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나의 사랑하는 아들에게.
며칠 전일까, 운전면허 갱신을 하기 위하여 사진상자를 뒤지던 중 너의 사진을 발견했구나. 초등학교 때부터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군대가기 전 그리고 제대 후 입사를 위한 사진까지 각종 증명 사진이 있었던 거야. 소처럼 눈이 크고 겁이 많아 보이는 초등학생 때의 증명 사진을 물끄러미 보다가 아, 하는 충격이 왔단다.
그 시절 중의 어느 한 장면이 떠올랐기 때문이었지.
기억을 되살려 보건대 아마도 초등학교 일, 이학년 정도 되었으리라.
이른 아침부터 오후가 넘어가도록 교회에서 아주 살고 있는 부모를 만난 덕에 너 역시 인질처럼 이른 아침부터 교회로 끌려가서 주일 학교의 예배를 드리고 소규모 인원이 모여하는 분반공부도 했겠지. 그래봤자 오전 시간 겨우 두 시간 정도이면 너의 교회 생활은 끝이 나야 할 터인데 11시 예배 성가대와 오후 예배 성가대까지 하는 부모를 기다려야 하기 때문에 (집 근처에 있는 교회였다면 혼자라도 집으로 가서 친구들과 놀 수도 있었을 텐데 엄마가 중학교 때부터 다녔다는 교회를 고집스레 수십년 동안 줄곧 다니는 바람에 자동차로 씽씽 24킬로를 달려가야 하는 (본)교회까지 끌려왔으므로)너는 어쩔 수 없이 교회 어느 구석에서 정말 어쩔 수 없이 놀아야 했을 것이다.
내가 기억하는 그 어느 날은 지하 로비의 의자에 힘없이 앉아 있는 너의 모습이다. 겨울이었는지 두꺼운 코트를 입고 기다림에 지쳐 혼자 앉아있는데 아마 감기몸살기까 약간 있었는지 이마가 따끈따끈했다.
지나던 교인이 힘없이 앉아있는 너를 보고 나에게 한 마디 했다.
"얘가 너무 기운이 없어 보이네. 엄마아빠 기다리다 지쳤나보다."
그때는 이미 오후도 훨씬 지난 시각이었을 것이다. 어찌어찌 같이 놀던 교회 또래 친구들도 다 가버리고 엄마 아빠는 데리러 오지도 않고 성가연습에 빠져 있고 너는 홀로 교회에 앉아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미안하다 미안하다 미안하다
믿음이 너무 지나쳐(그것을 믿음이라고 할 수있을까 부끄럽지만) 둘도 없는 외동아들이 교회에서 어떻게 시간을 보내고 있을지 조금도 생각하지 않고 그저 은혜가 넘쳐서 이른 아침부터 성가연습하고 예배 드리고 다시 성가연습하고 빈약한 점심을 교회 식당에서 먹고 정신없이 다시 오후 예배 성가대로 가서 연습하고 오후 예배 드리고 다시 오후 성가대 연습하고....
그렇게 교회안에서 뺑뺑이를 돌 동안 우리 아들은 무엇을 하며 기다렸을까. 무슨 생각을 하면서 기다렸을까.
그것 뿐일까.
오후 늦게 교회가 끝나도 그냥 집에 가는 일은 극히 드물고 누군가 성가대원의 집으로 병원으로 장례식장으로 심방을 갔었지. 지쳐 떨어진 너를 차의 뒷좌석에 인질처럼 태우고 그 긴 시간을 다시 또 기다리게 했구나.
너의 의지와 바람과는 전혀 상관없이 교회 수련회를 매 여름마다 데리고 가서 산 꼭대기 기도원에서 목청 높여 기도하고 은혜가 넘쳐 찬양하는 동안 너는 어떻게 엄마아빠를 기다렸니.
동네 친구들과 신나게 뛰어놀, 매주 일요일을 몽땅 도둑질해갔던 이 어리석고도 어리석은 엉터리 신앙인이었던 엄마와 아빠를 부디 용서해다오, 나의 아들아.
유치원 때부터 고등학교 졸업 때까지의 일요일을 다 합치면 대체 며칠일까. 가장 친구들과 신나게 시간의 구애없이 뛰어 놀 그 신나는 일요일을, 이른 아침부터 오후 너머까지 게다가 각종 심방으로 늦은 밤까지 엄마아빠의 무대뽀 신앙에 끌려다닌 나의 아들에게 정말 진심으로 용서를 빈다.
정말 그 모든 잘못을 용서해다오, 나의 사랑하는 아들아.
정말 미안하구나, 아들아.
아들을 사랑한다고 하면서도 아들의 입장을 손톱만큼도 배려하지 않았던 철면피 신앙인이었던 엄마아빠를 용서해다오.
그렇다면 지금이라도 너에게 일요일의 자유를 주어야 할 터인데 현실은 또 역시 일요일 오전을 몽땅 빼앗고 있구나.
3D 업종보다 더 힘든 일을 하고 있는 네가 토요일도 없이 일하는 네가 고된 일과를 끝내고 편안히 쉬어야 할 일요일을 너에게 되돌려 주어야 하는데 세상에, 지금 역시 곤히 잠자는 아들을 깨워 너를 앞세워 운전을 해야한다는 명목으로 교회로 끌고 가는구나.
이를 어찌하면 좋으냐, 아들아.
너무 미안하고 죄송스럽지만, 아들아. 이것은 정말 부끄러운 부탁이지만 어쩔 수 없이 다시 너에게 양해를 구해야겠다.
너도 아다시피 나의, 이 세상에서 가장 커다란 소원은 너와 아빠와 이렇게 셋이 나란히 예배당에 앉아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일이라는 것을 누누히 주장하면서 은근히 너에게 압박을 주는 것을 앞으로도 용서해주면 안되겠니.
지금 너는 일요일 아침마다 부모를 태우고 교회에 함께 가는 것이 '효도'라고 생각하고 정말 최선을 다해서 일요일 오전을 부모에 대한 봉사로 희생하는 것을 하나님도 아시고 계신다. 너의 부모에 대한 사랑을 하나님이 백배 천배로 갚아주시기를 기도한다.
나는 너의 어미로써 늘 너에게 이렇게 희생을 강요하면서 살고 있구나.
이렇게 사죄의 편지를 쓰면서도 너무 마음이 아프다.
하지만 사랑하는 나의 아들아.
이 모든 잘못을 용서하고, 네가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 늘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삶을 살기를 바라는 나의 소원을 네가 이해하기를 바란다. 너도 나처럼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많이 있어서 주일 아침에 힘들게 일어나도 기쁨으로 교회에 같이 가게 되기를 기도하는 수밖에 없구나.
어린이날.
너의 꿈결처럼 아름답고 즐거운 인생에서 일요일을 온통 빼앗아간, 그리고 여름 휴가와 각종 시간을 막무가내로 빼앗아 간 그 잘못이 너무도 미안하여 이렇게 진심으로 너에게 사과의 편지를 쓴다.
부디 나의 잘못된 이끔으로 너의 신앙이 잘못되지는 않기를, 부모의 어리석은 생각을 보고 타산지석으로 삼아 너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좋은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감히 부탁한다.
사랑해, 나의 아들.
-2015년 어린이날, 이미 서른 다섯살이나 되어 어린이날에 풍선을 불며 놀지 못하는 나의 아들에게
뒤늦게 이 어리석은 어미가 두서없이 편지를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