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정이 넘어가자 FM은 사뭇 조용해진다. 조용해지다못해 경건해지기까지 하는 것 같다. 마치, 밤에는 그렇게 움직임을 자제하고 생각하고 무릎을 꿇을 시간이라는 듯이.
일찍 잠자리에 든 남편이(자정이면 남편에게는 이른 시각이다^^) 성모의 보석이 흘러나오자 무척 좋아한다. 한때, 클래식에 그토록 심취해 있더니만 지금은 골프와 야구에 미쳐설랑...쯧쯧...
나는, 가뜩이나 온종일 아씨씨의 프란치스코와 놀았던 터라 성모의 보석이 예사롭게 들리지 않는다. 오늘의 독서에 대한 결론 비슷한...? ㅋㅋ
커피를 너무 많이 마셔서 지금은 얌전하게 녹차 티백을 두 개 풀어놓았다.
뭐...아닌 말로 성자 프란치스코처럼 살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거니와 그러므로 성자의 칭호를 받는 많은 분들이 부럽지도 않을 뿐더러 그들의 어록을 들춰볼 마음도 없지만....선생님께서 이런 책은 읽어야한다고 하시니 정말, 정말, 저 두꺼운 카잔차키스의 <성자 프란체스코>을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다....
하긴... 그리스 북부의 수도원에 갔을 때는 정말 소름이 쫙 돋으면서 감동, 감격, 은혜가 충만했었다. 그래서, 그곳 수도사들이 부른 성가 CD와 엽서를 사서 집에서도 몇 번이나 들춰보고 들어보면서 하나님의 신비를 경험하기는 했다. 12세기에 지은 수도원들이었다고 기억하는데 그러면 프란체스코와 동시대의 수도사들이 살던...곳이었넹?
세월은 많이 흘렀어도 여전히 건재한 수도원이며 아씨씨의 프란체스코...는 결국... 종교의 힘이랄까...더 솔직하게 말한다면 영속적인 하나님의 존재를 말해주는 것이라고 해도 괜찮지 않나...?
광화문 뒤쪽의, 정확한 이름은 잊었는데 하여튼 성당의 프란치스코 예배실에서 친구 딸내미가 결혼식을 올렸다. 그래서 가봤는데... 마치 그리스 북부 그 수도원의 어느 구석을 보는 것같은 분위기여서 정말 좋았다. 서울 도심에 저토록 고적한 곳이 있다니...
역시 가톨릭은 고요한 경건이 매혹적이다...
이 밤... 나의 인생을 좌지우지하고 계시는 하나님을 생각하고 있다.
눈을 뜨면서부터 꽉 붙잡고 하루를 시작하고, 중간에 손을 놓칠세라 길겁을 하면서도 여전히 허둥지둥 하나님을 쫓아다니며 하루를 보내고, 다시 이밤 잠들기 전, 다시 하나님을 생각한다.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과 질투와 분노와... 용서...그런 것들을 히든카드로 꽉 쥐고 계시면서 한 장 한 장 내 앞에 풀어놓으시는 하나님.
오늘의 카드는?
눈웃음치는 하나님!
너, 말이다... 꿀밤 맞을래? 하면서 히죽 웃으시는 하나님...
1년 전 오늘은...아마 이천 부악문원에 있었을 것이다.
그곳에도 또 하나의 세계가 형성되어 있어서, 그 새로운 세계에서 다소 혼란스러운 시간을 보내기도 했었다.
그리고 침묵과 눈물과 한없는 자학도 있었다.
어느 정도의 누림도 있었고, 자유도 있었다.
지금, 이곳, 이 시간은, 그 모든 것이 다 존재하고 있다.
중세 유럽과 21세기가, 성자 프란치스꼬와 함께 했던 하나님이 내곁에도 계시며, 그때의 성경이 지금도 역시 읽혀지고, 그때도 기도했고, 지금도 기도한다. 변한 것 같으나 그대로인 채, 그렇게 또 다시 시간은 흘러갈 것이다.
1년 후, 나는 무엇을 하고 있을 것인가.
무엇을 바라고 무엇을 생각하고 어디를 가고 있을까.
그 미스테리한 인생을 나는 걷고 있다. 다행인 것은, 정말 다행인 것은 내 발길을 이끄는 하나님을 느끼고 있다는 것이다.
따스한 녹차가 마음도 따스하게 덥혀주고 있다. 남미 남자가 구성지게 부르는 민요풍의 노래가 이밤과 아주 잘 어울린다.
남편이 조그맣게 코를 골고 있다. 고요하고 평화롭다.
지금 이 시간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