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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를 들었다

정한조목사님의 시편

by 이숙경(2011canna@hanmail.net) 2018. 4. 24.

(100주년 기념교회에서 드리는 새벽기도회 라이브로 아침을 연다.

참으로 행복하고도 충만한 시간이다.

어제까지 욥기를 마치고 오늘부터 시편에 들어갔다.

그런데 정한조 목사님의 말씀이 참으로 가슴에 화인처럼 박힌다.

앞으로 6개월동안 시편을 같이 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많이 깨달을 것 같은

기대감으로 가슴이 듀근듀근~~~^^

하나님. 저에게 정한조 목사님을 보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물론 정한조 목사님은 딱 한 번, 미국에서 언니가 왔을 때, 이재철 목사님 설교에 빠져있던 언니가 나를 마구 졸라서 주일예배를 드리러 멀리 양화진까지 간 적이 있었는데,

그때 처음 가서 우왕좌왕하던 우리를 아주 따뜻하고, 겸손한 모습으로 맞이해주시던

그때, 딱 한번 실제 모습을 보았을 뿐이지만...)

 

 

2018년 4월 24일 100주년 교회 새벽기도회   /정한조 목사

본문 시편 1:1-6
찬송가 429장 ‘세상 모든 풍파 너를 흔들어’



복 있는 사람은......(1-3절)
시편은 모두 150편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오늘부터 약 6개월 동안 시편을 통해 주님과 말씀의 교제 나누며, 우리의 삶으로 시편을 써 가도록 하겠습니다. 성경을 순서대로 나누는 새벽기도회에 새로운 성경이 시작되면, 그 책에 대해 서론적인 이야기를 먼저 나누었는데, 오늘은 1편을 먼저 살펴보고, 내일 시편의 전체적인 이야기를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시편 전체 150편 중에서 1편은 시편 전체를 여는 열쇠와도 같고, 마지막 편(150편)은 시편을 닫는 자물쇠와도 같습니다. 시편 1편이 ‘복 있는 사람은’으로 시작이 되는데, 시로 하나님을 노래할 수 있는 사람은 복 있는 사람입니다. 그가 복이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를 아시고, 그가 하나님을 알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향해, 하나님과 함께 노래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시편 150편에는 ‘할렐루야’라는 단어가 반복해서 나오는데, 그 뜻은 ‘여호와를 찬양하라’입니다. 그래서 시편 150편의 별명이 ‘창조주에게 드리는 찬송’입니다. 시편의 내용은 다양하지만, 한 가지 공통점은 모두 하나님께 드리는 노래라는 것입니다. 즉 우리는 삶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는 존재임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1-3절은 복 있는 사람에 대해서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복 있는 사람이 행하지 않는 것, 3가지를 1절이 이렇게 증거합니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첫째로,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않습니다.
‘악인’은 윤리적으로 질이 낮은 사람이라기보다 하나님의 말씀 대신에 자기 속에 있는 욕망, 악함을 최고의 가치관으로 여기며 사는 사람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사람의 행동은 그 속에 있는 것이 나와서 구현되는 것이 거의 대부분입니다. 그래서 악한 사람들은 자기 속에 있는 탐욕과 움켜쥐고 싶음으로 인해서 다른 사람을 해치면서까지 다른 사람의 이익과 권리를 침해합니다. 그래서 악인의 마음속에는 하나님께서 머무르실 공간이 없습니다.
악인들이 그러한 존재이기에 그들의 꾀(충고, 조언, 상담)은 언제나 세속적이고 물질지향적이고 이기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들 속에 있는 것이 그러하기 때문입니다.

둘째로,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않습니다.
‘죄인’은 인생의 목적(종착점)을 바르게 않게 정한 사람입니다. 죄인들의 종착점이 바르지 않기 때문에 그의 인생 전체가 굽을 수밖에 없습니다. 어린 시절, 운동장에서 금을 긋고서 놀이를 할 때에, 금을 바르게 긋기 위해서는 멀리 움직이지 않는 지점을 보고서 그어야 끝까지 바르게 그을 수 있습니다. 만약 금을 바르게 긋겠다고 마음을 먹고서, 땅을 보고 그으면, 다 긋고 나면 금 전체가 휘어져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땅은 움직이는 목표점이기 때문입니다.
죄인들은 목표점을 바르게 정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들의 길(삶의 태도와 방식)은 복 있는 사람과 동일할 수가 없습니다.

