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기도실에서 혼자 할 수 있는 것들
예수쟁이들은 일요일에만 교회 간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대한민국에 얼마나 될까?
한국 교회의 특징 중의 하나는 교인들을 자주 교회에 집합시킨다는 것이다. 모이기를 힘쓰라, 는 성경 말씀에 순종하려고 애쓰는 그리스도인들은 그래서 더 자주, 더 많이 교회에 간다.
다른 나라의 상황은 알 수 없으되, 그리고 다른 교회의 상황도 잘은 모르되, 우리 교회의 예수쟁이들은 주중에도 시시때때로 교회 간다. 그런데 시시때때로 교회에 가는 재미도 꽤 쏠쏠하다는 것이 나의 경험이다.
교회에 오면 제일 먼저 커피 한 잔을 뽑는다.
가나 홀 새 단장 후 우리 교회 지하실 정말 멋지게 변했다. 호텔 급 화장실과 온갖 화초로 장식된 작은 정원, 얼마든지 합체(?)가 가능한 테이블과 편안한 의자들. 탁월하고도 완벽한 인테리어를 자랑하는 가나 홀을 천천히 걸으면서 엊그제 오후 예배에 오셔서 화끈한 설교를 해주신 박영 목사님의 그림을 감상하노라면 천국이 따로 없다.
커피를 마시면서 가나 홀을 널찍하게 한 바퀴 돈 다음, 지하기도실로 들어간다. 지하기도실의 문을 열 때 첫 느낌은 -누구나 그렇게 느끼겠지만- 포근함과 따스함이 곁들어진 평안함이다. 약간 어둑한 실내에는 하나님이 주시는 기분 좋은 아늑함과 마치 내 집 안방에 들어선 것 같은 안정감을 준다.
조용한 실내를 살펴본다. 철야기도와 새벽예배, 새벽기도를 마친 분들이 돌아가셨기 때문일까, 아침의 기도실은 거의 비어있다. 중보기도실에서 아련하게 들려오는 찬송소리와 통성기도 소리는 마치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의 노래처럼 느껴진다.
언제나처럼 방석 하나를 단상 가까이 갖다 놓고 앉는다. 지하기도실의 끝내주는 단상 인테리어에 엄청 감동 먹으면서 엄마 품처럼 따뜻한 기도실의 분위기에 젖어 들다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를 때가 많다. 그래서 기도실에서는 늘 핸드폰으로 알람을 해놓는다.
그저 가만히 앉아있기만 해도 그렇게 좋은 곳이 세상에 또 있을까!
얼마쯤 그렇게 넋을 잃고(아니 은혜의 도가니에) 있다가 그래도 시간이 남으면 개인 기도실로 자리를 옮긴다. 개인기도실! 그곳은 또 하나의 작은 천국이다. 하얀 벽은 너무도 순결해 보이고 작은 다탁에 놓인 성경책을 넘기노라면 말씀들이 반짝거리면서 내 가슴으로 뛰어 들어오는 것 같다.
솔직하게 고백하자면 나는 개인기도실에서 혼자 잘 논다.
그 작은 공간에서 수요일 속장 공부가 끝나고 수요 저녁 예배까지의 길고 긴 시간을 보낸 적이 몇 번 있다. 그 곳에서 몰래 컵라면도 먹고, 빵과 우유도 먹고, 내가 좋아하는 비스킷을 아삭거리기도 한다. 책을 읽다가 졸리면 방석 세 개를 나란히 깔고 방석 두 개는 접어 베개를 만든다. 그렇게 약간 쪼그린 자세로 누우면 마치 엄마 뱃속에 있는 아이처럼 모든 걱정이 사라지고 잠도 솔솔 잘 온다. 교인들의 기도소리는 꿈속까지 찾아와서 나에게 은혜로운 꿈을 꾸게 한다.
가끔 재미있는 사건이 생기기도 한다.
얼마 전 신발을 잃어버렸다. 신년 속회 지도자 세미나가 있던 날, 지하 기도실에서였다.
그 신발은 아는 언니가 신던 것을 넘겨준, 길거리 표(!) 신발이었다. 아무리 찾아도 내 신발은 보이지 않고 잘 살펴보니 기도실 신발장에 예쁜 신이 하나 놓여있었다. 아마 그 신의 주인이 내 신발을 잘못 신고 간 모양이었다. 하는 수 없이 예쁜 신을 신고 집에 왔다.
기도하다 없어진 것이니 아무래도 하나님이 새 신발 사라고 하시는 모양이다.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어쨌든 예쁜 신은 며칠 후 지하기도실의 신발장에, 얌전히 갖다놓았다. 누구신지 모르지만 다시 찾아갈 수도 있을 것이므로.
다시 며칠 후 주일, 혹시나 해서 들러본 기도실 신발장에 예쁜 신은 없고, 그 자리에 내 신발이 다소곳이 놓여있었다! 정말 깜짝 놀랐다.
누구신지 모르는 그 분 역시 나의 신발을 일부러 가져와(얼마나 번거로웠을까!) 신발장에 넣어주셨을 것이다. 그렇게 해서 역사 깊은 내 신발은 닷새의 가출 끝에 다시 나에게 돌아왔다.
여러분이여, 가끔 지하기도실에 들어가 보시라! 아무도 없으면 단상 옆의 스위치 몇 개를 눌러보시라. 단상의 십자가와 불, 그 가장자리를 밝혀주는 푸르스름한 빛이 기가 막히게 환상적인 것을 보고 너무 놀라지 마시라! (주의! 전기세가 많이 나가므로 오 분 정도만 즐길 것!) 누군가 기도하는 중에 자신의 이름이 나오더라도 너무 놀라지 마시라! 교인들은 남을 위하여 기도하는 것에 매우 익숙하다는 사실을 숙지하심도 좋을 듯.
혹시 좀 더 시간이 있다면 개인기도실에 들어가 보시라!
어느 때에는 누군가 조용히 읊조리는 찬송가를 한 시간 이상 들을 수 있을 것이고, 또 어느 때는 몇 사람이 손을 잡고 통성 기도하는 소리가 마치 음악처럼 아름답다는 것도 알 수 있을 것이다. 어느 때는 예수님이 친히 오셔서 그대의 눈물을 닦아주는 은혜를 체험할 수도 있을 것이다.
지하기도실에서 혼자 할 수 있는 것들
1. 십자가 불을 살짝 켜고 황홀해 하기.(5분만!!) 2. 눈 감고 누군가의 기도소리 듣기. 3. 누군가의 기도에 은혜 받고 속으로 아멘, 하기. 4. 나도 기도하기. 5. 기도하다 커피나 과자, 빵 먹기. 6. 누군가의 찬송소리 듣기. 7. 그 누군가가 가면 나도 살짝 찬송가 불러보기. 8. 성경책 뒤적이기. 9. 방석 세 개 깔고 두 개 접어 베개하고 한숨 자기. 10.누군가의 눈물어린 기도에 같이 울어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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