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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쁜 2019년!

근심을 주신 하나님께

by 이숙경(2011canna@hanmail.net) 2019. 12. 5.

(오래된 시집 속에 있던 보석같은 詩)





근심을 주신 하나님께        

       

                                     /김승희




근심을 주신 하느님께

 

하느님 감사합니다,

나에게 이토록 많은 근심을 주셔서

 

하늘은 넓고 갈 길은 막막한데

이토록 자잘한 근심들이 없다면

나는 무엇으로 아침을 시작하며

무엇으로 밤을 마감할 수 있을까요

근심이야말로 분명한 행선지

삶의 공허 앞에 비석처럼 세워진

확실하고도 고마운 하나씩의 이정표

 

세상은 광막하고 시대는 혼란스러운데

나에겐 자잘한 근심들이 있으니

이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요,

취직 걱정 건강 걱정 자식 걱정에 반찬 걱정

주택부금 상호부금 월부 책 값에 세금 걱정

연탄 가스 주의보와 동파된 하수구 걱정,

시어머님 생활비와 친정 아버지 병원비와

 

이 조그만 근심들이 있어서

난 우주가 막막하게 텅 빈 낯선 것이 아니고

쌀독처럼 친숙한 것이며,

밑도끝도없는 적막 강산이 아니라

한없이 체온으로 정든

내 헌옷 같은 생각이 들어요,

근심이야말로 정다운 여인숙

그것조차 없다면 삶은 정말 매달릴

것이 없는 백골산의 단애와 같아요

 

작고 미소한 근심들이여

너는 위대합니다,

너야말로 나를 삶에 꽉 매달리게 하는

지푸라기이며,

허무의 양손이 우리 상처의 아가리를

끔찍하고도 냉혹하게

옆으로 찢어 벌려

그 속으로 죽음 같은 극약을 부어 넣으려고 할 때

넌 작지만 완강한 손끝으로

상처의 벌어진 틈을 재빨리 오무려 주는

전천후의 자동 단추와도 같습니다.

 

그리하여 우린 잽싸게 그 깊은 허무 속의

막막한 무서움을 잊어버리고

일심으로 근심에만 집착하면서

다시 살 길을 재촉합니다.

25시도 지난 지금

우리는 갈 곳도 없는데

하느님 감사합니다,

나에게 그토록 많은 근심을 주셔서.

그 시간이 올 때까지

그 시간이 올 때까지

그 시간을 잊어버리도록

더 많고 자잘한 근심들을 주소서,

길 없는 길을 가기 위하여

문 없는 물을 열기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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