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것이 바로 기독교의 진수라고 생각한다.)
자살하면 지옥간다는 이상한 소리들이 있는데.. 그런 소리가 성경 어디에 나오는지 배경을 대면 좋겠습니다. 배경도 없고 원인도 없는 소리를 성도들이, 아니 교인들이 무턱대고 들은 소리로 믿어 버린다는 말입니다. 어처구니가 없습니다.
이렇게 교회 다닌다는 사람들이 무지하고 무식합니다. 성경을 보지도 않고 봐도 무슨 소린지도 모르고 또 진리를 말해줘도 들을 귀가 없으니 자기 마음대로 미신처럼 신앙생활 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 안 믿으면 지옥 가는 것이고 예수 믿어야 천국 가는 것이지(이런 간단한 믿음의 지식도 없단 말입니까) 성경 어디에서 자살하면 지옥간다고 한다던가요
그 구절 찾아와 보세요.. 예수께서는 마음으로 음욕을 품은 자마다 간음한 것이며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죄라는 것은 단지 외적으로 사건화가 되어야만 죄로 성립하지 않는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살인을 저질러야먄 살인이 아니라 어떤 사람을 미워해도 즉 죽이고 싶다고 생각만 해도 그건 살인한 것이라는 말입니다. 또한 지나가는 어떤 사람을 보고 음욕을 품어도 그건 간음을 행한 것과 똑같다는 말입니다.
어떤 여자 분이 평생 한 번도 자기 남편 외에는 다른 남자에 대해 욕망을 품어보지 않다가 딱 한 번 텔레비젼에 나오는 어떤 남자를 보고 저 남자와 한 번 살아봤으면 좋겠다.. 이렇게 생각만 해도 그건 간음한 것이라는 말입니다.(일부러 여자의 예를 들었습니다 남자는 말 할 필요도 없으니까요) 자 그렇다면 과연 우리 중에 누가 간음 하지 않은 자가 있으며 과연 우리 중에 누가 살인하지 않은 자가 있단 말입니까. 우리 모두 살인자요 간음한 자라고 예수가 말씀한 것입니다. 실행에 옮겼든 마음으로만 생각했든 예수가 보시기에 똑같다는 말입니다. 이 말은 또한 인간의 죄란 마음의 문제 즉 영의 문제지 절대 외적인 행위의 문제가 아니라고 하신 것입니다.
자 원리가 이렀습니다. 그럼 자살은 어떨까요. 다른 사람을 미워하기만 해도 그건 살인한 죄와 같다고 했습니다. 우린 살면서 이런 생각을 한 번도 안 해 봤을까요? 아 살기 싫다. 죽고 싶다... 이 세상에서 내가 없어졌으면 좋겠다... 자 이런 생각을 했다면 그건 무엇과 같습니까? 자살과 같은 것입니다. 나를 죽인 죄를 지은 것입니다. 단지 용기가 없어서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거나 아니면 그냥 말로 한 번 이 허무한 세상 허탄한 세상 더러운 세상에서 빨리 죽고 싶다고 넋두리를 했다고 해도 그건 자살한 것과 똑같은 것입니다.
자 그럼 나는 자살하지 않은 것입니까. 단지 사건화되어 외부로 표출되지 않았다고 해서 내가 자살하지 않은 것입니까? 예수의 말씀대로라면 나는 이미 수십번도 더 자살한 것입니다. (여기서 또 속으로 나는 그런 생각 한 번도 안 했어.. 이러고 있습니까. 죄란 전부 같다는 말을 하는 것입니다. 잘 알아 들으세요. 그냥 인간은 전부 쳐 죽일 자들임을 증명하고 있는 것이 성경이란 말입니다) 자살한 사람이 지옥간다면 그건 바로 나를 두고 하는 말과 같은 것입니다.
