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에 대한 배신"이라는 제목의 시를 쓴 적이 있었다. 그 서두는 이러했다.
나의,를 생각하면 개가 떠오른다
그 다음은 아버지
모두 나를 버렸다
나는 종종 슬픔의 빛깔을 떠올리곤 하는데 슬픔이 짙을 수록 핏빛에 가까워지는 것을 느꼈다.
처음에는 로맨틱한 색을 띄었다가 피를 뚝뚝 흘리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나의 슬픔의 빛깔이 온전히 핏빛처럼 처연하게 붉어졌던 어느 순간, 저 시의 첫문장이 혈관에서 튀어나왔다. 시는 주저리주저리 몇 줄 더 이어지지만 실은 저 세 문장에서 나의 시는 끝났다. 하고 싶은 말을 다 했던 것이다. 내가 마음대로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여겼던 개 마저 나를 비웃듯 죽어버렸고 나의 가장 안전하고도 완전한 울타리라고 여겼던 아버지는 나를 울타리밖으로 내쫓았다. 당시는 그렇게 생각했다. 개나 아버지는 모두 자신의 방식으로 나를 내친 것이라고. 그들은 나의 기원을 그렇게 배신했다고.
나는 충분히 불행했고 더할 나위 없이 절망했다. 내가 소유한다고 생각했던 것들은 이미 나의 소유가 아니었고, 같이 사랑하고 싶었던 나의 기원을 보기좋게 외면하고 무시했다. 그리고 쉽게 잊었다.
개와 아버지로 대변되는 세상의 모든 것들이 나를 외면하고 나를 버린 것처럼 느껴졌던 지나간 어느날이 지금도 가끔 나를 찌를 때가 있다. 모두 나를 버렸다, 모두 나를 버렸다, 온종일 그 구절만 되뇌이던 시절을 나는 어떻게 견디었을까.
세월의 힘과 하늘에 계시고 또 나의 마음속에 계시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서서히 나의 고통이, 결핍이, 상처가 치유되어가면서 나는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된다. 새로운 자각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그 해답은 토요 성경모임에서 목사님의 말씀을 통하여 나에게 전해졌는데 그 말씀은 이러하다.
"타인은 도움의 대상이 아니라 사랑의 대상이다. 내가 사랑해야 할 대상이다. 내 안의 무수한 타인도 마찬가지이다. 나의 도움은 하늘에서 온다."
성경을 잘 모르는 사람들은 이해하기 힘들겠지만 수많은 말씀들은 거기에 기반을 두고 있다. 사람들이 믿지 않을 뿐이다. 아니 믿기 싫을지도 모른다. 홀로 서기 힘든 상황이 닥쳤을 때 사람들은(나를 포함하여) 눈앞에 보이는 가족이나 친지, 지인들을 떠올리게 된다. 전화번호부에 적힌 사람들의 명단을 수없이 뒤져보지만 결국 자신은 혼자라는 사실만 절감하게 된다. 그리고 그것은 사실이다. 삶의 어느 순간, 모두 나를 버렸다고 절규하는 그 순간부터 실은 다시 살아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나의 경험이기도 하다. 고통을 피해가는 방법은 없다. 위로나 친절, 살뜰한 안부나 배려 가득한 기도 등이 나의 현실을 막아주지 못한다.
나는 절망하지 말라고 다독이고 싶지 않다. 오히려 지옥 끝까지 내려갈 것처럼 깊은 절망을 맛보라고 하고 싶다. 이제 더 이상 내 힘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 그 때 비로소 하나님은 나의 손을 붙잡아 일으키신다.
나의 오감이 완전히 하늘을 향해 열려지게 된다. 그 때 새 하늘과 새 땅이 새롭게 오는 것에 감격하게 될 것이다. 무의미하게 여겼던 일상에 감격과 환희가 매 순간 꽃피우고 눈길도 마주치지 않았던 타인들의 손을 잡아주게 된다.
모든 사실은 뒤늦게 알게 되는데 하나님과의 인연도 그러하다. 무엇보다 자신이 원했던 그 기원에 대한 배신이야말로 하나님과의 인연을 자각하게 되는 실마리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앞으로 수많은 순간에 또 다시 모두 나를 버렸다, 모두 나를 버렸다, 하면서 어두운 밤거리에서 방황하게 될지라도 그 방황의 끝에 잡아주시는 하나님의 열심이 나를 기다리고 있는 한, 나는 앞으로도 수없이 배신하고 배신당할 결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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