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현장에서 붙잡힌 여인이 가로되

어느새 토요일!

by 이숙경(2011canna@hanmail.net) 2015. 5. 2.

사랑스런, 사랑하는 나의 하나님께 현장에서 붙잡힌 여인이 문안인사올립니다~

 

안녕하셨어요?

이번 주간에 제가 술 좀 마셔서 하나님 속이 약간 상하셨어요?

그래도 이번만큼은 그냥 넘어가 주세요. 아시다시피 오랜 친구이자 문인이자 남친(그쪽은 인정안할랑가 모르지만^^)이 따끈따끈한 첫 시집을 냈으니 어찌 즐겁게 술잔을 맞부딪치지 않을 수 있사오리까.

늘 우리의 형편을 머리카락 한 올까지 일일이 세고 계시는 나의 하나님이 설마 그런 속사정도 모르쇠하고 때끼! 하면서 야단만 치실 리는 없을 테지만요.

생각해보니 이번 주일은 몇 가지 일이 있었구만요.

먼저 월요일의 교회 여선교회에서 17명이나 또래들이 모여 강원도까지 당일치기 바람을 쐬고 온 일부터 보고해드릴까요?

뭐, 다 아시는 바이겠지만...

일단 한숨부터 쉬고요...

물위의 기름처럼 동동 떠다닌 하루였다고 한 마디로 말씀드릴 수 있겠네요, 그 날의 상황은.

나는 대체 사십 몇 년을 한 교회 다닌 인간으로서 어떻게 그렇게도 숙기도 없고 친교도 없는지...

가만 눈치를 보니 그곳에 모인 17명 중에서 내가 제일 우리 교회를 오래 동안 다닌 왕고참이더라고요. 그런데도 나이가 같은 또래 여자들에게 네. 네 하고 존댓말하고 몇 인간에게는 말꼬리를 흐리면서 반말과 존댓말을 섞어서 하고 세상에, 그렇게 멀찌기 떨어져서 그네들의 온갖 이야기들을 버스안에서 길을 걸으며 귀동냥으로 듣고 있으려니 정말, 정말, 나야말로 확실한 자진왕따로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네요.

뭐, 그닥 싫지는 않았어요.

하나님께서 나를 생각해 주셔서 버스를 텅텅 비게 만들어 다행히 내 옆자리에 내 가방을 친구처럼 모셔놓고 귓구멍에는 웃음소리 가득한 수다 대신 올드 팝과 영화 음악과 생생 클래식으로 귀를 맑게 해주신 것, 모두모두 감사드립니다.

진심이어요.

길을 걸으며 그네들의 이야기 속으로 함께 여행하고 싶었으나 도무지 적응도 되지 않고 그네들의 이야기가 너무도 '상황적'인 것뿐이어서 나는 정말 어리둥절하고 말았답니다.

어디 갔고 무엇을 했고 그때 이렇게 웃었고...뭐 그런 이야기.

그때의 생각은, 그때의 마음은 그때의 슬픔은 한 마디 나누지 않고도 왕복 열 시간을 즐겁게 다녀올 수 있는 그네들의 친밀감이 나에게는 참 접근하기 힘들었네요.

그래도 좋았습니다.

내가 여행에 동참하기로 한 목적 중의 하나는 요즘 우리 또래 교인들은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어떻게 살고 어떤 신앙생활을 하고 있나 엿보고 싶어서였는데 대강 감은 잡았어요.

아, 저렇게 살고 있는갑다.... 저 모습은 아마도 우리 나라 개신교회를 다니는 우리 또래 아줌마들의 보편적인 모습이겠지?

그렇게 관찰만 죽도록 하고 왔다고 하면 너무 좀 그렇겠고, 나름 경치도 보고 바닷바람도 쏘이고, 산길을 걸으며 징징대기도 하면서 그렇게 올데이로 놀러갔다 왔더랬습니다.

하나님.

저는  그래도 참 많이 감사했어요. 그들의 모습이 싫지 않았고, 그들의 천진스러운, 다소는 맥빠져보이는, 솔직하게 말한다면 생각없어 보이는 그런 신앙의 모습이 어쩌면 '순수'의 이름에 더 걸맞지 않나, 하는 나름 반성도 했고요, 그리고

그 반성 가운데서도 나는 그렇게 살지 않는다는 것이 나쁜 방향은 아닐 것이라는 나름의 확신도 있었습니다.

나의 하나님.

하나님께서 나의 체질을 나의 성향을 지금 나의 모습으로 만들어 주신 것을 진심으로 감사드리고 찬양드려요.

하나님도 생각이 있으시니 나를 이런 모습으로 만드셨을 터이고 그렇다면 뭐 이런 모습도 하나님의 개성이 담뿍 들어간 인간 창조가 아니겠어요?

하여튼.

오늘 성경공부에 가져갈 부침개도 수북하게 만들었겠다, 시 두 편도 성실하게 필사했겠다, 저 아름다운 클래식에 젖어도 보았겠다, 옷은 이미 다 갖추어 입고 이렇게 앉아있으니 이제 다 끄고 일어서기만 하면 되겠네요.

월요일의 여행에서의 느낌은 다음에 차분하게, 좀 논리적으로 한국 교회의 친교, 어디까지 왔나, 이런 깊고도 웃기는 제목으로 한 바닥 써 올리겠나이다.

엄허나~~

몇 자 쓰다보니 어느새 아홉시가 훌쩍 지나버렸네요. 늦겠당~~~~

부침개 들고 성경공부 뛰어갔다 오겠습니다.

 

하나님, 오늘을 주신 것을 감사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