그렇다면 당신은 결단코 지옥에 갑니다. 왜냐 자살했으니까요. 성도라고 하는 사람들, 아니 기독교인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이렇게 다른 사람에 대해 함부로 평가하고 판단을 합니다. 내가 하나님입니까. 내가 무엇이관대 다른 사람이 천국간다 지옥간다 이렇게 판단을 한단 말입니까. 전부 아담의 범죄를 동일하게 가지고 태어나서 자기가 선악을 판단하는 주체자로 서 있기에 이런 무시무시한 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내가 살인자요 내가 자살한 자라는 것을 모르는 것입니다. 내 자신도 구원을 받을 수 있는 아무런 자격이 없고 오직 예수의 은혜만을 구걸하는 자로 서 있는 것인데 다른 사람의 구원에 대해 탈락이냐 합격이냐 이런 어처구니 없는 짓들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그리스도인이라면 정신병에 안 걸린다고 합니다. 참된 성도라면 우울증이나 공황장애나 멘탈적인 병에 걸릴 리가 없다고 합니다. 누가 그런 말을 합니까. 성경이 언제 그런 말을 합니까. 성경은 예수에게 미친 놈이라고 당시에 불렀습니다.
마11:18 요한이 와서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아니하매 그들이 말하기를 귀신이 들렸다 하더니
마11:19 인자는 와서 먹고 마시매 말하기를 보라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요 세리와 죄인의 친구로다 하니 지혜는 그 행한 일로 인하여 옳다 함을 얻느니라
요한은 구약의 마지막 선지자로 금욕하며 살았습니다. 그가 광야로 나가 메뚜기와 석청을 먹고 화려한 옷들을 버리고 가죽옷을 입고 살자 저들은 저거 귀신들린 미친놈이라고 욕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는 와서 마음껏 먹고 마시면서 복음이란 그렇게 자기를 금욕하며 자기를 깨끗하게 만드는 율법이 아님을 보여주시려고 자유롭게 사셨습니다. 금식하지 않으셨고 다들 금식하고 있을 때 창기들과 어울려 마음껏 취하고 드셨습니다. 그들이 얼마나 기분 나빴을까요. 아마 제 글을 보는 인본주의자들도 그렇게 기분 나쁘고 저를 죽이고 싶을 겁니다. 자 그러자 저건 먹기를 탐하는 식충이고 포도주에 절어 있는 주정뱅이라고 욕했다는 것입니다. 또한 세리와 죄인들과 어울리는 추잡스럽고 더러운 놈이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역시 미친놈이라는 말입니다. 대놓고 그렇게 말한 것입니다. 속으로 한 것이 아니라...
보세요.. 성도가 어떻게 살든 세상은 절대 정상으로 봐주지 않습니다. 특히 교회만 다니는 종교주의자들은 세상에서 인정을 받고 칭찬을 받고 선하다고 착하다고 언론에 나고 상을 받는 것이 신앙이라고 생각하고 그렇게 행동하기 때문에 예수와 같은 욕을 먹지 않을 테지만 진짜 진리로 사는 자들, 예수의 전철을 밟는 참된 성도는 예수처럼 미친놈이라고 더러운 놈이라고 제정신이 아니라고 세상으로부터 왕따를 당하고 공격을 당하고 폭력을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 세상이란 진리를 모르는 교회와 종교주의자들, 교회 다니는 복음을 모르는 자들을 포함한 말입니다.
자 이렇게 무슨 짓을 하든 미친 놈 취급을 당하니(이전 글에서 지랄병으로 설명을 했습니다만) 성도는 절대 이 세상을 제정신으로 살 수가 없습니다. 모두가 미친 놈 취급을 하고 제정신이 아니라고 공격을 당하고, 오직 예수 앞에 엎드려 예수만을 구하며 세상과 자아를 부정하며 세상을 정죄하고 있으니 절대 교회종교인들과 세상은 성도를 죽이지 못해 안달이고 미친놈들이고 정신병자들이고 왜 착하게 사는 것이 문제냐며 어떻게든 잡아 죽이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도는 절대 제정신으로 살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성도라면 우울증에도 안 걸리고 공황장애에 걸리면 그건 믿음이 없는 것이고 마귀의 공격을 당하는 것처럼 말을 합니까. 진짜 성도는 더 우울증이나 공황장애나 정신적인 병에 걸릴 위험이 높은 것입니다. 어찌 이 미쳐돌아가는 세상(지랄병이라고 했음)에서 제정신으로 살 수 있겠습니까..
