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전도하라
지난 주, 토요일 저녁과 주일 저녁 이틀 동안 우리 교회에서는 대대적인 전도집회가 열렸다.
벌써 7년째 계속되고 있는 <새생명 축제>이다.
3년 전 우리 교회에 부임한 담임목사는 여러 가지 면에서 천부적인 재능을 구비하고 계신데 그 중 하나는 ‘행사 만들기’이다.
한 달에 한 번 꼴로, 이름도 기가 막히게 멋진 행사가 심심할 시간이 없을 정도로(솔직하게 말한다면 목이 졸릴 정도로 타이트하게) 펼쳐지는데 그 행사에 앞서 꼭 집어넣으시는 것이 바로 행사를 위한 ‘특별’ 새벽 기도회이다.
그러므로 우리 교회는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무슨 행사를 위한 특별 새벽 기도가 일주일 동안 행해지고, 그 다음에는 수많은 교인들이 참석해야하는 행사가 치러진다.
달마다 특별 새벽기도회가 있다 보니 별로 특별할 것도 없이 되어버린 새벽기도회인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주보 사이에 거의 한 주도 빠짐없이 첨부되어있는 찌라시(죄송하다. 이보다 더 리얼한 표현을 찾기 힘들었다. 하지만 그것을 볼 때마다 정말 신문 갈피에 넣어져 있는 광고지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을 어찌하나)에는 교구별로, 혹은 청년부, 남선교회 이런 식으로 서로 경쟁을 부추기게끔 아주 잘 나누어 놓으셨다.
경쟁이 눈에 보이도록, 특송을 맡게 하는 것도 정말 기가 막힌 방법이기는 하다.
특송을 하는 동안 자의반 타의반 새벽을 깨우게 된 범생 교인들은 예배당에 앉아 그들의 면면을 살필 시간을 주는 것이다.
아, 저 권사님 인천에서도 왔네, 아이고 양평에서 이 새벽에 어떻게 왔을까, 하면서 감동하게 만드니까 좋은 시간임에는 틀림없다.
덕택에 그룹의 장을 맡은 임원들은 인원 동원에 온종일 전화 심방하느라 정신이 없을 정도이다.
어제 어디어디는 진짜 많이 나왔더라고요. 우리도 그만큼은 나와 주어야 할 텐데, 힘드시더라도 자리 좀 채워주세요.
그런 말을 들으면 나는 '자리를 채워주어야 한다'는 역사적인 사명감에 사로잡히게 된다. 것도 좋다. 사명감은 사명감이니까^^
그렇게 자리 좀 채워달라는 전화나 문자는 특새(특별새벽기도회를 하도 많이 하다보니 이렇게 말을 줄여도 모두 이해한다. 머리 좋은 누군가가 이런 우스개 소리도 만들었다. 새 중에서 가장 무시무시한 새는? 특새!)기간 동안 스팸으로 분류해 놓고 싶을 만큼 쏟아져 들어온다.
단상에 선 담임 목사는 예배당을 아주 천천히 둘러보면서 꼭 한 마디씩 빼놓지 않는 것은 물론이다.
어제는 3교구에서 아주 많은 분들이 참석해 주셔서 특송을 잘 해주셨습니다만...
오늘은 좀 그렇군요. 분발하세요! 맡은 전도사님들은 꼭 전화 심방 하셔서 더 많은 분들이 나올 수 있도록 하시고요!
그렇게 새벽 예배를 드리고 나오면 인원동원에 경고먹은, 하얗게 질린 전도사의, 그토록 불행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불쌍해 보이는 얼굴과 마주치게 되는데 정말 속이 바싹바싹 타들어가는 저 전도사를 위해서라도 다음 날도 기필코 나와야지 하는 결심을 하게 만들어주신다. 그 멋진 방법이라니!
