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종 닭 일곱 마리
얼마 전, 콘도에서 하룻밤 묵을 일이 있었다. 공교롭게도 주일이었다. 아침에 TV를 켰더니 화면위에 자막이 계속 떴다.
9시에 콘도 어디어디에서 주일 예배가 있습니다... 조금 후에는 이런 자막도 떴다. 오후 3시에 본관 어디에서 미사가 있습니다...
모르긴 해도 주일 아침을 콘도에서 맞이한 많은 기독교인들이 그곳에 가서 예배를 드리고 본 교회에서 주일 성수를 못했다는 자책감을 조금이나마 씻을 수 있었으리라고 생각된다.
나 역시 우리 교회가 아닌 곳에서 주일 예배를 드린 적이 거의 없었으므로 마음이 매우 찜찜하던 차였다. 생각해 보면 어느 교회건 다 하나님이 계신 곳인데 왜 그렇게 편협한 생각을 하는지 나 자신도 모르겠다.
어쨌든, 우리 일행은 지인이 다니는 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리기로 했다. 교회는 아담했다. 마치 1970년대의 우리 교회 같은 분위기였다. 인구 7만의 시골 교회였는데 젊은이들은 거의 보이지 않았고 연로한 분들이 많았다.
관광지라 여행 중 들린 듯한, 가벼운 옷차림의 성도들도 눈에 띄었다. 낯 선 교회였지만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예배를 드렸다. 작은 교회여서인지 담임 목사님이 사회, 말씀 선포, 광고 등 모든 것을 다 하셨다.
그런데 압권은 바로 광고시간이었다. 교인 중, 상(喪)을 당하신 분이 계셨던 모양이었다.
목사님: 에, 모모 집사님께서 여러분의 기도와 도움으로 무사히 장례를 마치게 됨을 감사하면서 점심으로 토종닭 일곱 마리를 기증(?)하셨습니다. 아무쪼록 예배드리신 모든 성도님들은, (우리 일행이 앉은 쪽으로 고개를 돌리시면서)저어기 여행 중 들리신 성도님들도 한 분도 빠짐없이 다 점심식사를 하시고 가시기 바랍니다. 맛은 자타가 공인하는 세계 최고의 수준입니다!
우리 일행은 살며시 주위를 돌아보았다. 교인들이 적어도 백여 명은 되어보였다. 아니, 이 많은 교인들이 어떻게 토종닭 일곱 마리로 식사를 할 수 있을까. 우리의 내심을 알아차리셨는지 목사님이 부언설명을 하셨다. (주일 낮 예배의 광고시간이라는 것을 감안하시고 읽어주셨으면 좋겠다)
목사님: 그냥 닭이 아니고, 토종닭입니다. 그래서 매우 큽니다. 게다가 일곱 (목사님은 손가락으로 일곱을 펴 보이셨다)마리나 됩니다. 충분히 드시고도 남습니다. 모두들 식당으로 내려가십시오.
우리 일행은 수많은 교인들과-나중에는 목사님까지 합세하여-“꼭 드시고 가시라!”는 간청을 뿌리치고 나오느라 보통 고생한 게 아니었다.
지인과 같이 예약된 다른 곳에서 식사를 하면서 우리는 토종닭의 사연을 좀 더 들을 수 있었다. 고인(故人)은 무척 어렵게 사시던 분인데 올망졸망한 자식들을 남겨둔 채 갑자기 교통사고로 돌아가셨다고 했다. 마침 지인은 고인의 자녀를 청년부에서 가르치고 계시고, 고인의 어머니와는 같은 속이었다.
속회에 참석한 그 어머니가 감사한 마음에 토종닭 일곱 마리를 교회점심으로 제공하겠다고 말씀하셨다. 모인 속도들은 어떻게 하면 토종닭 일곱 마리로 교인들을 모두 대접할 수 있는가에 대해 합심(?)하여 고민하기 시작했고, 그에 따른 의견이 분분했다고 한다.
