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헤미야 7~13장
1장에서 6장까지는 느헤미야가 성벽 보수를 하는 것이라면
7장에서 13장까지는 에스라가 정신개조, 즉 신앙 회복을 하는 것이다.
8:3 에스라는 수문 앞 광장에서, 남자든 여자든, 알아들을만한 모든 사람에게 새벽부터 정오까지, 큰소리로 율법책을 읽어주었다. 백성은 모두 율법책 읽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8:9 백성은 율법의 말씀을 들으면서, 모두 울었다. 그래서 총독 느헤미야와, 학자 에스라 제사장과, 백성을 가르치는 레위 사람들이, 이 날은 주 하나님의 거룩한 날이니, 슬퍼하지도 말고 울지도 말라고 모든 백성을 타일렀다.
9:3 낮의 사분의 일은 주 하나님의 율법책을 읽고, 또 낮의 사분의 일은 자기들의 죄를 자백하고, 주 하나님께 경배하였다. 이후 죄를 자백하는 기도~
10:38 열의 하나를 거두어들이고~ 레위 사람은 거두어들인 열의 하나에서 다시 열의 하나를 떼어서~ 성전 창고의 여러 방에 두기로 하였고~
<우리는 우리 하나님의 성전을 아무렇게나 버려두지 않을 것이다>
13장 느헤미야의 개혁들
1. 자손이라는 의미: 혈육의 자손도 있다. 믿음의 자손도 있다. 혈육의 자손이 믿어서 믿음의 자손이 되면 더욱 좋다. 나는 누구의 자손이며(혈육으로) 또 누구의 자손이며(믿음으로) 내 자손은 누구의 자손이 될까.
요즘 들어 혈육의 조상들에 대해 궁금해진다. 아버지, 할아버지 이전의 조상에 대해서는 모르고 있다는 사실이 답답할 때가 있다. 올해가 가기 전에 족보, 가계도를 그려보아야 하겠다. 그리고 나의 유산, 유언, 우리의 자손이 믿음의 자손으로 뿌리내리는 것. 하지만 믿음의 자손이라는 말은 얼마나 포괄적인지 모르겠다. 아주 단순하게 집약할 필요가 있다. 믿음이 자손이는 것을 어떻게 해석하는 것이 좋을까. 나는 우리 지손이 이렇게 생각하기를 바란다. 우리의 선조들이(엄마 아빠) 그렇게 열심히 다녔던 교회에 나도 열심히 다녀야겠다. 우리의 선조들이(엄마 아빠) 그렇게 사랑하고 좋아했던 예수님을 하나님을 나도 사랑하여야겠다. 우리의 선조들이(엄마 아빠) 그렇게도 맨날 읽고 또 읽던 성경을 나도 한 번 열라 읽어봐야겠다. 우리의 선조들이(엄마 아빠) 그처럼 순종했던 모습을 (하나님에 대하여, 예수님에 대하여, 성경말씀에 대하여, 교인들에 대하여, 어느 정도는 목사님에 대해서도) 보았으니 나도 뭘 모르고, 그리고 좀 아는 것은 없지만 선조들을 본받아 순종해야겠다. .......
믿음의 자손으로 뿌리내리는 것은 나에게 그렇게 해석되어진다. 나는 내 자손이 주님 안에서 나처럼 즐거워하고, 나처럼 행복해하고, 그리고 나처럼 깊게 고민해보고 좌절해보면서 하나님을 알아갔으면 좋겠다. 그래서 나의 자손이 삶 속에서 예수님을 경험하기를 바란다. 성경에는 6대째까지도 기록된 것을 알 수 있다. 나의 신앙의 기록을 남겨줄 의무를 느낀다. 누군가 써 놓지 않았으면 현재의 성경도 없는 것이 아닌가! 사도행전은 영원히 계속될 것이다.
2. 돌아온 자손이 제일 먼저 한 일은 성벽 세우기 그리고 율법을 다시 찾게 된 것이다.
그들은 율법의 말씀을 들으면서 모두 울고, 9장에서처럼 재를 뒤집어쓰고 회개했으며, 즉각 믿음을 행동으로 옮겨 보여주었다.
9:2 모든 이방사람과 관계를 끊었고, 자신들의 허물과 조상의 죄를 자백하였고, 낮의 사분의 일은 주 하나님의 율법책을 읽고, 또 낮의 사분의 일은 자기들의 죄를 자백하고, 주 하나님께 경배하였다. 그 마지막은 찬양이었다.
9:5 모두 일어나서, 주 너희의 하나님을 찬양하여라.
3. 죄를 자백하는 기도는 굉장히 구체적이고 체계적이며 일관성이 있다. 주님을 원망하지 않는다.(파키스탄의 지진 후의 모슬림들의 태도와 같다. 하나님의 뜻. 인샬라)
9:33 우리에게 이 모든 일이 닥쳐왔지만, 이것은 주님의 잘못이 아닙니다. 잘못은 우리가 저질렀습니다. 주님께서는 일을 올바르게 처리하셨습니다.
