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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현장에서 붙잡힌 여인이 가로되

순교하는 심정으로 사는 원룸시스템!

by 이숙경(2011canna@hanmail.net) 2016. 10. 18.

이주 전 쯤일까? 내가 외출한 틈을 타서 또다시 남편이 일을 저질렀다.

작은방에 아주 잘 있던 나의 책상과 나의 소유물 일체를 거실인지 안방인지 하여튼 가장 큰 방으로

몽땅 옮겨놓으셨던 것.

그리하여. 온종일 틀어놓는 TV옆에 딱 붙어서 나란히 (어째서 그 자리에 책상-실은 책상이 아니라 식탁이지만^^;;-이 들어가느냐 말이닷) 나의 서재가 존재하게 되었는 바.

 

처음 문을 열고 들어섰을 때, 처음 그 기이한 배치를 보았을 때의 생수처럼 솟는 절망은 일단 접어두고

'나 잘 했지!'하는 눈빛을 숨기지 않고 내 표정만 살피시는 남편님에게 이렇게 말해야 했다.

 

"와우~ 색다른 배치네"

 

이삼일 게으름을 피우면서 남편 옆에 기어들어와 노트북이며 책이며 온갖 노트며 필기구를 방바닥에 늘어놓고 작업을 했더니만 남편은 내가 혼자 있기 싫은 모양이라고, 엄청난 오해를 하신 모양이었다.

 

그러니까 삼십년을 살아도 사십년 가까이 살아도 배우자의 속내는 모르는 것이었다. 이것은 진리.

 

그날 이후, 나는 새벽에 벌떡 일어나 내방으로 가서 이것저것 요것조것 할 일이 없어져 버렸다.

무기력.....

 

그 며칠이 지나 내가 말했다.

"저기...구럼  이 매트리스만이라도 작은 방에 놓으면 안될까?"

"아니 그럼 자면서 TV를 못 보잖아!!"

말을 말자.....

 

게우 방 두개 있는 집에서

방 하나에 TV, 피아노, 내책상, 내 책꽂이, 매트리스로 사방을 빼곡하게 채워놓고

작은 방에는 달랑 소파와 서랍장만 말끔하게 모셔져 있다.

요즘은 밥도 방까지 배달하여 잡수신다.

그러니까 이 방은 침실이며 식당이며 서재이며 거실이며 오락실(피아노를 치니)이며 게임방(고스톱을 치니)이며 응접실(손님을 이곳에서 맞이하니)이며 음악감상실(남편은 CD를, 나는 귓구멍에 이어폰을 끼고 세음을 들으니)이며 예배당(인터넷 예배를 이곳에서 들어야하니)이기도 하다.

이런 멀티 룸을 본 적 있나 몰랑.

 

하루 종일 작은 방에 갈 일이 없다.

우리는 너무 부자인가봥, 방 하나를 탱탱 비워놓고 사니^^;;

 

헬쓰가려고 나서면, 오늘은 춥다, 오늘은 황사가 심하다, 오늘은 비온다 하면서 발목을 잡고

저녁에 산책이라도 가자고 하면 어둡다 춥다 오늘은 몸이 별로다 하면서 엊그제 내가 사준 나이키 운동화가 신발장에서 울고 있다. 큰맘 먹고 사준 건데!

 

하지만 어쩔 수 없다.

한 달 쯤 지나면 내가 없는 사이 또 남편이 책상을 어디론가 갖다 놓겠지.

제발 그 장소가 작은 방이기를!

 

그래도

햇볕 찬란히 내 발목까지 비추니 감사하여라.

멋들어진 시 두편 필사하는 이 시간도 감사하여라.

식어가는 커피도 이렇게 맛있으니

이어폰으로 들리는 쇼팽의 왈츠로 이렇게 아름다우니

이제 곧 기독교순교사화를 안광이지배를 철할 정도로 파고들지어닷

그대들만 순교하는 것이 아니닷

나도 순교하는 심정으로 원룸시스템안에서 사는 것이닷

 

(한 마디 하고 났더니 속이 쫌 시원해지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