괄목할만한 사실은 사순절 특별 새벽 기도회인데 주일을 뺀 사십 일 동안 4, 500명의 교인들이 자신이 속한 교구에 스티커를 붙이면서 경쟁적으로 새벽바람을 가르며 나오게끔 하셨다. 정말 장관이었다. 모두다 잠들은 고요한 이 새벽에 말이다^^
나 역시 친척의 장례식 날을 제외한 39일을 열성으로 참석했던 아름다운 과거가 있다.
남편은 첫날과 장례식 날을 제외한 38일을 있는 힘을 다하여 왕복 50킬로의 거리를 마다하고 이른 봄의 추위와 싸우며 참석했다. 어쨌든 좋은 시간이었다. (그 좋았던 시간에 대해서는 삼십분 정도는 쉬지않고 간증할 수 있다!)
새생명 축제는 7년의 연륜을 자랑하느니만큼 이제는 연례행사로 착실하게 자리를 잡기는 잡았는데 엊그제 나누어 준 교회홍보 잡지를 보니 정착되는 새 교인은 극히 미미한 숫자다.
도표를 확인한 바에 의하면 온 교인이 몇 달 전부터 준비해 오고, 기도하고, 모이고, 준비한 결과에 비한다면 백 몇 십 명이라는 교회 방문 새생명 초대자 인원수는 좀 어이없기도 하다. 게다가 그 중 뱃속에 품고 기도한다는(아니면 마음에 품으라는 뜻인지 잘은 모르겠는데) ‘태신자’가 방문한 숫자는 일 년에 스물 몇 명에서 많아야 일흔 명 남짓이었다.
그렇게 해서 새생명 축제를 통해 교회에 정착한 분은 한 해에 스무 명에서 이년 전부터는 열두 명, 열다섯 명으로, 그 희귀성에 비추어 본다면 보석처럼 빛나는 존재가 되었다.
예수님이 말씀하셨던 ‘천하보다 더 귀하다는 한 생명’을 위하여 온 교인이 그토록 오랜 시간 준비하고, 기도하고, 회의하면서, 투자(?)했던 것이다.
솔직하게 말하면 온 교인이 주최측으로부터 무지무지한 닥달을 당하면서 얻은 결과로만 본다면 참 가슴 아픈 일이라고 생각한다.
문제는.
전도에 대한 패러다임의 변화일 것이다.
이제는 전철에서 길에서 앞을 가로막고 ‘예수천당 불신지옥’을 외치는 전도방법은 믿지 않는 사람은 물론 믿는 사람들도 눈살을 찌푸리는 공해가 되어 버렸고, 모르는 아파트에 잠입해 들어가 모르는 사람이 살고 있는 집의 벨을 누르면서 예수 믿으세요? 우리 교회 나오세요 하는 권유 아닌 권유도 거의 먹히지를 않게 되었다.
나조차도 벨을 누르는 동네 교회의 열성 교인들에게 문을 열고 인상을 긁지는 않지만 숨소리 내지 않고 집에 없는 척 한다.
리얼리즘의 극치를 보여주는 기괴한 그림이 표지로 등장하곤 하는 ‘파수대’를 들고 돌아다니는 이인조 교파에 대해서는 간혹 미소를 지어 줄 때도 있다. 그들은 상당히 공손하고 상대방이 거절의 의사를 표현하기 전에 재빨리 사라지는 좋은 방법을 터득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녀들의(거의 여자 신도들이 문을 두드리므로), 하나님께 대한 극심한 사랑은 이해하지만, 그리고 그녀들의 몸을 불사르면서 문전박대를 견디는 그 신실한 믿음에 대해서도 인정하지만 단지 그러할 뿐이다. 이제는, 안 믿는 사람을 전도한다는 고전적인 원리에서 벗어날 때도 되지 않았는가?