셋째로,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않습니다.
‘오만한 자’는 악한 말로 하나님을 조롱하는 사람입니다. 즉 하나님의 존재와 하나님의 행하심에 대해서 조롱하고, 멸시하며, 부인하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자리에 앉는다’는 것은 잠시 머무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 터를 잡고 사는 것입니다. 복 있는 사람은 하나님을 조롱하는 사람들과 동거할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과 다른 삶을 사는 존재입니다. 그 다름이 처음에는 부정적인 것을 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예를 들어 공부를 통해서 대학에 진학하려는 학생은 학교 수업이 끝나고 난 뒤 거리를 배회하지 않습니다. PC방과 같은 곳에서 시간을 낭비하지도 않습니다. 수업시간에 엉뚱한 행동도 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닙니다. 거리를 배회하지 않는 것, PC방에 가지 않는 것, 엉뚱한 행동을 하지 않는 것이 목적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런 것을 하지 않고서, 하루에 매일 잠을 12시간씩 잔다면 앞의 행동을 하지 않는 것이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앞의 행동을 하지 않는 것은 공부를 하기 위함입니다. 마찬가지로 복 있는 사람이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않고,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않고,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않는 것이 목적이 아닙니다. 그것은 긍정적인 것을 행하기 위함 때문입니다. 마치 학생이 공부를 하기 위해서 부정적인 것을 하지 않는 것과 동일합니다.

복 있는 사람이 행하는 것, 2가지를 2절이 이렇게 증거합니다.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첫째로,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합니다.
‘여호와의 율법’은 성경 전체를 뜻하는 말입니다. 내가 좋아하는 말씀만 즐거워하거나, 내게 익숙한 말씀만 즐거워해서는 복 있는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오직’은 집중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특정한 구절이나 내가 좋아하는 말씀에만 집중해서 즐거워하지 않고, 성경 66권 전체를 즐거워해야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어떤 말씀을 통해서 내게 말씀하실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전체의 말씀을 규칙적으로 대하다 보면, 어느 순간에 내가 예상하지 못했던 말씀을 통해서 내 가치관을 바꾸고 내 인생을 바꾸어 가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대할 때는 선입견을 버리고, 중심으로 대하는 것이 바른 태도이고, 말씀을 받은 바른 자세입니다.

둘째로,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합니다.
‘묵상하다’는 단어의 문자적인 뜻은 ‘작은 소리로 읊조리다’입니다. 내가 늘 말씀을 작은 소리로 읊조리면, 다른 사람들이 내가 그리스도인인 것을 압니다.
요즈음은 교회가 교회답지 못하다고 욕을 많이 먹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이 자신이 그리스도인임을 밝히기를 꺼려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럴 수 있다고 생각이 되지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내가 그리스도인임을 드러내지 않을 때보다 그리스도인임을 드러낼 때에 더 그리스도인답게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3절은 복 있는 사람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

복 있는 사람이 ‘시냇가에 심은 나무’에 비유됩니다. 정확하게는 ‘시냇가들에 심겨진 나무’입니다. 복 있는 사람이 시냇가에서 자생한, 스스로 자라난 나무가 아니라 누군가가 심어준 나무입니다. 즉 심어준 존재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복 있는 사람, 그리스도인의 삶은 능동태가 아니라 수동태의 삶입니다. 친한 친구가 1달 동안 여행을 떠나면서 자신이 키우던 강아지를 내게 부탁할 수 있습니다. 부탁을 받았기 때문에 부담은 있지만, 혹 나도 강아지를 키우기 때문에 함께 돌보면 되겠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 대통령께서 1달 여행을 떠나시면서 내게 강아지를 부탁하면, 친구가 강아지를 맡겼을 때와는 부담감이 차원이 다를 것입니다. 두 분이 부탁한 강아지가 동일한 견종, 동일한 크기라 할지라도 부담감은 결코 동일하지 않습니다.
‘나라는 나무’를 하나님께서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시냇가에 심어주셨다는 생각을 중심으로 생각하고 받아들이면, 등에서 식은땀이 날 것입니다. 결코 낭비하며 살 수 없고, 의미 없이 살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시냇가’가 원문에는 ‘단수(單數)’가 아니라 ‘복수(複數)’로 되어 있습니다. 중동지방에는 우리나라처럼 비가 많이 오는 곳이 아닙니다. 그래서 시냇가로 보인 곳이 이내 말라버리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그래서 이 나무가 심겨진 곳은 여러 개의 시냇가들이 겹쳐지는 곳입니다. 그래서 이쪽 시냇가가 마르면, 저쪽 시냇가에서 물이 흐르고, 저쪽이 마르면 또 다른 곳에서 물이 흘러 내려와서 심겨진 나무가 계속해서 물을 공급받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 표어 그대로, 하나님께서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그 곳에 심어주신 것입니다.

그렇게 심어주셨기 때문에 그 나무는 “철을 따라(문자적 의미는 ‘그것의 때에’)” 열매를 맺게 됩니다. 유실수가 1년 내내 열매를 맺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 나무가 살아 있고, 양분을 잘 공급받았다면 자기 때가 되면 반드시 열매를 맺습니다.

사과나무는 사과를, 배나무는 배를 열매로 맺습니다. 처음엔 사과나무였는데 나중에 배를 맺어 배나무가 되거나, 처음엔 배나무였는데 나중에 사과를 맺어서 사과나무가 되는 경우는 없습니다. 사과나무는 처음부터 사과나무로 평생을 살고, 배나무는 평생 배나무로 살아 배를 맺습니다. 우리가 어떤 나무인지는 우리 책임이 아닙니다. 하지만 어떤 크기의 열매, 어떤 품질의 열매를 맺느냐는 우리의 책임입니다. 크고 좋은 품질의 열매를 맺었다는 것은 매일매일 과정에 신실하게, 삶의 색종이를 잘 붙였다는 의미이고, 좋지 못한 열매를 맺거나 열매를 맺지 못했다는 것은 자기를 부인하지 못하고,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는 삶을 살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열매는 나중에 맺지만, 어떤 열매를 맺을지는 과정을 보면 충분히 예상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매일’이라는 과정에 충실해야 합니다.

