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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나라 60

옆집의 비밀

by 이숙경(2011canna@hanmail.net) 2017. 5. 6.

새로 이사한 집은 407호.

복도의 끝에 우리집이 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면 403호 404호를 지나 기역자로 꺾여진 복도.

다시 일렬도 405호, 406호가 있는데 그 집은 이전에 우리가 살았던 36제곱미터의 집이다.

양 사이드, 401호와 407호만 51제곱미터의 집이다.

그러므로 오갈때마다 언제나 403호 404호 405호 406호 집 앞으로 지나치게 되어있다.

그런데.

한집 건너인 405호의 집 문 옆에는 이런 팻말이 걸려있다.

독립유공자 아무개씨의 자손이 사는 집.

눈에 뜨이게 커다랗게 아크릴로 만든 팻말이다.

처음엔 무심코 지나쳤는데 이사하기 전 청소하러 오면서 갑자기 쿵

가슴이 내려앉았다. 그 모든 기억이 단숨에 떠올랐다.

 

그 독립유공자의 집인 405호에 한번 간적이 있었다.

2014년 4월의 어느날.

새해 첫날을 눈물로 맞이한 해.

2월부터 요양보호사를 시작했다. 처음 시작했는데 어려운 할아버지를 맡았다.

매일 샤워를 시켜드려야 하고 기저귀를 갈아주어야 했다.

매일 걸레를 빨아 무릎을 꿇고 낡고 지저분한 거실이며 방을 걸레질했다.

어르신의 반찬을 만들어야 했고 할머니의 과거 이야기를 일 시작할 때부터 끝날 때까지

들어주어야 했다.

세월호가 가라앉는 모습을 그곳 거실을 걸레질하다가 보았다.

평생 안해보던 일을 하면서 힘들었는데 점점 가라앉는 세월호를 보고있자니

내 설움까지 복받쳐서 한참 울었다.

평생 가난하게 살아오신 할머니는 말도 안되는 갑질을 하고 계셨다.

양귀비로 할머니 머리 염색을 해드리면서 평생 용돈한 번 안드렸던 우리 엄마가 떠올랐다.

그 비슷한 연배였으므로 그냥 엄마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사는 것이 너무 힘들었다. 한달에 이자며 과태료가 이백만원에 육박했던 시절이었다. 연체금액만 매달 오십만원이 넘어가는데 정작 나는 만원 이하의 돈 몇 푼이 없어 가슴을 졸이며 살 때였다.

 

나는 센터장에게 오후에도 일할 수 있는 자리를 알아봐달라고 부탁했다.

그 며칠 후 센터장에게서 연락이 왔다.

-치매가 약간 있는 젊은 할머니인데 오히려 옆에 계신 할아버지 고집이 장난 아니지만 해보실래요?

-잘 해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나는 정말 최선을 다해 잘해드릴 결심이었다.

그렇게 해서 오후 일을 할 집을 찾아가 면접(?) 비슷한 것을 보던 집이

바로

독립유공자의 집, 405호였다.

 

좁은 방안과 벽면은 온통 훈장과 감사패와 사진으로 도배되어 있었다.

나는 얌전히 무릎을 꿇고 할아버지의 교훈 섞인 강론을 들었다.

치매가 약간 있다는 할머니는 아직 젊은데 평생 할아버지때문에 고생 꽤나 했을 것 같았다.

센터장과 나는 할머니가 타주신 묽은 커피를 마셨다.

세간살이로 가득찬 좁은 방에서 한 시간은 앉아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내일부터 오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이따 연락할테니 가보시우.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센터장과 나는 그냥 집으로 돌아갔다.

다음날 센터장이 나에게 전화를 했다.

-무슨 이유인지 모르지만 싫다네요.

 

깜짝 놀랐다.

센터장도 놀라기는 마찬가지였다. 거절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는 것이다.

하여튼

나는 면접에서 퇴자를 맞고 한동안 실의에 빠졌다. 아마도 가장 어두운 시간이었을 것이다.

나는 돈을 더 벌어야 하는데 왜 하나님은 일을 이렇게 하시나!

 

(그 후 일주일도 되지 않은 5월 3일, 나는 모든 것을 한꺼번에 해결해주시는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게 된다.

그러므로 일을 오후까지 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와우~~)

 

생각해보면 그날이 거의 최악의 날이었다. 그리고 며칠 후 나는

모든 족쇄와 사슬이 풀어져 새처럼 노래하는 인생이 되었다능....

 

그런데 하나님은 잘 잊어버리는 나를 생각해서

날마다 집을 들어올 때, 나갈 때 독립유공자의 팻말을 보게 하셔서

그 기억을 되새기게 하신다.

 

감사하여라, 나의 하나님이여.

어제는 복도에 나와 계시는 그 치매 할머니(할머니라고 하기에는 너무 젊지만)를 만났다.

할아버지에게 설설 기면서 커피를 타주시던 그분이 확실했다.

사전투표를 하러 집을 나서던 남편과 나는 할머니에게 인사를 했다.

-저 집에 새로 이사왔어요.

순하디순한 눈매로 웃으며 할머니는 반가워하셨다. 물론 나를 전혀 모르시는 눈치다.

 

하나님. 

독립유공자의 집을 바로 옆집으로 붙여주셔서 감사합니다.

지나칠 때마다 

그 때의 고통과 슬픔과 괴로움을 기억하게 해주시고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더욱 깨닫게 하여주시니

놀라울 따름입니다!

 

405호의 비밀은 하나님의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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