4. 느헤미야의 개혁은 매우 단호하고 거침없다.
하나님의 일에는 가차 없이 화를 내었다.
13:8 나는 몹시 화가 나서 도비야가 쓰는 방의 세간을 다 바깥으로 내던지고 (마치 예수님이 성전 정화하시는 장면을 보는 듯)
13: 11절에는 관리들을 꾸짖었으며 안식일 문제로 경고도 하고, 꾸짖었고, 심하게 말했다. 급기야는 25절처럼 무지막지하게 행동했다.
--나는 그 아버지들을 나무라고, 저주받을 것이라고 하면서 야단을 치고, 그들 가운데 몇몇을 때리기도 하였으며, 머리털을 뽑기까지 하였다. 그런 다음에 하나님을 두고 맹세하게 하였다. --그 후에는 쫒아내기도 하였다.
현대 교회는 이처럼 단호하게 말씀을 전하지 못한다. 아닌 것은 아니라고, 말 할 수 있는 교회가 살아있는 교회이고, 앞으로 성장하고 개혁할 수 있는 교회라고 생각한다. 에스라는 율법을 다시 찾아 깨우쳐주었을 뿐 아니라, 이스라엘 자손들의 행동규범을 율법을 잣대로 사용하여 단호하게 처리하였다.
좋은 게 좋은 것이라는 말은 어찌 보면 대단히 비신앙적인 말이 될 수 있다.
믿음으로, 혹은 은혜로 둥글둥글 넘어가려는 것도 대단히 위험한 일이라고 생각된다.
목회자의 소신과 교인들과의 사고방식의 갭이 있다면 <하나님의 잣대>를 사용하여 옳고 그름을 확실하게 규정짓는 룰은 있어야한다.
교역자도 믿음의 사람들이고, 교인들도 믿음의 사람들이다. 어느 편이든 온전할 수 없으므로 당연히 실수와 잘못은 존재한다. 무슨 일이든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 결단을 내린다면 멀리 돌아가는 것 같아도 결국은 원리, 원칙이 승리한다는 아주 중요한 룰이 성립될 것이다.
엊그제 부흥회에서 장동주 감독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오늘 지금 이때가 바로 말씀과 기도, 그 원칙으로 돌아가야 할 때”이다. 말씀과 기도가 풍성해지면 넘쳐나서 전도도 되고 교제나누기도 잘 되리라고 본다.
5.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오는 방법.
저절로 되지 않는다. 낮의 사분지 일은 율법책을 읽고, 그러니까 3시간, 또 낮의 사분지 일은(3시간!) 자백하고, 회개하고, 경배 찬양하였다.
하루에 6시간이다. 쉽지 않은 일이다. 우선 하루에 30분 이상 하나님을 만나는 시간으로 잡고 차츰 늘여나가야 할 필요성이 절실하다. 그래서 QT는 중요하다고 본다.
특히 일상보다 먼저 QT를 함으로써 하루를 말씀 안에서 적용시킬 수 있고, 저녁의 단 10분이라도 QT를 함으로써 잘 마무리 짓고, 결론내릴 수 있는 조용한 시간이 필요하다.
교회의 지하 기도회 실을 잘 활용하여서 우리의 영적 성장을 위해 전진하자!!
6. 자신을 쳐서 복종시키는 삶
며칠 전 오후 예배에 변호사 박지영 씨가 와서 간증 비슷한 것을 했다. 피아노 치는 변호사, 로 알려진 박지영 씨는 정말 치열한 삶을 살았다. 그것은 많은 교인들에게 깊은 감명을 주었고 같이 말씀을 나눈 그 시간은 정말 귀하고 아름다웠다. 박지영 씨는 자신의 하루를 너무도 알차게, 그리고 열심히 살았다. 열심히 사는 것은 기도교인의 본분이다. 의미를 추구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늘 생각하면서 사는 사람. 비전을 가지고 있는 사람. 그 비전을 끊임없이 향하여 나아가는 추진력! 올바로 푯대를 세우고 그 푯대를 향하여 나아가는 사람은 어제나 오늘이나 변함없는 믿음을 가진 사람만이 가능한 일일 것이다.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조삼모사처럼 늘 흔들리고 의심하고 의혹을 가진 사람은 흔들리는 푯대를 가지고 있는 사람일 것이다. 우선! 가장 든든한 믿음위에 푯대를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날마다 성실하게 최선을 다해 그 푯대를 향하여 나아갈 때 가장 필요한 것은 바로 자신을 쳐서 복종시킨다는 것. 내 자신이 나를 컨트롤 할 수 있는 사람은 정말 대단한 사람이다. 멋지고 아름다운 사람이다. 그렇게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