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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붙잡힌 여인이 가로되

신년 주일, 평안하심까, 나의 하나님도요?

by 이숙경(2011canna@hanmail.net) 2015. 1. 4.

입가에 저절로 미소를 번지게 하는 호주민요 워칭 마틸다를 들으며 나의 발길을 이곳으로 돌렸슴다.

어찌보면 공중누각 같기도 하고 어찌보면 나의 천상의 집, 같기도 한 바로 이 유다 블로그로요.

신년 주일을 이토록 평안하게 보내게 하시는 나의 하나님께 감사드려요.

나의 하나님도 평안하심까? 나만큼요?

나를 알고 내가 아는 이웃들도 평안하심까? 나만큼요?

 

노곤노곤한 몸(왜 그럴까. 이유는 몇 가지 집히지만)으로 알람없이 눈을 뜨니 7시. 아직 어둠이 걷히지 않은 좁고 작은 창에서 스멀스멀 기어오는 한기에 정신이 번뜩 났더랬어요. 바로 외벽이어서인지 벽에 붙여놓은 매트리스 가장자리에 똑바로 누우면 나의 왼쪽은 사뭇 산뜻한 (가끔은 맵싸하기까지 한)한기가 느껴진답니다. 뭐, 좋아요 하나님. 그래서 아침에 더 빨리 눈을 뜰 수 있으니까요.

내가 굳건하게 온몸으로 방의 우풍을 막아주므로 안쪽으로 모셔놓으신 옆자리의 남편님은 아주 편안하게 골아떨어져계시데요. 왜 저 인간은 잠잘 때만 천사같은지(이건 정말 비밀)...ㅎㅎ

보일러 난방을 켜려다 꾹 참고(요금 폭탄 맞은 가스요금 고지서의 똥그래미가 떠올라)가디건을 주워입고 목까지 착실하게 단추를 채운 후 부엌에서 알짱거리기 시작했어요.

오늘, 교회 다녀오면 아들과 하나에게 오므라이스를 만들어주기로 약속했거든요. 오무라이스는 내 특기 중의 하나^^

랩에 씌워놓은 소고기 덩어리(아, 마지막 남은 것을!)을 녹여 잘게 자르고, 감자와 양파와 홍당무를 작은 네모로 잘 썰어놓고, 내친 김에 주먹보다 큰 감자를 다섯 개나 깎아서 야채박스 안에 쟁여놓았죠. 마치 김장 한 것 같은 뿌듯함. 이제 감자 조림이나 감자국 감자 볶음, 감자 샐러드, 어묵감자 조림 등등을 아주 편하게 만들 수 있게 되었답니다. 와, 이 준비성이 정말 기특하지 않나요?

밥이 질지 않도록 밥물을 좀 적게 붓고 밥통을 산 후 처음으로(실은 난생처음이라고 해야겠죠)예약버튼을 눌러보았어요. 이게 잘 되려나, 기계치인 내가 잘 하려나 걱정은 되지만 올해부터는 모든 일을 고민하지 말고 그냥 밀고 나가면 해결사인 하나님이 뒷처리 잘 해주실 것이라는 믿음(설마 이러겠어요, 내 믿음에? 그냥 하는 소리죠)으로 우리가 집으로 돌아오는 11시에 밥이 완성되도록 나름 설정해놓았어요. 이 기쁨.

