쓸만한 '순수'가 돌아오기만 기다려야 했다.

멍청하게, 음악은 귓등으로 흘려보내면서, 손목에 힘을 빼고...

 

가장 진실한 마음으로 쓰는 시간은 십분도 채 안 걸렸을 것이지만

독서회에서 대박~^^

 

매년 카드를 써서 프로 낭송가(나는 아니고 우리 총무님이시다)의 입을 빌어 모두 글의 내용을 알게 되는데

모인 거의 모든 사람이 역시, 하면서 놀랜다. 그러면서 작가는 툭, 치면 턱하고 나오는 줄 아는 눈치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글을 쉽게 쓴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말하고 싶다.

 

그렇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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