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헤미야
몇 개의 단어가 귀에, 그리고 마음에 남는다.
1:4~5 나는 슬픔에 잠긴 채로 며칠 동안 금식하면서, 하늘의 하나님께 기도하여 아뢰었다. --금식이라는 단어.
4:21우리는 이른 새벽부터 밤에 별이 보일 때가지 일을 하였다. (우리 가운데 반수는 창을 들고 일을 하였다) --이른 새벽부터 밤에 별이 보일 때까지...라는 구절
5:14 하반부. 십이 년 동안 총독으로 있었지만 나와 나의 친척들은 내가 총독으로서 받아야 할 녹의 혜택을 받지 않았다.---청렴함
가장 중요한 느낌은 기도
5:19 나의 하나님, 내가 이 백성을 위하여 하는 모든 일을 기억하시고, 은혜를 베풀어 주십시오
6:9 하반부. 하나님, 나에게 힘을 주십시오!
6:14 나의 하나님. 도바야와 산발랏이 한 일을 잊지 마십시오. 예언자 노아댜와 그 밖에 나에게 겁을 주려고 한 예언자들이 나에게 한 일을 잊지 마십시오.
결론의 말씀이라고 생각되는 구절은
6:16하반부. 그제서야 우리의 원수는, 이 공사가 우리 하나님의 도움으로 이루어진 것임을 깨달았다. 그래서 그들은 기가 꺾였다.
느헤미야는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않은 삶을 살았다. 성경의 인물들은 자신의 유익을 위해 산 사람이 거의 없다. 물론 그래서 성경에 이름이 거론되었겠지만.
금식을 하는 이유도 철저하게 내 자신의 유익을 배제했다.
예루살렘 성벽이 허물어지고 성문들이 불에 탄 것을 보고 주저앉아서 울고 슬퍼하면서 금식하게 된 것이다.
나는? (겸허하게 내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
나는 내 자신의 유익을 위해서라도 금식을 해본 적이 없다. 느헤미야의 이 구절을 읽으면서 금식이라는 것에 대해 새롭게 다가온다. 실은 요즈음이 바로 내가 금식해야할 때가 아닌가. 남편은 쓰러졌고, 집에 수익원은 끊어졌고, 아들은 학교에 다녀야 하며 나는 글쓰기에서 열매가 보이지 않는다. 통장에는 마이너스 대출액이 점점 불어나고, 현재 나의 글쓰기 노동(?)은 전혀 화폐화로 변환되지 않는다. 속 시원히 말한다면 온 식구가 무급휴가인 셈이다. 물론 내가 놀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일하고 있다고 당당하게 말할 형편은 아니다. 나의 삶 속에서 일대 위기가 닥쳐온 것이다. 현재보다 더 급한 상황은 이제까지 별로 없었던 것 같다. 머릿속에서 찬송가가 자꾸 맴돈다. 이 때라, 이때라, 하는 찬송가를 알고 계시는지 모르겠다.
나는 지금이야말로 내 자신을 온전히 하나님 앞에 내려놓고 금식하면서 슬퍼하면서 그리고 울면서 기도해야 할 때가 아닌가 그렇게 생각한다. 그런데! 금식이라는 단어는 얼마나 위압적인지 모르겠다. 부모님 앞에서 밥을 굶으면서 시위하는 철없는 어린아이 같은 기분이 드니까 말이다. 나의 모든 생존의 공급원을 끊어버리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바란다는 의미는 알겠는데 어쩐지 협박 같은 기분이 드는 것은 왜 그런지 나도 모르겠다. 정말 나는 하나님께 협박 같은 거 안 하고 싶다. 좀 매달리고 싶을 때도 있지만 ‘이거 안주시면 그냥 굶어버릴 텡케 맘대로 하시쇼잉~’ 하면서 막무가내로 매달리면 하나님도 좀 난처해지실 거 같다.
느헤미야는 자신의 높은 지위를 자신의 영달을 위해 쓰지 않았다. 자신의 민족을 위해 그리고 성전 재건을 위해 사용했다. 높은 자리에 있을 때 조국이나 남을 생각하기는 더 어렵다고 본다. 사람은 편하면 다른 생각을 하게 되어 있는데 느헤미야는 내가 생각건대 보통 믿음은 아니었다.