밤새도록 난방을 틀지 않았으니 아침에라도 조금 틀어놓을까 망설이다가 역시 머릿속에서 가스요금가스요금하고 비명을 지르길래 하는 수없이 난방은 말고 온수만 틀어놓고 설거지도 하고 남편 머리도 감겨주고(혼자서도 잘해요는 일곱살 안짝에만 통용되는 말인가봐요? 일흔두살은 안되나봐요?헹)배추된장국에 돼지고기 고추장볶음과 봄똥겉절이 김 등으로 남편 아침도 차려주고(저야 물론 블랙커피 두 잔)김영하의 책읽어주는 시간에서 낭독해주는 단편 <악어>를 아주 흥미있게 들으면서 변장인지 위장인지 하고요, 8시에 잠자는 아들을 콜해서 깨우고요, 아무 옷이나 마구 걸치려는 남편 단속해서 1월의 아침에 걸맞는 외투를 입혀주고, 짬마다 내 옷도 한가지씩 주워입고 하면서도 가방 속에 졸음방지용 키세스, 스니커즈, 커피캔디 등속을 잘 챙겨넣고, 아 바빠 바빠 하면서....(쓰기에도 숨이 차는군요^^) 교회갔다 왔잖아요.

 

교회갔다오자마자 100주년 11시 예배 실황 틀어놓으면서 오므라이스 만들고 아들과 하나에게 주고 간만에 남은 오므라이스(밥을 대체 언제 먹었는지)몇 수저 뜨고.... 토마스 아 캠피스의 마치 성서 같은 책을 밑줄 그으며 읽다가....한숨 자고 일어났어요.

눈 비비고 앉으니 사뭇 몸도 개운하고 기분도 훨 업이 되고, 해서 접어놓은 성서 비슷한 저 책을 다시 읽다가, 내일부터 음식 조절 좀 하겠다는 아들과 하나가 떠올라 식사 다이어리를 쓰라고 할 요량으로 얇은 노트 두 권을 찾았고, 그렇게 찾다보니 한달 스터디 플래너를 두 권이나 발견했다는 거죠. 물론 앞의 몇 장은 쓴 것이지만. 가만 보니 뭐, 아주 거창한 목표를 세우고 여기저기 왕고민하면서 나름 소설 구상도 하고, 결심도 하고 하루 몇 장 썼네 하면서 적어도 놓은 빨강노트였네요... 그 노트의 여백이 아까워서 견출지로 다시 정리하고 틀어막고(옛날 노트한 것을 보면 왜 화가 나는지)새것처럼 개비해 놓았답니다.

그런데, 마침

FM에서 워칭마틸다가 흘러나오지 않겠어요. 

그 따스하기 짝이 없는 호주민요를 듣자니, 그 노래를 듣는 모두가 그런 생각을 하겠지만, 도둑은 밤에 도둑질하려던 생각을 좀 접을 것 같고, 왕짜증나던 아줌마는 인상을 좀 펼 것 같고, 사기꾼은 2015년의 원대한 사기 계획을 축소조정할 것 같고, 목사님들은 탁상공론같던 설교에 대해 순진하게 동화처럼 하지만 깊고 진실되게 방향전환을 할 것 같지 않겠어요?

(아, 왜 이렇게 글이 끝없이 이어지는지 모르겠네요.... 빨리 책 읽고 싶은데)

그러면서 생각했네요, 하나님.

저 짧은 노래 하나도 들으면 마음이 5월의 잔디밭처럼 따사로워지는데 30분이 넘는 설교는 왜 그만큼의 감동도 없나...하고요...

아, 이건 저의 생각은 아닌 거 같아요. 그냥 내 손이 맘대로 움직여서 제멋대로 (손이)말하는 거지 제가 하는 말은 절대 아니랍니다.

하여튼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년 주일, 이렇게 평안하게 누리고 있다는 사실에 정말 감격하고요

새삼 나의 하나님께 찬양과 영광(말로만 해서 미안하긴 하지만) 돌려드리고요, 낮잠을 좀 징하게 자느라 가스펠을 칠 시간이 없어져버린 것은 좀 그렇지만 그래도 얼마나, 얼마나 얼마나 아름답고 충만한 주일인지

원더풀이고요, 어메이징그레이스입니다!

 

부디,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이 평화안에서 안식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해요.

진심.

하나님께 올리드리는 수다(차마 기도라고 할 수는 없고... 애교라고 하고 싶지만 58개띠라는 나이도 있고 해설랑....)는 여기까지임다.  아, 손 아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