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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붙잡힌 여인이 가로되

지옥에 갔다 왔어염~

by 이숙경(2011canna@hanmail.net) 2015. 1. 13.

하나님 아시죠? 어제 저녁 지옥에 갔다온거요.

하마터면 오늘까지 지옥에 머물러 있을 뻔 했는데 하나님께서 얼릉 지옥에서 건져주셔서 간신히 살았어요.

감사해요, 나의 하나님이여.

 

한 끗 차이로 오늘부터 인생이 완전 달라질 뻔 했는데 정말 감사 감사 감사 감사해요!

하도 세상이 어수선하여 나만큼이라도 '갑질'은 안하고 싶었는데 어제는 비장의 무기를 꺼내고야 말았어요.

너무 화가 나서 책상 앞에 앉아 있는데 빤히 보이는 글귀, 스스로를 책망하고 다른 사람을 용서하라, 때문에

미쳐 돌아가시는 줄 알았어요! 하필, 왜, 그런 것으로 새해 표어를 삼았더란 말인가 하면서 나까지 미워졌어요.

그래도

어떡해요. 하나님이 열흘 후의 나의 사정을 미리 간파하시고 요런 진부한 글에 필이 꽂히게 하셔서 일년 내내 그렇게 살아라, 하시면서 명령하셨으니....솔직하게 말한다면 어제는 붙여놓은 쪽지를 떼어버리고 싶었어요. 그래도...

이곳에 구구절절 늘어놓기 너무 민망하여 자세한 말씀을 올려드리지는 못하겠지만 어쨌든 본의 아닌 잠깐의 '갑질'로 오히려

전화위복이 된 것도 사실이니, 살다보면 그런 완장 낀 행세도 필요한 가봐요. (그래도 다시 하지는 않을 생각이어요)

근데 고백할 일은, 너무 화가 나니까 글쎄 술 생각이 굴뚝 같더라고요.

아직 나는 술에 의지하는 면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나봐요.

그래서 결국 집안을 뒤져서 고기 잴때 쓰고 남은 소주 한 모금, 작년 크리스마스 때 선물 받은 뱅쑈 1/4 남은 것, 그래도 모자라 나중에는 클라우드 한 병까지 다 따라마셨지만 모자라도 한참 모자랐네요. 그래도, 야밤에 뛰쳐나가지 않은 의지가 있었다는 것만으로 위안을 삼고, 저혼자 큰소리치고 저혼자 기절하고 저혼자 자학하고 저혼자 반성하고 저혼자 납짝 엎드리는 울 남편님의 소행을 암말도 안하고 보면서, 아이구야, 했어요. 미움지수 90까지는 수직으로 뻗었는데 술과 함께 머릿속이 부들부들해지면서 에이 몰라, 하는 심정이 되어버리게 하신 것도 정말 감사드려요. 술과 함께 머릿속에서 폭발하는 방향으로 갈 수도 있었거든요. 

딱 두 마디 말하고 입을 다물고 있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울 남편님은 때아닌 사랑타령, 아이고.

 턱없이 모자라는 술인데 그것도 짬뽕이라고 머리가 살살 아파와서 그냥 자버렸는데요

꿈속은 또 왜그렇게 어수선한지....

실은 저도 반성은 했어요. 하지만 하나님도 아시잖아요, 대체 어떻게 사는 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인지...

결국 스스로를 책망하지도 않고 다른 사람을 용서하지도 않았지만 아침에 눈을 뜨니 그만 어제 지옥 사건이 싹 머리속에서 사라져버린 거 있죠?  일어나서 내 자신이 신기해서 한참 앉아있었답니다. 이렇게 지워질 수가 있다니. 어제의 생각으로 말한다면 오늘 나는 이집에서 사라져버려야 하는 것인데! 정말 신기하고도 이상했어요. 내 마음을 내가 알 수 없으니 내 마음은 내 마음이 아닌가봐요.

 

울 남편이 저를 살짝 무서워하는데, 제가 혹시 일하러 간다고 하고 홀짝 가출(두번의 전적이 있으므로)해버릴까봐 노심초사하는줄 아는지라 잠자는 남편 깨워서 이렇게 말했어요.

나, 일하러 가. 순두부찌게 잘 데워먹고, 알았지?

눈을 번쩍 뜬 남편의 안도의 표정이라니...

 

일하고 돌아오니, 개떡같이 성질 부리던 울 남편님은 귤을 예쁘게 까서 마치 꽃처럼 펼쳐놓았더구만요.

암말도 안했어요. 어제의 일은 그렇게 우야무야되었네요. 하지만 남편은 혼줄은 났을 걸요? 하도 말도 안되는 난리를 치길래 '갑질'을 했거든요. 여러 말도 필요없었어요. 딱 두 마디 말.

싫어.

내가 나갈께.

결혼 삼십 몇 년만에 처음 듣는 소리에 남편은 거의 기절 수준! 하하하. 지금이야 웃지만 어제는 진심이었어요. 실없는 협박 같은 거 안하는 성격인 거 아는 남편님이 그 후로 한 시간 넘게 혼자 떠들어댄 애원 협박 간청 고백...  정말 닭살 돋아서 이곳에 일일이 올리지는 못하지만....

 

하나님, 어제 잠시 지옥에 가서 있으면서도 생각은 했어요. 나의 의지로는 절대 천국을 누릴만한 자격도 안되는구나. 날마다 매 순간마다 누렸던 충만함과 기쁨의 모든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비롯된 것이로구나 하는 거요. 정말 절감했고요, 그리고 다시 감사했어요.

앞으로는 저도 더욱 이쁘게 성실하게 아름답게 살도록 노력할께요, 나의 하나님.

그리고, 스스로를 책망하고 다른 사람을 용서하라, 일년 동안 계속 마음에 품겠어요.

 

24시간 전의 상황과 정 반대로 평안을 누리게 하여주시는 나의 하나님을 진심으로 찬양합니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