사실은 그렇게 공격을 하는 자들이 모두 미쳐버린 것이고 성도가, 세상 앞에 패배자처럼 살며 자아와의 고통스런 전쟁을 벌이면서 이제나 저제나 예수에게 완전히 점령되기만을 간구하는 그 성도가 정상인데도 지금 이 땅에서 살아가는 현실은 성도가 미치고 귀신 들린 것처럼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니 어찌 성도가 정상으로 살아갈 수 있겠느냐 이 말입니다.
성도도 동일하게 정신병에 걸리고 우울증으로 고통을 받을 수 있고 공황장애로 힘들 수 있는 것입니다. 병에 걸리고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과로로 쓰러지는 것입니다. 누가 성도라면 안 그렇다는 것입니까. 고린도후서를 제가 강의하면서 거짓 교사들이 바울을 공격하던 것과 똑같은 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이 예수의 사도이고 진짜 그리스도인이라면 어찌 고난이라는 고난은 다 겪고 하나도 피해가지 못하는 것이냐, 하나님이 진짜 바울 편이라면 웬만한 어려움은 이겨내고 빗겨가고 불운한 것들은 오지 않아야 하는 것 아니냐 그게 하나님이 바울을 보호하고 있다는 증거여야 하지 않겠느냐. 그런데 어떻게 고난이란 고난을 다 받고 환란이란 환란은 전부 바울만 받고 있느냐. 저거 가짜 아니냐. 이렇게 공격한 것입니다.
그에 대해 바울은 자기는 약한 것을 기뻐하며 자랑한다고 말했습니다. 상상할 수도 없는 고난과 역경은 자기 자신을 약화시키고 즉 자아를 전부 부정해 버리시고 오직 예수만을 자랑케 하기 위한 하나님의 축복임을 깨닫게 되었다는 고백입니다. 그게 고린도후서였습니다.
12:7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탄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
12:8 이것이 내게서 떠나가게 하기 위하여 내가 세 번 주께 간구하였더니
12:9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12:10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
우울증도 공항장애도 정신병도 미쳐버리는 것도 어떤 역경이나 고난도 전부 하나님이 나의 자아를 무너뜨리고 오직 나는 약하고 예수만을 붙드는 강한 자로 만드시기 위한 것이라는 말입니다. 어찌 예수를 믿으면 이 땅에서 강하고 승리하고 성공하는 자가 된다는 그런 마귀의 논리를 성도라는 사람들이 따른다는 말입니까.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바울의 이 일관된 고백은 어떻게 해석하고 어떻게 적용할 것입니까.
성도는 그렇게 이 땅에서 사라져가는 것이고 무너져내리는 것이고 낮아져서 없어지는 것이지 어떻게 더 강력해지고 더 높아지는 이 땅의 마귀적 속성을 진리라고 따른단 말입니까. 성도는 이 허상의 세상에서 먼지같이 없어지고 완전히 죽어 하나님만 순종하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나는 것입니다. 이 땅에서 얼마나 못난 꼴로 나타나고 얼마나 자존심이 상하고 얼마나 남들에게 밟히는 모습으로 나타날찌라도 그런 건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바울이 세 번이나 기도했지만 들어주지 않으셨습니다. 이 말은 나으려고 끝까지 기도했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바울에게 네가 약해지고 죽어지는 것이 너에게 족하다, 너에게 더 좋은 것이라고 답하신 것입니다. 바울은 그것을 받아들인 것입니다.
오늘도 그 약함으로 이끄시는 하나님을 순종함으로 받으시고 내 자아가 무너지고 완전히 깨지기 위해 하나님이 일하고 계심을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그 해체의 작업이 없다면 나라는 자아는 절대 하나님을 믿지 않습니다. 생각해 보세요. 아주 분명한 사실입니다. 환란이 소망으로 연결되는 이유가 이것입니다.
'설교를 들었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메시지성경 갈라디아서 머리말 (0) | 2016.03.07 |
---|---|
김성수목사님 에베소서 5강 (0) | 2016.03.07 |
서영훈 목사님/ 성도의 감사 (0) | 2015.02.22 |
거룩한 비효율-김성수목사님 (0) | 2015.02.10 |
1월29일 100주년기념교회 새벽예배/서영훈목사님 (0) | 2014.01.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