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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현장에서 붙잡힌 여인이 가로되

이제는 정말 조신한 여인이 되어가는 것이옵니까?

by 이숙경(2011canna@hanmail.net) 2016. 5. 7.

어제 우리 어머님 추도식이었다.

멀지 않은 곳에 사는 동생들(차로 30분 이내에 있다)과, 뉴욕에서 살면서 기도할께, 기도할께 만 연발하는, 전혀 형제의 맏 노릇을 못하는(듯한) 언니와, 차로 달리면 십분 좀 넘게 걸릴까말까한 가장 가까운 곳에 있지만 나올 수 없는 신세가 된(동거녀 폭행죄로 의정부교도소에 구속수감중이시다) 막내동생은 마음에 가득 품고 식사를 했다.

은혜충만으로 날마다 할렐루야를 외치는 언니가 10월에 오면 그때는 막내도 얼굴을 보겠지, 설마?

내 생각이긴 하지만 막내는 세파에 시달리느니 좀 한적한 곳에서 자신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반성까지는 바라지도 않고 십분마다 담배를 꺼내무는 줄담배도 없고 맥주 1cc도 마실 수 없는 환경에서 좀 살아보라지? 그녀석의 정신세계를 흔들어대는 여인들의 시앗싸움에서도 벗어나니 오히려 더 좋은 환경이라고 할수도 있겠다. 면회라는 과정을 통과하여 얼굴을 보고 온 동생의 말에 의하면 어찌나 편안해보이던지 깜짝 놀랐다고 한다. 그래. 사람들이 생각하기에 천국인 곳이 지옥이 될 수도 있고 사람들이 생각하기에 지옥이 천국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니까.

 

어쨌든 맛집이 줄잡아 백 개는 될 집 앞 상가동네에서 고르고 골라 멋진 이딸리안 레스토랑을 예약했는데 촌닭스타일 동생과 조카들이 이전에 먹던 족발보쌈집을 너무도 그리워하기에 결국 한식이 양식을 거뜬히 이겼네. 족발보쌈 먹고 싶어요, 하는 단체카톡질에 결국 예약 취소하고 족발집으로 갔다.

가서.

족발, 보쌈, 막국수, 파전, 주먹밥 좌악 시켜서 펼쳐놓고 그야말로 물장수 상을 만들어버렸다. 세상에. 나도 열심히 먹느라 음료수 한 병 안시켜준 것이 이제 생각나는군.(조카들은 고모가 심히 궁핍한 것을 아는지라 자기 입으로 먼저 고모 콜라 하나 시켜도 되요, 하는 말은 절대 하지 않는다) 술과 거리가 먼 우리 식구들은 몸에 좋다는 백세주 한 병 안 시키고 그 많은 안주만 작살냈다.  엄허나. 생각해보니 나 역시 안주만 먹으면서도 쏘맥 생각이 전혀 나지 않았더란 말이지? 정말 놀랍군.

동생들에게서 두둑하게 용돈봉투를 받은 남편은 걸어서 십분 거리의 집으로 먼저 들어가게 하시고 우리형제들끼리 이차를 갔다. 커피만 마시고 싶다는 동생과 동생일당들을 기어이 bhc 이층으로 끌고가서 전지현이 선전하는 '맛초킹'을 선보였다. 맛있네. 나는 남편 없는 틈을 타서 500cc 마지막 한모금까지 알뜰하게 마셔주었다. 몰래 마시는 맥주의 맛은 나밖에 모를꺼얌.

 

옛날 이야기, 엄마 이야기가 나와서 생각난 김에 다른 블로그에 올린 '어머님이 누구니'를 카톡으로 보내주었더니 모두 십분 공감한다. 맞아 엄마가 치맛바람이 좀 셌지. 둘째 남동생은 좀 살던(?) 시절은 너무 어려서 기억하지 못하고 단칸방에서 단칸방으로 이사하던 기억만 쎄게 난다고 한다. 안됐구나 동생아. 너는 추억까지 구리구나.

모처럼 동생들과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정말 예전 그 시절로 돌아간 기분이었다. 그러던 말끝에 내가 하는 말. 나는 말이야. 지금이 내 삶에서 가장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나에게 이런 시간이 주어졌다니 정말 대단하지 않니? 동생들은 그려려니 한다.

핏속에 모두 낙천적인 인자가 있어서인지 큰동생도 같은 말을 했다.

"나도 행복하게 살고 있어. 결혼도 안하고 시골동네에서 월세살지만."

나보다 세 살 어린 큰동생이 눈가에 웃음이 번졌다. 정말 행복해보이는 미소였다.

"나도 이제 통장에 몇십만원은 있어.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것은 동생의 자랑질.

 

결국 맛초킹 세 조각은 남길 수밖에 없었는데 모두 아쉬워서 눈을 떼지 못했다. 누군가 싸달라고 할까, 했으면 누군가 싸서 들고 갔을 터이지만 모두 꾹 참고 일어섰다. 26000원은 내가 냈다. 그게 나의 한 턱이었다.

난 딴 건 말고라도 이렇게 추도식이나 명절에 모이면 밥값이나 걱정안하고 냈으면 하는 바람밖에 없다.

 

집으로 돌아와 오늘 하루 지출을 성실하게 적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5월을 무사히 넘길 것인가 대략 계산해 놓았다. 그러면서 생각한 것. 아니, 내가 어찌하여 이렇게 조신하게 되었더란 말입니까? 나도 모르는 사이에?

들쑥날쑥하던 기분이 태평양바다처럼 잔잔하고 동생들의 말을 잘 듣고 맞장구도 쳐주고 그저 보면 볼수록 이쁘고 가방을 열고 무엇인가 꺼내어 주고 싶지만 헐렁한 지갑이 미안하고, 그러하니 제가 천국에 가겠습니까 안가겠습니까.

ㅋㅋㅋㅋ

 

아침부터 왜 이러나.

오늘 빨랑 씻고 미국에서부터 날라온 친구 마지막으로 만나러 보신각까지 기어가야 한다.

거참, 그야말로 패셔니스타인 년은 내가 입은 빈티지 웃도리를 제발 달라는 통(약속하라고 손가락걸고 인증까지 했을 정도로 집착하던 년이 웃기기는 한다)에 어제 손으로 빨아 잘 개어놓았다. 빈약한 서랍을 뒤져 년에게 딱 어울릴만한, 내 옷 중에서 고가품인 수제 실뜨기 자켓도 잘 개어놓고, 그 위에 전라도 산골 냄새가 풀풀 풍기는 순수 국산 마른 고사리를 꽁꽁 쌓아 이미 쇼핑백에 잘 쟁여놓았다.

신시내티에서도 한국 요리 즐겨하는 년의 솜씨좋은 손맛으로 고사리는 재탄생되겠징?

 

'어머님이 누구니'를 이쪽에도 올릴까말까 하다가 올리기로 한다. 어머니 추도식 기념으로 ㅋㅋㅋ

(오늘은 아침부터 ㅋㅋㅋ 거리느라 하루의 시작이 완전 늦어버렸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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