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빛나라 60

어제 잠깐 서러웠다

by 이숙경(2011canna@hanmail.net) 2017. 10. 12.

<나는 잠깐 설웁다>라는 시집이 있다. 올해 여름엔가 출간된 허은실 시인의 첫 시집이다...

제목이 좋았다. 나의 길고긴 해피해피해피의 시간 순례에 아주 잠깐 서러운 시간이 마치 보석처럼 박혀 있곤 하는데 어제 오후가 그러했다.

 

무엇인가 내가 할 수 있는 일(글)을 해보려고 오전 내내 머리를 싸매고 프린트하고 검색하고 뒤지고 다시 회원가입하고 하면서 집중했는데, 오후 들어서면서 진이 다  빠져버렸다.

웬 글쪼가리들이 그렇게도 많은지...

2년 전인가 노트북을 새로 구입하면서 지난 글들을 몽땅 폐기처분하여 옮겨놓지 않을 결심이었는데 너무도 친절하신 노트북 기사님께서 (알아서)옮겨놓으셨다...

너무 짜증났지만 이것도 하나님의 무슨 싸인인가싶어 감사하다고 인사만 꾸벅했는데 그럼 그 때 글쪼가리들 운반하신 하나님의 뜻은 또 나에게 메롱 하시려는 깊은 뜻이었단 말인가??

(이쯤되면 내가 하나님께 열받을 것이라고 하나님이 생각하신다면 ㅋㅋ 그거야말로 착각이시죵. 이제 그런 것쯤은 대일밴드조차 필요없는 사랑스럽게 긁힌 상처니까요^^)

 

강의를 두 바닥이나 들으면서 성실하게 메모도 했는데(실은 메모할 것도 없었다. 이미 진작에 습득한 정보였걸랑)너무도 잘 알고 있는 그것들이 왜 나에게는 엮어지지 않는 것일까.

머리가 약간 따근할 정도의 통증이 살짝 마음 어딘가에 기스(!)를 내는 순간이었다.

그런데 절묘하게도 바로 그 순간, 독서회 총무님의 문자가 도착했다.

 

-한가위처럼 복된 소식 가득하시길...

한희철목사님 강사로 오시는데 감사카드 부탁드려도 될까요??

 

순간, 약간의 짜증이...

벌써 몇 년째 독서회에서는 외래 강사님이 오기만 하면 감사카드였다. 뿐인가 스승의 날에는 늘 몇 분께 감사카드, 크리스마스 카드는 일곱장까지 쓴 적도 있다.

사람들은 작가라고 하면 연필만 들면 찰라의 시간에 그냥 쑥쑥 글을 뽑아내는 줄 아는데 천만에 만만에 말씀이닷! 더구나 감사카드는 그분께 감사의 마음이 없이는 절대 한줄도 못쓴다!

한 분 한 분 떠올리면서 그분에 대한 생각을 키우고 그러면서 받은 사랑, 주신 은혜도 생각해야 몇 줄이 쪼르르 나오는 것이다. 내가 아무리 이야기해도 총무님은 쉽게 생각하시겠지만.

 

오전부터 오후까지 일은 진척이 안되고 자괴감까지 밀려와 돌아가실 지경인데 이 무슨 도비탄같은 문자란 말인가! 그래서 이전처럼 '넵'하는 말이 쉽게 나오지 않았다.

문자가 온 핸폰을 저만치 밀어놓고 만성변비처럼 꼼짝없이 내 몸속에 갇혀있는 글과, 글을 쓰려는 나와, 바둥거리는 나의 알량한 실력과 쌈박질을 한참 하는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이었다.

 

이 세상에서 내가 할 일은, 이 세상에서 하나님이 맡겨주신 일은 혹시 저것인지도 몰라.

짧은 감사의 편지로 그분의 마음을 행복하게 해주는 것.

그분을 격려해주고 그분의 삶의 한순간을 포근하게 해주는 몇 줄의 글귀.

 

그리하여

백여 장이 넘는 각종 프린트물을 싹 치우고 마음을 새롭게 하고 내 마음속에 '한희철 목사님'을, 그분과의 기억을 가슴에 새기기 시작했다.

 

한희철 목사님 1987년 우리 용두동교회에서 창립 80주년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단강에 교회를 세웠는데 그때 전도사님으로 그 교회에 처음 부임하신 분이시다. 꽤 오래 그 작은 시골에서 목회하셨다.

나이는 나와 비슷. 1958년생 아내(나의 기억으로는)는 행글라이더 조종사 자격증이 있었다던가. 

우리 여선교회는 거의 해마다 그곳을 (헌금과 선물 등등 바리바리 싸서) 봉고에 꽉꽉 끼어앉아서 방문하곤 했다. 작고 아름다운 예배당. (풍금이 있었던 것 같다) 그곳에서 전도사님이던 한희철 목사님은 기도하는 한나에 대하여 설교하신 것이 떠오르는군. 감명 깊었다. 

그리고 사모님과 몇 되지 않는 교인들이 정성으로 만든 소박한 점심을 먹었다. 나는 그때 가지냉국을 처음 먹었는데 그 맛이 잊혀지지 않는다.