우리 교회만 돌아보더라도 한두 번 발을 들였다가 은근슬쩍 도망친 교인들이 무릇 기하(幾何)이며, 일이 년 얼굴을 비치다가 어느 순간 되돌아보면 행불자(?)가 되어 버린 교인들이 무릇 기하이며, 교회 곳곳에서 언제 어디서나 마주쳤던 열성 교인이 언제부터사라졌는지 보이지 않게 된 투명 교인이 무릇 기하이던가.
믿은 지 수십 년 된 교인이 옹고집통이었던 자신의 아버지를 전도해 오는 기적 같은 일도 벌어지지만 믿음 좋은 마누라 따라 겨우 등록했다가 교회의 낯선 풍습에 적응하지 못하여 성경책 대신 등산화 끈을 견고하게 매듭짓는 남편도 하나 둘이 아니다.
새생명들을 납치하듯 교회로 끌고 오는 것도 좋은 일이겠지만 왔다가 어느 순간 사라진 투명인간들을 다시금 보이게끔 만드는 것이 급선무가 아닌가.
어제 갑자기 든 생각인데 내년에는 모든 집회를 일시 중단하고, 내실을 기하는 쪽으로 갔으면 좋겠다. 이른바 누수현상부터 해결하지는 이야기다.
물론 내 생각이 꼭 맞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행사에 쏟는 그 무지막지한 노력을 잃은 양 찾기에 쏟는다면 효과는 훨씬 좋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우리집에도 한 달에 한 번 정도만 겨우 주일 성수하는 뺀질거리는 늙고 병든 양 한 마리도 있고, 핑계거리만 있으면 도망가려고 하는 혈기만 하늘로 치솟는 팔팔한 잃은 양도 한 마리 있다^^
남 이야기해서 뭐하나. 남을 전도하라고 일년 내내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듣는 교인 자신들을 한 번 점검해 볼까?
수첩에 기재된 육백여 명에 육박하는 집사들 중 상당수는 교회 측에서 본다면 ‘뺀질’거리는 수준이고, 원로권사를 포함한 삼백여 명의 권사들은 아는 것은 많은 만큼 받은 은혜도 많은 만큼 말도 많게 마련이어서 사이드로 들려오는 별로 은혜롭지 않은 교회나 목회자나 교인들의 소문들을 겁나게 빨리 전달해 주는데 신비로울 정도의 실력을 갖추고 있다.
예수를 전해야 하는데 예수를 나누어야 하는데 알면 알수록 은혜 떨어지는 소문을 나누어주고 있는 것이다.
그런 분들도 새로운 전도가 필요하지 않은가?
고요히 숙면에 빠져든 믿음을 일깨워 주려면 우선 ‘나’를 전도하라.
내가 내 자신을 돌아보아 앞으로는 제발, 진정 은혜로운 여생을 보내야 하지 않겠는가.
좋게 말하면 진중하게 변했고, 보이는 대로 말하면 예수 믿는 표식이 전혀 드러나지 않은 채 시무룩한 인생을 살고 있는 교인 각자를 제대로 전도해야 하지 않겠는가.
내가 넘쳐야 남에게도 나누어 줄 수 있는 법.
내 기쁨이 넘치면 저절로 남에게로 흘러가게 마련이다.
나의 경건함을 본 어떤 사람들이, 나의 사랑을 받은 어떤 사람들이, 나의 용서를 받은 어떤 사람들이, 나의 도움을 받은 어떤 사람들이, 나의 희생과 배려와 인정을 받은 어떤 사람들이 성령의 도우심으로 마음을 예수에게로 향하지 않겠는가.
이십 년 전 자신에게 역사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이십 년 동안 우려먹는 교인이 아니라, 한 달 전 역사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며칠 전 역사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바로 어제 밤 역사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날마다 전해야 하지 않겠는가.
내가 하나님과 함께 살아 있으면 내 가족이, 내 주위의 친구들이, 내가 속한 성가대가, 내가 속한 교회가 살아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제발, 나를 전도하라. 하나님께 나아오라. 새생명으로 다시 태어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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