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책과 함께 놀다가 설핏 잠이 들었다. 감미로운 낮잠.
블라인드를 내리고 내가 너무도 좋아하는 이불을 덮고 꿈과 현실 사이를 아삼삼하게 왔다갔다 하면서 생각했다.
나는 어찌하여 이토록 편하고 아름다운 시간을 누리게 되었는지!
그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을 다시금 절감하면서 벌떡 일어났다.
뭔가 일을 만들고 다시 그 일을 해결하느라 온종일 시간을 보내는(어제는 텅 비워놓은 나의 책꽂이에 장르별로 다시 책을 꽂고 계셨다)남편이 꼴통 옆집 남자가 차를 타고 나가더라는 귀뜸을 해주었기 때문이다. 옆집 남자는 내가 피아노치면서 은혜 받는 시간을 지옥처럼 괴로워한다. 그 예민함은 아마 병의 수준일 것이다. 때문에 지난 1월 이후 피아노 뚜껑을 여는 시간이 일주일에 한 번 될까말까해졌다. 이런 불행한 일이 있나. 하지만 내가 찬양을 드릴때마다 미칠 듯이 괴로워하는 옆집 남자에게 연민을 보내면서(처음에는 참 미웠다)자중하는 중이다.
신이 나서 피아노 앞에 앉아 제일 먼저 '너에게 평안을 주노라'를 고요하게 불렀다. 믿을 수 없게도 나에게서 천사같은 목소리가 흘러 나왔다. 으윽! 코드도 내 맘에 딱 맞는다. 세상이 알 수도 없는 평안, 평안, 평안....
천정에는 곰팡이가 피어있고(한 달 전인가 할머니 댁에서 얻어온 벽지로 대강 가림했다) 뒤 베란다 창문은 너무 낡고 녹이 슬어 열리지 않으며 세면대의 배수구 파이프는 중간에 잘려 있어서 세수를 하면 잘려진 파이프의 물이 발로 고스란히 쏟아지며 가장 싸구려 장판지로 깔아놓은 바닥은 습기 때문인지 저절로 구불구불해져 냉장고 옆이며 이곳 저곳에 낮은 언덕처럼 봉곳하게 올라와 있다. 구멍이 숭숭 뚫린 방충망으로 끊임없이 기어드는 벌레들 때문에 어느 날 아침은 잠에서 깬 적도 있다. 이것들이 무리를 지어 나의 얼굴을 더듬었기 때문이다.
신발장을 놓을 공간이 없으므로 당연히 신발장이 없는 현관. (대체 이 곳에 살던 사람들은 신발을 어디에 보관하였을까)
70년대 여인숙에서나 볼 수 있었던 작은 형광등을 켜면 그 작은 공간도 밝게 비추지 못하는 실평수 11평의 이 아파트에서,
나는
얼마나 완벽한 충만함을 누리는가.
어제는 교회 107주년 기념성회 마지막 날이므로 저녁 집회에 참석하려고 했는데
그만 마음이 흔들렸다. 그냥 김두식 책이나 읽으면서 빈둥거리고 싶어진 것이다.
게다가 조금 후에는 문우의 시 등단 축하 번개 문자까지 왔다.
그래도 마음을 잡고 남편에게 말했다.
-오늘은 마지막 날이니 꼭 교회에 가야지.
-비도 오는데 뭘 거기까지(거기까지라는 말은 24킬로 되는 거리를 말하는 것이리), 그냥 있지.
-그러면 누구누구 시 등단했다는데 번개나 갈까.
(실은 번개에 더 마음이 끌렸다. 비도 오는데-비가 오면 작가들은 왜 그렇게 미쳐 날뛰면서 술을 퍼마시는지 모르겠다- 가벼운 대화와 함께 서로 격려하면서 아주 가볍게라도 술 한 잔 하고 싶었다)
-그럼, 교회가는게 낫겠다.
남편은 아주 재빨리, 마치 빨리 말하지 않으면 내가 번개쪽으로 방향을 틀 것을 알고 있는 것처럼, 그렇게 말했다.
쯧. 나는 속으로 혀를 차면서 하는 수 없이 교회를 갔다.
하는 수 없이, 라고 했지만 꼭 그런 것은 아니다. 올해의 부흥성회는 무엇이 달라졌을까 궁금하기도 했다. 목사님은 어떤 스타일일까. 그것도 궁금했고.
가니까, 좋았다.
부흥 강사로 오신 목사님의 말씀을 앞 자리에 앉아 열과 성을 다하여 들었다. 낮잠까지 잤겠다, 말씀이 쏙쏙 잘 들어왔다.
교회 집회이므로 (당연하게)교회에 집중하라는 말이 주된 말씀이었지만 아멘했다. 낙제는 면할 정도의 점수는 줄 수 있겠지만
예수님의 마음을 전하기에는 역시 함량 미달이었다. 하지만.
나는 생각한다.
저 정도의 말씀을 갖고 다니는 목사도 지금으로서는, 특히 한국에서는 많지 않으니 이를 어떡한담.
그 목사님은 삼천명의 교인을 감당하시는, 잘나가는 젊은 목사님이었다. 유명하니까 모셔왔겠지....
나는,
예배당에 앉아있는 그 상태가 좋았다.
교회에서 만나는 교인들과 함께 앉아서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생각되는, 믿어지는, 믿어야하는)을 듣는 그 시간이 좋았다.
찬양드릴 때도 좋았다. 교회 가는 길, 집으로 오는 길도 좋았다.
어제 오후의 집회 참석은 내 선택은 아니었지만, 하나님이 인도하셨으리라 믿고 감사한다.
집으로 돌아와 김두식의 책을 조금 더 읽었다.
집회와 교회와 집회에서의 말씀과 대조하니 재미있었다.
집회 말씀에서 느낀 것은 다시 좀 자세히 쓸 기회가 있기를....
(알람이 울렸으므로 서둘러 나간다^^ 오늘도 주님의 은혜안에서 충만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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