악인들은......(4-6절)
복 있는 사람들과 다른 악인들에 대해서 4-5절이 이렇게 증거합니다.
악인들은 그렇지 아니함이여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 그러므로 악인들은 심판을 견디지 못하며 죄인들이 의인들의 모임에 들지 못하리로다

악인들은 ‘바람에 나는 겨’와 같다고 합니다. ‘바람에 난다’는 것은 곧 ‘심겨지지 않았다’는 것을 뜻합니다. 즉 흩날려 다니는 것입니다. 심겨지게 되면 한 곳에 가만히 있어야 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알아주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반면에 흩날리게 되면 여기저기에서 눈에 띄기 때문에 사람들이 알아차리기가 쉽습니다. 얼핏 보면 성공한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성공한 것과 성공한 것처럼 보이는 것은 동의어가 아닙니다. 또 행복한 것과 행복하게 보이는 것 역시 동의어가 아니라 반대어에 가깝습니다. 살아가다보면 열매가 주렁주렁하여 성공한 것처럼 보이는데, 실상은 뿌리가 없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 열매들은 나무에서 자라서 맺힌 것이 아니라 자세히 보면 실로 매달아 놓은 것이었습니다. 또 행복하게 보였는데, 남들이 부러워하는 삶을 사는 것 같았는데, 바람에 나는 겨와 같아서 한 순간에 사라지는 사람들도 적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악인’은 ‘복 있는 사람’의 반대 개념인데, ‘복 있는 사람’의 반대는 ‘복 없는 사람’인데, ‘악인’이라고 합니다. 자기 속에 하나님이 없는 사람, 하나님이 없는 사람을 하나님께서는 ‘복 없는 사람’이라 부르지 않고, ‘악한 사람’이라고 부르십니다. 하나님의 반대편은 악일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은 이렇게 마무리가 됩니다. 6절입니다.
무릇 의인들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들의 길은 망하리로다

‘인정하다’의 의미는 ‘알다’, ‘보호하다(watch over)’입니다. 우리가 지금 이 자리까지 어떻게 올 수 있었는지를 가만해 지난 삶을 돌아보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아시고, 우리를 보호하시고, 지켜주심의 결과임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내일 자세히 살피겠지만, 시편은 인간이 하나님께 드린 기도와 찬양이 하나님의 말씀이 되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의 매일매일은 시편과도 같습니다.
오늘도 하나님께서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우리를 심어주신 곳에서 주님을 주님으로 고백하며, 주님의 말씀 순종하는 삶, 역설의 진리를 실천하는 삶을 살게 될 때에, 우리는 복 있는 사람이 되며, 우리의 삶이 오늘의 시편, 시편 1편이 될 것입니다.


기 도
하나님 아버지!
오늘부터 6개월 동안 성경에서 가장 긴 내용을 담고 있는 시편을 통해 주님과 말씀의 교제 나누며, 우리의 삶으로 시편을 써 가도록 하겠습니다. 시인들이 누렸던 은혜를 우리도 누리게 하여 주시옵소서.
시편 1편을 통해서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않고,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않으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않는 사람이 복 있는 사람이라 말씀하지 않으시고, 복 있는 사람이 그런 삶을 산다고 말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바라옵나니 우리가 이미 복 있는 사람인 것을 잊지 않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기뻐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는 삶을 살아, 악인들의 꾀, 죄인들의 길, 오만한 자의 자리를 탐하거나 부러워하지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오늘도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성공한 듯이 보이는 바람에 나는 겨와 같은 삶이 아니라, 눈에 띄지 않는다할지라도 시냇가에 심겨짐과 같은 역설의 진리의 삶을 잘 살아내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하나님께서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삶의 자리에 우리를 심어주심은 시냇가에 심은 나무로 살게 하기 위함이지, 바람에 나는 겨와 같은 삶이 아님을 잘 새기는 은총의 하루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묵상을 돕는 질문
1.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당신은 복 있는 사람으로 금하는 것들은 무엇이 있습니까?
2. 복 있는 사람은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며, 그의 율법을 밤낮으로 묵상한다고 했습니다. 당신은 복 있는 사람으로서 행하는 것은 무엇이 있습니까?
3. 하나님께서 당신을 심으신 곳들은 어디였습니까? 그리고 당신이 시냇가에 심은 나무로서 맺은 열매가 무엇이 있습니까?
4. 당신은 믿음의 시인으로서 하나님과 하나님의 행하심에 대해서 어떤 노래를 올려드리고 싶으십니까? 1-2줄이라도 당신의 시편을 기록해 보십시오.


(작성 : 정한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