 

내가 여선교회 회장을 하던 어느 해이던가(1999년 아니면 2000년)는 바로 아래 또래의 여선교회 회장과 합심하여 어느 멋진 가을에 단강을 방문한 적이 있었는데 정말 잊을 수 없는 기억이었다. 

나의 아이디어로 그곳에 계신 분들께 폐를 끼치지 말자고 의견을 내놓아서 회원 모두가 각자 한 가지씩 무엇인가 먹거리를 가지고 오기로 했다.

부담스럽거나 형편이 여의치 않은 회원은 껌한 통이라도 사탕이나 과자 한 봉지라도 들고 오기로. 그리하여 누군가는 샌드위치를, 누군가는 밑반찬을, 누군가는 떡(내 친구다 ㅋㅋ)을, 나는 굴을 듬뿍 넣은 무우생채를(대박이었다!)들고 가서 목사님이 지으신 인우제(어리석음과 가까워지자는 의미의 작은 사랑채) 앞 마당에 부페로 차려놓고 먹었다.

그때의 그 풍성함이라니! 모두들 즐거워하며 행복한 식사를 나누었다.

아, 그때 목사님은 오병이어의 말씀을 혹시 모든 사람들이 이렇게 한 가지씩 내놓아 열두 광주리가 남았는지도 모른다고 하셨던 기억도 나는군.

목사님은 추수를 하다가 달려오셔서 진흙이 잔뜩 묻은 검은 장화에 밀짚모자를 쓰고 눈부신 가을 하늘을 등지고 설교를 하시던 그 모습이 아련하게 떠오른다. 그 순간, 그곳에 모인 모든 회원들이 행복해했다. 그때 찍은 사진 몇 장은 너무도 행복해보여서 어딘가 보관하고 있는데 못찾았다. 

 

한희철 목사님은 단강이야기라는 작은 이야기를 쓴 주보를 매주 만들었는데 그 이야기가 너무도 진솔하고 좋았다. 그 이야기를 묶어서 목사님은 몇 십년 전 <내가 선 이곳은>이라는 산문집(1990년대 초반이라고 생각된다)을 출간했다.

아, 정말 몇 번이나 읽었는지 모른다... 그 이후 목사님은 <하나님은 머슴도 안살아보셨나> 이런 비슷한 제목의 산문집도 발간했는데 그 역시 아주 감명적이었다. 이후에도 목사님은 몇 권의 에세이를 더 집필하지 않았나 싶다. 

게다가 몇 해전인가는 소박하고 아름다운 신앙시집인 <어느날의 기도>까지 발간했다. 얄팍하나 깊은 사랑이 넘쳐나는 그 시집은 싸부님이 수십권 사서 우리 독서회원 모두에게 선물로 한권씩 주셨다능....^^

잘은 모르지만 한희철 목사님은 교계에서는 글 잘 쓰시는 분, 시인같은 목사님(아, 물론 시인이기도 하지^^)으로 인정받고 계신 것 같다.  여기저기 칼럼도 많이 쓰시는 것을 보면...

 

나는 내친김에 그분이 목회하신다는 상지교회 홈피도 들어가보고 그곳 어딘가 있는 짧은 기도 시도 읽고, 칼럼 몇 개도 검색해서 읽으면서 그분의 신앙여정, 인생여정을 더듬어보았다.

그리고 나서

 

감사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카드가 변변한 게 없어서 오래전에 사놓은 편지지로 이루어진 꽃봉투를 열었더니 아이고야, 글을 써야하는 속지가 무려 다섯 장이나...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시 필사였다. 그분도 시인이니까.

내가 너무 좋아하는, 거의 미쳐돌아가실만큼 좋아하는, 릴케의 시 한 편을 적고, 그날 물론 참석하실 민영진 목사님의 시집 <유다의 키스>에서도 진솔한 시 한 편 골랐고(독서회 어르신이니까), 시집 대여섯 권을 출간하신 원로 시인이신(ㅋㅋ) 우리 싸부님이 한희철목사님에 대하여 쓴 오래된 시 한 편을 발견하여 필사했다.. ㅋㅋ

 

 

 

 

 

 

 

 

 

 

(다시 옮겨적으려니 팔도 아프고 새벽산책하러 친구와 만나기로 해서 시간도 없고 해서 그냥 사진찍어 올린다)

 

결론. 어제 잠깐 서럽다가....감사하게로 끝이 났다. 하나님, 나 이렇게 살라고 하시는 거 맞나요?^^

 

  

 

 

 

 

 

 

 

 

 

 

 

 

 

 

 

 

 

 

 

 

 

 

 

 

 

 

 

 

 

 

 

 

 

 

 

 

 

 

 

 

 

 

 

'빛나라 60' 카테고리의 다른 글

어느 목사님의 글 중에서  (0) 2017.10.17
6개월의 생  (0) 2017.10.13
꿈에 봉투를 세 개나 받았다는^^  (0) 2017.10.11
날마다 연휴같은 내 인생^^  (0) 2017.10.10
사명자로 준비해 주신 하나님  (0) 2017.1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