물을 많이 붓고 닭백숙을 끓이자, 튀겨서 작게 한 조각씩 나누자, 등등 오랜 시간 의논하던 끝에 결국 닭볶음탕으로 낙찰이 되었다는 것이다. 감자나 양파 같은 부대 재료를 아주 많이 넣고(대체 얼마나 많이 넣어야할지!) 만들어서 식탁마다 한 대접씩 올려놓으면 해결이 된다, 이렇게 결론지었다고.
이건 순전히 내 짐작이지만, 그 날 점심식사는 절대 모자라지 않았을 것이다. 내가 많이 먹으면 저 사람이 못 먹을 수도 있으므로 젓가락질도 무척 절제가 되었을 테니. 나에게 토종닭 일곱 마리의 점심식사 사건은 현대판 오병이어와 다름없어 보인다.
그리고 보니 몇 년 전의 일이 기억났다. 여선교회 월례회 때마다 집에서 직접 만든 빵을 구워오는 분이 계셨다. 늘 변함없이 웃으면서 (누가 만들어 오라고 부탁하지 않았는데도 자원하여) 빵을 나누어 주시고 남은 빵은 싸주기까지 하던 회원의 아름다운 마음을 떠올렸다. 그것뿐인가. 어느 성도님은 만나기만 하면 주머니를 뒤져 사탕 한 알이라도 꺼내 주시는 분도 계셨다. 교회는 오병이어의 기적을 날마다 실천하고 또한 체험할 수 있는 신비한 곳이다.
작년 추석 즈음에 겪은, 같은 속의 어느 권사님 사랑도 잊을 수 없다. 나란히 앉아 같이 버스를 기다리던 권사님이 가방을 한참 부스럭거렸다. 내 손에 쥐어주신 것은 빳빳한 만 원짜리 한 장이었다. 나는 너무 놀랐다. 그 권사님은 무척 가난하신 분으로 정말 어느 때는 끼니조차 걱정해야하는 분이셨다. 방금 전 속회 나눔의 시간에 추석에 3만원으로 음식을 차려야하는데 뭘 할까, 걱정이라고 하시던 권사님이 대뜸 나에게 돈을 내미는 것이었다.
나는 물론 펄쩍 뛰었다. 사실 버스 정류장에 나란히 앉았을 때부터 나는 머릿속으로 통밥을 재고 있었다. 권사님이 저렇게 어려우신데 나의 빈약한 호주머니에서 다만 만원이라도 드려야하지 않을까, 어쩔까. 뭐 그런 고민이었다.
그런데 권사님이 먼저 나에게 선뜻 돈을 내민 것이었다. 너무도 주고 싶으니, 받으라고 강권하시는데 도저히 물리칠 수 없었다. 그리하여! 그 엄청난 금액, 만원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고백하건데 속회 인도를 십 년 넘게 했지만 도대체 누가 속회 인도를 하는지 모를 때가 너무 많다. 속회 드리는 시간은 대개 내가 뭔가를 배우는 시간이다. 나는 정말 너무도 창피하고 부끄러웠다. 나는 적어도, 3만원으로 추석 상을 차리지는 않는 형편이었다.
...세상에서의 빈부는 눈에 보이는 재산으로 평가될지 모르지만 적어도 교회에서는 세상의 기준과는 다르다.
자신이 주는 사람인지, 아니면 받는 사람인지 돌아본다면 진정한 부자가 누구인지 자연히 드러나는 것이 아닐까.
나는 (지인에게서) 회를 얻어먹은 자요, 책을 선물 받은 자요, 빵을 얻어먹는 자요, 사탕을 얻어먹는 자요, 과부의 렙돈 두 닢을 받은 자다.
나는 세상에서도 가난한데 교회에서도 정말 가난한 사람이다.
대체 나는 언제 부자가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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