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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나라 60

사실 나는 낙천주의자

by 이숙경(2011canna@hanmail.net) 2017. 3. 23.

(저쪽 블로그에 문학적인 뭔가를 끄적이려고 글쓰기를 눌렀는데

세상에 내가 예상하지 않았던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쓰고보니

이쪽에 더 맞는듯해서 이곳에도 올린다. ㅋㅋ)

 

 

아침에 일어나 불현듯 나의 생활비를 점검해보았다.
이쪽 은행통장에는 잔고가 8656원, 저쪽 은행통장에는 잔고가 2337원, 그리고 나의 지갑에는 28000원이 남아있다. (아아 지난 주일 저녁 고스톱판에서 거금 16600원이나 잃은 것이 데미지가 너무 컸다. 나야말로 노름으로 재산을 탕진하는 인간의 부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인생 끝날 거 같다)
그런데 한 은행에 25일 빠져나갈 인터넷 요금 34680원이 없으시다.
빵꾸 안나고 살 수 있었는데 어제 저녁 무너졌다.
한의원 갔다가 돌아오는 길인데 남편이 전화를 했다.
"피조개 먹고 싶으다. 쥬스도 먹고 싶고...."
"옙!"
너무 이쁜 목소리로 보채기에 그만 껌벅 넘어가 집앞 수퍼에서 피조개랑 쥬스를 샀기 때문이다. 게다가 오늘 우리집에 목사님이 대심방을 오시는 바람에 손을 달달 떨면서 딸기 두팩과 오렌지 열개까지 샀으니! 딱 고만큼 돈이 빠져나가서 어떡하든 채워넣어야 한다.
고민고민.....
(어제 회당 5마넌짜리 알바 예정되어 있었는데 소설 다 못썼다고 수강생님이 일주일 미루는 바람에 현금이 씨가 말라간다)
하지만.
내 원두커피는 진작에 쫑쳤고, 남편의 인스탄트 맥심을 타먹으며 생각했다.  원래 월급날 며칠 전은 이렇게 살지 않나?
고개 끄덕끄덕.

어제는 걸어서 한의원에 가면서 딱 중간에 자리하고 있는 동사무소에 들렀다. 맞춤형복지라고 써있는 팻말 아래의 직원님들에게 다가갔다. 머뭇머뭇.
세 사람의 직원 중 가장 용모가 편안해 보이는 분 앞으로 가서 멀뚱하니 섰다.
"무슨 일이신가요?"
"아, 네...."
세수만 겨우 한 쌩얼에 남편 츄리닝 웃도리를 걸친 폼새로 (선글래스는 동사무소 입구에서 벗었다. 주거급여 받는 주제에 무슨 선글래스람? 하는 눈총 받기 싫어서) 그분들의 상식적인 사고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물었다.
"제가요...주거급여를 받고 있거든요. 근데 이사를 할 것 같아서요.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그럼 이사한 후에 월세 계약서를 가지고 오세요."
"아, 네... 감사합니다. 근데 한 가지 더 여쭤보려고 하는데요."
(귀찮은 빛이 역력한 직원님)
"저기, 우리 아들이 요기 주공아파트에서 월세를 사는데 재개발 때문에 곧 철거한다고 해서 갈 데가 없는데요, 우리집에서 같이 살아도 되나요?"
(상담을 받던 직원님은 잘 모르는 듯 옆 직원에게 자문을 구하는데...)
"같이 살면 문제가 될 수도 있지요. 소득증명 이런 거 복잡하니까."
(다소 퉁명한 목소리의 옆 직원의 목소리는 다분히 주눅들게 하는 면이 없지 않았다.)
다시 짧게 몇 마디 덧붙이는데 직원의 말인즉슨, 문제의 소지가 없지 않다는 것. 말하자면 아들의 부양능력이 없어서 나라에서 돌봐주고 있는데 너네 아들까지 곁다리로 살려고 하니? 그런 의미도 포함된 듯 했다.
이사하려는 집은 면적이 커서 월세도 더 많이 내야하는데 문제가 생겨 주거급여 못받으면 대책이 안서므로 아들의 입주는 포기했다.

아무튼 직원의 아리송한 대답을 '안되는구나'하는 쪽으로 알아듣고 인사 잘 하고 동사무소 나왔다. 그러면서 드는 생각.
1. 아들은 어디로 이사할까
2. 난 해결해줄 수 없는 부분이니 포기하고.
3. 아들이 같이 살 수 없다니 안방은 완전 내차지가 되는군. 와우~~

사실 나는 낙천주의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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