죄를 고백하는 구절도 인상적이다. 6,7절 약간씩 인용하자면,
주님을 거역하는 죄를 지은 것을 자복합니다. 저와 저의 집안까지도 죄를 지었습니다. 우리가 주님께 매우 큰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마치 신약에서 흔히 말하는 탕자의 비유에 나오는 둘째 아들의 회개기도와 좀 비슷하지 않은가?
또 하나 느끼는 점은 성벽을 재건하는데 거의 모든 사람들이 힘을 합쳤다는 것, 그리고 거의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집 맞은 쪽 부분을 재건했다는 것이 참 놀랍다. 그렇게 해서 합하여 선을 이루게 된 것은 현재의 우리로써도 매우 생각해 볼 문제라 하겠다. 자기 방 맞은쪽이나 자기 집 맞은쪽을 보수하는 그들에게서 십시일반이라는 한자성어도 생각난다.
혼자 힘에 부치는 큰일을 하는 것보다는 이렇게 여럿이 힘을 합쳐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저번 큐티 생각이 나는구나. 권사 200명과 집사 500명이 힘을 합쳐서 하나님의 일을 한다면! 정말 기똥차겠지!
그리하여 그들은 이른 새벽부터 밤에 별이 보일 때까지 (세상에나!) 자신의 일도 아니고, 자신의 사업이나 꿈을 이루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일, 성벽을 보수하는 일에 참예하였다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보수하는 모습도 대단히 신앙적이다.
4:9 : 그래서 우리는, 한편으로는 우리의 하나님께 기도드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경비병을 세워, 밤낮으로 지키게 하였다.
기도와 행동(일)을 병행하는 모습이 바로 내가 원하는 , 내가 가야할 신앙의 모습이라 여겨진다.
느헤미야를 읽는 중 가장 감명 받았고 또한 가장 아름답게 생각되었던 것은 <느헤미야가 무슨 억울한 일이 있을 때는 사람들에게 말하지 않고 곧바로 하나님께 기도했다는 것>이다. 그렇다! 진정한 신앙인은 그렇게 산다. 사람에게 말해서 무엇인가 구하거나 도움을 요청하지 않는다. 하나님께 마지막을 맡긴다. 모든 일의 해결점은 바로 하나님이고 결재 서류에 도장찍어주는 분도 하나님이다. 처음이요, 나중, 그리고 알파요 오메가인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고 우리가 무엇을 바란다고 할 수 있을까.
이번 기회에 금식하는 것에 대해 정말 다시 깊게 생각해 보아야겠다. 10월안에 일단 아침금식이나 저녁 금식 중 택일하여 일단은 3일에서부터 시작해서 일주일 혹은 열흘 한 달 그렇게 늘려나가야겠고. 한번쯤은 하루 온종일 금식하는 종일 금식도 생각해 보아야겠다. (아, 지금 종일금식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나는 매우 힘들어지고 아득해진다. 너무 어려운 거 아닐까? 내 힘에 부치는 일이 아닐까, 하면서 엄살떨고 있는 나를 보니 우습기도 하다)내 자신을 버리고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복종하는 행위가 금식이다.
1. 나는 하나님의 일로 가슴아파하고 기도하고 금식하는가. 앞으로 그렇게 해야겠다.
속회를 위하여 그리고 교회 안에 내가 속해있는 그 많은 기관을 위해서 눈물을 흘리면서 진정한 기도를 드릴 수 있게 된다면!
2. 나의 지위를 하나님의 도구로 쓰겠다.
3. 모두 자신의 집 앞을 보수한 것처럼 나의 맡은 것을 책임을 다해야 하겠다
4. 모든 해결점과 결론은 하나님께 드리는 진실 어린 기도로 마무리하는 것이다!!
나의 삶은 하나님의 도움으로 살아진다. 나는 성벽을 보수하는 사람처럼 한쪽으로는 기도하고 한쪽으로는 새벽부터 밤에 별이 보일 때까지 최선의 삶을 살아내는 것이다.
아름다운 느헤미야. 하나님! 나도 느헤미야처럼 내 자신만을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기도의 지경을 넓혀주셔서 많은 사람과 많은 교회와 또한 하나님이 나에게 기도하라고 하시는 많은 것을 위하여 기도할 수 있는 여유를 갖게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